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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믿음이 어떻게 연결되기를 원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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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를 가질 뻔 했던 몇 번의 순간이 있다. 중학교 때 친구들과 함께 간 여름수련회에서 통성기도라는 묘한 체험이 나를 교회로 이끌 뻔했고, 고등학교 때 착하게 살고픈 결심이 천주교 신자로 만들 뻔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교회의 종교 체험은 신앙심으로 연결되지 못했고, 성당은 사회비판적 의식만을 키워 주었다. 한마디로 신에 대한 믿음이 생기지 않았다.

신앙심과 종교인에 대한 의문은 여전하다. 어머니를 보면서 그런 생각은 더 커갔다. 중학교 무렵부터 어머니는 종교를 개신교로 바꾸었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교회는 어머니의 좋은 위로가 돼주었다. 교회 신도들이 홀로 된 어머니를 친절하게 대하는 모습은 어머니의 적적함과 막막함을 조금은 메워주는 듯했다. 그러다가도 교회에 가면 듣는 설교는 내 생각과 많이 달랐다. “인본주의는 잘못됐다. 신 중심으로 가야 된다”거나 “정치가 제대로 되려면 신앙심이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내용은 특히 거리감을 주었다. 어머니가 다닌 대형교회는 1992년 대선 당시 김영삼 후보를 은근히 지지하고 있었다. 아무튼 내 경험은 종교적 위안이 가지는 힘은 사실은 사람(신도)이 하는 위안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연결됐다. 종교의 사회활동은 소외된 사람들에게 의미가 있구나 싶었다. 종교의 정치적 힘도 새삼 크게 느꼈다.

 

장애인들이 여의도순복음교회로 간 까닭

지난 5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활동가들이 여의도순복음교회에 갔다. 그들은 “목사님, 장애인과 함께 세금 냅시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목사도 장애인도 세금은 내지 않으니(장애인은 내지 못하니) 함께 평등하게 세금을 내자고 목소리를 낸 거다. 전장연은 모든 사회구성원은 평등하게 납세의 의무가 있다고 헌법에 명시됐지만 “납세의 영역에서 종교인은 자신의 의무가 면제되는 ‘특권’을 가지고 있고 장애인은 내고 싶어도 납세할 수 없는 ‘차별’을 받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장애인권활동가들 말대로 특권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행 세법이 개정돼야하고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는 장애인고용이 보장돼야 한다. 종교과세가 장애인고용이나 장애인복지와 연결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유예된 종교 과세를 새 정부가 과연 예정대로 내년에 집행할지에 대해 관심이 크다. 일부 종교인들은 종교활동은 영리활동이 아니므로 세금을 내기 어렵다고 난색을 표하고 있지만 사실 개신교를 제외한 대부분의 종교인들은 이미 세금을 내고 있다. 1994년부터 천주교는 세금을 내고 있고, 불교는 납세 찬성 입장을 이미 밝혔다. 심지어 개신교에 속하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등 개혁성향 개신교 단체는 찬성 입장이었고 대한성공회는 2012년에, 한국기독교장로회는 2015년에 성직자들도 세금을 내겠다고 결의했다. 하지만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한기총)은 2015년 소득세법 개정에 반대했고, 작년 말에는 종교인 과세 입법 폐지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기도 했다. 그러니 지금의 종교인과세 논란은 사실 보수개신교가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개신교는 십일조를 비롯한 각종 헌금을 모으는 까닭에 그들의 자산규모는 다른 종교에 비해 크다. 대형 교회들은 대부분 화려하고 큰 건물을 사거나 증축하기에 바쁘다. 노무현 정부 당시 문화체육관광부가 낸 ‘2006년 종교단체 운영자금’에 따르면, 개신교·불교·천주교의 2006년 운영자금은 3조1,760억 원(개신교), 4,610억 원(불교), 3,390억 원(천주교)이다. 큰 만큼 세금이 많을까 우려하는 거다. 하지만 대형 교회를 빼고 나면 대부분의 종교인들의 수입은 많지 않아 영향을 많이 받지 않는다. 2013년 기획재정부가 예상한 종교인 과세로 인한 세수효과는 100억 원 수준이며 문화부에 등록된 종교인 중 과세대상은 4만6,000명에 불과할 것이라는 추정에서도 이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개신교는 종교의 자유 침해라며 반대하고 있다. 정치권은 이러한 개신교의 눈치를 보며 법집행시기를 유예하니 마니 하고 있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종교인에게 세금을 받지 않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한국에서 세금을 걷는 국세청이 발족한 것은 1966년이었고, 이낙선 초대 국세청장은 1968년 성직자들에게도 근로소득세를 걷으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2006년과 2012년에도 시도했지만 역시 실패했고 겨우 2015년 12월에 종교인 과세의 기준을 잡은 세법 개정안이 만들어졌다.

 

종교 강요하는 자선활동

어떤 사람들은 종교시설, 즉 교회나 절, 성당이 영리목적으로 만든 단체도 아니므로 종교 과세에 대해 관대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내 경험처럼 교회가 운영하는 단체나 자선활동을 보며, 교회가 그 돈으로 봉사활동을 하면 되지 굳이 세금을 내야 하느냐고 반박할 수도 있겠다. 실제 교회가 공익활동으로 내거는 건 자선활동이다. 그러나 앞서도 말했지만 한국 개신교는 헌금을 막대하게 모으지만 그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신도들조차 잘 모른다.

게다가 빈곤층과 장애인들이 경험하는 종교시설의 자선활동은 그들 말마따나 ‘순수’하지 않다. 빈곤층이나 장애인들을 신도로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자선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종교인들이 제공하는 물품을 받으려면 예배에 참가해야 하고, 종교가 운영하는 복지시설에서 종교의 자유는 사실상 없다. 돈을 미끼로 활동을 하고 그게 복음인양 왜곡하는 것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신앙심과 무관하게 예배를 드려야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은 얼마나 굴욕적이겠는가.

더구나 종교단체가 주체가 돼 운영하는 대형복지시설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는 ‘종교’라는 이름으로, 종교 지도자에 대한 목적 지지로 가려지기 쉽다. 얼마 전 교회가 운영하는 장애인직업재활시설에서 벌어진 장애인 폭력 사건에 대해서도 “같은 신자끼리 문제를 확대하지 말자”는 회유가 있었다. 또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장애인시설인 대구 희망원에서는 인권침해는 심각하지만 천주교의 문제의식은 찾아보기 힘들다. 김포의 종교재단이 운영하는 장애인시설에서 종사자들이 장애인을 폭행했지만 내부 제보자 징계에만 골몰하고 있다.

‘종교는 선하다’라는 종교에 대한 환상이나 착각이 이러한 인권침해에 대해 관대하게 만든다. 그러나 신앙심이 인권을 대체할 수는 없다. 오히려 장애인권감수성은 없이 신앙심만으로 만들어진 복지시설이나 그러한 시설에 고용된 사람들로 인해 인권침해나 차별이 무감각을 키우고 면죄부를 주곤 한다. 동정과 배려는 인권이 아니다. 장애인이나 가난한 사람들을 인권의 주체로 여기지 않고 종교적 자비심으로, 그들에게 베푼다는 생각으로 만들어진 사회복지활동은 장애인을 비롯한 가난한 사람들을 그저 복지의 대상, 자선활동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만든다. 자선활동은 그 이름부터가 ‘불쌍하게 여겨 도와준다’는 사전적 의미에서 알 수 있듯이 자선활동은 평등감각이 삭제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현실을 볼 때, 사회복지시설이나 프로그램 운영을 교회나 성당이 아닌 지방정부가 책임질 때 상대적으로 투명하고 민주적 통제가 가능할 것이다.

종교과세는 사회복지에 대한 다른 상상을 가능하게 하리라 본다. 교회나 목사가 세금을 낸다면 달라질 여지가 많다. 100억 원이 많은 돈은 아니지만 지방정부든 중앙정부든 국가는 그 돈으로 사회복지를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세금을 낸다고 교회의 자선활동이 줄어들지는 않겠지만 시민들 입장에서, 빈곤층과 장애인의 입장에서는 선택지가 늘어나는 것이니 마음이 더 편할 것이다. 게다가 세금을 내게 되면 교회 재정은 투명해질 수밖에 없다. 담임목사를 중심으로 한 몇 명이 교회 재정을 사적으로 사용하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믿음은 어떤 사회적 연결을 원하나

세계 대형 교회 중 절반인 23개가 한국에 있다고 한다. 대형 교회란 신도나 재정규모를 다 포함하는 것인데,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신도만 480만 명이라고 한다. 돈과 사람을 쥐고 있는 대형 교회의 영향은 상당하다. 유권자 수와 정치자금에 신경 쓰는 정치인들은 그들의 무리한 요구를 외면하지 못한다. 종교인도 납세의무를 져야한다는 정당한 요구가 현실화되려면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중요하다. 정치인들에게 맡겨선 불가능하다. 이른바 신도들, 시민들의 요구가 더해져야 한다.

신앙심이 종교지도자에 대한 맹목적 믿음이 되거나 자기 종교단체에서 벌어진 비리를 은폐하는 것으로 귀결될 때, 그 믿음은 사회적 연결을 포기한 것이 아닐까. 종교 안으로 도피가능한 불법과 비리와 인권침해는 종교 자체를 썩게 만들 것이다. 그런 점에서 종교인 과세는 종교의 사회적 역할을 새롭게 정립하고 사회 속의 종교로 거듭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다른 사회구성원들처럼 납세를 공평하게 할 때, 그 납세가 사회복지 기금이 되는 일이야 말로 공공성의 실현이고 믿음의 사회적 연결이 아닐까? 여전히 종교 과세를 종교의 자유 탄압이라고 하는 사람이야말로 불법과 비리를 종교 안에 키우겠다는 주장이다. 신도들은 투명하고 민주적인 재정운영을 원하지, 목사나 신부 또는 승려가 신도들이 낸 헌금을 개인적으로 쓰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얼마 전 있었던 퀴어페스티벌 장소 맞은편인 서울 대한문 앞에서 보수개신교는 성소수자혐오집회를 열었다. 보수개신교의 중추라 할 수 있는 대형 교회는 어마어마한 헌금과 신도수를 바탕으로 정의와 인권을 기반으로 한 활동보다 혐오를 기반으로 한 정치를 주문하는 경우가 많다. 혐오가 종교적 단결을 불러오리라는 계산도 깔려 있다. 대형 교회가 주도하는 성소수자 혐오도 종교단체의 투명성과 민주성이 높아질 때 사그라질 가능성이 높다. 종교라는 공적 조직으로서의 투명성을 높이고 사회구성원으로서 납세 의무 등을 공평하게 질 것을 주문해야 한다. 사실 그들이 종교 과세에 반대하는 이유는 세금 뿐 아니라 세금 추징과정에서 비리와 부정축재가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종교 과세는 대형 교회 지도자들이 부정하고 모은 돈과 권력을 바탕으로 사회적 소수자를 혐오하는데 동원하는 것을 막는 힘이 될 수 있다.

그러니 지금은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한번 쯤 당신의 믿음이 어디로 어떻게 연결되기를 원하는지 생각해봐야 할 때인지 모른다. 당신의 믿음이 일부 종교지도자의 부정축재와 혐오로 연결되기를 바라는지, 공공성을 높이는 사회복지로 연결되기를 바라는지 말이다.

작성자글. 명숙/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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