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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사회 - 시소 말고 이인삼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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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자의 인권 보호’와 ‘정신질환자로부터 사회 보호’의 길항관계

관계부처 합동 정신건강종합대책 발표, 정신보건법 전면 개정, ‘묻지마 범죄’ 예방 대책으로 ‘정신건강 체크리스트’ 개발 계획 발표, 정신보건법 상의 강제입원규정 헌법불합치 판결,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의 시행을 반대하는 대한신경정신의학회의 성명서 발표와 정신보건법 대책 TFT 구성, 정신건강복지법 시행을 지지하는 당사자 단체의 기자회견, 경찰청에서 내놓은 ‘정신건강 체크리스트’ 관련 긴급 집담회 개최. 이 모든 것이 지난 2016년 2월부터 1년 남짓 하는 짧은 기간에 발생한 일이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정신장애에 대한 사회적 대응의 역사는 ‘정신질환자의 인권 보호’라는 관점과 ‘정신질환자로부터 사회 보호’, 즉 사회 방위적 관점이 충돌하면서 어느 쪽이 사회적, 정치적 지지를 더 많이 확보하느냐에 따라 기울기가 출렁이는 시소게임을 반복해 왔다.

우리나라에서도 정신장애인에 대한 비인간적인 처우가 언론에 실릴 때는 이들에 대한 인권 보호에 힘이 실리지만, 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 기사가 보도될 때는 강제입원을 통해 격리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정신질환자의 인권 보호’와 ‘정신질환자로부터 사회 보호’를 길항관계로 이해하는 인식이다. 정신질환자가 지역사회에서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면서도 시민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 세상, 우리에겐 미래지만 호주를 비롯한 다수의 정신건강 선진국에서는 현실이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엄격하게 강제입원을 통제하면서도 사회는 더 안전하고, 정신장애 당사자의 삶의 질도 보장되는 나라들이 허다하다. 우리와 그들의 차이는 무엇일까? 우리나라 정신질환자들이 월등하게 폭력적이고 증상이 유별나게 심해서? 아니면 우리나라 정신과 의사들의 전문성이 형편없기 때문에? 선진국에서 처방되는 약을 우리나라에서는 쓸 수 없어서? 모두 허튼 소리다. 단지 지역사회에 돈을 쓰느냐 안 쓰느냐의 차이다. 우리는 정신질환자를 사회에서 솎아내어 격리 관리하는 데 돈을 써 왔고, 그들은 진즉에 이런 방식에서 탈피해 정신질환자가 지역사회에서 이용할 수 있는 복지시설을 확충하고, 일을 통해 사회적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데 투자해왔다.

5월 시행을 앞둔 「정신건강복지법」은 우리나라도 이제는 당사자의 인권보호와 사회보호를 통합하는 방식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시도인 것이다.

이러한 방향 전환이 성공하려면 ‘정신질환자는 위험하다’는 인식을 불식시킬 수 있어야 한다. ‘정신질환 = 비이성적 존재 = 예측 불가 = 통제 불가 = 범죄 = 격리’로 이어지는 대중의 오해를 바로잡지 않으면 우리는 한 발자국도 쉽게 나아갈 수 없다. 신체장애인이나 발달장애인의 탈원화에 대해 온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정신장애인에 대해서는 다른 태도를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위험’에 대한 인식의 차이다. 사회 방위적 시각이라는 말 자체가 ‘위험’을 내포 하고있으며, 범죄 예방 차원에서 경찰청에서 제작한 「자・타해 위험 정신질환자 체크리스트」에서 방점은 ‘타해 위험’에 찍힌다.

 

‘정신질환자는 정말 위험한가?’

그러면 질문해야 한다. ‘정신질환자는 정말 위험한가?’ 위험의 현상화가 범죄라고 본다면 대검찰청이 2011년에 내놓은 범죄분석보고서에 해답이 들어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정신장애인의 범죄율은 비정신장애인의 10%에 불과하다. 박지선 전 경찰대교수는 2014년 발표한 ‘조현병 환자의 범죄에 대한 고찰’에서 ‘정신장애인들이 일반인보다 범죄의 위험성이 더 높다고 볼 수 없다’며 ‘단순히 정신장애 자체를 범죄의 원인으로 볼 것이 아니라 이와 동반해 나타나는 사회적 고립이나 약물남용 등이 범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통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정신장애인은 특별히 위험한 존재가 아니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정신건강복지법」 시행에 반대하면서 ‘법 시행으로 약 4만 명의 정신질환자가 퇴원하면 사회가 위험’ 운운하며, 마치 조직폭력배를 풀어 놓는 것 같이 불안을 조장하는 것은 공포마케팅이나 다름 없다. 그렇다면 정신장애인은 전혀 위험하지 않다는 말인가?

정신질환과 범죄를 연결할 때는 3가지 관점에서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사이코패스처럼 반사회성 성격(인격)장애 진단이 내려지는 경우인데, 흉악범이 체포됐을 때 범죄심리학자들에 의해 진단되고 대중에게 알려진다. 엄밀히 말하면 이건 정신질환이아니다. DSM(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의 약어)에 의해 정의돼진다고 해서 모두가 질환은 아니다. 쉽게 말하면 이건 병이 아니라 성격(인격)의 문제다. 둘째, 정신과 치료를 받은 이력이 있는 사람이 저지른 범죄라고 해서 그 원인이 모두 정신질환에 있다고 봐서는 안 된다. 가벼운 수면장애로 정신과에서 수면제를 처방받은 사람이 길에서 시비가 붙어서 타인을 다치게 했다면 이것도 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인가? 조현병을 앓는 사람이 가족과의 갈등이 심해서 다투다가 가족에게 상해를 입혔다면 무조건 정신질환으로 인한, 정신질환자이기 때문에 발생한 사건인가? 정신병이 없어도 가족과 다투는 과정에서 상해를 입히는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 즉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이 저지르는 범죄는 정신질환이 원인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신질환이 범죄의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 있다. ‘우주인이 길에서 만나는 첫 번째 사람을 죽여라고 매일 명령한다’는 망상으로 인해 범지를 저지른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위의 세 가지 경우 중 정신질환에 의한 범죄는 세 번째 상황뿐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정신건강 측면에서 사회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경찰청에서 어떤 체크리스트를 개발해도 불가능하다.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자동차를 모두 없앨 수 없듯이, 범죄 예방을 위해 모든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통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정신장애인의 강제입원은 엄격, 지역사회복지서비스는 확대

정신질환이 범죄의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 있는 세 번째 상황을 예방하고 위험을 줄여나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정신과 치료를 받아도 사회에서 배제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형성되면 된다. 배 아프면 병원 가듯이, 정신적으로 힘들면 병원 가서 상담도 하고 필요하면 약 먹으면 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정신질환자로 낙인찍히면 인생이 끝난다는 생각을 한다면, 누구라도 정신질환자로 노출될 수 있는 정신과 출입과 처방을 피하게 된다.

신체적으로 아무런 표시가 나지 않고, 생물학적 검사법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정신질환은 본인이나 가족에 의해 조기에 치료체계로 연계되는 것이 중요한데,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 ‘위험한 사람’, ‘이상한 사람’, ‘정신병원에 격리돼야 할 사람’으로 분류된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자신을 감추기에 급급해진다. 이런 면에서 경찰청이 ‘범죄-자타해위험- 정신질환자’라는 도식에 기반해 정신건강 체크리스트를 만드는 것은 범죄 예방이라는 목적과 정반대의 행동을 하는 것이다.

아울러, 주요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지역사회에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정신질환으로 인한 위험을 예방하고, 사회적 안전을 담보하는 지름길이다. 정신장애인을 위한 주거서비스가 확대돼 정신질환의 증상이 심해도 가족이 그 힘겨움을 오롯이 감당하지 않아도 되면, 주거지 가까운 곳에 사회복귀시설이 있어서 갈 곳이 있고 자신을 받아주는 곳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면, 정신질환이 있어도 직업을 가지고 일을 통해 자신의 평범한 꿈을 실현해갈 수 있다면, 무엇보다 그런 삶을 살아가는 당사자들의 삶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회복에 대한 희망을 키워갈 수 있다면 위험은 자연스럽게 통제되고, 정신장애인의 인권은 증진될 것이다. 「정신보건법」에서 「정신건강복지법」으로 발전해 나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은 정신장애인의 강제입원은 엄격히 하고, 지역사회 복지서비스는 확대하는 시대적 과제를 이행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정신장애인의 복지서비스 확대

정신장애인의 복지서비스 확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첫째, 국가정신건강서비스의 최우선 목표 중 하나로 ‘정신질환자의 삶의 질 개선’이 명시적으로 포함돼야 하며, 관련 지표가 제시돼야 한다. 최소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평균적 수준의 삶의 질을 달성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우선적인 목표가 돼야 하며, 정책 로드맵이 제시돼야 한다.

둘째, 장애인 복지 체계 내부에서의 차별부터 개선해 나가야 한다. 이미 2001년에 WHO에서 “정신보건서비스 만으로는 정신장애인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으며 교육, 건강, 직업, 주거, 법적 서비스와 복지서비스를 포함해야 한다”라고 천명했다. 정신질환자의 복지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많은 복지서비스가 시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질환자의 접근이 차단되고 있다. 복지서비스 전달체계의 통합이 장기과제로 다뤄질 수밖에 없다면, ① 정신장애인에 대한 복지차별 해소 ② 정신장애등록에서 경증 장애 등급 신설 ③ 장애 등록 요건의 확대 (현재, 4개 진단명만 장애 등록이 가능한 것을 확대하는 것)는 우선적으로 시행할 필요가 있다.

셋째, 지역사회에서 생활할 수 있는 주거와 고용의 기회 확대가 필요하다. 주거와 고용은 생존을 위한 필수 요건이다. 주거시설을 늘리는 차원이 아니라 ‘주거복지 체계’ 자체를 재구축하고, 보건과 복지서비스가 함께 제공될 수 있도록 협력하는 노력이 현장에서 이뤄져야 한다. 또한 정신질환자에게는 ‘취업’이 ‘약’이라는 전제하에 능력에 따라 일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절실하다. 취업은 빈곤을 예방하고, 사회적 역할을 부여하며, 정신질환자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허락한다. 장애등록을 하지 않으면 일자리를 얻기가 너무 어렵고, 근래에는 장애등록을 해도 취업의 기회가 쉽게 오지 않는다. 회복된 당사자가 다른 정신질환자를 지원하는 당사자 활동이 직업이 될 수 있도록 공적 자원을 제공하고, 장애등록을 하기 전이라도 정신과전문의의 진단과 소견으로 지원고용제도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회복경험이라는개인의 자산을 사회적으로 활용하고, 취업의 기회를 확대해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인디언 속담에 ‘사람의 마음속에는 양과 늑대가 있다. 누가 이길까는 당신이 누구에게 먹이를주느냐에 달려 있다’는 말이 있다. 정신질환으로 인한 위험은 커질 수도 있고, 미미해질 수도 있다. 사회가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솎아내는 방식으로 위험을 관리하려 든다면 늑대에게 먹이를 주는 꼴이 될 것이다. 이제 시소게임을 끝내고 다리를 묶고 함께 달리는 이인삼각으로 넘어가야 한다. 그게 모두가 안전해지는 길이다.

작성자글. 박재우/서초열린세상 소장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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