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장애인에게만 허용하는 안마사, "위헌"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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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위해서 그렇게 몸부림쳤는데, 다 죽게 생겼다. 우리도 안마 하고 싶어서 하는 거 아니다. 먹고 살기 위한 방법이 그것밖에 없다. 그런데 이제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어차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지난 5월 25일, 헌법재판소는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이유로 시각장애인들만 안마사가 될 수 있도록 한 현행법령이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전국의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이 서울로 집결, 생존권을 박탈당했다며 극렬하게 저항하고 있다.
헌재의 이번 판결이 불러올 사회적 파장, 〈함께걸음〉이 취재했다.
"지하철에서 하모니카 불란 말이냐, 도대체 어떻게 살라고."
지난 5월 25일 나온 헌법재판소 판결 요지는 이렇다.
〔현행 "안마사에관한규칙"에 규정되어 있는 안마사의 자격, 즉 "1.초·중등교육법 제2조 제5호의 규정에 의한 특수학교 중 고등학교에 준한 교육을 학교에서 제2조에 규정에 의한 물리적 시술에 관한 교육과정을 마친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 2. 중학교 과정 이상의 교육을 받고 보건복지부장관이 지정하는 안마수련기관에서 2년 이상의 안마수련과정을 마친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일반인으로 하여금 안마사 자격을 받을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중략)이는 일반인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으므로 헌법에 위반된다.〕
한마디로 시각장애인들만 안마사를 하도록한 현행 규정은 비장애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니, 위헌이라는 판결이다.
이에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은 유일한 생계수단을 박탈당했다며 판결이 난 5월 25일부터 평촌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 별관, 광화문 정부청사, 헌법재판소(이하 헌재), 마포대교 등지에서 농성을 벌였다. 아마 전국 시각장애인들이 모여 이렇게 저항을 했던 것은 장애역사상 처음일 것이다.
현장에서 만난 시각장애인들은 하나같이 생존권을 박탈당했다며 분노했다. 안마를 한지 10년째라는 시각장애인 문 모씨는 "비장애인들은 굳이 안마가 아니어도 다른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면서 "우리는 이것 하나 밖에 없는 사람들인데, 이런 판결이 나오다니 말이 안나온다."라고 허탈해했다.
시각장애 1급인 안마사 이 모씨는 "비장애인들과 우리는 경쟁상대가 되질 않는다. 그들의 자본력과 영업력을 따라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회는 비장애인들을 더 선호한다. 우리는 이제 굶어죽게 생겼다."라며 "암담, 그 자체."라고 덧붙였다.
또한 한 시각장애인도 "안마 한 사람해 봐야 1만5천 원 정도 받는다. 그나마 현재 개점 휴업상태다. 하지만 그나마도 못하면 지하철에서 하모니카 불어야 하는데...우리도 안마 좋아서 하는 거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시각장애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그것밖에 없어서 하는 거다. 상황이 이런데, 무슨 직업선택 자유를 침해했다고 하는지 분통이 터진다."고 항변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을 관리하고 있는 대한마사지협회 강용봉 사무총장은 "회원들의 충격이 너무 커서 정신적 공황상태다. 뭐라도 일단 해보자는 심정에서 길거리로 나온 것이다. 굶어죽나 싸우다죽나 매한가지다.
우리는 헌재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 시각장애인들이 안마 말고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예전으로 돌리겠다. 우리는 살고 싶다.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분노했다.
3년 전은 합헌, 이번에는 위헌?
그런데 이번 헌재의 결정은 3년 전의 판결을 뒤엎은 것이어서 더욱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2003년 당시 헌재는 "안마사 자격 없이 영리를 목적으로 안마행위를 한 자를 형사처벌하게 하고 있는 의료법 제67조(제61조 제1항의 규정에 의한 안마사의 자격인정을 받지 아니라고 목적으로 안마행위를 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와 안마사 자격인정 요건을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게 하고 있는 의료법(제61조 제1항: 안마사가 되고자 하는 자는 시·도지사의 자격인정을 받아야 한다. 제4항 : 안마사의 자격인정, 그 업무한계 및 안마시술소의 시설기준 등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한다)이 모두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판결을 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우 3년 만에 직업선택의 자유권을 이유로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우리나라의 안마사제도는 1912년 일제 강점기 때 전문기술로 양성화된 이래, 1975년 전문 개정된 의료법률 자체에서 시각장애인에게 안마사의 자격을 인정하도록 규정했었다. 그리고 1981년 개정된 의료법에서부터 무허가 안마사를 형사처벌 해왔다.
이렇게 시각장애인들의 안마는 100여년의 역사 속에서 유보직종(일정한 직종을 지정하여 그 직종에 대해서는 특정 장애유형의 장애인을 우선적으로 고용하는 것)으로 인정받아왔다. 그리고 선진국들조차도 장애인들의 직업선택 기회가 제한된 것을 인정해 나라의 상황에 맞는 유보직종을 지원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유보직종이던 안마가 이번 헌재의 판결로 보호막이 깨어져 이제는 누구나 자격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장애유형별 직업 개발과 복지제도가 잘 보장되어 있는 선진국도 아직까지 유보직종을 운영해 장애인들의 생계를 보장하고 있는 상황인데, 별다른 복지제도 없이 그나마 하나 있던 유보직종마저 사라지게 된 것이다.
기초생활대상자로 추락하는 것은 시간문제, 그러나 대안이 없다
갑작스런 헌재의 위헌 판결로 복지부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를 맞았다는 분위기다. 분노한 시각장애인들의 원성이 집중적으로 쏟아졌기 때문. 이에 복지부는 부랴부랴 "헌재의 위헌판결을 존중하여 관련 법령을 개정, 시각장애인의 생계보장 및 소득보장을 위한 별도의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복지부 소득보장팀 유병희 팀장은 "올해 초 계획했던 장애인의 사회적 일자리를 추진하고 있다. 우선은 시각장애인들을 노인복지관이나 장애인복지관, 보건소 등에 안마사로 취업시키는 것인데, 1천명을 고용할 계획이며 45억 예산을 신청했다. 그리고 중견기업들과 정부투자기관 등의 의무실에 시각장애인들을 헬스키퍼로 고용하게끔 홍보하고 권고하겠다."라며 "현재로서는 이것이 최선이다. 당장 다른 예산 끌어올 수도 없다."고 밝혔다.
그런데 사회적 일자리는 생계보장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참여할 기회를 주는 것"이 목적이란다. 말이 일자리지,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데다가 한 달에 많아야 30만원이나 받을까. 대안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당사자들은 당장 굶어죽겠으니 대책을 세워달라고 절규하는데 말이다.
그리고 한나라당 정화원 의원실 측은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사회정책이 미비한 상황에서 어떻게 비장애인의 직업선택 자유만 인정하는지 이해가 안된다" 며 "지금까지 시행규칙에서 인정해왔던 내용을 상위법인 의료법을 개정해 시각장애인의 생존을 보호하려 생각 중" 이라고 밝혔다.
현재 국회나 정부도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표정이다. 하긴, 그동안도 전혀 없던 대책이 무슨 수로 갑자기 생기겠나.
천안대학교 사범학부 신창현 교수는 "최소한의 생계보장도 안되는 일자리를 임시방편으로 내놔봐야 "원성 잠재우기용"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그동안 정부가 불법 마사지를 단속조차 하지 않아서 이미 시각장애인들은 생계를 위협받고 있었다. 항간에는 불법마사지사가 이미 30만 명인데 시각장애인 안마사는 1만 명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형세가 기울어 있다. 이번 판결로인해 시각장애인 안마사는 고사할 것"이라도 내다봤다.
신 교수는 "이는 단지 한 개인의 문제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시각장애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은 안마와 극소수의 맹학교 교사, 종교인 정도다. 안마가 무너지면 시각장애인이 부양하는 가족은 극빈층으로 전락할 것이고, 학생들이 안마를 배우려고 하지 않을 것이니 맹학교 교사의 생계도 위협받을 것이다. 다시 말해 시각장애인 사회 전체로 연쇄적인 파장이 생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사태는 현재 안마사뿐만 아니라 그동안 선택의 여지없이 안마만을 주로 배운 학생들에게도 큰 타격이다. 서울맹학교에서 진로상담을 하고 있는 최두호 교사는"학생들도 이제 무엇으로 벌어먹고 사느냐며 술렁이고 있다."라고 전하며 "이건 직업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한쪽으로 넘어간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애써 가르친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서 복지수혜자 계층으로 전락할 것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진다"라며 침통해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시각장애가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안마는 시각장애인들의 유일한 생계수단이 되어 왔다. 이것은 안마가 유보직종이어서 가능했다. 그렇지만 안마사 자격이 비장애인들에게도 열리면 시각장애인들은 경쟁이 되질 않는다.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위한 별다른 소득보장정책이 없는 현 상황에서 이들이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물론, 직업 선택의 자유는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일반적인 논리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평등할 때나 타당한 말이다. 사회구조 자체가 장애인들에게 불평등한 상황에서, 유보직종 하나만을 가지고 평등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이미 비장애인들이 아홉 개의 직업영역을 차지하고 있고, 시각장애인들은 안마만을 해왔다.
헌재에 묻고 싶다. 그렇다면 다른 직업영역을 선택할 수 없을 정도로 박탈당한 시각장애인들의 직업선택의 자유는 어떻게 보상할 것인지 그것부터 말해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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