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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팔아 사기 치다

사건으로 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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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함께걸음 자료

2008년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팔아 사기 행각을 벌인 두 건의 사건이 사법당국에 적발됐다. 한 건은 장애인 단체임을 내세워 불특정 다수인의 후원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거액을 챙긴 사기 사건이었고, 다른 한 건은 불법 인터넷 도박 업체 운영자들이 장애인들을 소위 바지사장으로 내세워 불법 영업을 한 사건이었다. 장애인 단체임을 내세워 후원을 유도해 거액을 챙기는 사기 행각은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다. 그동안 여러 차례 경찰에 적발됐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지금도 기승을 부린다.

당시 적발된 사건을 통해 사기 집단이 어떤 수법을 사용했는지 자세한 내막이 드러났다. 불법 모금은 단지 세제 등의 물품 강매뿐만 아니라 손수건, 목공예, 잡지나 책 강매, 하다못해 현수막 강매 등 다양한 품목에서 이뤄졌다. 그리고 서울뿐만 아니라 부산, 대전, 대구 등 광역 시도에 사무실을 차려놓고 네트워크를 구축해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업체들은 대부분 전화로 후원금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많은 전화번호는 어디서 구하는 걸까?

먼저 일반 서점에 가면 대학별 졸업생 명단이 담긴 두툼한 인명록 책이 있다고 한다. 그 책을 사서 각 대학 졸업생 중에 기업 또는 공직에 근무하고 있는 과장 이상 간부를 중심으로 신상 정보를 알아낸 다음, 회사와 집 그리고 휴대폰, 이 세 군데에 집중적으로 전화를 건다고 한다. 그러면 그중 한 곳은 반드시 연결돼서 후원금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또 불법 모금 업체들이 전화번호를 수집하는 곳은 신문이었다. 신문에 특정인의 승진 기사가 난다든가 개업 광고가 나면 바로 전화를 걸어 후원금을 요청한다는 것이다.

불법 업체에 고용된 텔레마케터들이 후원금을 요구할 때 하는 멘트는 대부분 거의 비슷하다. “저희 장애인들이 일하는 작업장에서 비누 세제를 만들고 있습니다. 구매를 부탁드리는데 사랑의 한 계좌당 10만 원입니다. 후원해 주시면 저희가 매달 불우 장애인 900가구를 선정해서 쌀 40kg과 연료비를 지원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고 한다. 그런 다음 후원자가 10만 원 입금을 약속하면 비누 5~6개, 주방용 세제 2~3개, 그리고 신뢰감을 높이기 위해 특정 백화점에서 협찬한 품목이라며 녹차 한 세트를 묶어서 보내준다는 게 밝혀진 실상이다.

이렇게 해서 일단 한 번 물품을 구매한, 그들 업계 표현으로는 ‘미끼를 문’ 후원자에게 매달 전화를 걸어, 가령 ‘이번 달에는 장애인들이 여행을 가는 행사가 있으니까 후원해 달라’ 고 하고, 다음 달에는 ‘장애인들의 합동결혼식이 있으니까 도와달라’는 방식으로 재차 후원금을 요구하는데, 이 방식이 의외로 잘 먹혔다는 게 경찰 전언이다.

문제는 선의의 기부자들이 보낸 후원금이 장애인을 위해서는 한 푼도 쓰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불법 모금한 후원금은 업체와 텔레마케터가 50대 50으로 나누는 게 일반적인 분배 방식이라고 한다. 대신 텔레마케터 몫 50%에는 물품 택배비와 전화비 등 경비가 포함돼 있단다. 즉 불법 모금 업체는 가만히 앉아서 후원금의 50%를 챙기고 있다는 얘기다.

비교적 작은 불법 모금 업체에 근무했던 제보자 말에 따르면, 텔레마케터 한 명이 모든 비용을 제외하고도 한 달에 약 150만 원에서 200만 원 정도의 수입을 가져갔다고 하는데, 이 업체의 경우 10명의 텔레마케터를 고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업체 측에서 월 평균 1천 5백만 원에서 2천만 원 가량을 챙겼다는 말이 된다.

전화 모금 외에도 길거리나 지하철 안에서 장애인 단체를 도와 달라며 손수건 등을 판매하는 업체도 활개 치고 있고, 심지어는 복지 단체를 도와달라며 잡지나 책을 강매하는 사례도 적발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이 지능적인 수법을 쓴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은 인터넷에 버젓이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장애인 단체 이름으로 된 기부금 영수증도 발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막을 모르는 선의의 피해자들은 이들 업체가 장애인을 위해 좋은 일을 한다고 믿을 수밖에 없다.

2008년 말에는 장애인들을 소위 바지사장으로 내세워 영업해 온 불법 인터넷 도박 업체 운영자들이 대거 검찰에 적발됐다. 여기서 바지사장은 주로 불법 도박 업소 업주들이 경찰의 단속이나 처벌을 피하기 위해 실 소유자 대신 엉뚱한 사람을 운영자로 내세워 업소를 운영한 것을 말한다. 구속된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자들은 가맹 피시방 업주들이 수사기관에 단속되면 형사처분을 받게 될 것을 우려해 불법 피시방 운영을 기피하는 사실에 착안해서, 바지사장 알선책인 장애인 이 모 씨와 유 모 씨를 수익금 배분을 조건으로 범죄에 끌어들였다고 한다. 그런 다음 불법 도박 피시방 업주를 모집하면서 업주들에게 경찰 등의 단속이 있으면 본사에서 바지사장을 알선해 주고 벌금도 대납해 줄 테니 안심하라고 선전했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이들은 불법 피시방에서 손님들이 돈을 잃을 경우 불법 피시방을 경찰에 신고하면 장애인 등을 바지사장으로 내세워 무마할 수 있으니까 다른 경쟁 업소에 비해 안전하다는 점을 내세워 많은 가맹점 업주들을 모집했다.

여기에 대해 업주들은 불법 오락실이 입주해 있는 건물주와 임대차 계약을 맺을 때 임차인을 ‘장애인장학회’라고 내세웠다. 검찰에 따르면 마치 업소를 장애인장학회에서 직접 운영하는 것처럼 임대차 계약서를 작성한 다음 불법 도박 오락실을 운영했다. 실제로 이렇게 장애인과 장애인 단체를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에, 실제 업주는 한 번도 단속 대상이 되지 않고 오락실 운영을 계속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장애인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범죄에 악용된 걸까?

당시 현직 장애인 단체 간부인 알선책 유 모 씨 등은 주로 40~50대 장년층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쉽게 돈을 벌 수 있다’고 꼬드긴 다음, 평택의 한 아파트로 데려갔다고 한다. 그런 다음 면접과 합숙을 통해 사전 교육을 하고, 경찰 단속이 있을 때 실제로 그들을 바지사장으로 내세웠다. 사전 교육을 받은 장애인들은 경찰에 대신 출두해서 “내가 운영하는 업소가 맞는데, 잘못했다. 나는 돈만 대고 업소 운영의 구체적인 사항은 잘 모르고 종업원들에게 맡겨서 운영해 왔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장애인들이 이렇게 거짓 진술을 해주는 대가로 한 건당 50만 원에서 200만 원까지 사례금을 받았다는 게 검찰 말이다. 이렇게 장애인들이 바지사장으로 등장해 거짓 진술을 한 것만 해도 5개월에 60건이 넘게 적발됐다는 게 역시 당시 검찰 얘기다.

장애인들이 이렇게 바지사장으로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검찰이나 법원이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가 범죄에 연루될 경우 관대하게 처벌하는 사례를, 즉 장애인의 경우는 범죄 후 집행유예 또는 소액 벌금을 선고받는 경우가 많은 것을 이들 범죄 조직이 철저하게 악용한 것이었다. 만약 불법 오락 업소 사장이 장애인이 아니라 비장애인이라면 벌금 액수가 장애인보다 2~3배가 더 많고, 심지어는 구속할 수도 있다는 것이 검찰 얘기였다. 범죄 조직은 이 점을 사전에 알고 철저하게 활용했다.

당시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장애인들에게 돈을 주겠다며 접근해서 장애인을 이용하는 불법 범죄 조직의 행태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고 심각한 우려를 표시하며 당부했다. “쉬운 일이라며 한 번에 1백만 원 혹은 2백만 원씩 주는 곳은 절대 없다. 그런 돈을 미끼로 내세워서 접근하는 사람은 이유를 불문하고 의심해야 한다.”

작성자이태곤 편집장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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