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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지만 꼼꼼한 핀란드의 시의원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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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이야기 여섯 번째. 지난 4월 핀란드에서는 지방의원 선거가 있었다. 선거철이라지만 분위기는 너무나도 평온하고 조용했다. 대로변에 나붙는 정치적 구호와 확성기를 단 유세 차량, 교차로마다 선거운동원들이 손을 흔들며 90도로 인사를 하는 시끌벅적한 모습에 익숙한 필자에게 핀란드의 모습은 너무나도 어색한 풍경이었다. 그런 필자에게 핀란드에서 만난 현지인은 “지난 대통령 선거 때도 마찬가지였다. 우리의 선거철은 늘 이런 모습이다.”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렇다고 핀란드의 선거가 부실하게 치러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온라인을 통해 후보자의 공약과 내 생각이 얼마나 일치하는지 꼼꼼하게 확인할 수 있고 이민자를 위해 20여 개국의 언어로 선거 안내 자료가 배포됐다.

 

수도 헬싱키, 85명 뽑는데 후보자만 1,000명

지난 4월 9일, 핀란드에서는 전국 지방자치단체 선거를 시행했다. 총 295개 지자체에서 8,999명의 지방의회 구성원을 선출하는 선거이다. 최종 투표율은 58.8%로 지난 2015년 총선 투표율 70.1%보다는 낮은 수치이지만 2012년 시행된 지자체 선거의 투표율 58.3%보다는 약간 높은 수치를 보였다. 핀란드에는 약 15개의 정당이 등록돼 있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을 차지한 정당은 국민연합당으로 20.7%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사민당은 19.4%로 두 번째, 중도당이 17.5%, 녹색당이 12.4%로 뒤를 이었다. 현재 핀란드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국민연합당, 중도당, 핀란드인당의 득표율 합계는 47.0%로 지난 2015년 총선과 비교할 때 9.9% 포인트 감소했다. 반면 야당인 녹색당의 득표율은 3.9% 포인트 증가했다. 녹색당은 다른 정당에 비해 확보한 의석도 이전 지자체 선거보다 213석이 늘었다. 가장 큰 선거구는 역시 수도인 헬싱키이다. 85석이 걸려있는 이 선거구에 1,000명이 넘는 후보가 출마했다. 인구 1,000만 명의 서울에서 시의원 100여 명을 뽑는 것에 비하면, 인구 100만의 헬싱키에서 시의원 85명은 엄청난 숫자이다. 그만큼 지역구의 민심을 촘촘하게 시 의정에 반영할 수 있다. 헬싱키 지역에서는 국민연합당 28.4%(25석), 녹색당 24.1%(21석), 사민당 13.8%(12석), 좌파연합 11.2%(10석), 핀란드인당 6.7%(6석), 중도당 2.8%(2석)를 차지했다.

 

조용하지만 꼼꼼한 선거. 후보- 유권자 일치도 인터넷으로 손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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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한국에서 치러진 지방선거의 투표율은 시도지사 선거를 기준으로 56.8%로 집계됐다. 이번 핀란드의 지방선거보다는 약간 낮은 수치이기는 하지만 선거 열기는 핀란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뜨겁다. 겉으로 보기에는 냉정해 보일 정도로 차분하고 조용한 핀란드 사람들에게 한국과 같이 시끌벅적한 선거 운동은 어울리지 않는 방식이기도 할 것이다. 이들이 하는 선거운동은 유동 인구가 많은 곳에서 홍보물을 나눠주거나 트럭에서 커피를 나눠주며 정당 홍보를 하는 정도이다. 그렇다고 핀란드인들이 선거에 무관심한 것은 아니다. 유권자는 온라인에서 간단한 설문조사를 통해 본인의 정치적 성향에 맞는 후보자를 찾을 수 있다. 핀란드 공영방송 YLE에서 운영하는 바아리꼬네(https://vaalikone.yle.fi/kuntavaalit2017)에 접속하면 유권자 본인이 속한 시를 선택하고 교육, 복지, 세금, 주택 등 6개 항목의 설문에 응할 수 있다. 각 질문에 대해 ‘절대 동의하지 않음’부터 ‘아주 동의함’까지 5단계에 따라 답을 선택하면 된다.

예를 들어, 헬싱키 지역의 교육 분야에는 ‘젊은이들은 초등교육 이후 바로 직업훈련을 받아야 한다’, ‘지자체는 모든 아이를 위해 무료 유아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학교에서 채식주의 식단을 적어도 일주일에 1일 이상 제공해야 한다’ 등의 질문이 있었다. 가치관에 대해 묻는 질문도 있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협상보다는 강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아이들에게는 예의범절보다 호기심과 독립심을 키워주는 것이 중요하다’ 등의 질문이 있었다. 결과는 나와 후보자 간의 답이 몇 퍼센트 일치하는지 수치로 나타나는데, 생각이 일치하는 후보뿐만 아니라 생각이 일치하지 않는 후보들도 확인할 수 있다. 후보자를 선택하면 후보자가 선택한 답과 그 이유도 확인할 수 있다. 바아리꼬네에서는 후보자가 직접 촬영한 자기소개 비디오도 볼 수 있다. 휴가지에서 수영복 차림으로 찍은 영상, 집에서 편하게 앉아 찍은 영상, 자녀 또는 반려견과 함께 찍은 영상 등 최대한 일상적이고 편안한 모습으로 촬영한 것이 인상적이다.

 

20개 언어로 안내 자료 배포, 장애인 유권자 위해 유튜브에 수화 설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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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포스터에 소개된 후보자들의 모습. 한국의 출마자들에 비해 의상과 머리 모양이 자유분방하다.

핀란드 선거에서 우리가 배울 점으로는 소수자에 대한 배려를 꼽고 싶다. 핀란드는 선거 안내 자료를 20개국 언어로 배포한다. 핀란드 자체가 핀란드어와 스웨덴어를 공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데다가 북쪽 라플란드 지역의 유목 민족인 사미족의 언어도 지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핀란드에 거주하는 EU국가의 시민권자도 유권자이기 때문에 이들의 모국어로 된 선거 자료를 배포하는 것은 물론이고, 중국어, 러시아어, 아랍어, 태국어, 베트남어, 소말리아어로도 자료를 내보내고 있다. 이민자 혹은 외국인에 대한 참정권을 폭넓게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청각장애인 유권자를 위해서는 수화로 선거 안내 동영상을 제작해 유튜브 채널에 게시하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청각장애인 여성 2명이 부의원(Deputy Councilor)로 선출됐다. 부의원은 다수표를 획득하지 못해 시의원에 선출되지는 못했지만, 시의원의 부재 시 그들을 대신해 활동할 자격을 가진 사람들이다. 부의원이 된 사민당의 비르피 바사마(Virpi Vasama)씨와 핀란드인당의 띠이나 까르야라이넨(Tiina Karjalainen)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회 발전을 위해 일하고 싶어 출마했다”고 말했다. 비록 이들은 정식 시의원으로 선출되지는 못했지만, 핀란드의 꼼꼼한 선거 정책이 없었다면 출마를 도전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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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에서도 대선 후보들의 공약을 무기명으로 나열한 뒤 유권자에게 본인의 생각과 일치하는 공약을 선택하도록 한 방식으로 나와 맞는 후보자를 보여주는 사이트가 인기를 끈 바 있다. 지방분권이 계속 진행되고 있음에도 유권자의 생활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는 지방선거에서 공적인 기관이 이러한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안타까운 대목이기도 하다. 언론에서 비치는 후보자의 이미지보다는, 공약을 통한 섬세한 검증이 가능해야 사회적 약자를 위한 진정한 정치인이 주목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작성자글. 신소영 객원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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