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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아 망리단길

핫플레이스에 없는 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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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도 ‘핫플레이스’에서 즐길 수 있을까. 핫플레이스(hot place)는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인기 장소다. 요즘 ‘핫’한 거리는 대로변에 없다. 한두 블록 안쪽으로 들어가야 한다. 평범한 주택가 같은 거리를 들여다보면 군데군데 작고 개성 있는 가게가 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임대료를 찾아 들어선 가게들이다. 이들이 모여 거리는 유행한다. 연남동, 망원동, 용산 해방촌 등 유행하는 거리는 계속 늘고 있다.

핫플레이스를 찾은 사람들은 골목골목을 구경하고 예쁘고 맛있는 음식과 디저트, 커피를 먹고 마신다. 사진을 찍어 소셜 미디어에 올리고 친구들에게 자랑도 한다. 소소하지만 얼마 안 되는 확실한 행복 거리다.

장애인도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다. 휠체어를 타는 주성희 씨와 망리단길이 있는 망원동을 찾아갔다.

 

훑고 만지는 사람들

성희 씨는 5호선 화곡역 인근에 산다. 망원역까지는 영등포구청에서 2호선으로 한 번, 합정에서 6호선으로 다시 한 번 환승해야 한다. 네이버 지도가 예상한 소요시간은 34분. 시간이 조금 더 걸리는 대신 한 번 환승하는 경로도 있다.

그는 두 번 환승하는 길을 골랐다. 승강기 유무나 위치 등을 모르는 역은 헤매기 쉬워 선호하지 않았다. 1·5호선이 있는 신길역도 기피한다. 1호선을 타야 하면 신길을 지나 굳이 여의도까지 가서 9호선을 타고 노량진으로 간다. 신길역에는 승강기가 없어 리프트를 타야 한다. 그 리프트를 타려다가 작년 사람이 죽었다. 성희 씨는 “리프트 자체도 위험하고, 타는 내내 벨이 울리니까 사람들 시선이 집중돼 불편하다”고 했다.

영등포구청역은 휠체어를 타고 역내로 환승할 수 없다. 역 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들어갔다. 승강기에 함께 탄 여성이 “바람부는 날은 춥겠다”며 안쓰러운 눈으로 휠체어와 성희 씨를 훑었다. 합정역 환승 길에는 긴 경사로가 있다. 오르막길 끝에 다다라 힘이 부치자 그가 운동선수처럼 기합을 넣었다. 그러고 탄 승강기에서 한 남성이 “모터가 안 달렸네”라고 말하며 휠체어를 만지작댔다. 자주 겪는 일인 듯 성희 씨가 조용히 말했다. “휠체어 만지지 마세요.” 1시간이 걸려 망원역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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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이 느껴지는 길

‘망리단길’은 망원동과 이태원 경리단길의 합성어로, 망원시장에서 서쪽으로 한 블록 떨어진 500m 남짓한 직선 도로다. 도로는 보도와 차도로 나뉜다. 보도 폭은 약 1.35m고, 전봇대가 있으면 폭이 약 85cm까지 좁아진다. 음식점 앞에 줄이라도 서있으면 차도로 내려가서 지나가야 한다.

블록마다 턱 위에 보도가 있다. 4cm 높이의 턱을 성희 씨는 가까스로 올랐다. 전동휠체어였다면 오르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8cm짜리 턱 앞에서는 차도로 갈 수밖에 없었다. 보도 지면은 벽돌로 포장돼 있지만 울퉁불퉁했다. 걸으면 지면 상태에 다소 둔감해도 탈것에선 민감해진다. 골형성부전증으로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은 지면 상태가 나쁘면 불편한 정도를 넘어 몸에 충격을 받고 통증을 느낀다. 척수 손상으로 휠체어를 타는 성희 씨도 마찬가지다.

“지면이 울퉁불퉁하면 승차감이 나빠 허리 통증도 느끼고, 안 넘어지려고 긴장하니까 어깨와 팔에도 더 무리가 간다. 장애인 중엔 휠체어가 전복되면 다시 올라타기 힘든 사람도 많다. 그래서 그들은 평평한 차도로 가며 그만큼 안전을 포기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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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리단길 보물찾기

소위 ‘핫’한 가게들은 망리단길에 몰려있지 않고 골목 구석구석 숨어있다. 보물찾기하듯 주변을 돌았다.

아메리카노에 휘핑크림을 얹은 커피로 유명한 카페의 문을 여니 열 개 남짓한 높은 계단이 지하로 향해있었다. 옥상에 있는 카페는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없어 분위기를 느끼려면 6층까지 계단을 올라야 했다. 이층 가정집을 개조한 카페는 현관문부터 집 내부까지 크고 작은 계단이 예쁘게 놓여 있었다. 이 주변에서는 드물게 새로 지은 듯한 건축물이 있었지만 2·3층이나 지하는 물론 1층도 통로가 좁아 접근이 여의치 않아 보였다. 어디를 가든 대부분 턱이 있고, 경사로는 없었다. 갈 수 있는 곳을 찾아 아래를 보고 걸었다. 경사로가 보여 반가운 마음으로 다가가면 내부에 생각지 못한 턱이나 계단이 또 있었다.

평소 성희 씨는 무작정 길을 나서지 않는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어디 ‘맛집’이라고 많이 올라오지만 아예 못가는 곳이 많다. 사진을 찾아 외관을 보고, 가게 이름에 엘리베이터, 유모차를 덧붙여 미리 검색해 본다. 열 곳 중 한두 군데 갈수 있을까 말까다. 가서도 손님이 많거나 매장이 좁으면 눈치 보인다. 늦게 온 사람을 먼저 들여보내고 한산해지면 들어가기도 한다.”

 

5%만 규제 받는 법

오래돼서 다소 낡은 건물과 거리, 작고 아기자기한 가게. 망원동이 인기를 끈 이유는 장애인의 접근을 어렵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1998년 전에 지은 건축물이거나, 크기가 300㎡(약 90평) 미만이면 장애인 접근성을 의무적으로 확보해야 하는 대상에서 제외된다. 리모델링을 해도 건물 외부가 그대로면 건축년도 기준에 적용받지 않는다. 통계청의 ‘2016년 기준 도소매업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300㎡ 이상인 음식점 및 주점은 전체의 5%다. 망원동뿐 아니라 전국 대다수의 음식점과 주점은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의무가 없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6년 ‘일정기준 미만의 공중이용시설에 대한 장애인 접근성’을 조사한 결과, 300㎡ 미만 시설 120곳 중 83.3%가 주출입구에 2cm 이상의 턱이나 계단이 있었고, 그중 67%는 경사로가 없었다. 경사로가 있어도 법적 기준을 충족한 건 39.4%였다. 이 조사대로라면 턱과 계단이 없는 공중이용시설 16.7%와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게 경사로를 설치한 시설 10.8%, 곧 27.5%만이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혼자 힘으로 접근할 수 있다.

작년 12월 인권위는 2019년부터 신축·증축·개축되는 50㎡(약 15평) 이상 공중이용시설을 편의시설 설치 대상에 포함하도록 법을 개정할 것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권고했다. 복지부는 올해 8월 권고를 수용하며 내년까지 관련 법령을 개정하고 예산을 확보해 2020년 이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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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가 받기 어려운 경사로 설치

설치 의지만 있다면 경사로를 놓는 건 간단해 보인다. 그러나 설치할 공간이 사유지가 아니면 먼저 도로점용허가를 받아야 한다. 허가는 담당 공무원의 재량으로 이뤄진다.

작년 2월 경북 경산시에서 책방을 하는 박영선 씨는 경사로 설치를 허가해주지 않아 8개월간 시와 긴 실랑이를 벌였다. 과거 <함께걸음>이 위 사건을 취재하며 만난 한 공무원은 “장애인을 위해서는 경사로가 있는 게 맞다. 하지만 법상 구체적 기준이 없는데 담당자가 재량으로 허가했다가 사고라도 나면 직접 책임져야 한다. 의무가 아닌 이상 아무도 허가를 내주려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정의당 윤소하 의원이 작년 3월, 경사로 설치로 도로점용허가를 신청하면 승인을 의무화하는 도로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아직 계류 중이다.

박영선 씨처럼 물러서지 않기는 매우 어렵다. 2017년 최저임금으로 시급 1만 원을 보장하며 화재가 된 망원동 비온뒤숲속약국 장영옥 약사는 “턱을 깎으려니 건물 주인이 반대했고. 턱에 경사로를 놓으려니 도로를 침범했다. 주변 상가에서도 경사로를 설치했다가 철거당했다”며 아쉬워했다.

 

생각지 못한 손님

약국은 내부 구조상 휠체어로 이동하기 어려워 보였다. 장 약사는 “그 점은 한 번도 생각을 못해봤다. 곧 약국을 리뉴얼하는데 그때는 휠체어가 지나다닐수 있는 너비를 확보하겠다”라고 말했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 망원동을 돌며 장애인에 관해 질문하고 가장 많이 들은 답변이다. 이야기를 나눠 본 영업자들은 생각을 못해봤을 뿐 장애인을 배제할 의사가 없었다. 경사로 설치에도 다수가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환경적 제약이 있었다. 잡화점 이감각을 운영하는 이해인 씨는 “원체 길이 너무 좁아 입간판을 세우는 등 도로를 점유하는 일에 주민들이 예민하다”고 우려했다.

좁은 건 보도만이 아니다. 이감각 매장은 휠체어를 타고 들어오면 다른 손님은 들어오지 못할 만큼 좁았다. 이 씨는 “현실적으로 그런 문제가 있지만 그건 내가 감수할 부분이다. 어쨌든 모든 사람이 이 가게를 구경할 권리가 있다”라고 말했다. 카페씨멘트 조인홍 대표도 비슷한 요지로 대답했다. “망원동 가게들이 크지 않아 다 비슷한 환경이다. 휠체어를 탄 손님이 오면 다른 손님이 불편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양해를 구해 자리를 조정하는 정도는 몰라도 다 같은 손님인데 한쪽을 일방적으로 제지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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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도움 받는 일

잠깐 도움 받으면 경사로가 없어도 되지 않겠냐는 의견이 있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굳이 비용을 부담하면서 경사로를 설치하지는 않을 거 같다. 휠체어를 탄 손님이 오면 들어드릴 수 있다. 유모차도 그렇게 한다.” 망원동은 아니지만 우연히 방문한 곳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단골 중에 휠체어를 탄 손님이 있다. 같이 온 친구들이 도와줘서 경사로 없이도 들어오는 데 크게 문제없다.”

정말 문제없을까. 성희 씨는 “한두 번이면 몰라도 매번 도움 받으니 친구들에게 미안하다. 굳이 안 해도 될 수고를 나 때문에 하는 거니까. 이렇게까지 하면서 얘네가 나랑 다녀야 할까란 생각도 든다. 또 직원들이 도와주면 휠체어가 들기 힘들기 때문에 표정이 안 좋을 때가 있다. 그러면 먹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다. 나를 반기지 않는 곳에 다시 가고 싶을 리 없다. 그러다보니 가던 곳만 가게 된다”라고 털어놨다.

 

1984년, 2008년, 그리고 지금

1984년 9월 망원동이 침수됐다. 사흘 동안 300mm가 넘는 비가 내리며 유수지에서 물이 넘쳤다. 물난리를 겪은 망원동에 북한은 쌀과 천 등 구호물품을 보내왔다.

1984년 9월 장애인이 자살했다. 서른네 살 김순석 씨는 서울시장에게 유서를 남겼다. “왜 저희는 골목골목마다 박힌 식당 문턱에서 허기를 참고 돌아서야 합니까. (…) 또 우리는 왜 횡단보도를 건널 때마다 지나는 행인의 허리춤을 붙잡고 도움을 호소해야만 합니까.”

2008년 영화 <추격자>에 망원동이 등장한다. 감독 나홍진은 “분명히 존재하는데 존재를 모르던 공간”이라서 망원동을 영화에 담았다.

2008년 장애인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 시행됐다. 이 법은 장애인이 시설물에 접근하고 이용할 때 정당한 편의 제공을 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지금, 한때 물난리가 나고 존재감 없던 망원동은 핫플레이스다. 거기에 장애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턱을 없애 달라는 호소는 아직도 사람들 귀에 닿지 못했다. 유서는 유효하다.

작성자글과 사진. 배용진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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