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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 사랑해 주세요"

방화 2종합사회복지관, "해냄 가족회" 프로그램으로 가족치료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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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화 2종합사회복지관에서는 1년 단위 총 30여 차례에 걸쳐 장애아를 둔 집단 가족치료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나 때문에 우리 가족 다투는 건 싫어요.">
 지난 11월 13일 목동 청소년회관에서는 매우 주목할 만한 연극이 한 편 올려졌다. 방화 2종합사회복지관(관장 오수숙)이 "정신지체아 가정의 가족 기능 향상을 위한 집단가족치료 프로그램"의 하나로 마련한 이 작품은 "나 때문에 우리 가족 다투는 건 싫어요."라는 제목으로 장애아를 둔 가족의 적응단계를 그린 "주제연극"이었다.

 전문 희곡작가가 대본을 쓰고 "작은 신화"라는 기성 극단이 참가하여 폭넓은 연기와 세심한 무대장치, 세련된 연출로 무대를 더욱 돋보이게 한 점도 큰 호응을 받았지만, "가족치료"에 주안점을 둔 만큼 가족구성원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연극을 통해서 더욱 더 다각적인 입장에서 볼 수 있어 치료의 효과를 꾀할 수 있다는 점에 더 큰 의미가 있었다.

 이번 주제연극의 모델은 정신지체와 자폐증 아이가 있는 두 가정. 아이의 성장과정에서 나타나는 또래 아이들과의 문제, 교육문제, 가족관계 등에서 나타나는 아버지, 어머니, 형제들의 각각 다른 태도를 비교적 생생하게 보여주며 그 가운데서 가족들이 겪는 충격, 부정, 수치, 죄책감, 질투, 배척과 과잉보호, 적응과 조화 등의 장애아동을 가진 부모의 심리적응단계를 잘 묘사하였다.

 승호는 15살로 정신지체 장애를 갖고 있다. 늘 집안에 있고 세발자전거를 갖고 논다. 승호의 아버지는 일용노동자이고 어머니는 파출부 일을 한다. 승호 아버지는 늘 술에 취해 있고,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큰 아들 종호에게만 애정과 기대를 보인다. 승호 어머니는 승호의 장애를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며 죄책감에 사로잡혀 기를 펴지 못 한다. 종호는 동생 승호가 장애를 갖고 있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공부대신 음악에 심취하는 등 집안환경에 늘 불만을 갖고 있다.

동생 진희만이 외롭고 착한 오빠 승호를 보살펴주고 안타까워한다.
 미연이는 13살로 자폐아다. 항상 종이를 찢는 행동을 되풀이하는 등 산만하다. 미연이 아버지는 회사원이다. 집안이 어지럽혀져 있고, 소리를 잘 질러대는 미연이를 배척하고, 아내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려 한다. 미연이 어머니는 미연이를 데리고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며 어떡해든 고쳐보려고 하지만 허탕이다. 딸의 장애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 다른 이웃 엄마들에게 경쟁심을 갖고 있고, 언젠가는 "정상"으로 되돌아올 것이라는 환상을 갖고 있다.

 연극내용은 아주 담담했다. 어설프게 가족관계를 미화하려 하지 않았고, 가족이 겪는 갈등과 아픔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는 노력이 역력했다. 연극 속의 두 가족 이야기는 아이의 장애로 인해 가족이 겪는 아주 일반적인 현상의 한 편린일 뿐이다.

 장애의 유형과 증상이 아이마다 다르고 가정과 주변환경에 따라 가족들이 겪는 애환의 차이는 있지만 장애아로 인한 갈등과 아픔은 공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아픔을 더 이상 감추지 않고 드러내서 가족이 함께 극복해나가는 방법을 모색, 건강한 치유 과정을 보였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고 보여진다.

<"해냄 가족회"로 실험하는 집단가족치료>

 방화 2종합사회복지관이 있는 강서구 방화동 택지개발 단지 내 영구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는 생활보호대상자는 총 1천 5백여세대, 이중등록 장애우만 해도 약 4백 50명에 이른다. 방화복지관은 이들 저소득층 가구를 위해 "재가 복지봉사센터"를 운영, 자원봉사자 파견을 통한 가사·간병·의료봉사사업을 벌이고 결연사업을 통한 경제적 지원도 제공하고 있다. 또한 재가복지 사업의 일환으로 지역 내 정신지체아를 둔 가정의 가족 기능 향상을 위해 "집단가족치료실"을 운영하고 있다.

 "93년 11월, 복지관 개관 이후 지역 내의 정신지체아를 자녀로 둔 어머니들의 방문을 여러차례 받게 되었습니다.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집에 입소할 수 없느냐는 요청을 여러 번 받으면서 지역조사를 실시하였습니다. 2단지에만 정신지체 아동이 20여명이나 되었고, 이들 가족들은 대부분 아이의 장애를 수용하는 데 따르는 심리적인 고충과 아이에 대한 보호능력의 한계를 호소해왔습니다. 장애아를 자녀로 둔 어머니들의 안타까운 호소가 이 가족치료에 관한 프로그램을 실시하는데 동기가 되었어요."

 방화복지관 사회복지사 현숙씨(29)는 "장애우 관련 프로그램 중에서도 가족에 대한 접근은 매우 어렵다는 것을 타 복지관의 예에서 보아왔다."고 말하며, "성패를 떠나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에 충실한 계획과 조심스런 추진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방화복지관은 우선 관할 동사무소의 협조를 얻어 지역 내 장애아동이 있는 가정의 현황을 파악하고 가정방분을 실시하였다. 94년 4월 초, 14가정을 방문하여 기초 욕구조사와 가족 부담도를 조사한 결과 가족부담도가 매우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이번에 선정된 14가정은 부모 모두가 있는 가정으로 자녀의 장애는 다운증후군이 3명, 뇌성마비가 4명, 단순정신지체가 5명, 자폐가 2명이다. 연령은 대체로 11살부터 13살까지로 특수학교에 다니는 아이도 있고, 일반학교의 특수학급에 다니는 아이도 있다. 또 신변처리도 어려운 중증장애아 3명은 집에 있으며 취학기회를 놓친 아이 중 한 명은 재활원부설학교에 다니고 있다.

 4월 23일, 첫 번째 가족모임에서는 "우리는 왜 모였나."라는 주제로 복지관 관계자들과 부모들이 한 자리에 모여 공통의 문제의식을 이끌어내고 가족모임을 통한 가족치료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혀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모임이 "해냄 가족회"다. 명칭을 "해냄 가족회"라고 정한 복지관은 5월에서 7월까지 석 달 동안 약 1년여에 걸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개발 가족 진단에 들어갔다. 지난 9월 첫 프로그램 실시에 들어간 이 가족치료 프로그램은 내년 8월까지 총 30여회에 걸쳐 진행된다.

<1년 단위 총 30여 차례에 걸친 프로그램 진행>

 "우리도 해낼 수 있다."는 의미로 "해냄 가족회"로 명칭을 정한 이 모임은 매우 여러 모양의 집단 모임을 갖고 있다. "아버지 모임" "어머니 모임" "형제 모임" "부부 모임" "부모자녀 모임"으로 나누어 각각의 모임에 따른 적절한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올해 9월부터 11월까지 실시된 프로그램은 모두 6차례. 문서상 계획된 것은 6차례지만 이 프로그램이 실제 진행된 횟수는 총 11차례정도 된다.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실무자이기도 한 현숙씨는 "이 프로그램의 주안점은 가족갈등 해소와 가족응집력 강화, 상호지지도 강화, 문제 대응능력 강화로 크게 나눌 수 있으며 이 목표를 위한 참여방법은 매우 다양하다."고 소개 했다.

 "엄마, 사랑해 주세요." "아빠, 사랑해 주세요." "형, 사랑해 주세요."로 마련된 어머니 모임, 아버지 모임, 형제 모임에서는 모인 사람끼리 2인 1조가 되어 서로 소개해 주기도 하고, 서로 둥글게 모여 앉아 "우리 가족의 어제와 오늘 내일"에 관한 토의도 했다. 형제모임에서는 장애아와 비장애아 형제가 함께 하는 지역사회 탐험 프로그램을 마련, 인근 동사무소와 수퍼마켓, 등지를 함께 다니며 지역사회를 익히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또한 부부모임에서는 부부의 상호역할 이해 및 바람직한 부부상 모색을 위한 "우리 서로 이해해요."라는 주제의 이야기모임이 진행되어 부부의 의사소통과 공감대 형성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기도 했다.
 "어머니들이 적극적이어서 어머니 모임은 아주 잘 되는 편이고, 형제들도 비교적 마음을 열고 참여하는 편인데 아버지 모임은 아직 저조한 편"이라고 지적하는 현숙씨는 "가족의 욕구가 모두 달라 조화를 이루는 것이 매우 힘들다."고 설명했다.

 이번 주제연극과 함께 곧 있을 가족역할극에 이르기까지 "사랑해 주세요."라는 주제로 마련된 갈등 해소 프로그램에 이어 앞으로 가족 응집력 프로그램으로는 가족영화 상영, 가족 편지 발표회, 가족 조각 및 공동작품 발표, 가족야유회, 가족한마당 등이 진행될 예정이다. 또한 상호지지도 강화 프로그램으로는 사례발표와 위기상황 토론 등을 마련할 예정이며, 문제대응능력 프로그램으로는 "우리 아이 어떻게 키워야 하나."를 주제로 8차례에 걸친 특강이 진행되며, 형제 캠프와 외출동행 프로그램도 다채롭게 진행될 예정이다.

 이 프로그램에는 사회사업가와 가족치료 전문가, 소아정신과 전문의, 특수교육 전문가, 재활의학 전문가 등이 참여하여 더욱 전문적이고 효과적인 치료활동을 꾀하고 있다.

<"부모운동"의 활성화도 제기>

 연극이 끝난 후 해냄가족회 식구들과 연극에 참여한 극단 식구들, 또 이날 특별히 초대된 전문가들이 함께 하는 토론회가 마련되어, 주제연극에 대한 느낀 점을 발표하고, 전문가들의 조언도 들었다.

 이대 특수교육과 강사인 최진희씨는 "청소년기는 자아형성에 있어 매우 중요한 시기이며, 장애아 형제를 통해 매우 일찍 성숙하기도 하고, 문제아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며, "부모가 어렸을 때부터 장애형제에 대한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며 이해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성광학교 황의경 교장은 "장애아의 의료나 교육, 직업문제에 이르기까지 제반 복지서비스를 제대로 받기 위해서는 부모가 장애우 권리 운동을 펼쳐야 하며 바로 지금부터 부모가 나서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복지관 측은 "이 프로그램이 한 번 하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1년 후에는 자치적으로 굴러갈 수만 있다면 성공"이라며 그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어쨌든 지역의 종합사회복지관에서 장애우 관련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또 매우 심각하고 시급한 가족 치료에 대한 접근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지 않은 의미를 시사하는 것은 분명하다.

<어느 어머니의 독백>

 "나의 아들 딸 재민아, 영훈아, 미진아, 진수야, 미라야, 영후야, 우진아, 성수야, 화영아, 광일아, 승현아, 민우야, 병근아, 승정아!
 엄마는 너를 임신했을 때 건강한 아이를 원했지. 니가 태어났을 때 엄마와 아빠는 무척 많은 기대를 했었단다. 그러나 니가 장애아임을 처음 알았을 때 엄마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깜깜하고 암담한 충격을 받았단다. 그리고 설마 내 아이가 그런 장애를 가질까 하는 거부와 부정의 맘으로 너를 병원, 한의원, 교회, 절, 재활원, 갖가지 치료센터 등 안가 본 곳이 없단다.

 성장하는 너를 보면서 엄마는 때로는 타인에게 너를 부끄럽고 수치스러워하면서 너를 집에만 가두기도 하고, 때로는 너의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키워야 할지 암담하고 화가 나서 너를 다른 곳으로 보낼 수만 있다면 보내고 싶었단다.

 엄마는 때때로 너를 보면서 누군가에게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고통을 받나 하는 원망도 했고, 네 또래의 다른 집 아이들을 보면서 질투의 맘과 열등감으로 고통받을 때도 있었단다.

 그리고 때론 엄마의 어떤 잘못이나 죄 값 때문에 니가 장애를 입은 것으로 생각되어 죄책감에 사로잡히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니가 왜 그리 측은해 보이는지…

 그래서 어떤 땐 널 과잉보호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지치면 널 지독히 미워하고 배척하기도 하지. 엄마는 너를 업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너에게 어떤 변화를 기대했단다. 차츰 무거워지는 너를 느끼면서 엄마는 니가 학교는 갈 수 있는지, 교육은 받을 수 있는지, 누군가 너에게도 친구가 되어 줄 수 있는지 걱정되었고, 10대를 넘어서는 너의 신체적 변화를 보면서 마냥 아이로 남아 있는 너의 미래를 어떻게 준비해 주어야 하는지, 니가 취업을 해서 너의 밥벌이는 할 수 있을지,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릴 수는 있는지, 때론 아득히 숨이 막히고, 때론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고 있단다.

 우리 가족이 너로 인하여 다투고 미워할 때 사람들은 니가 아무 걱정도 없고, 아무 것도 모른다고 하지만 엄마는 니 눈 속의 두려움을 느낀단다.
 그래도 엄마와 아빠는 부모가 살아 있는 동안은 어떻게든 너에게 큰 나무가 되어 줄 수 있겠지만 엄마와 아빠가 이 세상을 떠나면 누가 너의 곁에 부는 비바람을 막아주고 누가 너에게 살아갈 열매를 줄 수 있을지, 인간이 할 수만 있는 일이라면 너를 끝까지 지켜주고 싶구나.

 엄마는 언젠가 한번은 너에게 엄마의 고통을 숨기지 않고 솔직히 말해주고 싶었어. 그리고 그런 고통속에서도 너로 인하여 엄마가 얼마나 엄마의 인생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알려주고 싶었고…

 끝으로 너에게 곡 한 가지 알려주고 싶은 것이 있어. 때론 엄마는 너로 인한 혼란과 위기의식으로 고통받지만 동시에 너의 존재를 인식하면서 누구에게도 맘 아프지 않게 하겠다는 다짐과 우리의 무사한 일상의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하며 그 자체가 기적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아빠도 말은 하지 않지만 나와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기억해주기 바란다."

 해냄가족회 아이들 얼굴이 슬라이드 화면으로 비쳐지면서 읽혀진 연극마지막 장면 어느 엄마의 독백이다.

작성자고은경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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