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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걸음 작은기획/인권]이름 없는 여인들의 굴종과 유린의 역사

- 주한미군범죄 5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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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여인들의 굴종과 유린의 역사 - 주한미군범죄 50년 -
오숙민 (함께걸음 기자)

<‘미군범죄 신고센터 개설식’>
 “93년 5월 29일, ‘살로이 죤 로저’라는 미군병사가 인간으로선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끔찍한 행동을 저질렀습니다. 그는 역삼동에 있는 호프집에 들어와 김국혜(51)라는 여자에게 안경테를 찾으러 왔다는 핑계를 대고 파리약통으로 머리를 내리치고 실신시킨 다음 팬티를 벗겼습니다. 피를 얼마나 흘렸던지 제가 그 현장에 갔을 때는 피가 엉겨 붙어 지워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아마 그대로 방치되었다면 살아남기 힘들었을 겁니다. 피해자가 출혈이 심하자 그는 겁을 집어먹고 도망을 쳤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돌아가 잠을 자고 아침에 부대로 귀대했습니다. 현재 제 누님은 미군에게 강간과 구타를 당하고 정신이상 증세까지 얻었습니다.”
 지난 4월 1일 오후 5시, 기독교회관 2층 강당에서 열린 ‘미군범죄 피해자 증언 및 미군범죄 신고센터 개설식’에서 김득은씨는 누나 김국혜시의 억울한 피해사연을 성토했다. 김득은씨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피해자들의 분노에 찬 증언으로 행사장은 뜨겁게 달구어졌다.
 피해자와 그 가족들, 신고센터 개설 관계자 1백여명이 모여 치러진 다소 조촐한 행사였지만 이 땅에서 미군범죄를 근절하자는 새로운 결의를 다진 역사적인 순간이라 할만 했다. 서울의 ‘주한미군 범죄근절을 위한 운동본부’를 선두로 차례로 만들어진 동두천·의정부, 원주, 평택·송탄, 춘천, 파주·군산, 매향리, 대구 모여 ‘미군범죄 신고센터 개설식’을 갖고 본격 활동채비에 들어간 것이다.

<연 2천 2백 건, 하루 5건>
 ‘주한미군’.
 해방 이 후 오랫동안 한국인의 머리에 새겨진 주한미군의 모습은 다분히 위압적이고도 건들일 수 없는 치외법권 대상이었다. ‘한국의 우방으로서 한국을 지키는 정의의 군대’라는 의식이 아직 40대 이상의 기성세대에겐 많이 남아 있을 정도로 3~4만명이나 되는 주한미군의 위력은 대단하기만 하다. 하지만 연 2천 2백여건, 하루 5건이라는 미군 범죄의 실상은 그들의 존재를 심각하게 따져보게 하는 근거가 된다.
 역사는 1945년 9월 8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군의 첫 주둔부터 크고 작은 사건이 발생했다. 기록에 의하면 주둔 당일날 미군은 미군을 환영하는 인파 중 치안유지라는 명목으로 2명을 사살한 일본인 경찰을 두둔하였던 적이 있고, 46년 미군 4명에 의한 집단 윤간이 있었다. 이 윤간 사건이 미군으로 인한 최초의 강간사건이 되었고, 미군주둔의 해를 거듭하면서 계속 이어져왔다.
 지난 92년 10월에 있었던 ‘윤금이 사건’을 우리는 너무나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동두천의 미군 클럽에 나가고 있던 ‘윤금이’(26)씨는 부대를 무단 외출한 케네스 마클(20)에 의해 콜라병으로 머리를 얻어맞고 많은 피를 흘린 끝에 사망했다. 그의 국부에는 콜라병이 꽂혀 있었고, 한쪽 다리를 오무린 상태에서 27cm의 우산대가 항문을 관통하고 있었으며 온몸에는 합성세제가 뿌려진 상태였다고 한다.
 주한미군 피해자 중에는 단연 ‘양공주’라고 불리우는 여성들이 많다. 미국은 영원한 우방이라는 한국인의 잘못된 인식이 언제부터인가 자리 잡고부터는 ‘재수가 없었다.’, ‘제 몸을 함부로 내돌린 여자 아니냐.’, 라는 혹독한 말까지 감수하며, 피해를 입고도 침묵할 수밖에 없는 세월을 보내야 했다.
 미군주둔 50년, 이 땅의 수많은 힘없는 여성들의 상처와 수모를 통해 힘없는 민족의 표상을 심어준 역사로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에만 유리한 ‘한미행정협정’>
 주한미군의 지위에 관한 협정인 ‘한미행정협정’이 1951년 제정되었고, 이후 67년과 91년 두 차례에 걸쳐 개정되었다. 그러나 이 ‘한미행정협정’은 미국에만 유리하게 되어있다. 미군이 죄를 저질러도 구속 수사권이 우리한테 없는 것이다. 대원 재판이 끝날 때까지 구속할 수 없고 설령 구속이 됐다 해도 미군측에서 내 놓으라고 하면 내줘야 할 정도로 우리 정부는 힘이 없다. 그러니까 행정적인 처벌은 안되고 기껏해야 민사청구 정도이다. 그것도 시간이 오래 걸려서 미군측에선 ‘법대로 해라’고 큰소리를 치는 게 예사다. 그간 미군범죄에 대한 재판권을 행사는 전체 사건의 0.7%밖에 되지 않는다.
 가재는 게 편이라더니 한국인의 인권을 지켜줘야 할 각 기지 CID(미군범죄수사대)에 파견된 한국 형사는 중간에서 사건을 무마시키는 역할을 하는가 하면 한미행정협정 담당 검사는 한직으로 밀려난 자리로 1년을 못 채우고 자구 바뀌는 통에 전문적인 능력을 익힐 수가 없는 구조이다. 실제로 ‘미군 범죄근절을 위한 운동본부’의 활동에 관해 일선 경찰들은 환영을 하지만 간부들은 비협조적이라고 한다.
 더구나 약 3만 6천명으로 추정되는 주한미군은 주한 미대사 릴리도 인정했듯이 그 중 70%가 성병, 마약 흡연자로 질이 나쁠뿐더러 한국에 배속되기 전에 미국정부가 사전 교육을 시키지 않는 등 문제가 큰 것으로 드러났다.
 김국혜씨를 폭행한 미군의 경우는 배속 첫날 사건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나 한국인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조차 없을뿐더러 아예 무시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 저항할 수도 없는 여성을 그렇게 때렸냐는 질문에 그는 “미국에서는 한국여자들이 다 태권도를 한다고 들었다. 뒤쫓아와 자기를 해칠까봐 완전히 짓이겨 놓자, 죽여 놓자고 생각했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다시, 미국을 바로 보기 위하여>
 이런 상황에서 민간 사회단체들은 지난 92년 윤금이씨 사건때부터 공동대응을 하기 시작, 그 결실로 93년 10월 26일 상설기구인 ‘미군 범죄근절을 위한 운동본부’를 발족하기에 이르렀다. 운동본부 안에는 ‘미군범죄 및 미군기지 실태 조사위원회’,‘한미행정협정 개정위원회’,‘여성인권위원회’,‘국제협력위원회’가 있고 여기에 가장 중심이랄 수 있는 ‘미군범죄 신고센터’가 개설, 미군범죄 및 미군기지 실태조사 위원회 산하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신고센터 관계자는 지난 3월 25일 거리 홍보 이후 5일 동안 3건의 미군범죄 신고가 들어올 정도로 신고센터에 대한 호응이 높다고 한다.
 이제 각 지역별로 11개의 ‘미군범죄 신고센터’가 개설되어 그간 우리 땅에서 미군이 범죄를 저지르고 피해자인 한국인이 재판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는 상황이 많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작성자오숙민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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