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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일하고 나누는 삶, 사이토 겐조가 말하는 왓바의 54년

사이토 겐조 인터뷰 / 특별기획

본문

 
사이토 겐조 씨(77세)는 ‘왓바’를 설립한 사람으로 복지제도의 울타리를 넘어 모두가 함께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는 세상을 꿈꾸고 실천한다. 현재는 왓바에서 만든 NPO법인 ‘왓파노카이’의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54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그는 어떤 신념을 가지고 왓바를 이끌어 왔을까. 또, 왓바의 미래를 어떻게 준비하고 그리고 있을까. 사이토 겐조 씨에게 질문해본다.
 
Q. 왓바의 첫 시작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A. 네.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야겠습니다. 저는 복지와는 전혀 상관 없는 공군학을 전공했습니다. 당시 자원봉사를 하는 대학 동아리의 회장을 맡고 있어 한 번은 산 속에 위치한 장애인 시설로 봉사활동을 갔었어요. 그때 많은 의문이 들었습니다. ‘왜 장애인은 지역사회에서 떨어져 살아야 하지?’, ‘구치소에 들어가도 형기를 마치면 지역사회로 나오는데 시설은 들어가면 나오지 못하네’ 이런 의문을 가지다가 그 원인이 지역사회에 이 사람들이 있을 공간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공간을 지역사회 안에서 만드는 데서부터 왓바의 활동은 시작되었습니다. 맨 처음엔 시가현 쪽에서 시작을 했습니다. 그 당시 동경, 나고야 지역의 젊은 청년들을 중심으로 모인 ‘휴먼 연맹’에서 학생 운동의 차원으로 이 일을 준비하고 500만 엔(한화 약 4,820만 원) 정도의 큰 돈이 모이기도 했었는데 끝까지 잘 이어 나가지는 못했어요. 제가 당시 동아리 회장으로서 시작한 일을 책임져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대학교를 중퇴하고 나고야로 와서 세 사람과 공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Q. 한국에서는 왓바가 대표적으로 ‘공동생산 공동분배’하는 기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럼 지금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돈을 나눠 갖는 형태인가요?
A. 그건 70년대의 이야기고 80년대부터는 조금씩 차이를 두었습니다. 처음엔 동일하게 분배금을 나누어 가졌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장애인은 돈을 다 사용하지 않아서 적금이 계속 늘고 비장애인은 가정을 꾸리는 등 사용처가 많아짐에 따라 더 가난해지는 상황들이 발생한 거죠. 왓바는 기본적으로 같이 일하는 문제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성별, 학력, 국적, 장애 유무의 차이 없이 모두가 기본적인 생계를 보장받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것은 54년이 지난 지금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고 현재 기준으로는 왓바의 모든 장애인 회원들은 최대 약 13만 엔(장애인연금 및 수당 포함), 비장애인 회원들은 약 20만 엔 정도의 분배금을 받도록 하고 있습니다. 가정을 꾸린 경우나 일한 경력에 따라 차이가 조금씩 나지만 학위나 자격증 유무가 분배금의 차이를 결정 짓진 않습니다.
 
Q. 그 원칙을 현재까지 고수하는 것이 쉬운 과정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이 동의해야 하는 문제일 텐데, 직원들의 반발은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A. 맞습니다. 처음 20명이 모였을 때는 이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 비교적 쉬웠지만 지금은 400명이 넘는 회원들이 있기 때문에 모두의 동의를 얻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왓바 내에 다양한 위원회 기능을 두고 있습니다. 특히 인사위원회에 회원들이 참여해서 인사 이동이나 분배금 등 중요한 문제들을 다룹니다. 인사위원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죠. 또 왓바가 50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다 보니 우리의 가치에 동의하고 그 흐름에 맞춰서 이해하고 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나마 논의를 잘 이어갈 수 있는 부분이 있기도 합니다. 왓바를 그만 둔 사람 중에는 노동위원회에 제소하거나 왓바 회원의 가족이 돈 문제로 언론에 제보하는 등 사건 사고들이 있기도 했습니다만 다 지나가야 하는 과정으로 생각하고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습니다.
 
 
Q. 그럼 왓바의 수익구조는 어떻게 되나요? 보조금을 받는다면 언제부터 받기 시작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A. 빵공장이나 재활용센터에서 얻는 수익금과 거주서비스를 제공하는 생활원조사업 보조금 등을 모두 한 곳으로 모아서 회원들이 동일하게 분배금을 나누어 갖습니다. 처음 보조금을 받게 된 건 1973년이에요. 저희가 나고야 시에 토지 임대를 요청했는데 왓바가 임의 단체라는 이유로 거부를 당해 2년 동안 데모하고 싸웠습니다. 당시 시장이 토지 임대는 어렵고 대신 재가장애인들을 직업훈련시키는 보조금을 지급해줄 것을 제안했습니다. 그런데 왓바는 모두가 함께 일을 하는 거지 훈련 시키는 형태는 아니기 때문에 그런 명목의 보조금을 거부했었고 결국엔 왓바가 요구하는 형식에 맞춰 ‘공동생활 공동작업 지원금’을 새롭게 만들어 지원 받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조건은 ‘5명 이상 장애인을 포함할 것’ 하나였고 지원금의 사용 목적이나 형태는 자유로웠습니다. 장애인 수첩을 갖고 있지 않아도 장애인이라고 보여지는 사람이라면 보조금을 받을 수 있도록 조건을 달아두기도 했죠. 이 보조금은 2006년까지 받다가 그 이후로는 장애인자립지원법에 따라 ‘지역활동지원센터 왓바형’ 이름으로 연간 1천만 엔을 현재까지 받고 있습니다.
 
Q. 함께 일하고 나누어 갖는 방식 말고도 왓바를 운영하시면서 끝까지 꼭 지키려고 하는 가치나 원칙이 있었는지도 궁금합니다.
A. 일본의 복지 정책 안에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이용자-지원자’의 위치에 놓이게 됩니다. 하지만 왓바에서는 절대 누가 서비스를 지원하고 이용 받는 형태가 아니라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 있을 수 있도록 합니다. 각 사업별로 책임자가 있긴 하지만 그건 역할일 뿐 이곳 안에서는 팀장, 과장 등 직위가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직함 대신 이름을 부르죠. 제가 대표로 있긴 하지만 사람들은 저를 ‘겐짱’이라고 부르는 것처럼요. 왓바 안에 3개의 법인이 있고 법인별로 이사회가 운영은 되지만 형식을 갖추거나 하지 않고 일반적인 회의의 모습처럼 의견을 주고받는 형태로 진행합니다. 아마 이 방식을 지키려고 하는 곳은 우리 왓바밖에 없을 것입니다.
 
Q. 오랜 역사를 품고 있는 왓바 공동체가 준비하고 있는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A. 왓빵공장과 오조네 주택 이외에도 아동복지시설에서 나온 자립청년들을 위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구상을 갖고 작년부터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지역의 작은 대학 공간을 활용해서 사업을 진행하는 것도 계획하고 있어요. 이 모든 것이 다 잘되고 있다고 이야기할 순 없겠지만 실패하지 않기 위해 천천히 잘 준비해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나이가 있기 때문에 계속 새로운 사업을 확대하는 것보다 후배들이 안정적으로 이 사업을 잘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춰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올해 4월엔 왓바 사회적노동협동조합을 설립했습니다. 노동조합이 노동자들 중심으로 결성하는 조직이라면 노동협동조합은 사업주, 노동자 등이 함께 협의하는 형태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 형태가 왓바의 방향성과 동일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조직이 커지고 사람이 많아지다보면 왓바의 신념에 동의해서 온다기 보다는 그냥 직원으로서 오는 경우도 많아지기 때문에 왓바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추진방향이 무엇인지 가치를 공유하는 차원에서 만든 부분도 있습니다.
 
 
Q. 공동련이라는 이름으로 30년째 연구소와 교류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연구소와 교류를 시작한 배경과 향후 계획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A. 공동련(일본장애인차별과싸우는전국공동연합)은 1970년대 초에 일본 사회를 변혁시키기 위해 여러 단체들이 함께 모인 연합체입니다. 글로벌 사회로 접어들면서 대부분은 경쟁의 측면으로 접근하지만 장애인의 상황은 매우 어려우므로 서로 서로 도움을 주자는 취지에서 한국과 교류를 처음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1995년이 시작이었고 한국 같은 경우, 인권보장으로 처음 시작을 해서 장애인의 노동권까지 확대해나갔죠. 저희가 최근 몇 년 간 여러 가지 어려움 등으로 교류가 잘 진행되지 않았었지만 30년 전 그 원점에서 다시 출발하여 우리 후배들이 한일 교류를 활발하게 잘 이어 나가면 좋겠습니다. 필리핀, 대만까지 함께해서 국제적으로 관계들을 넓혀나가는 것도 저는 계속해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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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취재. 이미정 편집장, 김영연·동기욱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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