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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가 보내온 글과 사진] 미국 특수교육 현장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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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특수교육 현장체험기

누구나 그렇듯이 나 자신도 학문의 큰 뜻을 품고 86년초 미국으로 건너갔다. 서울에서 음대를 나왔지만 뭔가 더 학문적이고 실제적인 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남편이 마침 심리학을 전공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게 음악치료(뮤직 세라피) 공부를 권했다.
 장애인과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심리학과 더불어 함께 치료해 보자는 이상적인 계획이었다. 나 자신 음대를 졸업해 음악치료라는 생소한 분야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음악치료는 미국에서조차 아직 생소해 굉장히 매력적이고 훌륭하기는 했지만 공부를 하기에는 어려운 학문이었다.
 음악치료가 가지고 있는 특수성 때문에 심리학, 장애우교학, 음악이론은 물론 심지어 인체해부학과 약물분석까지 해야 하는 어려운 과정을 겪어야 했는데 그 중 가장 어려웠던 것은 매학기 나가야 하는 정신요양원의 실습과정이었다.
 처음 실습을 나간 곳은 정신병원의 노인병동이었는데 "해 내야만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는지 중복장애우나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거부감과 어떤 이질감도 느끼지 않았다.
 음악치료 대학원 과정을 끝낼즈음 음악치료사로 나갈 것인지 아니면 특수교사가 될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는데 당시 미국에서도 음악치료는 생소한 분야일뿐 아니라 음악치료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장애우교육 관련학과를 공부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장애우교육대학원으로 방향을 정하고 "음악치료가 장애우교육 분야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을 썼으며 3개월간의 교생실습과 자격시험을 거쳐 마침내 특수교사 자격증을 받았다.
 특수교사 자격증을 받고 뉴욕으로 옮겨 부르클린에 있는 장애우 특수학교인 "헤브류 아카데미"에서 장애우교육 전문가로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정신지체, 신체, 중복장애, 뇌성마비 등 각 지역별 그리고 장애영역별 5개의 개별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사립학교인 헤브류 아카테미는 3백20명의 학생에 교사와 보조교사, 치료사를 합해 2백70명의 직원이 일을 하는 뉴욕주에서 가장 커다란 특수학교이며 모든 비용을 정부가 보조해 주고 있었다.
 2백70명의 직원 중 유일한 동양인으로 더욱이 영어로 수업을 진행해야 하는 어려움 때문에 남보다 몇배 더 어려움을 겪었지만 "음악치료"를 공부한 덕에 수업효과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높았다.
 내가 처음 맡은 반은 1년에 교사가 두세 번씩 바뀔 정도로 문제가 심각한 중복장애아 반이었다.
중복장애아를 가르치는 일이 어렵고 힘들기는 했지만 그 일을 통해 미국의 장애우교육이 얼마나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는지 알게 되었다.
 처음 우리반에서 교육목표로 잡은 사람은 "하다스"라는 18살의 중복장애 여학생이었는데 교장이하 모든 직원이 손을 들어버릴 정도로 장애가 심하고 학습이 불가능했다.
 "하다스"는 항상 한 손에는 깡통에 돌을 넣어 흔들고 다른 한 손에는 인형 아니면 줄 같은 것을 흔드는 "자기자극행동(Self-stimulative behavior)"이 아주 극심한 학생으로 의자에 5분 이상 앉아 있지 못하고 하루종일 바닥에 누워 있든가 아니면 학교 식당으로 뛰어들어가 빵을 먹어치우곤 해 학교 운영자들도 골치를 앓고 있었다.
 훌륭한 교사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미국사회 속에서 훌륭한 한국인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심때문이었는지 6개월만에 하다스에게서 깡통과 인형을 떼어내는데 성공했으며 공격적이고 부정적인 행동을 교정해 다른 아이와 더불어 책상앞에 앉아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엄청난 변화를 일으켰다.
 "하다스"의 변화는 곧 학교 전체의 커다란 화제거리가 돼 교장 이하 많은 동료교사들이 "하나님께서 하다스를 위해 당신을 우리 학교에 보낸 것 같다"는 말을 하기까지 했는데 그 감동과 뿌듯함이란 실제 현장에서 장애아들과 같이 뒹굴면서 가르치지 않은 사람은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
 헤브류 아카데미에서 장애아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보조선생들과 함께 직접 대소변을 치우면서 아이들을 정말 제대로 가르치고 싶다는 정열이 솟구쳐 올라 스스로 놀라워하기도 했으며 음악치료를 실제 특수교육에 응용하면서 많은 경험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커다란 변화는 아무리 심한 중복장애우들이라도 그들 속에 숨어 있는 잠재력을 끌어내면 얼마든지 한 인간으로 활동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4년동안 가르치고 또 배우는 시간을 가지면서 나는 "사리나(학교에서 부르던 이름)"가 우리 학교를 그만두면 어쩌나 할 정도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얼마 전부터 한국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장애우를 다룬 방송을 종종 볼 수 있었는데 내가 하는 일이 특수교육에 관계된 것이라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봤는데 이제 한국에서도 장애우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장애우의 적극적인 사회참여를 위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잇는 조기교육과 교육의 장을 얼마만큼 열어주고 있는지 궁금했다. 미국은 장애우의 천국이라고 할 만큼 장애우에 대한 보조가 엄청난데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내가 아무리 극심한 중복장애들과 함께 뉴욕의 도심속을 활개치고 다니더라도 아무도 회피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에 온 지 얼마되지 않지만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장애우단체와 장애우를 위해 애쓰는 많은 분들을 보니 앞으로 한국의 장애우들도 좀더 나은 환경에서 많은 활동을 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게 되며 내가 공부하고 경험한 것들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작성자정지원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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