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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장애우 그 현장을 가다3]일하고, 웃고 배우는 "낙원의 장애우"

슈라이너스 병원의 한국인, 헬레마노 농장의 "홀로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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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고, 웃고 배우는 "낙원의 장애우"
-슈라이너스 병원의 한국인, 헬레마노 농장의 "홀로서기"

세계의 장애우, 이번에는 "지상의 낙원"하와이의 장애우들을 만나본다. 농사일과 식당일을 통해 사회참여를 준비하는 헬레마노 농장의 정신지체장애우들과 18살 이하의 지체장애아들을 무료로 치료해주는 슈라이너스 병원에서 "스스로의 낙원"을 만들어가는 장애우들의 살아있는 이야기를 들어본다.

<지상의 낙원 하와이>
 3월 10일 아침, 채 잠이 덜 깬 눈으로 바라본 비행기 창 너머로 새파란 바다와 점점이 흩어진 섬들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지상의 낙원, 인류 최후의 파라다이스라는 하와이는 먼 옛날의 일이 갑자기 생각나듯 그렇게 불쑥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비행기 문을 열자마자 후끈한 바람이 불어와 또다시 낯선 세계에 발을 디딘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레었다.
 하지만 하와이 공항 역시 오사카와 마찬가지로 전 세계의 수많은 관광객이 드나드는 "지상 낙원"의 입구답지 않게 회색 빛의 좀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였다.
 꼬불꼬불 이리저리 올라갔다 내려왔다 워키토키를 든 공항경비원의 지시를 받으면서 짐을 찾기 위해 부지런을 떨어 그나마 일본을 지나면서 더 불어난 짐을 챙기고 세관을 통과하기 위해 검사대에 섰는데 여기서 또 한번 해프닝이 벌어졌다.
 우리 일행이 세관에 제출한 서류에 방송용 비디오카메라의 제품번호가 적혀 있지 않다는 이유로 통관을 시켜주지 않는 것이었다. 이미 일본을 거쳐 들어왔고 거기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검은 선글라스를 낀 세관직원은 요지부동으로 무조건 제품번호를 제시하라는 것이다. 한참 실갱이 끝에 방송국에서 만든 물품 기록서에 나와 있는 제품번호와 일치하는 것을 확인시키자 그제 서야 "오케이"하면서 통과를 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입국장의 까다로운 절차 때문에 구겨졌던 기분은 마중 나온 배성동씨가 하와이를 상징하는 향기로운 레이(꽃목걸이)를 걸어주면서 눈 녹듯이 사라졌다.
 "하와이를 떠날 때까지 목에 걸고 있어야 행운이 온다"고 말하면서 밝게 웃는 배성동씨를 따라 주차장으로 간 우리는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길이가 10미터도 넘는 리무진 앞에서 또 한번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고국에서 하와이를 찾아준 귀한 손님들을 최고급으로 모셔야지"라는 배선생님의 말에서 먼 곳에서 오랜만에 만난 형제의 따뜻한 정을 느끼며 텔레비전에 양주병까지 딸린 리무진을 타고 마치 중동지방 어느나라의 왕족처럼 하와이에 입성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한국인이 경영하는 서라벌이라는 식당에서 해장국으로 점심을 먹었는데 식당 밖 신문판매대에서 뽑은 미주판 한국일보에는 흑인소녀에게 저격당한 교포의 얘기가 일면 전체를 장식하고 있어 이곳 역시 치열한 삶의 전쟁터라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와이키키 해변과 길 하나 사이인 로얄호텔에 짐을 풀고는 시차를 이기지 못해(하와이는 한낮이었지만 몸은 한밤중이어서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정도로 졸렸다) 그대로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오후 5시 우리 일행을 환영하는 해변의 바비큐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와이키키 해변으로 나섰다. 소금기 하나 없는 시원한 바닷바람과 수영복 차림으로 물을 뚝뚝 흘리면서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보자 비로소 여기가 하와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배성동씨, 텔런트 송옥숙씨 그리고 우리 일행의 안내를 맡은 홍수진 학생을 비록한 우리 일행은 갈비와 맥주 그리고 송옥숙씨가 집에서 직접 해 가지고 온 쌀밥으로 하와이에서 첫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하나 재미있는 것은 하와이에서는 공원에서 술을 마실 수 없는데 신문지로 감싸서 마시면 된다고 하니 어디서나 "예외 없는 법은 없다"는 말이 새삼 생각났다. 또 하나 공원에 수백 마리씩 떼지어 다니는 새들에게도 모이를 줘서는 안 된다는 팻말이 곳곳에 붙어있는데 그 이유는 관광객들이 새들에게 모이를 줄 경우 새들이 너무 살이 찔 뿐 아니라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잊어버리기 때문이라도 한다.
 드넓은 바다 한가운데로 떨어지는 해를 바라보며 어둑어둑해지도록 바다 저편 한국의 얘기 그리고 하와이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들의 얘기로 시간가는 줄 몰랐다.
 어둠이 밀려오면서 제법 바람이 세지는 바닷가에서 처음 휠체어 장애우를 만났다. 이제 막 물에서 나와 젖은 머리칼을 닦으며 유쾌하게 웃는 사람들 틈새, 파도가 부서지는 방파제에 홀로 앉아 어두워지는 바다 저편을 바라보며 홀로 술을 마시는 이 장애우의 모습은 왜지 비장하면서도 아름답기까지 했다.
 파티를 마치고 짐 정리를 하면서 송옥숙씨는 우리들이 먹다 남긴 밥, 고기 등을 깨끗하게 정리해서 탁자 위에 가지런히 놓았다. 그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이렇게 해 놓으면 집 없는 사람들이 와서 깨끗하게 먹어 치운다"고 말해 우리를 놀라게 했다.
 실제로 우리가 짐 정리를 시작하자 주위에서 배낭을 둘러 맨 사람들이 부스스한 차림새로 하나, 둘 모여들어 입맛을 다시면서 우리가 떠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절대로 먼저 와서 달라고 하지 않는 점이 이상했다. 지상낙원 하와이는 역시 낙원답게 거리에도 천사(?)들이 널려 있었다.

<슈라이너스 병원>
 3월 11일 아침 8시 30분, 하와이에서의 첫 번째 취재 일정인 슈라이너스 병원으로 향했다. 하와이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는 홍수진씨는 언론을 전공한 학생답게 날짜별로 취재 일정을 잡아 놓은 것은 물론 시간별 계획까지 짜놓는 치밀함을 보였다.
 홍보담당 부장 듀크 곤잘레스의 안내로 둘러본 슈라이너스 병원은 한마디로 잘 정돈된 정원에 연못에는 물고기들이 노니는, 그래서 전혀 병원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 곳이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영화 "의사 지바고"에 나오는 주인공 오마샤리프처럼 생긴 곤잘레스는 아주 친절하고 세련된 태도로 방문객을 맞고 있었는데 9시 30분 병원소개, 11시 30분 레크리에이션 룸에서 점심요리 장면, 2시 30분 수업 끝나고 아이들이 노는 장면 등 우리가 촬영해야 할 내용들을 일일이 일러주면서 "절대로 허락한 것 이외의 다른 것, 특히 사람들을 찍지 말라"고 당부했다.
 슈라이너스 병원은 "슈라이너"라는 일종의 후원자들을 중심으로 이들이 내는 회비와 지역사회 주민들의 참여로 운영되는 비영리 사회사업단체로 전 세계적인 조직망을 갖고 있는 "라이온스 클럽"과 비슷한 성격의 조직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한국에도 1백여명의 슈라이너가 있으며 1993년 1월 현재 전 세계에서 1만4천2백21명의 장애아가 치료를 받았고 1백48명의 한국어린이가 이미 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한국에 있을 때 이런 기관이나 병원이 있는 줄도 몰랐다.)
 마침 병원에는 92년 10월부터 한국에서 온 아이들 2명이 치료를 받고 있는데 5살짜리 전성희는 다리수술을 받았고 10살짜리 라하나는 얼굴에 입은 화상치료를 받고 있었다.
 나이답지 않게 작고 야무지게 생긴 성희는 "취재가 까다로울 것"이라는 곤잘레스의 말처럼 취재진이 카메라를 들이대면 이리저리 피하면서 언짢아했는데 도대체 한국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한국과 관계되는 것"이라면 아주 진저리를 낼 정도로 싫어했다.
 우리들이 보는 앞에서 일부러 영어로 자신의 의사를 표시하는 성희를 바라보면서 우리 사회가 저 어린아이의 가슴에 얼마나 못을 박았으면 저럴까 싶어 가슴이 아려왔다.
 초등학교 2학년 때 화상을 입어 1년 반이나 병원생활을 하다 슈라이너스에 오게 된 하나는 피부이식을 위해 턱 아래에 물주머니 같은 커다란 혹 모양의 피부가 늘어나 있었으나 밝고 명랑해 주위 사람들과 잘 어울렸다.
 원래 슈라이너스 병원은 정형의과 수술과 전문이지만 최근에는 화상의 중요성을 감안해 하나 같은 화상환자도 받고 있다고 한다.
 병원에서는 또 아이들의 나이와 수준에 맞게 학급을 운영하고 있는데 하나의 담임 선생인 고메나까씨는 "처음 하와이에 왔을 때 글도 못 읽던 하나가 지금은 책은 물론 피아노와 컴퓨터까지 칠 수 있다"고 자랑이 대단했다.
 특히 이날 오후 하와이 대학 대학원에서 특수교육을 공부하고 있는 신선경씨가 자원활동을 나와 하나, 성희와 함께 정원 가꾸기 등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갖기도 했다. 

<놀이터같이 밝고 자유로운 병원>
 슈라이너스 병원은 이처럼 아이들을 치료대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병원처럼 딱딱하거나 엄격한 분위기가 아니라 마치 유아원이나 놀이터처럼 밝고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병실 곳곳에는 아이들이 스스로 그린 온갖 그림들로 가득차 있었는데 이런 식으로 자신이 먹고 자는 공간에 그림을 그리고 색을 칠하는 놀이과정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치료효과를 얻게 된다고 한다.
 각 방은 특별한 나이제한은 없으며 간호사가 판단해서 배치를 결정하는데 보통 나이 든 아이들은 독립생활을 하도록 하며 특별한 경우에만 간호사가 돌봐주고 있었다.
 슈라이너스 병원에는 20명의 환자를 위해 1백20명의 의사, 간호사, 사회사업가 등이 동원되고 있었는데 이처럼 얼핏 보면 비효율적(?)인 병원운영 방식에 대해 곤잘레스는 "그저 침대에 눕혀만 놓는다면 얼마든지 많은 어린이를 받을 수 있지만 그렇게 하기는 싫다는 것이 슈라이너스의 방침"이라고 말했다.
 플로리다주 템퍼시에 본부를 두고 있는 슈라이너 재단은 "슈라이너(성직자라는 뜻이긴 하지만 특정한 종교와는 관계가 없다)"라고 하는 회원들이 매년 내는 일정액의 회비와 플로경기, 마술 쇼 등의 흥행사업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고 있으며 이렇게 모은 기금을 바탕으로 재단자체가 주식, 부동산 등에 투자 재산을 늘려나가고 있다.
 현재 미국에만 75만평의 슈라이너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이렇게 모은 1천4백만 달러(우리 돈으로 약 1천억원) 정도의 재원은 이 재단이 운영하는 22개 미국 전역의 슈라이너스 병원 운영비로 사용되고 있는데 하와이는 이중 하나라고 한다.
 하나는 병원에는 10개의 클럽이 있는데 여기서 기금을 모아 본부로 보내면 본부는 각 지역의 병원에서 필요하다고 요청하는 액수를 심사해서 다시 내려보내는 형태로 운영되는데 슈라이너스 병원이 있는 하와이 유니트에서 한 해 사용하는 비용은 약 6백만 달러(45억원 정도)나 된다.
 1923년 처음 문을 연 하와이 슈라이너스 병원은 이 재단이 운영하는 22개의 병원 중 하나로 다른 병원과 마찬가지로 18살 이하의 장애아들 중 치료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우선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정호와 하와이 그리고 마이클>
 특히 슈라이너스 병원은 백정호라는 한국 학생을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와 특별한 인연을 맺고 있었다.
 올해 20살인 정호는 심장병과 짧은 왼쪽 다리 때문에 17살 때까지는 일어서지도 못할 정도로 장애가 심했으나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수술같은 것은 생각도 못했다고 한다.
 정호의 이런 사정이 주위에 알려지게 되면서 한국에서 슈라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의 도움으로 1989년 하와이 슈라이너스 병원으로 올 수 있었으며 심장병 수술과 함께 "일리자로프" 방식의 다리 늘이기 수술을 받았다.
 정호는 1951년 옛 소련의 의사 가브릴 일리자로프가 개발한 새로운 수술방법인 일리자로프 방법이 1981년 처음 하와이에 소개된 후 이 수술을 받은 최초의 장애우였다 .
 당시 정호가 받았던 일리자로프 수술은 하와이에서 처음 시도되는 수술이었기 때문에 매일 저녁 뉴스 시간에 첫머리로 방송이 되는 등 하와이 전역에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정호는 이 수술로 왼쪽 다리가 8센티미너 가까이 늘어나 이제는 아무런 보조장치 없이 자유롭게 걷고 달릴 수 있었으며 당시 수술소식을 듣고 찾아온 하와이 최고의 라디오 진행자 마이클 큐셍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자신이 14살 때 슈라이너스 병원에 입원했던 마이클은 정호와의 만남을 "내가 받았던 것을 되돌려 주는 것"이라고 말하고 1년이 넘도록 만나지 못한 가족들을 그리워하는 정호에게 생일날 한국에서 정호의 어머니를 데려다 만나게 해주는 "커다란 선물"을 해 슈라이너스 병원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와이키키 시 근처 최고급 고층아파트에서 마이클과 함께 살고 있는 정호에게 마이클은 자신이 가장 아끼는 9만달러짜리 자동차 열쇠를 내줄 정도로 각별하게 대했으며 이러한 마이클의 애정에 정호는 지난해 하와이주에서 열린 그림대회에서 "황금열쇠 상"으로 보답하기도 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인 정호에게 마이클은 "재능을 살리기 위해서 적절한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정호의 집이 넉넉지 못해 걱정"이라고 말꼬리를 흐리고 "학교 애들이 나이가 어려 친구가 없어서 큰 일"이라고 아버지다운(?) 푸념을 늘어놓았다.

<정신지체장애우의 살아있는 사회 "헬레마노">
 3월 12일, 정신지체장애우의 작은 사회 헬레마노 농장으로 향하는 길은 가도가도 끝이 없는 파인애플의 바다였다.
 화산지형으로는 드물게 검붉은 진흙지대인 하와이 북부 와이아와 지역은 일찍이 이런 지형적인 특성을 간파한 "돌" 가문에서 파인애플 농장을 차려 세계를 석권했으며 하와이를 찾는 관광객들이 한번쯤은 들리는 관광명소였다.
 "돌"사의 쇼핑센터 옆에 있는 "헬레마노" 농장은 1980년 4월 현 이사장인 수산나 정과 자식들의 장래를 걱정하는 몇몇 부모들이 모여 설립한 "정신지체장애우를 위한 기회회사"(Opportunities for the retarded, inc ; ORI)를 설치함으로써 처음 그 문을 열었다.
 카알라 지역에서 30여명의 정신지체장애우에게 낮 활동과 직업훈련 프로그램을 실시하던 "오 알이"이는 1982년 와이아와에 10에이커(약 6천평)에 이르는 땅을 주 정부로부터 받아 농장 일을 통한 정신지체장애우의 직업훈련을 새롭게 시작했으며, 1984년 12명의 장애우가 기숙사에 입주하면서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안내를 맡은 홍보담당 이본느와 함께 둘러본 헬레마노 농장은 마치 동화 속의 나라처럼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헬레마노 농장은 레스토랑, 선물의 집에서 직접 장애우들이 일하고 있는 것을 비롯 중증장애우들은 데이센터에서 레이를 만들거나 컴퓨터를 이용해 쓰기와 계산하기를 배우는 등 장애정도와 교육수준에 따라 각기 다른 직업교육을 받고 있었다.
 데이센터를 이용하는 장애우들은 주 정부가 위탁 운영하는 "핸디 밴"이란 차를 이용하여 출퇴근하고 있는데 이 차는 장애우가 전화를 하면 집으로 가서 원하는 곳까지 데려주며 요금은 1달러라고 한다.
 18세 이상의 성인 정신지체장애우만을 대상으로 하는 헬레마노 농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독특한 선발기준을 통과해야 하는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공격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하루 1백명 이상 헬레마노를 이용하는 장애우 중 36명이 9군데의 집에서 3∼4명씩 집단생활을 하고 있는데 각 방에는 전문사회사업가가 함께 살면서 생활지도 등을 하고 있다.
 이들이 한 달에 내는 생활비는 대략 1천달러(약 75만원) 정도로 주 정부는 장애정도와 생활형편에 따라 최고 80%까지 보조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가족들이 내거나 아니면 장애우 자신이 일해서 번 돈으로 충당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장애우들이 자신의 생활비보다 더 많은 수입을 올릴 경우 주 정부에서 거둬가기 때문에 혹시 장애우의 수입이 더 늘어날 경우 이를 비밀로 하기도 한다고 말하며 멋쩍게 웃기도 했다.
 현재 이곳에는 미국을 비롯 일본과 필리핀 등 10여개국에서 온 장애우들이 살고 있었으며 그 중에는 89년 한국에서 온 김광숙씨도 있었다.
 하지만 김광숙씨는 "부모들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내세워 취재를 거절해 얼굴조차 볼 수 없어 못내 아쉬웠다.

<"살고, 웃고 그리고 배운다">
 11시 30분쯤 한 무리의 관광객이 출출해진 배를 채우기 위해 레스토랑으로 몰려오면서 레스토랑은 갑자기 긴장감이 돌았다. 일본에서 온 슈이찌는 목에 레이를 걸고 연신 "알로하"를 외치면서 손님들을 맞고 있었으며 안경을 낀 로버트는 밀려드는 손님들의 돈을 받고 거스름돈을 내주느라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깔끔하게 정리된 내부와 먹음직스런 음식에 감탄을 하는 관광객들 사이로 파란색 앞치마를 받쳐입은 장애우들이 커피 시중을 들면서 분주히 오가는 모습은 여느 식당의 점심시간과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레스토랑 벽에는 "살고, 웃고 그리고 배운다"는 글귀와 장애우들이 일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걸려 있었으며 맞은편 벽에는 "능력, 가능성 그리고 기회"라는 글귀가 걸려 있어 "홀로 서기"를 위한 이들의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3년 전 아리조나 주에서 왔다는 마이크는 주방장 모자를 눌러쓰고 빵을 굽고 있었는데 손님들과 연신 농을 주고받으며 자신이 만든 빵과 파이 등을 자랑했으며 우리 일행을 보고는 "일본인"이냐고 묻기도 했다.
 헬레마노 운영에 참여하는 직원들은 수산나 정을 비롯해 레스토랑, 선물의 집, 데이센터 등에 57명이나 되며 이들은 단순히 장애우를 수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업을 통해 "홀로 서기"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었다.
 이러한 노력은 이곳에서 훈련을 마치고 사회로 나간 35명의 장애우들이 자신들의 일과 삶을 통해 스스로 증명하고 있었다.
 헬레마노 농장 근처 25사단의 스코필드 부대 식당에는 10명의 장애우가 일하고 있는데 이 식당은 25사단 9개의 식당 중에서 식당 규율이 엄격하고 깨끗하기로 유명해 89년부터 지금까지 무려 3번 이상이나 "최우수 식당"으로 뽑히기도 했다.
 우리 일행이 스코필드 식당을 찾았을 때 오후조인 세이진, 벤 그리고 커티스 등 5명의 장애우는 접시를 닦고 바닥청소를 하느라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으며 동료들은 천정을 새로 고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식당 담당자는 "엄격하기로 소문난 우리 식당에서 이들은 이제껏 한번도 지적을 당하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칭찬하면서 "우리 모두는 이들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 끼에 1백명 정도의 군인들이 밥을 먹는 식당일을 통해 장애우들은 장애정도와 일의 종류에 따라 다소 다르기는 하지만 대략 통상임금의 80∼90퍼센트인 시간당 8달러(약 6천원정도)를 받고 있었다.

<능력, 가능성, 그리고 기회>
 헬레마노 농장의 운영책임자인 수산나 정은 "연간 운영비 1백만달러 중 정부보조는 40퍼센트 정도밖에 안되기 때문에 부족한 돈은 기부금이나 후원금 등을 받아서 충당하고 있다"고 운영상의 어려움을 밝혔다.
 헬레마노는 이를 위해 "도움의 손"(Helping hand;헬핑 핸드)이란 독특한 후원자 조직을 가지고 있었는데 다이아몬드에서 금, 은 그리고 보통으로 이어지는 후원자들의 구분은 기부금이나 후원금의 액수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헬레마노에 얼마만한 도움을 줬느냐 하는 것으로 결정한다고 한다.
 하지만 유일하게 "다이아몬드 핸드"에 올라있는 나까무라씨의 경우 얼마 전 죽으면서 자신의 형이 살고 있는 이곳 헬레마노에 전 재산을 기부해 역시 재정난 타결이 가장 중요한 문제임을 알 수 있었다.
 오후 3시, 점심 손님을 모두 치르고 난 후 마이크는 방이 4개나 되고 목욕탕이 3군데나 되는(물론 3사람이 살고 있다) 자신의 집에 돌아와 텔레비전 만화영화를 보느라 카메라를 들이대도 모를 정도로 쏙 빠져 있었다.
 현재 하와이에는 12개 장애우 시설 단체들이 모인 "하와이 재활시설협회"(Rehabilitation Facilities of Hawaii)가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은 1년에 2번 공통의 주제를 선정해 회의를 열고 있다.
 이 모임의 지난해 회장이 바로 헬레마노 농장의 대표인 수산나 정이었다고 하는데 수산나는 이외에 지난 89년 "하와이의 가장 뛰어난 3인의 여성"으로 선정되는 등 하와이의 주목받는 여성으로 맹활약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본느는 "이 모임이 아직까지 서로 만나 그저 얘기를 나누는 정도에 그쳐 더 이상의 활동을 하지는 못하는 수준"이라고 말하며 한국에 장애우들의 문제만을 다루는 언론매체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대단히 놀라며 부러워했다.
 취재를 마치고 나오는 일행을 배웅하면서 이본느는 파인애플을 한아름 안고 나와 "농장에서 직접 기른 것"이라며 굳이 차안에 넣어주면서 우리 식으로 헤어짐을 아쉬워했다.
<계속>

글/전홍윤
 

작성자전흥윤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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