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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근이양증, 이제 새로운 희망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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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이양증, 이제 새로운 희망을 향해
고은경 (함께걸음 기자)

<스무살의 소녀의 죽음>
 사랑은 소리없이/ 발자국 소리조차 나지 않고/ 조용 조용 나에게로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조용히 너무나도 조용히/ 다가온 사랑이기에 나는 몰랐습니다./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아주 가까이에 있는 사랑을/ 먼 곳에서만 찾는 나를 보고/ 그 사랑은 기다리다 지쳐/ 내 곁을 떠나버렸습니다.…
 이렇게 애절한 사랑의 노래를 시로 남기고 한 소녀가 죽었다.
 그의 이름은 정연희. 올해 성년식을 마 치른 스무살 소녀의 죽음은 그를 아는 주변 많은 사람을 안타깝게 했다.
 그즈음, 몸무게 27킬로그램의 몹시도 야윈 체구를 갖고 있었던 그는 집 안에서는 앉아서만 생활했고 외출할 때는 누군가가 안아서 휠체어에 앉혀줘야 그나마 거동할 수 있었다. 이불 무게조차 감당할 기운이 없어 겨울에도 이불을 덮고 잠들 수 없었고, 비쩍 마른 다리는 오그라든 채 있었다.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었던 양손가락을 이용해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일기를 쓰고, 컴퓨터 통신을 하고, 그가 소속해 있던 공동체 "잔디네 집"에서 하는 전자출판사업에 동참했다.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근육디스트로피" 또는 "진행성 근이양증"(이하 근이양증)이라고도 불리우는 병이었다. "근육이 점차 약해져서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고, 끝내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는 꼬리표가 붙는 이 병으로 정연희씨 역시 심한 장애에 시달리다 생을 마감했다.
 부산이 고향인 정씨는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 매우 어렸을 때 발병하여 초등학교 때는 목발을 짚고 학교에 다녀야 했다. 18살 때까지는 집에 있다가 92년 10월 근이양증 장애우들이 모여사는 공동체인 "잔디네 집"을 알게 돼 서울로 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였다.
 정씨는 이 장애로 인해 "스무살이 고비"라는 시한부 생을 예고 받기도 했지만 서울에서 2년 동안의 삶은 지난하지만 참으로 열정적이었다. 배우지 못한 한을 풀려고 자원활동자의 도움으로 공부를 시작, 지난 4월에는 중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하였고 그의 재활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컴퓨터를 열심히 익혀 워드프로세서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그뿐이 아니다. 작년 하반기에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서 개설하는 장애우대학 5기 강좌에 등록하여 자원활동자의 도움으로 불편한 몸을 이끌고 빠짐없이 참여하여 공부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얼마나 열심히 살았던지 장애우대학 5기생들의 기억 속에도 잊혀지지 않는 사람으로 아로새겨져 있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언젠가 돈을 많이 벌면 자신 같은 장애우들과 같이 살고 싶다던, 밝고 착하기 그지없었던 정씨는 이미 약속되어 있었던 장애인경진대회에도 참석하지 못하고 8월 22일 새벽 갑자기 찾아온 호흡 곤란으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4일 후인 8월 26일 끝내 숨지고 말았다.
 그는 "저승에서나마 펄쩍펄쩍 뛰어다녀라"는 부모의 한 맺힌 염원대로 강물이 아닌 고향집 뒷산에 흩뿌려졌다. 그를 사랑하는 잔디네 식구들과 많은 친구들의 가슴 속에 아름답고 슬픈 여백을 남긴 채 그렇게 사라졌다.

<한 가족 중 5명이 근이양증>
 "어느 날 갑자기 멀쩡하던 다리에 힘이 빠져 못 걷게 되고, 앉아서만 생활해야 되며, 또 어느 날 아침 누워 있던 몸을 일으키기가 힘들어지는 상황이 온다면, 목욕도 혼자 힘으로 못하고 누군가의 힘을 빌어야 한다면, 그러다가 갑자기 호흡까지 곤란해져서 생명의 위협이 온다면… 이런 장애가 몇 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된다면 어떻겠는가."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이 무서운 장애에 시달리는 사람이 한 가족 중 반수에 이르는 가계가 있다고 하면 믿겠는가.
 성남시 수정구 신흥 2동에 사는 김복자씨(37) 형제의 경우 7남매 중에서 셋째인 복자씨와 넷째인 현숙씨(34), 다섯째인 경숙씨(30) 세 자매가 모두 근이양증이고 복자씨의 큰 아들과 현숙씨의 둘째딸이 또 근이양증이다. 한 가족 중 5명이나 되는 식구가 장애에 시달리고 있어 부모와 형제들에게 충격과 시름을 안겨주고 있다.
 복자씨와 경숙씨는 "에덴의 집"이라는 공동체에서 살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제대로 걷지 못하게 되면서 복자씨는 집에서 하던 부업을 정리하고 경숙씨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갖고 있었던 돈을 모아 3천만원짜리 지하 전셋집을 구해 "에덴의 집"을 마련하였고, 갈 곳 없는 정신지체 장애우들 12명을 데리고 살고 있다.
 "19살에 발병했는데 처음에 특수종합진찰을 받았을 때 병원에서 서른을 넘기지 못한다. 결혼도 못한다고 했어요. 나는 물론이고 다른 형제들과 부모님이 받은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지요. 21살 때 내가 아프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어 결혼을 했어요. 그리고 22살 때 큰 아들 민호를 낳았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농사일도 거들고 집안일도 별 지장없이 할 만치 별로 표시가 나지는 않았지요. 그런데 28살 땐가 막내 진호를 낳고 난 후부터 급격히 진행이 되었습니다."
 복자씨는 큰 아들 민호가 초교 3학년 때 발병하기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갖고 있는 병의 이름도 알지 못했다고 한다. 병원에서는 오히려 애기를 하나 더 낳아 몸조리를 잘하면 나을 수도 있다고 해서 둘째아들을 낳았다. 정말 몸조리를 잘하고 좋은 약을 먹으면 나을 수 있으리라 여겼다.
 몇 년 전 조카가 자원활동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 중 근이양증 장애우 이야기를 해주어서 병명도 알게 되었으며 이런 장애우가 자신분만이 아닌 것을 알았다. 그리고 민호까지 같은 증상이 나타나자 혹시 유전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가졌다. 복자씨는 올해 들어서야 확실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민호까지 이 몹쓸 병에 걸리다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나와 내 동생들이 그렇다는 것까진 견딜 수 있었는데 내 아들까지 이 병으로 시달려야 한다니 참 끔찍했습니다."
 복자씨의 큰 아들 민호는 중학교 3학년까지 다니다가 학교를 중단하였다.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민호는 고입 체력검사를 앞두고 앙상하게 마른 자신의 알몸을 친구들에게 보이기 싫다면서 스스로 학업을 포기했다. 친구들과는 왠지 다른 신체가 못내 부끄러웠던 것이다.
 복자씨는 자신을 가엽게 여겨주는 남편에게 새 삶을 시작하라며 밖으로 떠다밀었다. 아내구실과 엄마구실을 제대로 못하는 자신의 처지가 한스러워 남편을 붙잡아 둘 수가 없었다. 친정어머니에게 민호를 맡기고 자신은 에덴의 집으로 들어왔다.
 경숙씨 역시 복자씨와 마찬가지로 앉아서만 생활할 수 있다. 다리 근육이 위축되어 힘이 없어지고 움직이는 것이 불편하다. 경숙씨는 중학교 다닐 때 아픈 데는 없는데 의자를 머리 위로 올리지 못하고 점점 몸에서 힘이 빠지는 것을 느끼면서 언니 복자씨와 같은 병이라는 것을 알았다.
 병을 고친다고 병원으로 한의원으로 수도 없이 전전하던 언니를 보면서 "언니만 고치면 나도 나을 수 있다."고 여겼을 뿐 무슨 병인지 몰랐다고 한다. 병원에서는 병명도 모르고, 못 고친다고 하였고 한의원에서는 "바람병"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을 뿐이다. 경숙씨는 배에 덩어리가 생겼다는 한의사 말을 듣고 침을 맞은 일이 있는데 한의사가 보름을 침을 놓더니 더 이상 못 고친다고 말하며 중단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중학교까지 졸업한 경숙씨는 장애우 시설과 자립작업장에서 몇 년간 일을 한 경험이 있다.
 "그래도 걸을 수 있었던 25살 때 까진 직장에 다녔습니다. 장애인 자립직업장인 정립전자와 에덴하우스에서 일할 때는 많은 월급을 받지는 못했지만, 장애를 갖고도 일을 한다는 자부심으로 일했지요. 장애인에게 할 일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함께 일하는 공동체를 만들게 되었어요."
 경숙씨는 외출할 때는 자원활동자의 도움을 받아야 가능하다. 될 수 있으면 외출을 하지 않는다. 앙상하게 말라 허약해진 몸에. 감기도 떨어질 날이 없다는 경숙씨는 비록 앉아서 일하고 앉아서 생활하지만 "에덴의 집" 살림을 도맡아서 한다.
 복자씨와 경숙씨는 자신들의 장애 때문에 늘 눈물을 달고 계시는 어머니 생각에 더 가슴이 찢어진다. 복자씨는 바로 밑의 동생인 현숙씨가 아직까진 신랑하고 잘 살고 있고, 현숙씨의 둘째딸이 아직 장애가 심하지 않아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는데 행여 잘못될까 걱정이라고 한숨짓는다.
 두 자매는 서로를 의지하면서 신앙의 힘으로 매일매일을 버티고 있다.

<생소하고 낯선 이름>
 "근육디스트로피(Muscular dystrophy)" "근디스트로피" 또는 "진행성 근이양증(筋異養症)"이라고 불리는 이 병의 정확한 우리말 명칭은 아직 확립되어 있지 않다. "디스트로핀(dystrophine)"이라는 단백질의 결함으로 인해 근육의 이상이 생기는 병 정도로 해석하여 "근육디스트로피"라고도 하나 적합한 명칭은 "진행성 근이양증"이라고 할 수 있다.
 발음하기도 편하지 않은 어색하고 생소한 이 병명으로 시달리는 많은 근이양증 장애우들이 있음에도 비장애우들은 물론이고 당사자들조차도 아직은 낯선 말로 존재한다. 근이양증의 상태나 증상에 대해서는 더더욱 잘 알지 못한다.
 근이양증은 "듀센 형(Duchene Muscular dystrophy : DMD)"과 "백커 형(Becker Muscular dystrophy : BMD)", "안면견갑상완 형", "지대 형(肢帶型)" 등의 여러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가장 많이 발생하는 형태가 "듀쉔 형"이다.
 이 "듀쉔 형"은 주로 남자 어린이에 나타나고 5살 전후에 보행의 이상이 온다. 일어날 때 무릎을 짚고 일어나거나 계단을 오를 때 힘들어하고 점점 배가 앞으로 나오고 허리는 뒤로 젖혀져 걷게 된다. 10살이 지나면 스스로 보행하는 것이 어렵고 척추가 구부러지기 시작하며 앉아 있기 힘들게 되고 17살 전후에는 누워서 생활하게 된다.
 "백커 형"은 듀쉔 형과 증상이 비슷하나 근력이 저하되는 속도는 느리고 남자 아이 중 5살 전후에 발병하여 25살 전후까지 진행된다.
 "안면견박상완 형"은 7살 이후 남녀 모두에게 나타난다. 얼굴에 변화가 먼저 나타나 눈을 감는 것이 불완전하거나 휘파람을 불지 못하게 된다. 상지에서 점점 하지로 진행되지만 진행은 매우 느려 중년을 지나도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없는 경우도 있다. 허리 아래로 장애가 진행되면 보행이 힘들게 되기도 하지만 사람마다 그 증상이 다르다. 수명은 보통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대 형"은 대개 20살 전후에 발병하며 남녀 모두에게 나타난다. 먼저 어깨 주위 근육이나 허벅지 주위 근육의 힘이 약해지는 것으로 시작하여 팔은 얼굴과 머리 높이로 올리기가 힘들고 앉았다. 일어나거나 계단을 오르기가 힘들다. 진행은 비교적 느리지만 30∼40살 이후에는 운동기능장애가 나타난다. 이 외에도 팔과 다리에서 끝부분만 힘이 빠지는 형, 눈꺼풀이 아래로 내려오거나 안구운동에 관계되는 근육에 발생하는 형태도 있다.

<제일병원, 유전 경로 밝혀내>
 근이양증에 대한 형태는 이렇게 여러 가지로 나눌 수 있지만 실제로 이 장애를 갖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유형이나 증상에 대해 정확한 진단을 통한 바른 인식을 갖고 있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무지"이다.
 어렸을 때 발병했다손 치더라도 별다른 통증이 없고 한 순간에 급작스럽게 신체변화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괜찮겠지" 하고 지나가거나 여러 병원에 한의원을 전전하면서 이 약 저 약을 복용해보고 끝내는 포기해버리고 마는 경우가 허다하다. 끝내 무슨 병인지, 어떻게 해서 장애가 생기는지도 모르고 채 그저 하루하루를 숨죽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더욱 큰 문제는 정확한 진단을 해주는 전문병원이 없다는 점이다. 그저 근육에 이상이 있다거나, 어떤 경우는 불치병이다. 라는 말로만 지나치는 병원이 태반이어서 자신의 병명조차 모르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다.
 어릴 때부터 진행이 된 장애우의 경우는 학교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이 많아 자신의 장애에 대한 무지를 한층 더 가속시키는 결과를 빚고 있다.
 "우리 집의 경우 누님이 올해 45세에, 어머니가 55세에 돌아가셨고 내가 28살에 발병했는데도 잘 몰랐습니다. 한참 진행된 후 병원에서 못고친다고 했을 때 무척 괴로웠지만, 계속 절망 속에 빠져 있을 수만은 없었어요. 그저 움직이는데 불편할 뿐이다. 라고 생각하고 "장애"라는 생각은 안 가지려 노력했어요."
 올해 38살인 이삼열씨는 자신의 장애 때문에 끝내 아내가 가출하고 두 아들도 동생집에 맡겨 놓은 상태지만, "자신을 지탱시키는 것은 살아 있는 동안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희망 하나."라고 덧붙인다. "조금이라도 더 움직일 수 있을 때 하나라도 더 배우고 깨우치고 싶다."며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근이양증은 유전이다."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들 장애우들은 더 깊숙이 숨어버렸고, 가정파탄의 비극을 몰고 오는 경우가 생기면서 더더욱 밝히기를 꺼려하는 추세가 되어버렸다.
 그러니까 근이양증을 갖고 있는 장애우들의 경우 장애로 인한 아픔, 가정파탄, 경제력 상실 등에 가정과 사회로부터 당하는 편견과 소외까지 겹쳐 이중삼중의 고통속에 허덕이는 것이다.
 본인 역시 근이양증 장애우이면서 많은 근이양증 장애우들을 찾아내고 "잔디네 집" 공동체를 만들어 함께 살고 있는 "한국 근육디스트로피 협회" 정철영 부회장은 "이제 "유전"이라는 잉유로 아픔을 겪는 장애우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언제까지 숨겨진 채로 있을 수는 없다."고 말하면서 "이 장애를 사회 속에 알리고 유전의 경로를 밝혀내는 등 의학적인 원인이 정확히 규명되어 하루속히 적절한 예방과 치료방법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근이양증을 갖고 있는 자식을 두 부모의 경우 그 마음의 고통이라는 것은 헤아릴 수 없이 큰 것이다. 영동세브란스병원 재활의학과에 설치되어 있는 근육클리닉에는 약 4백 80여명의 근이양증 장애우들이 회원으로 등록, 매월 한차례씩 그룹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이들 중 반 수 이상이 듀쉔 형의 남자어린이들이다.
 이곳에서 장애아들의 물리치료를 담당하는 한 의사는 "부모들과의 상담을 통해 보인자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어머니들이 얼마나 큰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는가를 뼈저리게 느낀다."면서 "이제야말로 이 장애를 사회적으로 알려서 교육, 재활 등의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근이양증 장애아들이 가족으로부터 또 시설로부터도 버려져 갈 곳이 없는 경우도 있으며, 혼자서는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아이들의 생존권도 심각하게 고려해야 된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최근 제일병원 유전학역누실에서는 진행성 근이양증의 형태 중 가장 발생빈도가 높은 "듀센 형(Duchene Muscular dystrophy : DMD)"과 "백커 형(Becker Muscular dystrophy : BMD)"으로 의심되는 14가계의 유전자 진단에 대한 중간 연구결과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이 보고서를 발표한 최수경 유전학연구실장은 "빠르면 5년 늦어도 10년 이내에는 예방·치료방법이 개발 될 것"이라고 전망해 근이양증 장애우들에게 큰 희망을 안겨주고 있다.
 지난 91년 처음 실시된 이 실험은 듀쉔·백커 형으로 의심되는 환자와 그 가족 14가계를 대상으로 유전자 진단을 시작하였다. 다소 까다롭고 복잡하지만 근이양증의 원인이 되는 "디스트로핀"이라는 단백질의 위치와 상태를 알아내어 유전경로를 밝히는 데 진일보한 성과를 얻어냈다.
 현재 진행된 1차 실험결과와 함께 2차 3차 실험까지 한다면 예방과 치료에 대한 괄목할 만한 연구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전망된다.

<이제 희망을 향해>
 올해 24살인 오수미씨는 두 손을 짚고 겨우 일어서고, 혼자서 계단을 자유자재로 오르내리지 못하지만 장애우들과 비장애우가 함께하는 독서모임인 동아리 "상록수 독서회" 회장 일을 맡아 열심이다. 회지도 만들고 작품집도 손수 만드는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산다고 했다. "육체 때문에 정신까지 죽일 수 없고, 육체는 나약하지만 정신만은 꿈꾸며 산다."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오수미씨뿐만이 아니다. 취재 중 만난 많은 근이양증 장애우들은 하나같이 밝고 맑았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 어떤 것도 체념하지 않고 열심히 살고 있었다. 두 손을 못 써 입으로 그림을 그리는가 하면 누워서 왼쪽 손가락으로 억지로 글씨를 쓰기도 하고, 손가락 하나라도 움직일 수 있으면 컴퓨터 자판을 두들겼다. 그리고 굳건한 신앙의 힘으로 즐겁고 의미있게 살아내고 있었다. 죽음의 비애가 아닌 삶의 환희가 그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과 다른 이웃의 아픔을 오히려 고민하고 있었다.
 마을 어귀에 서 있는/ 한 그루 나무가 되고 싶소/ 거친 비바람 막고 서 있는/ 나무가 되고 싶소/ 산 넘고 물 건너는/ 한 줄기 바람이 되고 싶소/ 가진 것 다 주고도/ 울지 않는 나뭇가지 잎 사이로/ 넘나들며 위로하는/ 바람이 되고 싶소 (근이양증 장애우이면서 구족화가이기도 한 김영수씨의 시 "나무와 바람")


인터뷰
"늦어도 10년 이내에 예방과 치료 가능합니다."
제일병원 유전학연구실 최수경 실장

 - "진행성 근이양증"이란 정확히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있나.
 = "진행성 근이양증"은 골격근의 변성(變性), 괴사(塊死)를 주병변(主病變)으로 하며, 진행성으로 근육의 영양분이 빠져나가는 유전질환이다. 다시 말하면 진행성으로 근육이 약화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주요 신경근육질환이다.
 - 우리나라에 몇 명 정도 있다고 보나.
 = 보통 근이양증은 3천 5백명 중 1명꼴로 신생아에 발생한다고 보면 된다. 그렇게 볼 때 우리나라는 약 1만명 정도라고 추산할 수 있다.
 - 진행성 근이양증의 정확한 원인은.
 = 원인은 한마디로 말하면 유전이라고 할 수 있다. 유전인데 왜 발생하는지를 현재 모를 뿐이다. 근이양증으로 연구된 형태는 약 20여가지 정도 된다. 그 중 가장 많고 일반적인 유형이 바로 "듀쉔 형"과 "백커 형"이다.
 - 발생빈도율이 60% 정도 된다는 "듀쉔 형"과 "백커 형"에 대해 그동안 연구된 것을 말해 달라.
 = 전문의학적인 이야긴데, 듀쉔 형은 X염색체의 단완(短腕) 21 부분에 위치하고 있다. 이 유전자는 "디스토로핀"이라는 단백질을 갖고 있는데 이 단백질이 없거나 결함을 일으키는 경우 근이양증이 된다. 조직 생검(生檢) 검사를 하면 이 디스트로핀이 선(線)으로 보인다. 이 선이 선명하게 보이면 정상이고, 선이 보이지 않으면 듀쉔 형, 약하게 보이면 백커 형이라고 할 수 있다.
 - X염색체라면 모체(母體)를 통해서만 유전되나.
 = 이 질환은 모체를 통하여 유전되는 반성(半性) 열성(劣性) 유전병이기도 하지만 30∼40%는 어머니가 정상이어도 당대의 돌연변이로 발생되기도 한다.
 - 듀쉔·백커 형으로 의심되는 14가계(家系)를 추출하여 유전자 진단에 대한 연구를 했다고 들었는데, 연구 목적은 무엇인가.
 = 현재 유전병은 치료가 안된다. 그렇기 때문에 건강하게 보이는 환자 가계의 여자 보인자(保因子)를 찾아내는 일과 그 가계의 유전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보인자 여부가 판명되면 앞으로 산전 진단을 하여 환자의 출생을 막을 수 있다. 우선 이것을 1차목표로 두었다.
 - 연구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그 과정을 설명해 달라.
 = 그동안 근이양증 환자의 유전자 진단은 외국에서도 60% 내외 정도의 진단만이 가능하였다. 국내에서는 거의 유전자 진단이 시행되지 못했다. 최근 분자 유전적, 생물학적 기술과 학문이 발달함에 따라 또 유전 질환자가 발견됨에 따라 외국에서도 진단과 치료에 대한 연구가 한창이다. 제일병원 유전학연구실에서는 미국과 일본의 유전학연구실과 공동으로 지금 실험을 진행 중에 있다.
 우리는 지난 몇 년 동안 잔디네 집의 협조로 듀쉔·백커 형으로 의심되는 환자와 그 가족을 대상으로 유전자 진단을 시작하였다. 처음 실험할 때는 14가계로 했고 다음은 10가계를 했는데 현재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 실험결과에 대해서 설명해 줄 수 있는가.
 = 우선 1차 실험에서 14가계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3가계에서 돌연변이 유전자 위치를 찾아냈다. 앞으로 이 3가계의 여자들의 보인자 여부는 곧 판명될 것이다. 이 돌연변이 유전자가 밝혀진 이상 3가계는 사전에 환자의 출생을 예방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나머지 가계는 단계적으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나오리라 기대된다.
 진단을 가장 정확히 하려면 이 근육이양증과 관계된 유전자가 만들어낸 디스트로핀이라는 단백질이 근육 내에 존재하는지 안하는지의 확인을 위한 근육생검 검사가 반드시 진행되어야 한다. 그러면 빠른 시일 내에 정확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많은 환자와 가족들의 협조가 된다면 빠른 시일 내에 많은 환자와 그 가족의 유전자 진단이 가능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 이 실험의 의미와 어려운 점은.
 = "디스트로핀"이라는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는 실제 X염색체의 1% 전체 유전자양의 0.1%를 차지하여, 사람과 관련된 가장 큰 질환유전자이다. 그러므로 이 큰 유전자 중 어느 부분에 이상이 생겨 질환이 발생하는지를 밝혀내는 연구단계는 매우 복잡하다. 그러나 디스트로핀을 발견한 점과 근조직의 분포양식에 대한 연구보고는 엄청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산전 진단과 보인자 진단을 통한 예방책을 세울 수 있기 때문에 유전자 진단 기술의 진일보라고 할 만하다.
 국내에서 독자적으로 개발하는 것에는 많은 어려움과 한계가 뒤따른다. 실험도구나 임상진단 등 정확한 근거가 있어야 가능한데, 아직까지 국내기술로는 힘들다. 유전질환 중 가장 접근하기 어렵다. 그런 만큼 연구비나 연구원에 대한 지원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지원체계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 앞으로 남은 일과 과제는.
 = 이제 겨우 기본적인 1차 실험을 했을 분이다. 약 60%정도 밝혀냈다고 할 수 있는데 2차 3차 실험이라는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나머지 40%도 밝힐 수 있다. 국내에서는 아직 유전자 검사가 원활하게 잘 진행되고 있는 곳이 없는 편이다. 돌연변이의 가능성이 30%나 되기 때문에 한 가계의 정확한 진단과 검사가 필요한데, 참으로 어려운 문제이다.
 - 외국의 경우는 어떠한가.
 = 외국도 최근 들어서야 활발해졌다. 외국의 경우는 현재 진단과 함께 치료에도 많은 열을 올리고 있다. 우리도 함께 발맞추어 나가면 늦어도 10년 이내에는 예방·치료책이 개발되리라고 본다.
 - 처음에 어떻게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나.
 = 제일병원이 산부인과로 유명하다 보니 산전진단에 많은 관심을 쏟았고, 이사장님의 권유로 잔디네를 알게 되어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 환자 가족들이 실험대상이 되기를 거부해 샘플을 찾는데 어려움이 있었고, 대부분 움직이지 못하는 장애인들이라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검사를 해야했다. 반드시 원인을 규명하고 예방을 해야 하는 병이라는 절박함이 있었고, 반드시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사명감도 생겼다. 이제 나머지 연구에 최선을 다하는 일만 남았다. 협조해 준 많은 장애인들의 기대와 희망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작성자고은경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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