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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없는 선택권, 활동지원제도

활동지원제도의 사각지대 후속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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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함께걸음은 활동지원제도 문제점 가운데서도 최사각지대에 있는 피해 사례들을 만났다. 그 중 한 사례자는 홀로 사는 중증장애인으로 활동보조서비스가 필요하지만 해당 서비스를 모르는 상태에서 선택한 노인장기요양서비스에 발목이 잡혀 더 좋은 혜택을 주는 활동지원제도 선택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었다. 이후 전국에서 이와 비슷한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이 하나둘 드러났고 이 목소리는 최근에 행정소송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활동보조 신청 발목 잡는 노인요양서비스

지난 해 함께걸음이 만난 피해자의 사연은 다음과 같다. 광주광역시에 홀로 거주하는 A씨는 50대 초반 여성으로 뇌병변장애 1급이다. A씨는 2003년 갑작스러운 ‘근무력증’ 진단과 진행형 다발성경화증을 확진 받아 2005년 뇌병변장애 2급으로 등록됐으며 2009년 뇌병변장애 1급으로 상향조정됐다. 두 다리와 오른팔을 움직일 수 없어 와상상태로 생활하며 혼자서는 앉거나 이동하기, 신변처리, 식사 등이 불가능하고 야간에는 기저귀를 착용해야 한다. A씨는 2010년 지인의 도움으로 노인장기요양서비스(이하 노인요양서비스)에 대해 알게 돼 신청했고 3등급 판정을 받았다. 당시 월, 금요일은 3시간 30분, 화, 수, 목요일은 3시간만 요양보호사를 지원받고 있었다. 노인요양서비스 신청 당시, A씨는 활동지원제도가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으며 주민센터 담당자, 건강보험공단의 방문심사 등 어떤 공공기관에서도 활동지원 관련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다, A씨는 노인요양서비스의 경우 월 70시간 정도만 요양보호사가 지원되지만, 활동지원은 월 최대 391시간 활동보조인 지원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2016년 1월 활동지원서비스로 변경을 신청했다. 그러나 장애인활동지원법 상 노인요양 등급을 판정받고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경우에는 활동지원 신청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답변을 받았다.

현재 A씨는 이와 관련해 광주북구청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A씨의 법률 대리인을 맡은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비영리단체 ‘동행’의 이소아 상근변호사는 소송 제기 동기에 대해 설명했다.

“이와 관련된 피해자들의 상담 문의가 종종 있다는 사실을 광주장애인인권센터로부터 몇 차례 들었다. 이 사안은 노인요양서비스를 신청하지 않은 장애인과 신청한 장애인을 차별한다. 차별에 합리적인 이유가 있냐를 본다면 적어도 노인요양서비스와 활동보조서비스 둘 중에 하나는 선택하게 해야 하는데 하나를 신청했다고 다른 것은 신청자체를 못하게 했다. 그러나 노인요양과 활동보조는 목적이 다르다. 전자는 집에서의 간병 등을 돕지만 활동보조는 애초 취지가 장애인의 일상생활에의 자립을 돕기 위해 생겼다. 시와 그림을 사랑하는 A씨는 도서관도 다니고 싶고, 지방에 사는 딸을 만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장시간을 누워있을 수밖에 없다. 사회적 기본권의 침해다. 사회적 기본권이 침해되면 자유권적 기본권도 침해된다. 이는 당연히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생각하고 위헌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소송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 변호사는 그 과정은 녹록치 않았다고 토로했다. A씨 측이 행정소송을 제기하기 위해서는 활동보조서비스를 신청한 뒤 거부를 당해야 한다. 처분이 내려져야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데 광주북구청 측은 거부 처분이 아닌 소송은 불가하다는 답변만 내놓았다. 몇 번을 옥신각신한 이후 동행 측은 광주북구청에서 계속 처분 자체를 안 하는 것 자체가 거부처분이라고 볼 수 있다고 판단하고 지난 11월 말에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북구청에서는 A씨와 관련된 입장이 법령에 근거한 것이므로 위법하지 않다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해달라는 요지의 답변을 보냈다. 이에 동행 측은 ‘법률 자체가 위헌이다’라는 취지로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하려고 하고 있다.

 

장애인 생존권 외면하는 해석 시정돼야

이와 비슷한 움직임이 최근 서울에서도 있었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이하 ‘희망법’)은 지난 2016년 12월 22일 혼자서는 식사도 못 하고 가족도 없는 중증장애인의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수급자격 유효기간 갱신을 거부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생활도 어렵게 한 노원구청장에 대해 행정심판을 청구했고 지난 1월 5일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피해자인 B씨는 지체장애 1급의 중증장애인으로, 5년 가까이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를 받아왔다. 그러나 지난 2016년 12월 노원구청장으로부터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수급자격 유효기간의 갱신을 거부당하고 말았다. B씨는 1993년 지체장애 1급으로 장애인등록을 했고, 2010년에는 경추손상으로 인한 사지마비로 365일을 누워서 지내고 있다. B씨는 현재 기초생활수급자이며, 배우자나 자녀 등 부양가족도 없는 처지다. 따라서 활동보조인의 도움이 없으면 혼자 몸을 뒤척일 수도, 식사와 같은 기본적인 생명유지활동도 할 수 없다.

노원구청장이 이 사건 처분을 한 이유는, 김 씨가 지난 2011년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를 신청할 당시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의 장기요양수급자였으므로 장애인활동지원법의 지원 제외 대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활동보조인 지원을 하루 20시간 받을 수 있는 장애인활동지원법 지원대상과 달리,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의 지원은 고작 하루 4시간이다.

이 날 기자회견에서 희망법의 최현정 변호사는 노원구청장의 처분이 위법・부당하다고 지적했다. 그 근거는 ▲ B씨는 65세 미만으로 노인장기요양보험법 상의 ‘노인’에 해당하지 않고, 경추손상에 의해 사지마비 환자가 됐으므로 동법의 ‘노인성 질병을 가진 자’도 아니다.

따라서 B씨는 장애인활동지원법 지원 제외 대상이 아님에도 노원구청장은 이를 잘못 판단해 처분 기준을 위반했다. ▲ 노원구청장은 B씨를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수급자로 결정하고 지난 2011년 12월 1일부터 1회의 갱신을 거쳐 총 5년 간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를 제공해왔다. B씨의 장애 정도는 변함이 없으므로, B씨는 이후에도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사건 처분으로 인해 B씨는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받고 동시에 생명권까지 위협받고 있다. 따라서 이 사건 처분은 신뢰보호원칙에 반하여 위법하다. ▲ B씨는 처음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를 신청할 당시 형식상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의 장기요양급여수급자로 결정돼 있기는 했지만, 병원에 입원 중이어서 실제로는 급여를 제공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노원구청장도 그 사실을 알고 B씨를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수급자로 결정했다. 또한, 장애인활동지원 수급자격 유효기간이 1차 갱신됐던 지난 2013년 10월경에는 장기요양수급자격의 유효기간이 만료돼 형식적으로도 장기요양수급자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최 변호사는 “이러한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이뤄진 이 사건 처분은 부당하다”며 “현재 많은 중증장애인들이 서울 광주 대구 등 전국 각지에서 장기요양서비스 수급자였다는 이유로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의 대부분은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를 모르는 상태에서 장기요양서비스를 신청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장기요양수급권을 포기하거나 건강을 회복해 장기요양수급권을 상실하더라도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장기요양 수급자였던 사람은 장애인활동지원 서비스 대상이 아니라는 지침을 고집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지침은 장애인활동지원법을 잘못 해석해 활동보조가 필요한 중증장애인을 생존권을 외면하는 것으로 시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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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해를 맞은 활동지원서비스의 목적의식 되돌아 볼 필요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상임대표는 장애인의 자기결정권과 자기 선택권이 활동보조서비스의 선택 문제에도 예외 없이 인정된다고 짚었다. “이번 사안은 장애차별금지법에서 말하고 있는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을 침해하고 있다. 장애가 있는 사람도 자기가 필요할 때 장기요양을 신청하든지 활동보조를 이용하든지 자기의 결정으로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정훈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국장은 장애인 복지의 권리를 주장했다.

“장애인 복지는 국민이라면 받아야하는 당연한 권리다. 그 권리를 향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복지에 대한 시각을 바꾸고 당연한 권리, 우리로서의 권리를 행사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행정심판청구를 한 희망법은 행정심판의 결정이 내려지기 전까지 임시로 청구인에게 활동지원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하는 임시처분을 신청했다. 그리고 기자회견 있던 날 아침, 인용 결정문을 받아봤다. 임시적이긴 하지만 이 행정심판의 결정이 내려지기 전까지 B씨는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를 제공받게 된 것이다. 이는 A씨의 소송에도 다소나마 긍정적인 나비효과를 미칠 수 있다. 이소아 변호사는 “A씨는 행정소송이고 B씨는 행정심판으로 성격이 다르지만 인용결정문이 A씨에게도 다소나마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행정소송을 어떻게 전망하냐는 기자의 조심스러운 질문에는 “승산이 있어야 하는 사안이며, 이겨야 하는 사안이다. 명백히 기본권을 침해하기 때문이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지금 이 순간에도 A씨의 근육병은 계속 악화되고 있다. A씨에게 소송 전부터 이미 승소한다 하더라도 수혜를 못 받을 수 있다고 전했는데 본인은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하는데 역할만 됐으면 그것으로 만족하다고 하셨다. A씨의 선의가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우리도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나마 이들의 피해 정황은 수면 위로 드러나 부당함을 호소할 수 있게 됐지만 아직도 많은 피해자들은 수면 아래 있다. 중증장애인에게 자립생활과 사회참여를 지원하는데 목적을 둔 활동지원서비스가 부당한 이유를 근거로 누군가에게 선택의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 호기롭게 출발해 여섯 해를 맞은 활동지원서비스에 대해 정부는 그 목적의식을 다시 한 번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작성자글과 사진. 김은정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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