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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2]자율과 평등으로 이루어내는 장애우복지

호주의 장애우복지 현장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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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과 평등으로 이루어내는 장애우복지
                            호주의 장애우복지 현장을 다녀와서
                                                      서현숙 (회사원·장애우대학 4기 수료생)

 재활재단에서 마련한 "준 재활지도자 양성과정" 강좌 중 하나로 호주의 장애우복지 현장을 둘러보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1994년 7월 30일 오후 1시. 열흘간의 일정으로 호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열흘간의 일정이라고 하지만 정작 연수 기간은 5일 뿐이었고, 그 짧은 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보고 올 수 있을지 의구심이 일었고 마음 속 가득 두려움을 안고 떠났다.
 꽉 짜여진 일정 속에서 바쁜 나날을 보내며 매 순간마다 느꼈던 것은 "다르다."는 것이었다. 우리와 다른 환경 속에서 어떤 인식을 갖고 어떻게 다르게 움직이고 있는지 유심히 살펴보았다. 연수 일정 중에 방문한 몇몇 기관을 통해서 그곳에서 실행하고 있는 장애우교육과 고용에 관한 내용들은 몹시 흥미로웠다.

 
<"에디스 코웬" 대학의 오픈 워크샾>
 "에디스 쿠웬"(Edith Cowan University) 대학에서 잡넽(Jobnet)이라는 프로그램을 들은 것은 둘쨋날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장애우 고용에 관한 매우 전문적인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5∼25살까지 이 대학이 있는 지역사회에 살고 있는 정신지체나 학습장애가 있는 장애우는 스스로 일을 선택할 수 있다.
 그 일은 "오픈 워크샵"(open workshop. 자립작업장과는 다른 개념)에서 일할 의사가 있는 장애우로 계속 지켜봐 줄 가족이나 친지가 있고 다른 서비스 기관에 등록되어 있지 않은 사람을 우선으로 면접을 통해 선발한다. 일을 원하는 장애우(편의상 "클라이언트"라 하자)는 직원과 함께 현장에 나가서 직접 일을 해보고 선택한다.
 클라이언트가 만족스러워하지 않으면 원하는 직업을 갖게 될 때까지 계속 지원하고, 원하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클라이언트와도 지속적인 면담을 통해 조정할 것이 있으면 조정해준다. 이들은 법정 임금을 받지만 생산성이 낮아 제 임금을 받을 수 없을 때도 있는데 그때는 국가가 보조를 한다.
 중요한 것은 기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일을 본인이 스스로 선택하도록 한다는데 있다. "잡넽"이라는 프로그램 속에서 클라이언트의 가족들을 자문위원으로 참여하도록 하여 예산이나 기타 다른 이유로 이 프로그램이 없어지더라도 계속적인 관심을 갖게 한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직업을 갖게 된 클라이언트의 부모가 나와서 자신 아들의 사례를 들려주었다. 무엇보다도 클라이언트 스스로가 내린 결정을 존중하고 개별화된 프로그램을 가진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16곳에서 시행 중인데 대학은 이곳뿐이며 전문대학(TAFF), 기업(이윤을 추구하는) 취업기관 등에서도 실시하고 있다.

<"인터워크"와 "워크파워">
 또 다른 고용서비스기관으로 "인터워크" (Interwork)와 "워크파워"(Workpower)를 3개조로 나누어 방문했다.
 "인터워크"에서는 우리의 방문을 대비해 한국에 관한 책자를 구해서봤는지 "화장실" "안녕하세요" 등의 한글을 찾아서 곳곳에 붙이고 다과도 준비하는 등의 성의를 보여주었고, 이 프로그램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을 베풀어주었다.
 인터워크에서 지원하고 있는 클라이언트는 오전에 방문했던 "엠테크"(Emthch. 이곳 역시 지원고용을 하고 있으며 고용주와 클라이언트 모두에게 동시에 현장적응훈련을 하는 곳이다.)에서 지원하는 클라이언트보다는 더 중증이며 장애종류도 정신지체 뿐 아니라 뇌성마비, 정신질환, 근이양증 등 다양했고, 직업의 종류도 음식점, 엔지니어, 식당에서 음식준비하는 주방 보조, 세차 등 다양했다.
 클라이언트 자신이나 그 가족, 고용주,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만족해하는 모습을 준비된 비디오를 통해 보았다. 능력과 상태에 따른 시간제 근무도 시행되고 있는 모습은 매우 좋게 여겨졌다.
 "워크파워"에서는 3명의 직원들이 우리를 안내했다. 이곳은 현재 지원 고용중인 "인더스트리얼 오토메이션"(Inderstrial Automation)이라는 신호등을 만드는 공장이었고 다른 한 곳은 자동차 판매영업소였다. 신호등 만드는 공장에서는 신호등을 열고 그 안에 스티커를 부착하는 일이었고 자동차 판매소에서는 전시된 차를 닦고 주변 청소도 하는 일이었는데 입사 8개월 후에 고용주가 다시 "워크파워"에 연락해 다른 장애인도 쓰겠다는 의사를 보여 현재는 3명의 장애인이 고용되어 있었다.
 두 곳에 있는 클라이언트 모두 현재 하는 일에 매우 만족해했다. 그들은 보호작업장(Shelted Workshop)에 돌아가고 싶냐는 질문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고용주들 역시 이들을 흡족해 했고 무엇보다도 지역사회 일에 무척 관심이 많았다. 각 기관에서 지속적인 지원을 해주고 있어서 전반적인 일에 지장이 없다며 무척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클라이언트가 적응하지 못할 경우 보호 작업장으로 돌아가고 싶다면 다시 돌려보내지만 돌아가고 싶어하는 클라이언트는 없다고 한다.
 우리를 안내했던 직원의 말에 의하면 지금은 오전에 1시간, 오후에 1시간 정도 이들을 살펴보면 되지만, 고용 초기에는 출근부터 퇴근에 이르기까지 작업 전반에 걸쳐 많은 일을 돌보아주었다고 한다.
 우리 일행 중 한 사람이 우리도 똑같이 하고 있는데 결과가 그렇게 좋지는 않다고 안타까워했다. 그곳을 출발해 워크파워 사무실로 돌아왔더니 우리를 위해 뜻밖에도 한글로 번역된 안내문을 주어 모두 무척 좋아했던 기억도 잊지 못할 것이다.

<열려있는 시설 "닐슨 해븐"
 내가 가장 흥미있게 본 것 중의 하나는 대규모 수용시설이었다. 우리가 들렀던 "닐슨 해븐"(Nulsen Haven)은 가장 바람직하고 모법적인 시설의 형태가 아닐까 싶다.
 1953년 정신병원으로 시작한 "닐슨 해븐"은 86년 41명의 중증 복합장애를 가진 장애우가 들어오면서 부모들에 의해 운영위원회가 조직되고 집단수용에서 "그룹 홈"(Group Home, 그들은 그룹 홈이라는 단어 쓰기를 몹시 싫어했다.) 형태로 바뀌었다. 이렇게 되기 전까지는 부모가 클라이언트를 년 1회 정도 만나는 것이 고작이었고 프로그램 역시 획일화, 단순화 된 생활훈련 정도가 고작이었다고 한다.
 현재는 3명의 클라이언트가 고정된 1명의 직원, 취미활동이나 외출을 도와줄 시간제 직원과 함께 산다. 이 모습은 일반 가정과 같은 수준이며 생활은 독립적이면서 개인이 원하는 대로 다양한 생활을 한다.
 이러한 형태가 최근에는 정부와의 마찰을 일으키고 있다. 지금의 3명에서 4∼5명으로 인원을 늘리고 시설을 개방하도록 요구받고 있으나 "닐슨 해븐"에서는 질적 서비스가 낮다는 이유로 대립 상태에 있다고 한다. "닐슨 해븐"에 사는 그들의 고집은 결코 만만치 않은 것이라는 것을 건물 곳곳의 파손흔적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처음엔 수용시설로 시작을 했기 때문에 언제 또 다시 정부에서 장애인을 수용하라고 요구할지 몰라 시설물의 일부를 고의로 손상시켜 놓았다는 것이다. 이들의 이러한 적극적인 대응이 정부의 어떤 요구에도 불문하고 클라이언트를 보호할 수 있는 힘이 아닌가 싶었다.
 이처럼 많은 "엔지오" (NGO. Non Government Organisation)들이 양질의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정부에서 이들 엔지오의 프로그램을 검토해 본 후에 적절하다는 판단이 서면 예산의 대부분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서비스 대상자에는 클라이언트뿐만 아니라 부모 등 가족까지도 포함되어 있다. 가족이 며칠간 여행을 다녀올 때는 그 기간 동안 클라이언트를 돌보아 주는 지원 프로그램도 실시하고 있다.
 앞에서 말한 것 외에도 "시민옹호"(Citizen Advocacy)라는 프로그램은 우리나라의 후원자 제도와 비슷하다고 느꼈고, 전문성과 책임감을 요하는 곳이라고 생각되었다. "포스트 스쿨 옵션 프로그램"(The Post School Options Program)은 학교를 졸업한 클라이언트들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프로그램이다. 이외에도 많은 기관들이 클라이언트들에게 지속적인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짧은 기간 동안 너무 많은 것을 보아서 다 머리에 담을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아무리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보고 들었다 해도 내 머리 속에 다 담을 수는 없었다. 중요한 것은 제도와 인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훌륭한 제도와 바람직한 인식을 소화해나가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느껴졌다.
 공식 일정 외에도 매일 저녁 식사 후 모여서 그날 방문했던 기관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그 시간들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 흡족하게 보냈던 시간은 호주의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아름다운 호수와 강 주변을 호젓하게 산책했던 시간이었다.
 역시 호주에도 태양은 어김없이 떠올랐고, 나는 매일 아침 그 태양을 보면서 내가 새로운 인식과 태도를 가지고 돌아갈 내 나라를 떠올리며 벅찬 아침을 맞았다.
 "지식을 통한 자유"(freedom through knowledge)
 연수 기념으로 받은 기념패에 쓰인 이 짧은 문장은 이번 호주 연수를 오래도록 기억하게 할 것이다.

작성자서현숙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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