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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걸음 창간 6주년 특집4/다시 인권을 생각하다]산재장애우 정인석씨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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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장애우 정인석씨의 죽음
전흥윤 (함께걸음 편집장)

 즐거움이 나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닌 듯 아픔 또한 나만의 고통이 아님은 사실이겠지. 장애자 의무고용 시대에 자체발새 장애자 관리는 대기업의 횡포인가.
 아픔을 원하는 자는 그 누구도 없다. 참다못해 재요양을 원할 때마다 벽에 부딪히는 바닥 인생의 한계를 느낀다.
 안전담당자의 말 "너는 거짓으로 아프다"라는 비인간적인 말. "너는 현직에 근무할 수 없으니 전직원을 제출하라. 보내주겠다." 했으나 기대는 꿈.
 항의 결과 자격증이 없어 원하는 직은 불가하다는 사측의 어처구니없는 말. 과연 그 직에 근무하는 자는 자격증 소지자인가? 통증으로 업무수행에 어려움을 말하면 "아프면 하지마라. 하지 않아도 임금은 지급된다."는 상식 이하의 말.
 "3, 4 요추 추간판 탈출증"으로 장애 12급 판정자에게 출근 당시 10미터 정도의 긴 파이프를 손으로 날라 바닥에 펼치는 작업을 지시하는 안이하고도 비인간적인 자. 그러나 눈물을 감수하고 부양가족 생각으로, 묵묵히 해야 하고 그럼에도 환자라는 이유만으로 잔업통제라는 최악의 고통을 주었고, 그것도 4개월.
 신년 초에는 두 번씩이나 사직을 유도하는 직장의 자세는 뼈를 깎는 삶이란 기초권리를 짓밟는 행위가 아닌가?
 재요양(수술)을 위해 대학병원에 감정의뢰 방해 행위는
1. 장애자인 나에게 아무 이상 없다는 결과
2. 진단서 발급 거부
3. 직장의 감정 결과 문의 등등 관리자들이여 사랑과 아픔을 장애자와 같이 하길
정인석

<죽음으로 저항>
 지난 1월 24일 낮 12시 50분 부산 사하구 다대동 한진중공업(대표이사 송영수) 다대공장 전동차 제작 현장에서 도장공 정인석씨 (55·부산시 부산진구 가야동)가 제작 중인 전동차안에서 "노동자의 이름으로 남기는 글"이라는 유서를 남긴 채 손잡이에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정인석씨의 죽음을 처음 발견한 동료노동자 이근창씨는 이날 낮 점심식사를 마치고 분당선에 투입하기 위해 제작 중이던 전동차를 둘러보던 중 정씨의 주검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사망원인 조사를 위해 나온 경찰이 정인석씨의 소지품을 점검하던 중 캐비넷에서 발견된 유서와 진단서를 통해 정씨의 죽음이 단순한 자살이 아니라 산재로 고통 받는 노동자의전직요구를 들어주지 않은 회사측의 비인간적인 태도에 대한 저항이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공장 전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영도공장의 본부 노조측은 정씨의 죽음이 회사측의 비인도적인 행위 때문이라는 것이 알려지자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정씨의 주검을 처음 발견한 전동차에 시신을 안치한 채 사수대를 구성하고 정씨의 정확한 사망경위 규명을 회사측에 요구하며 농성에 들어갔다.
 더욱이 가족들이 유서의 글씨가 정인석씨의 필체가 아닌 것 같다고 의문을 제기해 검찰이 사체부검을 위한 시신 인도를 가족들이 거부하자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강제 부검할 뜻을 비치자 다대포 공장은 물론 영도본사 1천8백여 노조원들이 이에 항의해 전면 작업거부에 들어갔다.
 회사측은 처음 노조의 작업거부를 업무방해로 검찰에 고소하고 작업거부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밝혔으나 정씨의 죽음을 둘러싼 회사측의 비인도적인 행위가 알려지고 노조측이 26일 정인석씨 자살사건 관련자 문책, 산업재해환자 처우개선, 산업안전보건위원회 구성 등 9개 항목의 요구사항을 회사측이 들어주지 않을 경우 27일부터 무기한 작업거부에 들어갈 것을 결의하자 서둘러 협상에 나서 27일 오후 4시 유족보상과 산재에 방책 등에 합의함으로써 사태를 마무리 지었다.
 정인석씨의 주검은 늙고 병든 노동자를 헌신짝처럼 내다버린 회사측의 비인간적인 태도에 고통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닷새만인 지난 1월 28일 장례식을 갖고 김해공원 묘원에 묻혀 산재 없고 차별 없는 세상으로 떠났다.
1982년 한진중공업에 입사한 정인석씨는 영도공장에서 배를 만들던 92년 7월 작업 도중 튕겨져 나온 쇠밧줄에 허리를 맞았으나 사내병원에서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판정을 내렸다.
 회사 병원의 판정결과를 믿을 수 없었던 정씨는 다른 병원을 찾아가 진단을 받은 결과 3, 4 요추 추간판탈출(디스크)로 밝혀져 산재등급 12급의 판정을 받아 10개월간 병원에서 산재치료를 받았으며 지난해 6월 현장복귀 후 2기 지하철 분당선에 투입될 전동차를 만드는 다대포공장 도장부에서 일해 왔다.
 신체장애 등급표에 의하면 신체장애 12급의 경우 "쇄골·흉골·늑골·견갑골 또는 골반골에 현저한 기형이 남은 자" "한 다리의 3대관절 중의 1개 관절의 기능에 해가 남은 자" 등으로 평균임금의 1백 40일분에 해당하는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
 약 1년간 치료를 받고 현장에 복귀한 정씨는 자신의 장애등급 판정이 잘못됐다고 주장하고 보상재 심청구와 재요양 신청을 냈으나 기각 당했는데 이 과정에서 회사측에서는 만약 정씨가 정년퇴직할 경우 재직 기간 중에 당한 산재후유증으로 입원할 경우 치료를 마칠 때까지 계속 치료비를 내야 하기 때문에 정년퇴임 기간인 올해를 넘기지 못하도록 사직서를 강요해 왔던 것이다.
 더욱이 정씨는 유서에서도 밝혔듯이 디스크로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한 자신에게 10미터가 넘는 길다란 쇠파이프 운반을 시키는 등 자신의 장애를 꾀병인 양 취급하며 사직서를 강요하는 관리직원들의 횡포에 시달리는 이중고를 겪은 것으로 알려져 산재노동자를 혹사시키는 열악한 노동환경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제2, 제 3의 정인석>
 한진중공업은 영도 본사와 다대포 공장에 모두 2천여명의 노동자가 잇는 부산지역에서는 제법 큰 규모의 사업장으로 재해보상을 받고 재취업한 사람들이 상당수 있을 정도로 산재발생 건수가 다른 사업장보다 높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회사와 노동자간의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단체협상안에 "산재업재해를 당한 노동자가 산재 이후 현장에 복귀해 일할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한 특별한 내용이 없다."는 김주익 노조사무국장의 말처럼 산재를 당한 장애우 노동자에 대한 처우는 노·사 모두의 관심 밖인 것으로 드러났다.
 정인석씨는 이렇게 회사로부터 "용도폐기" 당한 자신의 노동 가치를 되찾기 위해 몸부림쳤으나 무관심과 냉소 그리고 끊임없는 사직압력에 밀려 마침내 손때 묻은 일터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저항을 했던 것이다.
 지난 한 해 우리나라는 9만 2백 58명이 생산현장에서 산업재해로 신체적·정신적 장애를 입었으며 그중 2천 2백 49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이로 인한 경제손실"은 국민 총생산(GNP)의 2퍼센트인 4조 3천억원이나 되는 것으로 밝혀져 산업재해와 산업재해로 장애우가 된 사람들의 고통이 더 이상 무시하거나 덮어버릴 수만은 없는 문제라는 것을 잘 드러내고 있다.
 더욱이 장애우를 의무 고용해야 하는 사업장에서 자체적으로 발생한 산재 장애우에게 스스로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간다는 것은 장애우가 일터에서 당당한 생산의 주체로 뿌리내리는 것이 얼마나 멀고 험한 길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하는 것이다.
 "변화·전진·도약"의 커다란 입간판을 뒤로 새벽어둠을 뚫고 허옇게 입김을 내뿜으며 영도다리를 건너 오늘도 생산의 현장으로 몰려드는 제 2, 제 3의 정인석을 향해 "사랑과 아픔을 장애자와 같이 하기"를 빌었던 한 산재장애우의 소박한 바람은 전쟁 같은 하루를 알리는 기계소리에 묻혀 버리고 말았다.

작성자전흥윤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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