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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병우 박사와 맹인 부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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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3월 타계한 공병우 박사를 사람들은 한글학자와 저명한 안과의사로 기억한다. 그가 생전에 시각장애우들을 위한 복지사업에 헌신했다는 사실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는 1959년 서울 천호동에 맹인 부흥원을 설립해서 82년까지 이 원을 운영하며 많은 시각장애우들에게 빛을 찾아줬다.

 그의 이런 업적을 기리기 위해 국제교육재활교육재단 주관으로 7월 11일부터 13일까지 서울에서 열리는 제 4회 장애인 교육재활국제학술 대회 중에 서울 강동구에 있는 옛 맹인 부흥원자리 공안과에서는 "고 공병우 박사 추모 시각장애 재활 지도자 세미나"가 열린다. 이 행사를 계기로 고 공병우 박사와 시각장애우들과의 얽힌 얘기를 공병우 박사의 자서전과 시각장애우들의 회고를 중심으로 알아보았다.


사재 털어 부흥원 설립

 고 공병우 박사는 맹인 부흥원 설립 외에도 70년대 초반에 국내 최초로 점자 타자기를 개발했고, 1980년대 후반에는 한 손만 쓸 수 있는 장애우를 위한 매킨토시용 "한 손 한글 쓰기 소프트웨어"를 개발했으며, 서울 명일동에 있는 청각장애우 복지시설 우성원 전신인 구화학교에 땅 1천평을 기증하는 등 생전에 여러 가지 장애우 복지 사업을 펼쳤다. 그런데 그의 이런 장애우 복지사업 중에서 단연 눈길을 끈 것은 맹인 부흥원 설립이다. 그가 맹인 부흥원을 설립한 당시인, 1959년 우리나라에는 맹학교를 제외하고는 변변한 시각장애우재활기관이 없었다. 그런 실정에서 공 박사의 부흥원 설립은 많은 시각장애우들에게서 환영을 받았다.

 고 공병우 박사의 자서전 "나는 내 식대로 살아왔다"에 따르면 그가 맹인 부흥원을 설립하게 된 것은 1953년 미국 유학 중 재활의학에 눈을 뜨게 된 게 계기가 대었다.

 그는 자서전에서 이 부분을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1953년 a 처음으로 미국에 갔을 때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여러 가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것이 시각장애우에게 희망을 주는 재활의학이었다. 나는 솔직히 말해서 그때까지는 눈 치료만 할 줄 아는 안과의사에 불과했다. 일단 치료할 수 없는 환자에게는 손을 툭툭 털고 실명선언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나는 미국에서 실명자에게 베푸는 각종 재활 프로그램에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나는 눈 먼 환자에 대해 너무 무지했으며, 마치 무슨 큰 죄를 저지른 사람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미국에서 재활의학에 눈을 뜨게 된 나는 그제사 속죄하는 마음으로 내 재산을 다 처분해서라도 시각장애우들에게 희망을 안겨 주는 일을 하겠다고 결심을 하고 귀국했다. 귀국한 다음 나는 곧바로 서울 광나루 건너에 있는 천호동에 2천여평 대지를 마련하고 맹인 부흥원을 설립했다.

여기서는 점자 타자기와 한글 타자기 등을 가르치면서 시각장애우들이 일반인들과 같은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훈련장을 계획하였다. 눈 먼 사람은 으레 밤에 피리를 불며 골목길을 누비고 다니는 안마서 노릇밖에는 못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회 통념을 깨기 위한 것이었다. 시각장애우들이 사회에 나가서 당당한 일꾼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 보겠다는 것이 내 꿈이었다." 

직업교육 대신 생활훈련 시켜

 그의 이런 생각대로 부흥원은 시각장애우들에게 직업 교육을 실시하는 대신 생활훈련에 더 치중했다. 당시 맹인 부흥원에서 생활했던 시각정애우들의 회고에 따르면 실제로 공 박사는 맹인 부흥원을 운영하면서 안마나 침술업을 가르치지 않고 대신 타자 치기, 벽돌 찍기, 새끼 꼬기, 밭농사 짓기 등 감각훈련이나 일상 생활훈련을 통해 시각장애우들이 사회에서 어려움 없이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더 중점을 두고 맹인 부흥원을 운영했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시각장애우들의 자립심을 키워 주기 위해 원 운영도 전적으로 시각장애우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단지 도와주는 사람으로 역할을 한정 지었다고 한다.

 이번 세미나 주제 발표자이기도 한 전재경 박사는 공 박사의 이러한 원 운영 방침을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공 박사는 첫째 원생들의 평소 생활에 관하여 특별한 지시를 한 일이 없었다. 원생들이 스스로 자기 자신을 돌보고, 다른 원생들과 협조하여 독립적 생활을 하기를 기대한 것이다. 그리고 공박사는 원생들에게 주거지와 주식을 제공하였지만 동시에 그들과 의무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원치 않았다.

공박사는 자신이 원조자요, 보호자이면서도 그것을 부인하고 아무 관계도 아닌 듯 행동했다. 1959년 여름부터 1982년 10월까지 공 박사는 맹인 부흥원을 운영하기 위해 거의 7억원을 들였다고 생각된다. 내가 알기에는 그 기간 동안 공 박사는 한 번도 인정받기를 원하거나 부흥원 운영에 얼마가 들었다고 언급한 일이 없다.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을 때까지 그는 맹인 부흥원을 꾸려 나갔던 것이다.
 
시각장애우 지도자 여럿 배출

 1959년 몬을 열어 1982년 10월 운영난으로 문을 닫기까지 공병우 박사가 설립한 맹인 부흥원은 많은 시각장애우 지도자들을 배출해 냈다. 맹인 부흥원을 거친 시각장애우들 중 대표적인 인물로는 국제교육재활교류재단 회장이며 교육학 박사인 강영우 박사, 재미 철학박사인 전재경 씨, 그리고 실로암 안과병원 원장인 김선태 목사가 꼽힌다.

 그 중 강영우 박사는 부흥원 시절을 다음과 같이 회고 하고 있다.
 "1962년 1월, 맹인 부흥원에 가서 점자와 타자를 배울 수 있었다. 학생은 나를 포함해 8명이었다. 맹인 부흥원에 들어가자마자 열심히 한글타자와 한글 점자를 쓰기, 읽기를 연습하였다. 한 달이 지나자 한글 타자로 편지를 쓸 수 있게 되었으며, 점자도 속도는 느리지만 쓸 수 있게 되었다. 실명하면 영영 글을 못 쓰게 될 줄 알았는데, 한 달도 못 되어 한글 타자로 편지를 쓰고 회신을 받고 보니 자신감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맹인 부흥원에서 얻은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나는 시각장애우가 되어 자아에 큰 손상을 입어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공병우 박사는 가끔 원을 방문해 원생이 지은 식사를 우리와 함께 먹고 오락도 즐기는 것이었다. 그 모습은 시각장애우를 하나의 인간으로 취급해 주는 것이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무척이나 고맙게 느껴졌으며, 내 자신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느끼는데 더 도움이 되었다. 나는 부흥원에서 기초 재활에 필수적인 한글 타자기 사용법과 점자쓰기를 배워 그해 3월 서울 맹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맹인 부흥원은 1971년에 한국맹인재활센터로 이름을 바꿔 계속 존재했다. 그러다가 시각장애우들을 위한 기관이 여기저기 생기고 전적으로 공 박사 개인의 부담으로 운영되던 원이 운영난에 봉착하면서 82년 10월 문을 닫게 된다. 일단 부흥원 문은 닫았지만 공 박사는 시각장애우 재활 사업을 포기하지 않았다.

 타계하기 전 마지막 공병우 박사의 소망은 시각장애우 재활센터를 다시 재건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서전에서 "시각장애우 재활센터를 재건해서 여생을 이들의 재활을 위해 바칠 생각이다. 전에는 재활프로그램을 짰었지만 이번에는 주로 컴퓨터 교육으로 이들의 재활을 도울 생각이다."고 밝히고 있다. 비록 공병우 박사의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시각장애우 복지사업이 일천했던 1960년대, 그가 맹인 부흥원을 중심으로 한 역할은 잊혀지지 않고 두고두고 시각장애우들 가슴에 남아 있을 것이다.

작성자이태곤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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