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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초점] "정신보건법" 이대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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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입법예고 후 각계의 반발로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었던 "정신보건법"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정신장애우의 치료와 사회복귀를 위해서 법제정이 시급하다는 의견과 지료를 빙자해 엉뚱한 사람을 강제 입원시킬 소지가 많은 악법이라는 반대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가운데 법제정과 이를 저지하기 위한 마지막 초읽기에 들어갔다.
"정신보건법", 과연 정신장애인의 치료와 사회복귀를 위한 최선의 길이 될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인신구속의 덫이 될 것인가?

<영봉이 엄마의 고민>

  요즘 영봉이 어머니는 가슴 한 구석이 답답한 게 영 입맛이 돌지 않고 까칠한 얼굴이 더욱 핼쑥해지고 어두워졌다.
  아침, 저녁으로 특수학교에 다니는 아들 영봉이(12·정신지체 ㅅ특수학교 4학년)를 데리고 다니면서 자신도 모르게 연신 이리저리 둘러보는 새로운 버릇도 생겼다.
  얼마 전 학부모회에 나갔다가 몇몇 부모들에게 전해들은 "정신보건법"의 내용은 한마디로 놀랍고 두려운 것이었다.
  정신질환자를 "장제입원" 시킨다는데 혹시 혼자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영봉이가 정신질환자로 오인돼 끌려가는 것은 아닌지, 가뜩이나 장애아를 둔 부모로서 걱정거리가 자꾸 늘어 하루하루가 더 힘들게만 느껴졌다.
  이 이야기는 정신보건법 논의가 한창이던 지난달 초 어떤 장애아의 부모로부터 직접 전해들은 얘기로 물론 현재 한창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정신보건법의 내용을 자세히 알지 못해 빚어진 일이라고는 하지만 그 누구도 영봉이 엄마의 고민을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정신질환의 예방과 정신질환자의 의료 및 사회복귀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국민의 정신건강 증진에 이바지 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내세워 제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정신보건법은 과연 어떠한 법인가.

<십만 팔천 대 사만>

  지난해 정부 측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현재 우리나라에는 전체 인구의 약 2.16%인 91만여 명의 정신장애우가 있으며 이중 입원을 해야 하는 "환자"는 전체 정신장애우의 약 11.6%인 10만 5천명에 이르고 있다. 또한 3월 31일 현재 전국 73개 정신요양시설에 수용되어 있는 정신장애우는 1만7천4백45명에 그치고 있어 정신장애우에 대한 수용보호시설의 증설이 시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따라서 정부는 현재 요양시설과 전문병원을 합해 3만여 병상에도 못 미치는 정신과 시설의 병상수를 늘리는 것을 정신보건 정책의 최대 과제로 삼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계산은 그 출발부터 잘못되었다는 것이 정신과 전문의들의 지적이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현재 입원환자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정신분열증과 조울증은 사회복지가 완벽에 가까운 스웨덴이나 동남아의 가난한 나라 등 어느 사회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비슷한 출현율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통설" 이라고 밝히고 "따라서 정신분열증(0.23-0.6%)과 조울증(0.6-0.9%)의 유병률을 더해도 1%정도 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이들은 "정부가 주장하고 있는 입원환자 10만 5천명은 터무니없이 부풀린 것이며 그 배경에는 정신장애에 대한 편견과 수용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업자"들의 현실적인 이해가 깔려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실제로 입원치료가 필요한 사람은 "아무리 많아도 4만여 명 정도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숫자싸움은 단순히 정신장애우의 많고 적음을 밝히기 위한 노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신병은 "수용해서 치료해야 한다."는 구시대적 발상을 정당화하기 위한 시설의 증설로 이어지며 이는 필연적으로 이러한 시설에 수용되어야 하는 정신장애우가 필요한 "순환 고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사회박탈증후군(?)>

  그러나 장기간 병원에 갇혀 있는 사람은 이미 한 인간으로서 삶의 기술을 잃어버리고 하루 세끼 밥 먹을 때만 기다리면서 병원관계자의 지시에 어린아이처럼 동물적인 행동을 반복하는 "사회박탈증후군"이라는 더 큰 질병에 걸리게 되며 1950년대 이후 세계정신보건정책의 역사는 바로 이러한 격리수용을 타파해 나가는 "탈 수용화"의 역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1950년대 이전 미국의 경우 주립정신병원에 입원한 정신장애우는 13년 이상의 시간을 병원에서 보내야 했으며 이처럼 장기간에 걸친 입원으로 병상 수만 늘어나 결국 정부재정의 막대한 부분

정신보건법 입법과정은 정신장애우의 적절한 치료와 사회복귀를 위한 법으로서의 역할보다는 합법적으로 "격리"와 "수용" 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사람들을 제재하기 위한 "정치적인 목적"이 더 크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이 병원을 유지하는데 사용되는 부작용이 일어나 1950년대부터 이들 병상을 줄이기 시작했으며 결국 75%까지 줄이는데 성공했다.
  이웃 일본의 경우 병상수가 32만으로 정신장애우 1천 명당 병상수가 2.7이나 돼 세계에서 가장 탈수용화에 실패한 경우인데 이러한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시설의 사유화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으며 이는 우리의 경우와 거의 같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80년데 이후 정신의학의 발달로 평균입원 일수가 4~주 정도로 크게 줄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균 입원 기간이 6개월~1년이나 걸리는 시설의 증설을 서두르는 것은 "현행 정신요양원을 정신의료법인으로 바꿔 이로 인해 생기는 엄청난 이득을 챙기기 위한 것"이라는 지적이 거세게 일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현재 환자 1인당 월 7만여 원의 국고보조비가 35만원으로 5배 이상 늘어나 평균 300여명을 수용하고 있는 70여개의 요양원은 월 9천만 원의 추가 수입을 올릴 수 있어 막대한 이권이 개입될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이권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정신보건정책이 좌지우지되고 있는 것이다.

<태풍의 눈 "법정입원" "응급입원">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서 정신보건법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의 핵심은 "강제입원"이 몰고 올 정신장애우의 인권유린과 함께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정부가 제안한 정신보건법에는 입원의 종류를 정신장애우 자신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자의입원"과 정신장애우의 보호의무자의 입원동의서를 받아야 하는 "동의입원", 시·도지사가 정신질환으로 자신 또는 남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추정되는 사람에 대해 직권으로 입원 및 진단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평가입원", 또 시·도지사가 2사람 이상의 정신과 전문의의 일치된 결론이 있을 경우 해당 정신장애우에 대해 직권으로 정신의료기관에 입원치료를 의뢰하는 "법정입원" 그리고 정신질환자로 추정되는 사람이 자신 또는 남에게 손상을 끼칠 위험이 큰 경우 의사와 경찰관의 도움을 얻어 정신의료기관에 응급입원 조치를 의뢰하는 "응급입원" 등으로 구분해 정신장애우의 인권을 보호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법의 폐해를 지적하는 사람들은 법정입원이나 응급입원으로 불리는 소위 "강제입원"은 말이 "입원"이지 사실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신체의 자유"를 구속하는 위헌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들은 법원이 발부한 영장이 없이 정신과 의사 2명의 동의만으로 신체의 자유를 빼앗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한번 입원되면 퇴원하기가 어렵다는 점에 있다고 주장한다.
  과연 어떤 의사가 그 사람이 정신의학적으로 사회에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정확하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정치적 목적 의심스러워>

  더욱이 이 법의 제정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 동안 정신보건법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가 대단히 의심스럽다는 말을 하고 있다.
  이들이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정신보건법의 입법과정에서 드러난 우여곡절을 살펴보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80년대 중반 5공 정권에 의해 은밀히 추진되던 "정신보건법"은 당시 인권단체들이 "반정부세력을 탄압하기 위한 도구"라고 주장하면서 공동대책위원회를 만들어 강력하게 반발하는 바람에 입법이 좌절된 바 있다.
  미련을 버리지 못한 정부는 계속 은밀하게 입법을 추진하던 중 지난해에는 난데없이 법무부장관이 나서 "정신보건법의 제정을 기필코 이루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러나 재야단체와 언론에서 법무부가 나선 것에 대해 "정신보건법의 본질을 스스로 드러낸 처사"라고 집중포화를 가하자 다시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고는 올해 다시 보사부를 내세워 입법을 강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 법의 제정을 반대하는 몇몇 사람들은 정부에서 이렇게 정신보건법의 제정에 목을 메는 것은 "어차피 폐지될 수밖에 없는 국가보안법 등 반정부세력을 탄압하기 위한 대체입법의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처럼 정신보건법 입법 과정은 정신장애우의 적절한 치료와 사회복귀를 위한 법으로서의 역할보다는 합법적으로 "격리"와 "수용" 해여 할 필요성이 있는 사람들을 제재하기 위한 "정치적인 목적"이 더 크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현재 정신장애우의 약90% 가까이가 노이로제 환자라고 한다.
  이는 이들이 더 이상 격리수용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사업적 측면에서 조사와 진단 그리고 치료를 받아야 하는 개별 사회사업의 대상이라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정신장애우의 사회복귀를 위하여>

  정신과적 치료가 자아적응, 충동과 양심간의 갈들, 개별적인 행동양상 및 무의식적인 방어기제에 관심을 두고 있다면 사회치료는 사회적응, 정신장애우의 생활에 대한 외부적 상황, 집단적 행동양상 및 사회적 현실검증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두 부분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조화를 이뤄야 하며 언제나 그 기준은 "정신장애우의 인권"을 최대한으로 보장하는 선에서 이뤄져야 할 것이다.
  "물론 정신병을 앓고 있는 환자의 목소리를 높여서 사회에 어떤 요구를 할 수 있는 입장이 되고 있지 못하며, 이러한 처지는 그 가족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가족의 입장에서 자기 가족 중에 정신병자가 있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알릴만큼 우리 사회가 열려 있다고 보기는 힘들 것입니다. 길고 긴 세월을 은둔과 암흑 속에서 사회와 격리된 채 살아야 하는 저희들의 처지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정신장애우 가족들의 호소는 그동안 이들이 겪었던 고통이 얼마나 깊고 쓰라린 것인가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정신보건법"이 과연 정신장애우와 그 가족의 입장에서 만들어 지고 있는지 아니면 이들을 빙자한 요양원 업자들의 "이권"과 정부의 "정치적 음모"인지 다시 한번 되짚어 봐야 할 것이다.

작성자전흥윤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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