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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의 ‘꿈’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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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계획을 보는 미경 씨

자립생활 체험홈에서 생활하고 있는 스물한 살의 발달장애인 미경 씨는 지난 1월 24일 실시된 PATH 시연의 주인공으로 참여했다. 사람중심계획에 대한 개념 강의가 이어지는 내내 앞자리에 앉아 여러 질문에 활발하게 답하던 미경 씨는 시연 시간이 되자 전지가 넓게 붙은 벽을 마주하고 앉았다. 미경 씨 옆으로는 3명의 지지자들이 나란히 앉아 미경 씨의 PATH 과정을 지켜보며 참여하기로 했다. 미경 씨는 상기된 얼굴로 자신만의 꿈을 찾는 과정을 시작했다.

 

미경 씨의 북극성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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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좋아하는 게 뭐예요?”

진행자로 나선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 백미 팀장(진행자)이 가장 먼저 미경 씨에게 던진 질문이다. PATH 과정 전반에 대한 설명을 모두 들은 뒤, 첫 질문을 받은 미경 씨는 크게 고민하지 않고 “치위생사”를 외쳤다. 현재 치과에서 소독업무를 맡아 하고 있는 미경 씨는 치위생사가 되고 싶다고 답했다. 벽에 붙은 넓은 전지 한 쪽에 서 있던 그래픽조력자는 미경 씨의 답변이 나오자마자 가장 오른쪽 ‘아이디어’ 공간에 치위생사로 일하는 미경 씨를 그려냈다.

‘아이디어’ 공간은 전지 1개 분량으로, PATH 과정에서 첫 번째로 채워져 나갔다. 이 과정은 당사자(주인공)의 최종 목표를 정하기 위한 과정이다. 최종 목표는 ‘북극성’으로 표현되는데, 이는 북극성을 보고 길을 찾는다는 의미에서 차용됐다. 진행자는 미경 씨가 직업적으로 선망하는 것 외에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활동들을 답변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시간을 들여 질문을 계속해 나갔다. 돈을 버는 직업으로써 치위생사를 원한다는 답변에, 진행자는 돈과 관계없이 하고 싶은 것들을 물었고 점차 몇 개월간 알고 지낸 지지자들조차 몰랐던 미경 씨의 욕구가 드러났다. 마인드맵처럼 운동과 중국어 공부, 외국 여행 등 다양한 이야기가 이어졌고 아이디어 공간은 미경 씨의 답변으로 그려진 그림들로 가득 찼다.

수많은 아이디어 중 미경 씨가 택한 북극성은 중국어 통역이 가능한 병원 코디네이터였다.

북극성을 찾는 질문들(예시)

•요술지팡이나 마술램프가 있습니다. 어떤 소원을 빌겠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자신이 오랫동안 해도 지루하지 않은 것은 뭘까요?

•어떻게 살면 ‘내가 참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힘들 때, 자신의 마음에 기운을 돋게 해주는 것은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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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후부터 1년 후까지, 미경 씨만의 계획들

북극성이 정해지자 구체적인 계획을 짜는 과정은 막힘없이 진행됐다. 우선 꼬박 1년 뒤인 2018년 1월 24일까지 실현 가능한 목표를 선정했다.

진행자는 “1년 뒤에 미경 씨는 뭘 했을까요?” 등의 질문을 던져 미경 씨가 미래를 내다보게 했다. 미경 씨는 중국어 문장 15개와 단어 20개를 익혀서 중국 여행을 다녀오고, 수화를 배우는 중일 것이라고 답했다. 이는 미경 씨 스스로가 1년 뒤까지 중국어와 여행, 수화에 대한 구체적은 목표를 세운 것이나 다름없다.

이어 진행자는 “그렇다면 지금은 왜 그것들을 못하고 있을까요?” 등의 질문으로 미경 씨가 현재 상황을 진단해볼 수 있게 했다. 미경 씨는 시간과 정보와 경제적 조건이 부족하다고 대답했다. 극복해야 할 문제점들이 ‘현재’ 공간에 기록됐고, 지지자들 중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점검했다. 3명의 지지자 모두가 각자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 적극적으로 해결 방법을 제시했다.

이들은 단순히 격려하는 사람이 아닌 실제로 미경 씨와 계획 이행 과정을 함께해 줄 수 있는 사람으로서, ‘등록’ 공간에 기록됐다. 이어 등록에 기록된 지지자들과 미경 씨는 목표를 실행할 수 있는 힘을 더 강하게 만드는 조건들을 고민했다. 미경 씨뿐 아니라 지지자들이 가지고 있는 자원, 배경 등을 총 망라해 그 중 미경 씨의 계획에 맞는 것들을 골라냈다. 미경 씨는 “포기하지 않는 의지”를 강조했고, 지지자들은 각자가 제공할 수 있는 것들을 기록했다.

이제 목표와 문제점, 계획 이행 과정을 함께하고 도와줄 동반자들과 성공적인 목표 달성을 위한 조건 등이 꾸려졌다. 진행자는 다시 조금 미래로 돌아갔다. 지금까지 기록된 것들을 감안해, 6개월 후의 목표를 정했다. 중간 과정으로 체크해 봐야 할 것들과 6개월 뒤 미경 씨가 해냈을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할 정도로 구체적인 목표들이었다. 그보다 좀 더 작은 단위로 쪼개 다음 달까지 할 수 있는 것을 다시 정했고, 마지막으로 3일 안에 할 일을 그려넣었다. 중국어를 능통하게 하는 병원 코디네이터로 가기 위한 미경 씨의 계획은, 바로 3일 뒤부터 1년 뒤까지 차곡차곡 쌓아올려졌다. 미경 씨가 완성된 계획을 둘러보고 전체 계획에 걸맞는 제목을 직접 상단에 써넣는 것으로 PATH 과정은 모두 끝이 났다.

 

모든 계획은 당사자에게서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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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TH 과정에서는 주도권을 가진 전문가가 없다. 진행자와 그래픽조력자는 철저하게 당사자를 주인공으로 놓고 그와 함께 계획을 개발하는 역할만 한다. 북극성이라고 부르는 인생의 목표를 정하는 과정이 가장 까다롭다고 볼 수 있는데, 여기서는 진행자의 역량이 중요하다. 진행자로 참여한 백미 팀장은 진행자로서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으로 유도하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회적으로 학습된 꿈이 표면적으로 가장 먼저 드러날 수 있기 때문에, 거기서 계속 이어나가기 보다는 다양한 욕구를 드러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충분히 자신의 의견을 말하도록 기다리고, 답변에 대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반문하는 과정을 거쳐 정말로 당사자가 원하는 것을 표현할 수 있게 진행해야 한다. 하지만 자칫 진행자가 생각하는 것을 대답하도록 유도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하는데, 발달장애 특성상 조금만 유도해도 따라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언제나 자기 검열을 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모든 계획의 소재는 당사자에게서 나와야 하며, 이 계획을 완벽하게 다 이루지 못하더라도 1개나 2개 정도의 목표를 향해 가는 것은 지속적으로 이어나갈 수 있도록 지지자들의 역할도 명확하게 해야 한다.”

지지자들은 PATH 과정에서 각각 도움을 주기로 한 계획에 맞춰 움직여야 함과 동시에, 모니터링 요원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하게 된다. 당사자와 함께 당사자의 꿈을 향해 걷는 길동무인 셈이다.

사람중심계획의 도구인 PATH는 계획 위주의 과정이지만 서류작업을 하지 않는다. 온전히 당사자의 목소리를 키워 개인의 꿈을 찾고 주도성을 가지고 스스로 계획을 짜는 이벤트다.

기존의 장애인 서비스들과는 시작점부터 다른 것이다. 단순히 생활을 보조하는 서비스가 아니라, 온전한 개인으로서 가지는 꿈을 묻는다는 것과 욕구를 계획에 반영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도구를 이용해 계획을 세우는 순서나 기록 방식 등이 같을 뿐, 미경 씨와 똑같은 계획이 세워지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작성자글과 사진. 조은지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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