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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걸음 창간 6주년 특집5/다시 인권을 생각하다]우리 모두가 져야 할 십자가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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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가 져야 할 십자가
-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 -
오숙민 (함께걸음 기자)

 다네 소르 반자데 (Dhane Shwor Banjade), 26세, 네팔인, 군포시 당정동의 "경영정밀"에서 1992년 11월 26일 오전 9시 30분 작업 도중 기계 조작 실수로 기계가 빨리 찍혀 내려오자 몸을 황급히 피했으나 장갑이 말려들어 오른쪽 가운데 손가락 두 번째 마디까지 절단되는 사고를 당함. 군포연세외과 의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보상금은 한 푼도 받지 못했으며 사장은한국인 노동자에게 회사를 넘기고 도망갔음. 5개월 임금 체불.
 1993년 6월 3일 군포시 당정동의 "대신수지"에서 오후 6시경 작업 중 로울러 기계 밑에 손을 대고 있을 때 한국인 노동자가 실수로 기계의 전원 스위치를 내리는 바람에 왼손 손가락 4개가 심하게 구부러짐. 사고 후 1차 수술은 받았으나 2차 수술을 해야 할 상황. 사장은 보상해줄 생각도, 재수술해 줄 생각도 전혀 없고 2개월 입금체불.
 이상은 네팔에서 한국으로 "코리아 드림"을 찾아온 다네 소르 반자데가 불과 2년만에 겪어야 했던 산업재해의 이력서다. 그는 이제야 비로소 국내에 불법체류해 일하는 수만 명의 다른 외국인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잘 사는 나라 한국에서 돈을 벌려면 자존심은 물론 자칫하다간 건강한 몸마저 망칠 수 있다는 교훈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저는 대학 다니고 있었는데요. 대학 나와도 좋은 일자리 얻기 어려워서 한국에 왔는데 한국이 네팔 보다는 상당히 잘 사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해가 안가는 게 보상도 없고, 법도 없고 그런 것 때문에 힘들어요. 어디 가서 얘기할 수도 없잖아요. 어느 나라라도 마찬가지지만 우리 외국 사람에게 잘해주는 사람도 많이 만났어요. 근데 공장 사장들은 좋은 사람 하나도 못 봤어요. 우리는 출근카드 없이 일하고 오버타임 (초과근무)해도 돈 없고, 공장에서 일하기 싫어도 무조건 일해야죠. 왜냐면 우리 여권 비행기 티켓을 사장이 갖고 있거든요."
 만 2년 동안 배운 유창한 한국어 실력으로 그동안 겪었던 일을 털어 놓으며 그가 펼쳐 보인 두 손은 저 손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걱정을 넘어서서 이제 그의 인생은 잘못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현재 그는 두 번째 산재를 당한 "대신수지"를 그만둔 뒤 바로 1월 11일부터 외국인 노동자 피난처 "바닥교회공동체"에 보호되어 있던 동료 13인과 함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실에서 무기한 농성중이다. 어찌할 방도가 없어 한국에 있는 종교단체와 사회단체가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한 이 농성에 마지막 희망을 건 것이다.

<노동정책이 변하지 않는 한…>
 정부가 89년부터 불법 취업을 묵인해오면서 급격히 늘기 시작한 외국인 노동자 숫자는 지금은 최소한 10만명 이상으로 늘었고 이중 산재자가 1천여 명, 사망자가 3백 20여 명이나 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방글라데시인의 경우 전체 체류자 5천명 중 산재자가 50명, 사망자가 16명이나 돼 가장 많은 피해를 입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작 외국인 노동자 수급정책에 책임이 있는 정부는 이중격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법무부는 불법체류라는 이유를 들면서 국내에서 그들이 노동자로서 당하는 산업재해나 열악한 근로조건 개선 등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대신 불법체류자가 내야 하는 벌금을 갚을 길 없어 중국인 교포 임호씨가 자살하는 사건이 생길 정도로, 출국하려는 이들에게 체류기간 동안의 벌금을 꼬박꼬박 받아냈다.
 또 노동부는 소위 3D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업종에 인력난이 심각하다고 하면서 외국인 노동자를 묵인하면서도 정작 산업재해가 발생하거나 노동법을 적용해야 할 문제에는 불법체류자이기에 법무부의 방침을 따라야 한다고 책임을 미뤄 왔던 것이다.
 농성을 주도하고 있는 "바닥교회공동체" 김재금(25) 간사는 "불법체류 외국인을 고용하고 있는 한국인 사장들의 파렴치함에 굉장한 수치감을 느꼈다."며 외국이 노동자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의식전환을 강조하기도 했다.
 "기업주들이 우리를 칼로 찔러버리겠다는 말도 많이 들었고 매국노란 말도 들었어요. 우리 경제가 살려면 저임금도 해야 되고, 임금도 떼먹고 그래야 산다는 기업주의 말에 충격을 많이 받았고 도덕적으로 우리나라가 이러면 망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일제하 식민지에서 당해왔고 6∼70년대에 외국에 나갔던 한국인 노동자들이 외쳐왔기에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억압하는 미족으로 산다는 게 참 부끄럽고 걱정스러워요."
 그는 정부가 지난 1월 18일 외국인 노동자에게도 국내 노동자와 똑같이 산재보상과 근로기준법을 적용하겠다고 한 만큼 우선적으로 농성 중인 이들 14명에게 먼저 보상을 해 줄 것을 강조했다.
 농성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정부는 외국인 노동자에게도 산재보상과 근로기준법을 적용하겠다는 발표를 했지만 아직 구체화되지 않아 두 달이 지난 지금도 이들 외국인노동자들은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국내의 고용정책을 불안하게 하고,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을 짓밟으면서 저임금에 기초한 경제발전을 꾀하겠다는 노동정책이 변하지 않는 한 외국인노동자를 둘러싼 정부가 기업주의 부끄러운 모습은 오래도록 남아 있을 듯하다.
 농성장 계단을 따라 끝없이 이어지는 나무 십자가는 차갑고 낯선 땅에 몸을 묻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몫이 아니라 이들의 고통에 눈감고 귀 막았던 우리 모두가 지고 가야 할 또 다른 십자가로 다가오고 있었다.

작성자오숙민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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