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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우리이웃]바리케이드로 지키는 마지막 삶의 자리

서초동 비닐하우스촌 사람들의 마지막 싸움

본문

무너지고, 밀려 서로의 등에 등을 대고 이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마지막 삶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밤마다 "방범"을 돌아야 하는 뿌리뽑은 우리 이웃. 밟히면 밟힐수록 이름 없는 들꽃처럼 다시 일어서는 우리 이웃 "서초동 비닐하우스촌" 사람들의 "번지 없는 삶"을 마감하는 마지막 싸움은 언제나 올 것인가.

<회초리로 가르치는 부모사랑>
 "손 딱 펴!"
 철썩 철썩…
 "엉, 엉, 엉, 엉…"
 "울지 마. 입 다물어. 못된 년 같으니라고. 너 엄마한테 아침마다 신경질 부리고 학교 간다메. 엄마 아빠가 너 때문에 힘든 철근일 하시는데 넌 엄마 아빠 무시하고 말대답하니? 엄마한테 무식하다고? 그런 소리가 어떻게 나와. 공부해서 무슨 필요가 있어. 응?"
 철썩 철썩…
 
5월 26일 저녁 5시 30분 경
 열 명의 놀이 방 아기들이 종일 놀다간 뒤에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된 아이들이 좁은 부엌 바닥에 엎드려 공부하고 있는데 옆방에서는 회초리 소리가 스무번도 넘게 들리고 있다.
 이곳은 서초동 정보사 땅 앞, 흔히 군부대 앞이라고 불리고 있는 빈민지역, 비닐하우스촌의 놀이 방이다.
 비닐하우스촌은 판자와 두꺼운 천으로 벽을 치고 지붕을 덮어 방을 쭉 이었기 때문에 마치 비닐하우스처럼 보인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은 80년대 재개발 붐이 한창일 때 산동네에서, 도시 변두리 곳곳에서 철거를 당하고 전세 월세방도 구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하나 둘 만들기 시작한 곳이다. 덩달아 이곳에 비닐하우스집을 많이 만들어서 집 값을 올려 팔아먹는 전문 투기꾼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비닐하우스촌에 산다면 "영구임대아파트나 얻으려는 투기꾼들"이란 곱지 않은 눈으로 그들을 보려는 사람이 많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서초동 군부대 앞 비닐하우스촌은 주민들이 자치회를 만들어 투기를 몰아내고 개인의 힘으로는 비닐하우스촌을 벗어날 수 없다는 인식에서 정부를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어 도시빈민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는 곳이라고 하겠다.
 서울지역탁아소연합에 들어 있는 이 마을 놀이 방 역시 다른 집들과 똑같은 대여섯평의 허름한 비닐하우스였다.
 좁고 어둡기는 하지만 아침 8시 30분부터 저녁 5시 30분까지는 아기들 놀이 방을 하고 그 뒤로 밤 12시까지는 초등학생, 중학생의 공부방으로 써 늘 고만고만한 아이들 소리가 북적거리는 곳이다.
 여기서 일하는 주혜민씨 등 세 사람의 상근자를 이곳에선 누구나 "이모"라고 친근하게 부른다. 이모들은 6년이 넘게 이방에 살면서 주민과 한 이웃이 되었고 백여 명의 대학생 자원활동가를 모아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평소에는 아이들에게 그렇게 자상할 수 없지만 엄마, 아빠에게 무례한 행동을 할 때는 가차없이 회초리를 드는 것이 놀이 방 교육의 원칙이다. 주혜민(31)씨는 89년부터 놀이 방에서 일하고 있는데 마을이 부자 동네인 서초동에 있어서 빈부격차가 큰 만큼 아이들이 안타까운 행동을 보일 때가 많다고 한다.
 "바로 옆에 서초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있는데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바로 집으로 오지 않고 일부러 마을을 삥 돌아서 전철역에서 내려오는 아이들, 남의 눈에 띄는 것이 싫어 밤늦게까지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오는 아이들도 있어요. 부모님들도 제량이 딸리는데 태권도니 피아노, 속셈학원까지 다 가르칠려고 하죠. 그렇지만 절대로 따라갈 수가 없다는 것을 부모님에게 이해를 시킵시다. 한편으로 아이들에게는 가난하게 사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우리 엄마 아빠는 노동을 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열심히 살아가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지. 부끄러워하고 자기 부모를 무시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을 매를 들어서라도 가르칩니다."
 주혜민씨를 비롯한 상근자들의 노력으로 이제 놀이 방은 주민들이 안심하고 아이들을 맡기는 탁아소뿐만 아니라, 지역문제를 같이 의논하고 힘을 모으는 소중한 공간이 되었다.

<투기는 절대 안 된다>
 김종순(48) 자치회장은 주민들이 자치회를 결성하고 힘을 모으게 된 과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88년 4월에 서울 서초동에 가면 방을 좀 싸게 얻을 수 있다 해서 물어 물어 와보니 방이 굉장히 비싸요. 4평짜리 내 집을 당시 3백 60만원 주고 샀는데 이웃집 할머니한테 물어보니 우리 집과 똑같은 집을 1백 50만원에 살고 있더라구요. 이래선 안되겠다 해서 당시 공부방 이모들과 뜻있는 아줌마 15명이 중심이 되어 88년 7월 26일 자치회를 결성했어요."
 
자치회 결성 후 1년 동안은 임원들과 주민들이 밀고 당기며 서로 싸웠던 기간이었다. 임원들은 "왜 돈벌이를 방해하느냐"는 주민들에게 몰매를 맞아가며 자고 일어나면 몇 채씩 새로 생기는 집을 부수러 다녀야 했다.
 당시에는 주택문제가 심각해서 집을 찾아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들에게 "서초동에 들어오면 철거 후에 영구임대아프트 입주권을 준다"고 헛소문을 퍼뜨리며 방을 쪼개서 팔거나 비닐하우스를 대규모로 짓는 전문 투기꾼들이 판을 치고 있었으며 여기에 혹한 일부 주민들마저 덩달아 집을 지어 파는데 정신이 없었다고 한다.
 당시 자치회 초대 회장이 집 옆에 방을 하나 붙여서 지어 놨길래 김종순씨는 부회장으로서 경고를 했고 그래도 말을 듣지 않자 화가 난 주민들이 몰려가 집을 부숴 버린 일도 있었다.
 처음에는 투기꾼을 몰아내자고 했을 때 "그럴 수도 있지" 라면서 시큰둥하던 주민들도 하나 하나 투기꾼을 내쫓는 과정에서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마을에서 자치회 회장을 내쫓은 사건 이후 주민들은 "절대 투기는 안 된다. 연탄 창고 하나라도 집을 지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굳혔고 더욱 임원들을 신뢰하게 되었다고 한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원인 모를 "화재">
 이곳 주민의 삼분의 일은 사당, 상계, 봉천동 등지에서 온 철거민이고 나머지는 사업에 실패하거나 병을 얻어서 온 사람, 전세, 월세, 집도 얻기 힘들어 "하우스"를 찾아 온 사람들로 88년 이후 5백 세대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자치회가 생기기 전까지 주민들은 언제 철거될지 모르는 불안한 마음에 자포자기한 탓인지 술먹고 행패를 부리는 일이 잦았다.
 김종순씨 등 자치회 임원들은 이렇게 스스로 자포자기하는 주민들에게 "당신 때문에 당신 아들딸들이 공부를 못하고 있으니 나가 달라고 강력하게 항의하고 술이 깨면 돈이 없어도 열심히 살아가자"고 격려를 하며 동네의 질서를 잡아갔다.
 
자치회는 주소조차 없는 마을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전체를 4통 15반으로 나누어 30여명의 반장을 뽑았다. 회장이 없을 때 대리 역할을 하고 회장의 잘못된 행동을 견제하기 위해 6인의 대표위원을 뽑았고, 행사 때마다 분위기를 돋구기 위해 부녀 선봉대 15인을 뽑아 율동과 노래를 익혔다.
 이렇게 자치회가 주민들의 대표기구로 자리잡으면서 고질적인 투기와 무질서는 없어 졌지만 주민들은 또 다른 걱정거리인 화재 때문에 밤잠을 설쳐야 했다.
 지난 91년 법원, 검찰청사 앞에서 누군가가 일부러 지른 것처럼 보이는 화재가 일어나 6백여 가구가 불타고, 주민 4명이 죽은 것을 비롯 군부대 앞마을에도 그간 10여 회가 넘는 불이 났지만 다행이 일찍 발견돼 커다란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지주들의 소행으로 보이는 이 화재를 막기 위해 자치회와 함께 시작된 것이 방범활동이었다.
 5월 27일, 이날도 밤 11시 30분부터 새벽 5시 30분까지 1통 4반과 3통 2반 주민, 그리고 지원 나온 서울대 학생까지 모두 11명이 2개조가 되어 30분마다 교대로 방범을 돌았다.
 
이날 방범 순찰을 돈 사람은 아들과 둘이 사는 검찰청 청소원 아줌마, 영등포까지 출퇴근  하는 보험회사 아줌마, 동대문 시장 근처에 가서 바느질을 하고 집에 와서는 한복을 짓는 아줌마, 8개월 된 아기를 업고 나온 새댁, 팔십이 다 된 할머니 등 할아버지 한 분을 빼고는 모두 아주머니들이었는데 이들이 이처럼 일에 지친 피곤한 몸을 이끌고 마을을 지켜온 지가 5년이 넘는단다.
 한 사람 지나가기에도 비좁은 골목길을 누비며 구석구석 손전등을 비추어 불꺼진 이웃의 집들을 둘러본다. 쇠파이프 소리를 쿵쿵 울리며 마을을 돌다가 낯설은 사람과 부딪히면 얼굴을 확인하고, 뭔가 타는 냄새가 나는지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등 이들의 순찰은 어떤 경찰보다 더 날카롭고 예민했다.
 어느덧 날이 밝아 하늘빛이 푸르스름해지고 한집 두집 전등 빛이 켜질 무렵이 돼야 이들은 "또 하루가 무사히 지났구나"하는 안도감과 함께 다시 직장에 나가기 위해 무거운 발걸음을 돌린다.

부동산 투기로 수천 수억의 이득을 챙긴 지주와 마찬가지로 재개발 붐을 일으켜 건설회사만 살리고 서민들을 거리로 내 몬 정부에 맞서 "정답고 인심 좋은 이웃들이 다시 영구임대아파트에서 모여 살게 됐으면 좋겠다"는 마지막 바람을 지키기 위해 서총동 비닐하우스촌, 번지조차 없는 우리의 이웃들은 유월의 따가운 햇살아래 오늘도 삶의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는 것이다.

 비가 오는 장마철에도, 추위에 온 세상이 잠든 한겨울에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된 이들의 방범활동이 바로 번지 없는 마을 서초등 비닐하우스촌의 오늘을 지켜온 보이지 않는 손이었던 것이다.

<선입주, 후철거 그리고 영구임대아파트>
 이 마을에는 이것뿐만 아니라 안전한 "새집"을 얻어야만 해결할 수 있는 또 다른 어려움이 많이 있다.
 무허가 건물대장에도 오르지 못한 집이기에 주민등록 이전이 되지 않아 주민들 대다수가 서초동 근처나 직장으로 주소지가 몰려 있기 때문에 아이들은 몇 정거장씩 차를 타고 학교를 다니고, 어른들은 예비군 훈련도 멀리 가서 받아야 한다.
 상수도 시설이 되지 않아 자가수도와 공동수도를 사용하는데 이나마 물 씀씀이가 많아지는 저녁때가 되면 끊기기 일쑤이며 주거용 건물이 아닌데다 여러 집에서 한집 전기를 끌어쓰다 보니 누진세가 붙어 한 가구당 전기세가 보통 3∼4만원이나 돼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살이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이처럼 무허가 비닐하우스촌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영구임대아파트를 얻어 이곳을 벗어나는 길 밖에는 방법이 없다.
 
그간 이 지역 주민들이 자신들의 주거문제를 해결해 과정을 자치회의 박초희(30)총무는 다음과 같이 들려주었다.
 "서초동 지역의 사례를 보면 90년대에 객골 정보사 땅 비닐하우스촌 철거 때는 사회적 분위기를 타서 정부에서 8백세대 중 2백 세대에게 영구임대아파트를 줬어요. 그때는 시유지였기에 가능했죠. 사실 다른 시유지에 있는 마을에서는 정부가 영구임대아파트를 주리라 생각은 못했죠. 하지만 92년 폭풍우 속에 철거된 동양 최대의 법원, 검찰청사 비닐하우스촌은 사람이 죽고 지주들이 지른 방화가 사회문제가 되자 사유지였는데도 정부에서는 2천 3백 세대 중 4백 세대에게 영구임대아파트를 줬습니다. 그간 주민들이 계속 요구하고 싸웠던 게 결과로 나타난 거지요."
 이 마을은 무허가 건물대장에 오르지 않아 영구임대아파트 입주권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수십 명의 지주가 얽혀있어 철거 후 개발 방식에 대한 형식도 없어서 싸움에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전세금이라도 벌고 나가자. 이주비라도 주면 나가자"고 생각했던 주민들도 계속되는 방화의 위협과 철거깡패들의 폭력, 철거를 잘했다고 격려금을 받은 전 서초구청장 황철민의 이야기에 분노하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싸움을 통해 공권력을 이용해 강남 금싸라기 땅을 사들인 땅 지주들이 바로 투기꾼이고, 이들을 비호하고, 잘못된 정책으로 서민들을 비닐하우스촌으로 내 몬 정부가 근본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을 깨달은 것이다.
 
"저희 주민들은 그동안의 관행이 돼왔던 철거후의 입주가 아니라 입주후의 철거를 원합니다. 그리고 시골에 못쓰는 땅 몇 평을 가지고 있다거나 장사하려고 소유한 트럭이 있다고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 아니라 비닐하우스촌이 생긴데 대한 책임을 지고 정부는 서초동 전체 2천 세대 비닐하우스촌 주민들에게 영구임대아파트를 주어야 합니다."
 자치회장 김종순씨는 5월에 서초구청에 이러한 주민들의 요구사항을 넣었고 올해 안으로는 꼭 주거문제를 해결할 결심이라고 한다.
 
지금 마을 주민들은 주차장으로 이용하는 빈터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하고 있다. 땅 주인이 그곳에다 건물을 짓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해 왔기 때문이다. 여기서 물러서면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부동산 투기로 수천 수억의 이득을 챙긴 지주와 마찬가지로 재개발 붐을 일으켜 건설회사만 살리고 서민들을 거리로 내 몬 정부에 맞서 "정답고 인심 좋은 이웃들이 다시 영구임대아파트에서 모여 살게 됐으면 좋겠다"는 마지막 바람을 지키기 위해 서초동 비닐하우스촌, 번지조차 없는 우리의 이웃들은 유월의 따가운 햇살아래 오늘도 삶의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는 것이다.

글/오숙민

 

 
 

작성자오숙민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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