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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1]"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을"

94장애인 캠프 "하나되어"에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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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을"
94장애인 캠프 "하나되어"에 다녀와서
한관호 (지체장애우)

마산시 성남 성당에 있는 장애인 모임인 "인성회"에서 마련한 "내일을 열자" 캠프에 세밤 네 날을 다녀왔다. 마산에 살면서도 장애우들과의 만남을 갖지 못했기에, 이번 기회를 통해 만남을 가질 수 있으리라는 생각과, 시내 곳곳에 나부끼는 플랭카드로 인한 궁금함, 또한 "내일을 열자"란 글귀가 눈길을 끌어 두 달 동안 오천사 청년암에 머물기로 한 계획을 미룬 채 참가했다. 이 글은 세 밤 네 날의 체험과 느낀점 그리고 부탁하고 싶은 몇 가지 얘길 적은 것이다.
 혹시 다른 지역 장애우들도 이런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면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으로, 장애우 입장에서는 주관적으로, 다른 한편으론 객관적 입장에서 쓰고자 한다. 그것은 주최 측의 허물을 보고자 함이 아니라 우리 4백만 장애우의 보다 나은 삶의 질적 향상을 위해 고민해 보고자 함이다.

<내일을 열자>
 태풍이 북상 중이라, 비가 내리고 날씨가 고르지 못하여 취소가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을 가지고 마산공설운동장으로 갔다. 약속시간인 9시가 멀었는데도 벌써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캠프에 참가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인 듯, 갈 때마다 비가 온다며 농촌의 시름은 염두에 두지 않은 채, 단비를 원망하고들 있었다. 접수대에 가서 확인을 받고, 예비소집 때 만난 조원들과 인사를 나누며, "하나되어"란 글귀가 박힌 셔츠를 받아 옷을 갈아입고, 10시 발대식을 기다렸다.
 참가자는, 1백여명이고 장애우들은 60여명 정도된다 한다. 휴가도 끝났으니, 일터를 가진 장애우들은 오지 못했을 것이고 거의가 재가장애우인가보다. 비 때문인지 발대식은 생략되고, 아무 하는 일 없이 3시간의 지루한 기다림 끝에 12시가 되어서야 출발을 했다. 흔히 있게 마련인 개인소개나 노래 한자락 없이, 고픈 배를 우유와 빵으로 달래며 1시간 30분이 걸려 목적지인 의령군에 있는 입석분교에 도착했다. 비가 와서 텐트를 치지 못하고 교실에 짐을 풀고는 늦은 점심을 먹었다. 곳이어 조구호, 조가를 정하고 조깃발 제작에 들어갔다.
 내가 속해 있는 7조는 "한 사람이 열 걸음 보다 열 사람이 한 걸음으로" "소나무야"라는 노래를 조가로 정하고, 깃발은 돌맹이 열두 개를 그려 각자의 이름을 쓰고 맨 위에 "지혜촌"이란 조이름을 적어 넣었다. 이어 각 조별로 준비된 발표의 시간과 자기소개의 시간을 가졌다. 봉사자들이 준비한 늦은 저녁을 맛나게 먹고는 "장애인을 둔 가족의 얘기"란 주제 아래 촌극 준비와 발표의 시간을 가졌다.
 회사에서 작업 능률이 떨어지는 장애우가 각고의 노력 끝에 생산량을 높여 사장으로부터 인정받는다는 얘기, 아무것도 못할 줄 알아 가족으로부터 천대받던 장애우가 그림그리기대회에서 1등을 하여 가족들로부터 사랑을 받는다는, 초등학생들이 만들었음직한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들이 주조를 이루어 처음부터 실망을 했다. 그동안의 장애우 지배이데올로기가 어떠했는가를 한눈에 알 수 있을 씁쓸한 시간이었다.
 짐을 정리하고 자정이 넘어 점호를 받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7시에 일어나서 역시 자원봉사자가 준비한 아침을 먹고는 풍물 배우기를 하였다. "문지방"이란 전문 풍물 단체에서 강사 한 분이 오셔서 우리것의 소중함을 알려주었고 풍물 시범을 했다. 이어서 장구 가락을 배웠는데 모두들 신나하며 뙤약볕에 앉아서 열심히 배웠다. 일본이나 미국 등 퇴폐문화에 젖어버린 지금 우리것의 소중함을 느껴본 좋은 시간이었다.
 점심으로 자원활동자가 끊여 온 라면을 먹고는 영산 쇠머리대기 놀이를 하였다. 나무를 차전처럼 엮어 그 위에 휠체어를 묶어, 장애우 한 사람이 타고 15명 정도가 그것을 메고는 작은북을 든 20여명이 풍물을 울리며 그 뒤를 따라, 다른 편 쇠머리와 접전을 하며 다른 편을 제압하는 놀이이다. 뜨거운 햇볕에 그을리면서도 풍물 가락과 함성 속에 모두가 신나한 멋진 시간이었다.
 힘을 많이 쓴 탓인지 배고프다는 소리가 진동을 하여 서둘러 저녁을 먹고는 야간 추적놀이에 들어갔다. 15개의 유, 무인 포스트를 숨겨놓고 정해진 시간 안에 각 포스트를 돌아오는 놀이인데 무인 포스트에는 문제가, 유인 포스트에는 교관이 있어 지시를 내린다. 휠체어를 밀고, 시각장애인을 안내하며 지체장애인은 어깨도움을 받으며 험한 길을 걸으며 추적놀이에 나섰다. 풀벌레가 울고 하늘엔 별이 초롱한 시골길을 걷는 운치에 힘든 것을 잊으며 장애우와 비장애우가 함께 하는 참 유익한 시간이었다.
 고생 고생 끝에 출발점으로 돌아왔고 예상도 못했는데 우리조가 1등을 차지하였다. 한가지 아쉬움은 6포스트 조교가 군대식 명령어와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하는 기합을 주었는데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군사문화를 놀이에서도 느껴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다른 장애우들은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기 때문인지 나의 이런 설명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셋째 날이 밝았다.
 오전에는 야간 추적놀이에 대한 소감을 정리하고 점심 후에는 조별 발표가 있었다. 소감은 거의가 대동소이했는데 장애우인 우리도 뭔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다는 것, 그리고 비장애우들은 장애우들의 의지에 부끄러움을 느꼈다는 것이었다. 독이어 캠프장 옆에 있는 냇가로 물놀이를 갔다. 처음에는 물에 들어가기를 망설이던 사람들도 하나 둘 자신의 부끄러움을 벗어버리며 물 속으로 뛰어들었고 시각장애우들은 고무 투브를 타고 척추장애우들은 휠체어에 탄 채 도움패들의 도움을 받으며 물놀이를 즐겼다.
 철들고는 모두들 처음인 듯 물놀이에 동심으로 돌아가 물을 먹이기도 하고 밀쳐서 빠뜨리기도 하며 신나게들 놀았다. 이제 내일이면 두고 온 삶터로 돌아갈 시간, 저녁을 먹고는 캠프파이어가 시작되었다. 조별로 장기자랑이 있었는데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준비했는지 촌극과 리싸이틀 시낭송 등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이어서 인성회 회장, 지체장애자협회 경남지부장, 장애우인 마신시의회 김종대 의원이 점화를 하고 불을 옮겨 붙인 촛불의식이 있었다.
 한사람 한사람 돌아가며 굳게 악수를 나누고 더러는 울고.... 그리고는 촛불을 들고 냇가로 나갔다. 살아온 세월의 아픔과 설움과 소망을 담아 촛불을 냇물에 띄워 보냈다. 제대로 장애복지가 실현되어 사람이, 사람과 더불어, 사람답게 사는 그날을 기원하면서....
 그동안은 금지되었던 술이 지급되었다. 잔에 막걸리를 가득 따르고 "위하여"를 외치며 뒤풀이 시간을 가졌다. 더러는 잠이 들기도 했지만 거의 모두가 날을 새웠는데, 우리 장애우들이 어울림의 시간이 얼마나 없었으면 저렇게 한 맺힌 듯 밤을 새워 놀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저렸다.
 이제 정리를 해야 하는 날이 밝았다. 그동안의 느낀 점들을 적어 내고, 엠브이피 시상을 위해 장애우 비장애우 한사람씩 이름을 적어내고 점심을 먹고는 돌아오는 관광버스에 몸을 실었다.
 아쉬움과 또 약간의 실망을 남긴 94 장애인 캠프 "내일을 열자"는 이렇게 끝났다. 장애우들이나 자원봉사자들과는 많은 얘기를 나누었지만 기자의 게으름으로, 주최인 인성회 회장과, 김종대 의원, 지장협 경남 지부장의 인터뷰를 갖지 못해 여기에는 쓰지 못했다.

<덧붙이는 말>
 3박 4일, 우리 장애우들에게는 꽤 긴 시간의 나들이였다. 그 긴 시간 우리는 함께 웃고 울고 애쓰며 사람과 사람의 도타운 정을 나눈 참으로 귀한 시간이었다. 그러기에 귀한 시간을 마련해준 인성회와 인성회 후원회에 어찌 감사드리지 않으리.
 또 귀한 시간을 내어 우리를 도와준 대부분이 학생들이었던 도움패 여러분들, 4∼5천만 원은 소요된다는데 그 많은 경비는 어떻게 마련했는지? 부대시설과 그 많은 음식들(억을 거리는 공동으로 지급되었음) 총진행을 하신분의 쉬어버린 목. 아마도 행사가 끝나고는 모두 며칠씩 앓아 누웠으리라 짐작되는 모든 분들께 감사와 연대의 우정을 보낸다. 이제 다시 한번 그동안의 시간들을 회상하며 아쉬웠던 점 몇 가지를 보태고 이 글을 마친다.
 이번 제 4회 캠프의 주제는 "내일을 열자"였다. 그 뜻이 장애우들이 삶의 열악함을 딛고 내일의 보다 나은 삶을 준비하자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내일을 열기 위해 할 것인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우리 장애우들이 주체성을 갖는 일이 아닐까. 우리 스스로 비장애우들에게 시혜나 동정의 대상으로 비쳐지길 바라온 건 아닌지? 또한 정부에서 무언가를 해주기만 기대하고 있는 건 아닌지? 아마도 이 얘기가 그렇게 틀리진 않으리라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들은 자아의 정확한 인식과 주체성을 확립하여야 한다. 그렇기에 이번 캠프의 내용이 놀이에만 치중된 것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복지전문 교수님을 모셔놓고 현재의 장애복지 실태나 문제점 등 우리 장애우들이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나아가서는 주체성을 가지고 이 세상과 당당히 맞서 살아갈 수 있는 1∼2시간 세미나를 가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다음은 도우미들의 문제인데 식사준비와 설거지는 물론 화장실 출입 등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하며 참으로 고생이 많았다. 그러나 나는 바로 여기에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오히려 이 캠프를 통하여 도우미들은 장애우는 불쌍하고 도와주어야만 하는 사람들이란 인식만 깊게 해준 게 아닐까. 즉 육체적 고생은 했으되 마음고생은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함께 산다는 건 무엇인가. 휠체어를 밀어주며 같이 가는 것이 아니라 장애우가 제 스스로 휠체어를 밀며 같이 걸을 수 있는 길을 닦아주어야 하는 게 아닐까. 장애우들과 삶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면 이 땅의 4백만 장애우들이 얼마나 많은 차별 속에서 소외되어 살아왔는지를 느낄 수 있었으리라. 그리고 그들이 가진 왜곡된 장애관을 고칠 수 있었으리라.
 우리는 지금 장애발생 중 90%가 산재나 교통사고로 장애우가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따라서 엄밀히 말한다면 건강한 사람들을 예비장애인이라 불러야 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장애우 문제는 장애우만이 아닌 이 사회 전체가 풀어야 할 일이다.
 장애인고용촉진법이 있으나 벌금 몇 푼으로 외면하는 세상, 마산 시외주차장 1.5킬로미터 구간에 횡단보도가 하나도 없어 경사 60도의 계단을 건널 수 없는 휠체어를 탄 사람은 사회로 나가는 것이 원청봉쇄된 세상, 땅 값이 내려간다는 핑계로 특수학교의 설립을 막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한 사람이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이 한 걸음으로 나아가는 더불어 사는 살맛나는 세상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번 행사를 주관한 장애우 모임인 인성회가 일회적인 행사의 차원을 벗어나 겹겹이 둘러쳐진 왜곡된 장애우관과 사회의 벽을 깨는 문제에 대하여 더 깊은 고민을 해주기를 부탁하고 싶다.
 다시 한번 애쓰신 분들의 수고에 감사를 전한다. 멋진 제 5회 캠프를 기다리며…....

작성자한관호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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