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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인의 자기결정권 보장 방향은?

‘정신장애인의 인권’ 간담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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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0일 정신장애인의 인권 이슈를 논의하는 간담회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회의실에서 열렸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정책위원회(이하 정책위원회)는 2018년 장기 논의주제를 ‘정신장애인의 인권’으로 정하고, 매월 정례회의를 진행해 국내외 정신장애인 인권의 현황과 관련 이슈들을 들여다 봐왔다. 정책위원회는 정례회의에서 도출된 내용을 간담회 및 토론회를 통해 공유하고, 관련 법안의 개정안을 올해 말까지 준비할 계획이다.

 

‘강제입원’을 가능하게 하는 논리

정신장애인의 인권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강제입원’ 제도는 빼놓을 수 없는 이슈로 꼽힌다. 이날 간담회에 발제자로 참여한 송승연 정신건강사회복지사는 강제입원율의 급격한 증가를 야기한 정신보건법의 제정 배경을 우선 언급했다.

“1991년 벌어진 여의도광장 질주사건과 대구 거성관나이트 방화사건은 한국 정신보건법 제정에 결정적 영향을 줬다. 여론은 이 두 사건의 범죄자들을 정신질환자로 몰아갔고, 4년 뒤인 1995년 정신보건법이 제정됐다. 정신보건법은 애초에 사회적으로 위험한 정신질환자의 범죄를 예방한다는 목적으로 만들어져 격리와 통제의 역할에 치우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송승연 복지사는 정신질환과 범죄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단언하기에는 논리적 비약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2011년 대검찰청의 범죄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정신장애인의 범죄율은 비장애인 범죄율의 1/10 수준으로, 비장애인의 범죄율이 1.2%에 반해 정신장애인의 범죄율은 0.08%에 불과하다. 미국에서는 총기난사 사건의 원인을 정신질환으로 몰아가려는 여론이 있었다. 이에 한 연구에서는 총기난사 사건의 경우 인종, 민족, 계급, 정치 등과 같은 사회구조적 문제를 반영한 맥락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총기난사 등 폭력 문제의 원인을 정신질환으로만 일원화하는 경우, 사회적 맥락을 둘러싼 중요한 문제들이 간과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국내 두 사건의 범죄자 역시 정신질환과 관련성이 없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다. 하지만 정신보건법은 이후 20년 이상 한국사회에 남아 정신장애인의 강제입원을 정당화하는 무기가 됐다.”

 

자기결정권이 지켜질 수 없는 구조

제가 제 방에 있었는데, 3명 정도가 들어오더니 검은색 옷 입은 사람이 막 (저를) 잡아가려고 하는데, 전 맨발이었거든요. (중략) 방에 있을 때 (제가 그 중 한 사람) 얼굴(을) 한 대 쳤어요. 그런데 결국 잡혀갈 것 아니에요. 앰뷸런스 차에 (저를) 묶어 넣더니, 묶어 넣은 다음에 워커 신은 발로 얼굴(을) 차는 거예요. 아까 너도 때리지 않았냐고.

- 정신장애인 일상생활차별경험에 관한 연구(2018) 中

 

정신보건법 제정 이후 강제입원에 따른 정신정애인의 인권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송승연 복지사는 앞서 제시된 정신장애 당사자의 실제 입원과정 사례를 언급하며, “강제입원제도는 입원과정은 물론, 입원 후 병동생활에서 퇴원까지 전반적인 모든 절차에서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이 배제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정신장애인은 폐쇄병동으로 강제입원이 된 이후에도 외부와의 연락, 면회, 외출 등 모든 행동은 제약된다. 물리적 결박이 이뤄진 사례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고, 약물복용도 강제적으로 이뤄진다. 퇴원 과정에서 역시 보호의무자 또는 정신과 전문의의 의견이 반영될 뿐, 당사자의 결정권은 고려되기 어렵다.

 

정신보건법 개정, 실효성은?

지난 2016년, 정신보건법 제24조 1항에 포함된 강제입원 내용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9인 전원일치로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리면서, 정신보건법 제정 20여년 만에 미약한 변화가 일어났다. 헌법재판소는 특히 보호의무자 2인의 동의와 전문의 1인의 진단으로 정신장애인의 비자의입원이 가능한 요건에 대해 제도의 악용이나 남용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헌법재판소 판결과 더불어 정신보건법에 대한 문제제기가 지속되자, 2016년 5월에 이르러 정신보건법은 ‘정신건강증진 및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정신건강복지법)’로 개정됐다. 개정에 따라 비자의입원의 기준은 보호의무자 2인의 동의와 서로 다른 정신의료기관 소속의 정신과전문의 2인의 진단으로 강화됐다. 이 외에도 입원기간은 기존 6개월에서 3개월로 축소되고,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가 새롭게 구성돼 입원 후한 차례 더 심사가 진행되는 등 강제입원의 절차가 까다로워진 점이 주요 변화 내용이다.

하지만 이 역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이동석 정책위원장은 “전문의 진단에서 한 명이 더 늘어나는 등의 변화만으로 강제입원이 어려워졌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마음만 먹으면 여전히 강제입원 악용의 여지가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송승연 복지사 역시 “이번 개정이 미약했던 건 사실” 이라며 의견에 일정부분 동의하는 한편, “그럼에도 변화 자체에는 의미가 있다. 앞으로의 방향에 관한 깊은 논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답했다.

 

지역사회 서비스 확대돼야

송승연 복지사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정책위원회는 장애계 ‘탈시설’ 흐름에 맞춰 정신장애영역에서도 ‘탈원화’ 역시 확대되는 추세가 될 것이라는 의견에 동감했다. 덧붙여 “이 같은 변화에 대비할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해 보인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이에 대해 송승연 복지사는 ‘자기결정권의 주체’로서 지역사회 통합에 중점을 둔 대안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최근 외래치료명령제(OTC, community treatment order), 병원형 사례관리 등으로의 제도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조직적으로 나오고 있다. OTC의 경우 지역사회에서 치료가 이뤄지기 때문에 좋은 제도로 보일 수 있으나, 이 역시도 ‘강제적 치료’의 범주에 해당하기 때문에 해외 대다수의 당사자 단체에서는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결국 이 모든 서비스는 ‘정신과 약물’에 비중을 두고 있다. 정신장애인을 ‘관리’의 대상으로만 바라본다면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모든 문제를 개인 탓으로 돌리고, 약물만 잘 먹으면 된다는 ‘의료적 관점’을 탈피해 사회적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덧붙여 송승연 복지사는 핀란드의 오픈다이알로그, 일본 베델의 집 당사자 연구 등 참고할 만한 해외 사례를 언급하며, 이 같은 대안적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오픈다이알로그는 정신장애인에게 정신과적 위기상황이 발생했을 때 전문가 등이 24시간 내로 당사자 거주지로 찾아가는 프로그램이다. 가족, 친구, 전문가 등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데, 당사자가 중심이 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약 25년간 핀란드에서 진행되면서 성공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급진적일 수 있으나, 국내에도 이 같은 대안을 과감하게 도입할 필요가 있다.”

작성자글과 사진. 정혜란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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