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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여성, 이중 그늘 안 성폭력

지금, 장애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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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미국에서 시작된 미투(ME TOO)운동이 2018년 현직 검사의 검찰 내 성폭력 폭로를 기점으로 한국의 주요 이슈로 자리 잡았다. 이후 다양한 분야에서의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신의 피해 사실과 가해자를 밝히면서 각 분야의 이면이 속속 드러났다. 약자의 목소리가 힘을 얻기 시작하는 지금, 성폭력은 장애여성의 삶 속에도 들어와 있다.

 

# 한 비장애인 남성이 지하철을 타기 위해 이동하던 시각장애인 A씨에게 말을 걸었다. 지하철 타는 곳까지 안내하겠다며 다가선 남성은 A씨의 겨드랑이 안쪽으로 불쑥 손을 넣어 A씨의 팔 윗부분을 잡았다. 그 과정에서 남성의 손이 A씨의 옆 가슴을 쓰다듬으며 지나갔다. A씨는 도움을 거절하고 지하철을 타기 위해 혼자 이동하면서 남성의 손이 가슴에 닿은 것이 의도적이었는지 아닌지 계속해서 반문했다.

# 지방의 한적한 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청각장애인 B씨. 버스 탑승을 앞두고 터미널 화장실을 이용했다. B씨가 손을 씻는 중, 한 남성이 화장실로 들어왔다. B씨는 그곳이 여자화장실이라는 사실을 수화 등으로 알렸지만 남성은 곧장 B씨에게로 향해 B씨에게 성폭력을 가했다. 남성은 B씨가 소리쳐 바깥에 도움을 요청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B씨는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 거주 지역의 농사회에서 자라온 농인 C씨는 퇴근길, 지역 농인들과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온 남성으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 남성은 농인 사회 안에서 발언권이 강한 위치에 있었다. C씨는 피해 사실을 밝히면 좁은 지역 농인 사회에서 또 다른 피해를 입을 것을 우려해 성폭력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러자 남성은 이후 반복적으로 성폭력을 가했고, C씨는 그것을 견디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 대학 선후배들과 함께 회식 자리에 참석한 지체장애인 D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남성 선배 옆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한창 회식이 이뤄지던 중, 옆으로 바짝 붙은 선배가 D씨의 몸을 만졌다. D씨는 항의하며 몸을 멀리하려 했지만 좁은 공간에서 휠체어가 빠르게 움직이기란 무리였다. 선배는 친해지자는 의미라고 말하며 가해를 멈추지 않았고, D씨가 물리적으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은 말로 항의하는 것뿐이었다.

 

성폭력에 노출되는 장애여성들

언론을 통해 자주 드러나는 장애인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는 대부분 지적장애인이다. 실제로 장애인 성폭력 사건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입는 장애유형도 지적장애다. 하지만 그 외 장애유형에서도 성폭력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특히 청각장애를 가진 피해자가 두드러진다. 장애여성공감의 장애여성성폭력상담소(이하 공감상담소) 민들레 활동가는 자신들만의 문화가 형성되는 농인 사회에서의 성폭력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장애인은 아무래도 비장애인에 비해 활동 범위가 좁은 편인데, 특히 지역 농문화 안에서 활동하는 농인들은 딱 거기서만 생활하면서 항상 같은 사람들과 지내다보니 권력 관계가 형성되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게다가 피해를 입어도 가해자가 농인 사회 내에서 권력자인 경우, 피해 사실을 밝히면 보호 받지 못 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커진다. 만약 피해자가 공식 수화를 모르고 지역 농수화만 사용한다면 타 지역 이주에 대한 두려움도 동반된다. 이 때문에 피해는 축적되기만 하고 외부로 드러나는 것은 일부에 불과하다.”

장애여성이 성폭력에 노출될 상황과 가능성은 비장애여성과 마찬가지로 다양하다. 특히, 장애 특성을 악용할 경우 가해자에게는 더 쉬운 대상일 수 있다. 공감상담소 민들레 활동가는 장애인이면서 여성으로, 복합 차별을 겪는 장애여성들이 사회적으로 취약한 지점에 서있다고 설명했다.

“비장애인에 비해 장애인이 사회적 약자인 부분과 남성에 비해 여성이 사회적 약자인 부분을 모두 가지는 것이 장애여성이다. 양쪽의 취약점들이 한 장애여성의 삶에 교차적으로 작동했을 때, 장애여성은 피해에 노출될 확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비장애여성을 가해하기 위해서 가해자들은 흔히 피해자에게 술을 먹이는 등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지만, 장애여성의 경우 그러한 과정 없이도 가해를 한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가해가 가능하다고 판단하면서 동시에 가해 이후 처벌 받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한국여성장애인연합부설 서울여성장애인 성폭력상담소(이하 여장연상담소) 이희정 소장은 장애여성 문제가 여성계와 장애계 내부에서도 비주류로 다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애인 이슈 안에서도, 여성 이슈 안에서도 장애여성은 비주류다. 예를 들어, 여성운동과 여성장애인운동을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느낀 운동의 진행 속도 차이는 명백했다. 거의 10년 정도 여성장애인운동이 늦다. 가정폭력법이 제정되고 여성운동이 단체 단위로 변화하는 시기가 90년대였는데 그 때 후속적으로 장애여성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실제로 국내 최초 장애인성폭력상담소가 2001년에 개소한 것을 보면 얼마나 늦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비주류로 인식되는 장애여성 문제는 비주류라는 인식 자체로 힘을 잃는다.”

 

피해 이후의 문제들

장애여성이 성폭력 피해를 입은 이후의 상황도 어렵게 흘러간다. 피해자 진술 과정부터가 쉽지 않은 탓이다. 특히 청각장애인의 경우, 통역을 거치기 때문에 생생한 피해 사실 진술이 어렵다. 장애여성공감 민들레 활동가는 자연 진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통역을 거치는 청각장애인 피해자의 진술 과정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성폭력 사건은 피해자의 자연 진술이 중요하다. 피해자가 피해 상황에서 느꼈던 감정, 본 것에 대한 피해자만의 묘사 등이 명확하게 드러나야 하는데 통역을 거치다보니 그런 표현이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조사관이 ‘가해자가 사정을 했냐’는 질문을 했을 때, 발달장애인 피해는 ‘사정을 한다’는 뜻을 몰라도 자신이 보고 느낀 그대로 말할 수 있다. 가령 발달장애인 피해자가 ‘아기 토 같은 게 나왔다’고 진술했다고 하면, 그게 정액이라고 수정할 필요도 없이 그대로 와 닿는 것이다. 하지만 청각장애인 피해자가 수화통역사에게 그렇게 진술하면 수화통역사는 그것을 ‘사정 했다네요’정도로 표현하게 된다. 피해자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이나 표현하고 싶은 느낌이 걸러진다는 게 안타깝다.”

여장연상담소 이희정 소장 또한 청각장애인 피해자가 언어적인 면에서 매우 불리하다고 말했다.

“성폭력 사건에서 진술이라는 건, 가해자 처벌 여부를 움직일 정도로 중요한 증거가 된다. 그런데 청각장애인 피해자는 수화통역사를 거쳐서 모든 진술을 해야 한다. 비장애언어와 수화언어는 화자가 청자에게 전달하는 구조에서 차이점이 발생한다. 비장애언어는 접속사를 통해 문장이 길어지고, 조사에 따라 의미가 다르기 때문에 중간에서 수화통역사가 단어나 문장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에 어려움이 따른다. 수화통역사가 이야기를 듣고 본인이 이해를 한 뒤에 그 이해한 내용을 전달한다. 때문에 수화통역사가 피해자의 의도와 다르게 이해하고 전달하면 진술 방향이 달라질 수 있는데, 피해자도 조사관도 수화통역사의 통역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아닌지 알 방법이 없다. 게다가 가해자는 수사사법기관에서 익숙한 비장애언어를 구사해 훨씬 쉽고 설득력 있게 자기표현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청각장애인 피해자는 불리한 위치에 놓이는 셈이다.”

피해 사실 진술에 대한 신빙성 문제도 일어난다. 비장애인들은 시각적 정보에 대한 신뢰가 높은데, 시각장애인 피해자 진술에서는 시각 정보가 없다. 때문에 폐쇄적인 공간에서 주로 이뤄지는 성폭력 사건의 특성상 목격자 없이 시각장애인 피해자의 진술은 신빙성이 떨어지는 진술로 취급 받는다. 시각장애인 피해자 본인도 시각을 제외한 정보에 대한 혼란을 겪는데, 이 때문에 진술이 흔들리는 경우 모든 진술이 전면 부정당하게 된다. 정신장애인 피해자의 경우에도 피해망상, 환청 등을 겪는다는 인식 때문에 피해 사실에 대한 신빙성을 부정당할 가능성이 높다.

이희정 소장은 고발율과 기소율은 발달장애인 피해자가 타 장애유형보다 높다고 설명했다. “발달장애인 피해자의 피해 고발이 많은 이유는, 당사자가 아닌 주변인의 고발이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발달장애인 피해자를 지켜보다가 도와주고자 신고하는 것이다. 당사자에게 물어봐도 폭력인지 아닌지 잘 판단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생각하기 때문에 당사자 의견 청취 과정이 없다. 또한 발달장애인 피해자들은 피해를 밝혔을 때 돌아올 2차 가해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언론을 통한 케이스 오픈이 많은 것도 마찬가지의 이유다. 하지만 타 장애유형의 경우 2차 가해에 대한 두려움이 우선되고, 특히 좁고 폐쇄적인 시청각사회를 전제하면 피해를 밝히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꾸준히 드러나 온 발달장애인 성폭력 사건은 비장애인 사회에 케이스를 쌓아왔다. 발달장애인 기소율이 결코 높은 편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발달장애인 성폭력 사건의 패턴이 어느 정도 축적되면서 발달장애인 성폭력 사건에 대한 정보가 많아졌고 동시에 기소율이 타 장애 유형보다 높아졌다. 반면에 시청각장애인 성폭력 사건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장애여성의 목소리 들을 준비해야

미투 운동이 이슈의 중심에 서있지만, 이희정 소장과 민들레 활동가는 입을 모아 장애여성의 미투 운동을 요구하기 이전에 장애여성의 말을 사회가 어떻게 들을 것인지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들레 활동가는 한국 사회가 장애여성의 피해 사실을 성폭력 그 자체로 듣고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미투 운동은 말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가해자가 가해를 할 수 있게 한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게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비장애인 여성, 나아가 여성 안에서도 사회적 위치가 높은 검사가 미투를 해도 꽃뱀 운운하는 상황에서 장애여성이 피해 사실을 말했을 때 과연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까 의문이 든다. 장애여성을 무력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존재로 몰아가고, 최대한 많은 상시적 보호와 철저한 통제 논리를 펼치지 않을까. 장애여성의 미투 앞에서 우리 사회가 여성의 권리를 이야기 할 수 있을 만큼 장애에 대한 인식이 높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장애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이 높아지지 않는 이상 장애여성 성폭력 사건은 끊이지 않을 것이라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이희정 소장은 장애인을 비장애인과 동등한 존재로 인식하지 않는 이상 장애여성의 성폭력 노출율은 낮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나와는 다른, 각각의 특성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어릴 때부터 인식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교육이 학교나 가정에서 전혀 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언어적으로, 비언어적으로 장애인을 부정적으로 대하는 것을 학습한다. 이동권이 보장되지 않으니 우선 만날 기회가 적다. 통합교육이 잘 되지 않으니 함께 같은 공간에서 공부할 수도 없다. 취업율이 낮으니 성인이 된 이후에도 장애인에 대해 몸으로 느끼고 편견을 깰 수 있는 기회가 없다.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동등한 사람이 아니라 무능하고 약한 존재, 귀하지 않은 존재로 인식된다. 가해자는 피해자를 고를 때, 더 안전한 대상을 찾는다. 자신을 이길 수 없는, 주변에 도와줄 사람이 없을 것 같은, 그래서 가해가 쉽고 처벌 받을 일이 없을 것 같은 피해자를 찾는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장애여성의 장애특성에 따른 취약점이 겹치면 바로 그 대상이 되는 셈이다.”

중립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 할 때 인터뷰 내내 이희정 소장과 민들레 활동가는 성폭력이 권력의 범죄라고 강조했다. 장애 여부를 떠나 권력관계가 있는 모든 공간에서 여성은 성폭력 피해에 노출돼 있다는 것이다. 성폭력 사건 진술 과정, 사건 판결 등 피해 이후의 모든 상황에서도 장애 여부를 떠나 모든 여성은 남성 위주의 환경으로 인해 불리함을 가진다. 이희정 소장은 “엘리트 과정을 밟은 중년의 남성들이 대부분인 판사들이 성폭력 사건에서 얼마나 중립성을 지킬 수 있겠냐”며 “양쪽 모두의 입장을 알아야 공정하고 중립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는데 과연 여성, 장애인의 입장을 남성의 입장만큼 잘 알고 있는지, 아니라면 그것을 중립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물음을 던져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작성자조은지 기자  simhye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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