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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과 박경석, 공평한 재판을 받을 권리는 어디에

인권이 던진 질문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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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피고인에게 빚이 있습니다. 제가 변호사가 될 수 있었던 것에는 많은 이들의 지원이 있었습니다. 그중 중요한 것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지원입니다. 제가 공부했던 순간에 피고인은 거리에서 싸웠던 자입니다. 피고인 덕분에 저는 사회참여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2018년 1월 초 최후변론 때 김재왕 변호사가 한 말이다. 변호인은 시력을 점점 잃어 공부하던 중인 2009년 시력을 모두 상실했다. 그의 말대로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없었다면 공부나 활동에 필요한 지원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빈말이 아니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이후 편의제공이 조금 늘어났다. 시각장애인이 공부나 업무에 필요한 여러 장비를 사용할 수 있었다. 전국의 장애인활동가들이 오랜 동안 전국을 누비며 싸운 덕에 2007년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되고 2008년 시행됐다.

김재왕 변호사가 변론을 맡은 피고인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 박경석이다. 중도장애인인 그는 휠체어를 타고 있다. 그가 참여한 수많은 집회시위 과정에서 발생한 6개의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장애인을 차별하지 말라는 집회를 하느라 도로에 있거나 행진을 막는 경찰과 부딪쳤다. 장애인도 차별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게 고속버스를 탈 수 있는 세상이 차별 없는 세상이다. 그래서 그는 명절 때마다 그는 동료들과 고속버스터미널에 갔다. 장애인을 시설에 가둘 수 있는 세상이 잘못됐다고, 대표적인 장애인 수용시설인 꽃동네를 찾아가지 말아달라고 교황에게 서한을 전달하려고 명동성당에 갔다. 막아서는 경찰과 부딪쳤다. 그는 법에 명시된 최소한의 권리를 누리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헌법에 보장된 존엄과 평등권을 요구하는 일은 처벌받을 짓이 된다. 검찰은 그에게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2년 6개월을 구형했다.

 

이재용과 박경석

2월 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2심 재판에서 재판부(판사 정형식)는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에게 수백억 원의 뇌물을 준 혐의다. 그 외에도 횡령죄, 범죄수익은닉죄, 재산국외도피죄, 은닉죄 혐의도 있다. 검사는 그에게 징역 12년을 구형했고 1심 재판부는 5년만 선고했다. 그런데 2심 재판부는 한술 더 떠 ‘겁박에 의한 수동적 뇌물 제공’으로 보았다. 최순실의 딸에게 제공한 승마용 말과 차량도 소유권을 넘긴 게 아니라 사용수익권만 넘긴 거라고 판단해 횡령액을 36억 원으로 낮췄다. 형량을 줄이기 위해서다. 재벌에게 너그러운 판결 덕에 그는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서울구치소를 나왔다.

재벌이 처벌받지 않고 감옥 문을 넘는 일은 쉽다. 반면 장애인들은 처벌받는 일이 쉽다. 벌금은 일상이 됐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감옥에 장애인편의시설이 없어 징역보다는 벌금형이 더 많다. 재벌의 범죄는 보호대상이 되지만, 장애인의 권리는 보호대상이 되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일상이 그렇다. 이재용은 매끈한 고급승용차로 이동하고 비서가 문을 열어주는 덕에 직접 손을 쓰지 않아도 차에서 내릴 수 있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은 2cm의 작은 턱을 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한다. 모처럼 맛있는 외식을 하려면 턱없는 식당을 찾아 헤매야 한다. 장애인들은 하나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몇날 며칠을 도로 위를 기어가거나 농성을 해야 하지만, 재벌은 돈을 보여주기만 하면 정치인들이 알아서 세금도 낮춰주고 경영승계권도 쉽게 만들어줬다. 법의 불평등은 일상의 불평등의 반영일 뿐이다.

 

그들이 추구한 것은 달랐다

그러니 이번 판결에 대해 어쩌면 호들갑을 떨 필요가 없는지 모른다. 어디 한두 해 일인가. 그럼에도 사람들이 분노하는 것은 그가 불법으로 부를 축적하는 동안 쓰러져 간 노동자들이 있어서다. 재벌은 부를 챙기기 위해 노동자의 권리를 빼앗았다. 노조를 만들지 못하게 하려고 불법과 폭력을 행사했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화학약품이 무엇이고 어떻게 유해한지 노동자들에게 알려주지도 않고 피할 수 있는 조치도 취하지 않아 산업재해로 사람들이 병들고 죽었다. 반올림에 제보된 삼성 피해자만 320명이다. 산재 인정도 가로막았다. 삼성이 조사에 협조하지 않은 탓에, 노동자들은 대부분 산재 인정을 받지 못했다. 삼성이 범죄에 이용한 돈은 이렇게 노동자들의 인권을 밟고 밟아 쌓인 것이다. 때로는 불법으로, 때로는 불법인지조차 애매한 경영으로 말이다.

반면 박경석을 비롯한 장애인활동가들의 위법행위라고 보기도 애매한 집회시위로 많은 장애인들이 최소한의 권리를 누릴 수 있게 됐다. 장애인이동권 투쟁으로 2005년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이 만들어졌다. 장애인만이 아니라 몸이 불편한 노인, 아동,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부모들까지 엘리베이터나 저상버스를 타고 이동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여전히 저상버스는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 주로 있으며, 멀리 이동할 수 있는 고속버스는 언감생심이다.

2007년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됐다.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위원회 일반논평5’에서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의 인정, 향유, 행사를 무효화하거나 훼손하는 결과를 낳는, 장애를 이유로 한 모든 구별, 배제, 제한이나 선호, 또는 합리적 편의제공의 거부”로 정의했다. 합리적 편의제공의 거부는 국내 입법에서 장애 차별의 한 형태로 금지돼야 한다. 장애인이동권을 보장하지 않는 것은 다른 권리, 교육이나 노동, 문화적 권리를 누리기 어렵게 만든다. 그것이 유엔인권기구가 말하는 인권기준이다. 하지만 정부는 몇 해째 장애인활동가들이 장애인도 고속버스에 탈 수 있게 하라는 요구에 묵묵부답이다. 아니, 경찰력으로만 답하고 있다.

 

실질적 차별과 특수계급의 존재

이재용의 집행유예 선고와 그에 따른 석방조치는 실질적 차별을 선언한 것이나 다름 없다. 헌법 11조는 1항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돼 있으나 현실은 차별이다. 법원이 횡령액을 깎고, 깎아 36억 원으로 낮춰 집행유예를 받았다. 반면 2017년에 배고파서 라면 24개(1만6천 원 상당액)를 훔친 청년은 실형 10월을 선고받았다. 양형기준에 전과가 있고 상습일 경우 실형을 주도록 형량이 돼 있어 생계형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실형 확률이 높다. 그러나 뇌물죄와 뇌물공여죄는 관대할 뿐 아니라 그러한 기준이 없고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공무원이 아니면 형량도 낮출 수 있다. 뇌물공여 관련 양형기준에서 뇌물을 준 금액이 1억 원 이상이면 징역 2년 6월에서 3년 6월까지가 기본형이다. 안종범 전 수석에게 5,900만 원 뇌물을 준 박채윤 씨는 실형 1년, 회사 자금 10억 원을 횡령한 직원에게는 실형 징역 4년을 선고한 것과 비교해도 형평성이 없다. 이 정도면 법관 마음대로 판결이거나 재벌이 치외법권지대에 있다고 할만하다.

헌법 11조 2항은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하지만 재벌이야말로 법의 심판을 면하는 특수계급이 아닌가 싶다. 특혜는 특혜를 받지 못하는 자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준다. 뿐만 아니라 특혜를 주기 위해 다른 기준점을 옮기거나 타인의 권리를 빼앗는 일을 방조한다. 사실상의 차별인 판결을 존속시키는 원인과 조건에 대해 면밀히 분석하고 이제야말로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언제까지 법관의 독립성이라는 명분으로 평등이라는 헌법적 가치와 무관한 판결을 내리도록 방치할 것인가.

얼마 있으면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에 대한 선고재판이 열릴 것이다. 법관이 평등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수호할지 두고 볼 일이다. 법관의 독립성이라는 명분으로 평등이라는 민주적 가치를 훼손한 판결에 분노한 시민들이 나섰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정형식 서울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특별감사 청원이다. 청원 수가 20만 명이 넘자 청와대는 헌법 103조를 언급하며 “법관이 재판 내용으로 인사 상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있다면 외부 압력에 취약해지고 사법부 독립이 흔들릴 우려가 있다”면서 청와대에 재판 관여하거나 판사를 징계할 권한은 없다고 밝혔다. 청와대의 논거가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정치권력의 하나인 행정부가 판결을 좌우하면 안 되니까.

그렇다면 사법부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불가능한 것인가. 법관이 정말 정의롭게 판단하리라고 믿고 맡기는 수밖에 없는가. 이렇게 고무줄처럼 제 맘대로 권력자에게 아량을 베푸는 판결이 지속되고 있어도 손을 쓸 수 없는 것인가. 무조건적인 사법부 독립성 강조로 폐쇄성으로 이어져 그들에게 결여된 인권의 가치는 법에 투영될 가능성이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고학력, 비장애인, 남성이 대부분인 판사들에게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과 평등의 가치가 들어설 여지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작성자글. 명숙/인권활동가◉ 사진. 채지민 객원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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