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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재활공학의 현주소] 재활공학의 미래

본문

<1. 전문교육>
  외국의 재활 공학은 대학원 이상에서 수학하게 되어 있다. 대학에서 의학이나 이공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그 응용과학으로 대학원에서 배우고 연구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재활 공학은 철학적이고 이론적이어서 종합적이고 응용과학적 입장에 아직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외국에서 유학한 석학들도 국내에 들어오면 설자리가 없어 일반 공학으로 일자리를 바꾸는 것이다. 보건전문대학에서의 의료기 제조와 관련된 재활 공학과의 신설 움직임과 대구대학교의 재활과학대학의 발전에 힘입어 의료적이고 특수 교육적인 측면을 뛰어 넘어 인체 공학적, 기능적, 심리적, 사회적 종합 복지 기술 축적이 이루어져야 한다. 의학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기술이라 하 여 외국에서는 대학원에서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이다.

<2. 기술개발>
  보는 관점에 따라 현대 사회를 문화와 문명의 발달로 편리하다고 말할 수도 있고 모순과 불편의 창고로 볼 수도 있다. 원시시대부터 인간은 헤아릴 수 없는 발명과 발견을 해왔지만 부작용과 모순, 그것을 사용함으로써 그에 따르는 불편이 전혀 없는 완벽한 장점만을 가진 발명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러기에 사회가 현대화될수록 인간의 고민은 늘어나고 복잡해지기만 하는 것이다. 편리해 보자구 편해 보자고 불편한 점들을 계속 고쳐온 것이 오늘인데, 오히려 하나도 고치지 않은 불편한 상태 그대로인 원시시대에 얼마나 행복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아이큐 70인 사람이 정신지체인이라서 경쟁 사회에 적응을 못하고 구석에 박혀 있는 현실이지만 과거 농경 사회에서 이 사람은 장애인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도로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사회에 10년쯤 지나 당신도 장애인일지 모른다. 가만히 있어도 장애인이 될 판에 약물 부작용, 공해, 교통사고, 산업 재해는 장애인을 대량 생산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2차 대전의 산물인 원자폭탄 제조 기술이 원자력 발전 등 평화적으로 쓰여 사회에 공헌하듯이 현대 과학이 재활 공학, 복지기술에 그 기술을 나누어 주어야함은 평화를 실천하는 행위이다. 더 편리하게 또 더 편리하게 나아가는 것이 문화의 발전인데, 장애가 무엇인가. 가장 불편을 느끼는 것이 아닌가. 복지 기술을 외면한 발전은 바로 패망의 길인 것이다.
  장애인 복지란 장애인만 갖고 있는 핸디캡을 가능한 한 경감시켜주어 정상인들과 같은 생활 조건과 생활의 안정을 향유하도록 하고 더 나아가서는 장애 때문에 갖게 되는 사회적 장애와 이와 같은 사회적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는 일반 사회인의 장애인에 대한 가치관(편견과 차별-이는 상대적 평가에 기인)의 극복과 개선 내지 제거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활동을 말한다.
 과거 우리는 철학적 설득으로 편견을 없애려 했다. 수천 년 동안 종교계가 활동했지만 악은 여전히 남아 있고 법이 필요하듯 재활에 공학이라는 기술이 필요하다.
  외국의 경우는 재활산업이라 할 만큼 그 연구와 개발이 활발하다. 일만 오천 종에 달하는 rl종 재활용품은 정부의 강력한 지원 아래 세계 시장에서 국익을 돕고 있다. 장애인을 평생 정부가 먹이는 비용과 용구 개발, 사회시설 확충, 구조개선, 교육 및 직업 훈련의 비용을 부담하고 자립하게 하는 것이 13배 절약된다고 한다. 간단한 흰지팡이 외에는 수출품이 없고 점자타자기나 점자 시계까지도 수입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실정이다. 국내 유일한 재활공학센터는 외국의 재활 산업을 모방하는 일을 먼저하고 있다. 모방이 있어야 창조를 후에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3. 재활용품 보급>
  한 사람이 취업이나 교육에 필요한 용구로 재활의 효과를 줄 수 있으면 외국의 정부는 기꺼이 그 부담을 맡는다. 나는 우리의 현실을 비관하면서 개발해봤자 형편이 나은 몇몇 사람 밖에 사용하지 못하고 정말 재활이 시급한 이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 것을 마음 아파했다. 그런데 럭키금성 복지재단에서 일하는 분들을 91년 장애인 용품 전에서 만났다. 90년에 관세법에서 장애인 면세 품목을 확대, 현실화하도록 요구한 본회의 건의가 받아들여졌고 타성에 젖지 않은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싶어했다. 새로운 것일수록 성공 여부는 위험 부담이 따른다. 그 부담을 안고 공학센터를 믿어준 것이다. 우리는 점자 번역과 음성 출력 프로그램을 더욱 다듬었고, 점자 프린트와 음성 카드를 설치하러 전국 맹학교와 점자 도서관을 다녔다. 대성공이었다. 점자 출판과 더불어 컴퓨터가 시각장애인 용구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입력된 일반 글이 점자로 나오는 것을 보고, 음성으로 화면을 읽고 난 시각장애인들은 이제 일반인과 같이 보게 되었다고 좋아했다. 청주 맹학교의 교사 한 분은 미국에서 재활 공학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우리나라는 수십 년 후의 일이겠지, 헬렌 켈러도 한국에서 났다면 지하철에서 구걸밖에 더 했겠어?"라고 생각하고 복직해 보니, 벌써 현실이 되어 있더라는 얘기다. 즉 럭키금성의 도움이 시각장애인 복지를 18년 앞당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교부에서 컴퓨터 교육을 실시하기로 한 후 방법이 없어 고민하던 맹학교에서도 자동적으로 해결이 되었다. 침, 안마 등 직업이 극히 한정되어 있는 시각장애인계에 새바람이 일어났다. 시각장애인 대학생들은 스스로 레포트를 작성할 수 있었고 보고 싶던 책들이 봉사자에 의해 입력되어 점자로 쏟아져 나왔다.
  앞으로 음성 사전이 개발되고, 재활 통신이 활성화되고, 컴퓨터 직업 훈련원이 생기고, 디스켓 도서관이 생기고(음성이 더욱 좋아지면 녹음도서로도 사용) 그 파급 효과는 엄청나리라. 또한 다른 장애인에게도 응용이 되어 음성 인식과 문자 인식이 개발되면 손이 없거나 불편한 이도 말로 글을 쓰고, 시각장애인도 신문을 읽는 시대가 열릴 것이다. 스스로 변화하지 못하고 타에 의 해 적용하는 보사부가 나라가 못 구한 것을 했다고 할 정도이다. 이제 어디서든 입력된 자료만 있으면 통신으로 전국 어디든 보내 어 점자책을 만들 수 있다. "참 우리" 봉사 팀은 미를 이용, 매일 TV과외를 실시하여 시각장애인학생도 교재를 보면서 배우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장애인 자신, 후원자, 기업, 정부 등이 힘을 합해 개발과 연구의 비용을 해결해 나가면 장애인은 장애인이 아닐 수 있다.

<4. 제도 개편>
  장애인들은 자신의 복지를 위해 투쟁해 왔다. 사실 복지라기보다는 생존을 위해, 살아남기 위해 데모도 하고 울부짖으며 호소하여 겨우 오늘의 혜택이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혜택보다 혜택에 따른 답례가 더 커야 했다. 복지정책의 전시 효과로, 보호를 빙자한 격리로 정상인들의 편의를 위한 사회 예방적 차원에서의 형식적 지원 등으로.
  이제 불이익과 불평등을 해소하고 열린사회를 위해, 함께 살 자리를 만들기 위해 법원과 국회에서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육체적 장애가 아닌 사회의 높은 벽으로 된 장애를 허물기 위해 힘써야 한다. 국내에 생산되지 않는 용품을 전자파 장애 검정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입을 금지한다거나, 고용촉진법에 장애영역별 할당이 없어 기업주가 시각장애인을 꺼려 고용 혜택을 주지 않는다거나, 시각장애인에게는 엘피지 이용 혜택을 주지 않는다거나, 전철 표를 끊으면 할인율을 줄인다거나, 전화 요금을 40퍼센트 할인해 준다면서 시내 통화료에만 한정해 실제로는 10% 퍼센트 정도만 된다거나 하는 등 그야말로 선전만 좋고 빛 좋은 개살구로 그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늘 일반인의 악용의 가능성이 있다며 이용에 불편을 만들고, 시각장애인은 수다는 것을 이용하여 장애인을 위한다는 큰 간판 속에서 장애인 속의 장애인으로 소외시키는 일은 강력하고 선명한 제도 정비로 이겨나가야 할 것이다.
  성경이 있기 때문에 하느님 말씀이 사람들에 의해 조작되지 못 하듯, 제도가 필요충분조건을 만족시켜 주어야 한다. 장애인 스스로 만들도록 자리만 만들면 될 일을, 잘 만들어 준다면서 만든 이의 영웅 심리를 부추기고 우상화시키면 마치 노인을 돕는다고 하면서 짚고 있는 지팡이를 무겁다고 들어주는 것과 진배없다.

<5. 한국의 스티븐 호킹을 기다리며>
  스티븐 호킹은 아인쉬타인 이후 최대의 물리학자로 인정받고 있다. 92년에는 서울대학교 초청으로 우린 나라에도 다녀갈 격이 있다. 그가 블랙홀의 이론으로 유명하지만 우리는 그가 중증 장애인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몸이 오그라드는 괴이한 운명을 사랑하는 간호원과 함께 이겨나가고 있다. 그는 휠체어에 컴퓨터를 장착하여 음성 합성기를 이용하여 말을 한다. 이 음성 합성기는 바로 시각장애인들이 컴퓨터 화면을 읽는 데 사용하는 것으로, 키보드를 통해 쓰면 컴퓨터가 소리를 내어 일반인과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의사소통과 보행의 불편을 가진 것이 장애인이고, 그것을 재활공학으로 해결하고 나면 일반인을 능가하는 잠재 능력을 개발해 낼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잠재 능력이 개발되지 않으면 즉 교육을 받지 않으면 우리 모두 문화적으로 직업적으로 사회적으로 장애인이 된다. 그러기에 우리는 교육에 20여년을 투자하고도 평생 교육을 받는다. 장애인은 의사소통과 보행의 기술적 해결이 이루어져야 한 인간으로서의 자기실현 능력을 가지게 된다. 교육은 다음 문제다. 재활공학의 뒷받침이 없는 교육은 동질 집단의 형성만 초래할 뿐이다. 일본의 에도미 야스히로는 중증뇌성마비로 엄지발가락 하나밖에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인간이지만 화살표 키와 리턴 키만을 발가락에 달아놓고 천장에 키보드화면을 달아 화살표를 움직여 원하는 글자에 위치가 다다르면 리턴을 쳐서 글자를 선택하는 데 그는 시인으로서 시 한편을 글로 옳기는 데도 하루를 보낸다.
  우리나라 장애인도 장애인으로서 한 인간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하는 인간으로서 살아가야 한다.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핸디캡이 있는 이상으로 유능한 무엇이 있어야 한다. 지하철이나 육교에서 손을 벌리는 장애인을 보고 의타심을 주지 않기 위해 도와 주지 않거나 불쌍해서 도와주거나 어쨌든 그런 이들을 생산하고 있는 것은 사회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한국의 스티븐 호킹, 한국의 헬렌 켈러는 오늘도 지하철에서 구걸하고 있다. 그들에게 제 모습을 찾아주는 것은 재활공학의 혁신이 있어야 한다.

<6. 인식 변화는 왜 안 되는가?>
  중계동에 장애인들이 일반인과 함께 입주한 아파트가 있다. 중계 시영 2단지가 그곳이다. 1층과 2층은 장애인들인 살고 있는데, 일반인들은 입주할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무주택의 설움에서 벗어나게 되었구나. 장애인들이 들어온다니까 입주 신청이 적어 나도 되었구나. 가격이 다른 데보다 싸서 가난한 나도 입주할 수 있었구나" 등등 장애인에게 감사하는 마음들이었다. 불과 3, 4개월이 지나자 "우리 자식이 장애인 자식들과 같이 학교에서 공부하다니, 장애인들이 있어 집 값이 오르기는 텄구나." 등등 마치 장애인들이 자기들의 이미지와 인생과 가정을 망쳐놓 은 듯이 반상회나 끼리끼리 모이기만 하면 이런 말들을 부끄럼 없이 한다.
  인식 계몽이나 홍보는 철학적 말로는 시한적이고 외면적이다. 진정 내부적 인식 변화는 장애인들의 재활공학을 통한 수준 높은 재활이다. 서구에서 식물인간과 대학에서 동료 의식을 가지고 같이 공부하고 일반 직장에서 책상을 나란히 하고, 소외시키거나 동료로 받아들여 자기들끼리 모 여 수군댐이 없는 것은 재활 공학 이용으로 장애를 극복하는 합리적 생각이 만들어 낸 것이다. 남을 무시하고 남 말 좋아하고, 못한 이에게 도와주기보다 멸시하는 사회 풍토가 재활 공학의 발전과 장애인 인식 운동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동정을 받기 위해 좀더 배고파하고 처절해 해야 효과가 있는 풍토에서는 오히려 동정이 확실해지는 모습으로 장애인은 적응한다. 재활공학의 부흥이 없이는 재활 의지 고취가 의미가 없으며, 이러한 사업에 정부나 뜻있는 이들의 후원이 있어야 한다.
  컴퓨터가 재활 용구로 정착하려면 필요한 각종 응용 프로그램개발과 보급 및 교육, 직업 훈련원 등의 설립 등 적극적이고도 본격적인 사업이 펼쳐져야 한다. 컴퓨터가 재활 용구로서 기능을 다 할 때 인식은 저절로 개선될 것이다. 

연재를 마치며
(재활공학의 현주소)라는 주제로그동안 세 차례에 걸쳐서 시각장애인 재활용품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컴퓨터의 다양한 기능"에 대해 소개해 준 서인환 소장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작성자서인환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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