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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이것이 문제다] 표류하는 장애우 종합복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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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말 첫삽질 뒤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공사가 중단됐던 "성동장애인종합복지관"이 최근 "성동종합사회복지관"으로 슬그머니 이름을 바꾼 채 새롭게 공사를 시작했다.
  주민들의 반대를 실력으로 저지하면서까지 공사를 강행하고 있는 "성동종합복지관" 사태는 용도 변경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장애우 단체의 강력한 반발로 새로운 불씨가 일고 있다.
  표류하는 "성동장애인종합복지관" 과연 어디에 닻을 내릴 것인가.

<철거깡패까지 동원해(?)>
  지난 6월 25일 낮 12시경 성동구 마장동 527번지 청계천 9가 일대 10차선 도로는 때아닌 주민들의 도로점거로 차들이 뒤엉켜 아수라장을 이루고 있었다.
  성동장애인종합복지관 터에 6개월여 만에 다시 포크레인이 등장해 땅을 파대기 시작하자 지난해 11월의 승리(?)를 기억하고 있는 30여명의 주민들이 또다시 실력으로 공사를 저지하기 위해 현장으로 모여들었다.
  그러나 상황은 지난번과 달랐다. 주민들의 공사저지를 예상한 구청 측에서는 용역회사 인부들을 동원해 공사장 주변을 둘러싸고 주민들의 접근을 차단한 채 공사를 강행하는 초강경 책을 썼기 때문이다.
  무허가 주택 철거 등을 통해 주민들과의 싸움에 이력이 난 이들 용역회사 직원들에게 사오십 대의 가정주부가 대부분인 데모대 (?)는 처음부터 도저히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공사현장에 접근할 수 없게 되자 주민들은 양회포대와 마대자루 등에 붉은 글씨로 "장애자 회관 결사반대" "장애자반대"등의 구호를 적어 허리에 쓰거나 어깨에 두르고 공사현장 옆 6차선 도로를 가로막고 한 줄로 길게 앉아 농성을 벌인 것이다.
  20여명의 전경과 교통경찰이 동원돼 주민들을 설득하는 동안 흥분한 몇몇 주민들은 길에 드러누워 "장애자 회관이 웬 말이냐"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소리치기도 했다.
  공사현장에는 검은색 모자와 티셔츠 차림의 건장한 청년 20여명이 이삼 미터 간격으로 늘어서서 주민들의 접근을 막고 있었으며 그 안에서 포크레인이 부지런히 흙을 퍼서 트럭에 담고 있었다.  흙을 가득 실은 트럭이 나을 때마다 주민들은 이를 막기 위해 그리고 용역회사 직원들을 내보내기 위해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으며 이 와중에 서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삿대질을 하기도 했으나 더 이상의 충돌은 없었다,
  공사현장을 둘러싼 주민들은 삼삼오오 모여 서서 "철거깡패까지 동원해서 공사를 하는 이유가 도대체 뭐냐"고 쑤군거리며 "곧 더 많은 사람들이 가세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례가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직원들의 현장출동으로 텅 빈 구청 사회복지 과 사무실에서 만난 강성구(35·사회 복지 전문요원)씨는 "오늘 아침 8시반경 반대 시위를 하던 주민들 중 한 사람이 자신의 동맥을 끊기도 했다"고 상황의 긴박함을 설명하면서 "한 마디로 기가 막힐 일"이라고 털어놓았다.
  강씨는 "그동안 우리가 관계기관회의 등을 통해 충분히 설명을 했음에도 "건물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소방도로를 내 달라"는 등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요구를 하면서 공사를 방해하는 바람에 더 이상 시일을 끌 수 없어 용역회사를 동원해서라도 공사를 강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구청 측의 입장을 설명했다.
  이와 함께 강씨가 "우리가 없는 예산에 이렇게 홍보지까지 만들었는데‥‥‥‥"하면서 내 놓은 "성동구종합사회복지관 건립"이라는 네 쪽짜리 주민 홍보용 안내문에는 새로 지어질 복지관의 천연색 조감도와 함께 "‥‥‥‥물론 주민 여러분이 염려하시는 사항은 일면 이해가 되는 면도 없지는 않지만 동 장애자 복지관과 주택지와는 인접해 있을 뿐이지 건물의 방향과 모든 출입시설이 청계천 고가도로 쪽으로 되어 있고 청계천 대로에 접해 있어 뒷면의 주거지역과는 차단된 상태이기 때문에 장애자로 인한 주민의 불편은 없을 뿐만 아니라 수용시설이 아니고 이용시설이기 때문에 염려하실 사항은 아님"에도 "이러한 상황에서 장애인도 돕고 주민 여러분의 의견을 수렴하는 방안으로 대책회의도 수차래 갖고 다각적인 검토를 한 결과 건물 전체규모를 2층에서 4층으로 늘려 "성동구 종합사회복지관"으로 변경하여 건립키로 했다"는 변경사유가 적혀 있었다.

  장애인종합복지관으로 예산을 받아서 종합사회복지관으로 변경할 수 있느냐는 대해서는 "이번 같은 경우 전례가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며 "남부장애자종합복지관 같은 경우도 국고와 서울시 두 군데서 예산이 나오고 있기 때문에 운영의 묘를 살리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씨는 또 "다소 자리를 바꾸기는 했지만 기존의 장애인종합복지관 시설을 그대로 살린 상태에서 노인과 여성을 위한 시설을 추가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강씨 자신도 시인했듯이 기존의 종합사회복지관이 운영비의 20퍼센트를 스스로 부담해야 하는 문제 때문에 꽃꽂이, 서예, 에어로빅 등 중산층을 대상으로 하는 소위 "벌이가 되는" 프로그램만을 운영하는 현실에서 장애우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축소되거나 폐지될 것은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다.

<차라리 반납하고 그만 두고 싶어>
  한편 장애인종합복지관을 종합사회복지관으로 변경하는 것이 관계규정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성동구청 측의 주장에 대해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장애인종합복지관을 짓기 위해 예산을 받아서 이를 종합사회복지관으로 용도 변경하는 문제는 허가와 감독권이 구청장에게 있는 만큼 서울시에서 뭐라고 할 수는 없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예산 문제만큼은 협의를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뒤이어 "전에는 예산을 중앙에서 관할했지만 88년 이후 예산이 독립된 자치부로 운영되기 때문에 자신들의 예산으로 운영비를 충당하겠다면 더 이상 뭐라고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성동구청 측은 장애인종합복지관을 종합사회복지관으로 변경하기 위해 성동구청에 배정된 추가경정예산 40억 중 가장 우선순위로 9억을 배정했다고 밝히고 "사실 국고 5억을 반납하고 사업을 안 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렇게 할 수도 없는 형편"이기 때문에 "밀어붙이는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구청 측이 그동안 관계기관회의 등을 통해 주민들을 설득했음에도 이처럼 격렬하게 반대하는 것은 그동안 관계기관 회의에 참석했던 주민대표들이 대부분 통·반장들로 사실상 주민들을 대표하기보다는 구청 측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처럼 자신들이 대표로 인정할 수 없는 사람들이 내린 결정에 대해 주민들이 "물을 먹었다"며 반발해 왔던 것으로 알려져 구청의 설득작업이 지극히 형식적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와 함께 더욱 석연치 않은 점은 구청 측에서 주민들의 반대를 예상해 용역회사를 동원해가면서까지 공사를 강행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면 원래의 계획을 수정할 필요가 없이 장애인종합복지관으로 공사를 재개하는 것이 "행정의 일관성"이라는 측면에서도 오히려 더 설득력이 있음에도 장애우와 지역주민 그 어느 쪽에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관계기관회의를 동원해 서둘러 복지관의 용도를 바꿔버렸다는 것이다.

<장애자는 무조건 안 돼>
  그러나 이러한 주무부처 간의 관계규정 놀음보다 더 심각한 것은 행정관청의 일방적인 공사강행으로 빚어지게 될 지역주민들의 장애우에 대한 "적개심의 폭발"이라고 할 수 있다.
 이날 동네 아주머니들과 함께 머리띠를 두르고 나온 60대 후반의 한 할머니는 따가운 햇빛 아래서 비지땀을 흘리며 연신 "너희 같은 젊은 놈들이 뭐가 아쉬워서 장애자회관 짓는데 나와서 경비를 서느냐"고 용역회사 직원들과 입씨름을 하면서 "장애자는 무조건 안 돼"라고 핏대를 올렸다.
  또한 주민들은 "도살장, 쓰레기처리장이 앞뒤로 있어 가뜩이나 동네 발전이 안 되는데 장애자회관까지 여기다 갖다 놓는 것은 한마디로 우리 동네를 깔보는 처사"라고 주장하면서 "무조건 안 된다"고 소리치기도 했다.
  이처럼 지역적으로 소외당하고 있다는 주민들의 피해의식에 행정관청의 일방적인 공사강행은 "불에다 기름을 붓는" 꼴이 되어 버린 것이다.
  한편 성동장애인종합복지관이 종합복지관으로 용도가 변경된 상태로 공사가 재개됨에 따라 그동안 사태 해결을 위한 뚜렷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지켜보던 장애우 단체에서는 일단 "종합사회복지관 으로서의 용도변경은 인정할 수 없다"는 원칙을 세우고 이를 관철시킬 것을 결의했다.
  "장애인복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위원장 김성재)에서는 7월중 성동구청에 대규모 항의 방문단을 보내 장애인종합복지관 건립을 촉구하는 집회를 갖는 등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사태 해결에 나설 것을 결정했다.
  그러나 공대위가 이러한 결정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성동복지관 사태가 발생한 지난 여섯 달 동안사실상 사태 해결을 위한 아무런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장애판의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이미 "버스는 지나간 것 아니냐"는 자조적인 평가를 하는 장애우들이 많은 것 또한 현실이다.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우리의 현실>
  지난해 11월 첫 삽을 뜬 뒤 반년이 넘도록 해결의 실마리조차 찾지 못하고 있는 성동장애인종합복지관 사태는 명분 없는 지역이기주의에 놀아나는 행정관청의 소신 없는 자세와 장애우에 대한 지역사회주민들의 뿌리깊은 편견과 불신을 확인한 것 외에도 자신들의 문제를 주체적으로 풀어가지 못하는 장애판의 현실을 다시 한번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지역주민들의 장애우에 대한 무지와 편견을 해소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개발해 내지 못하고 단순히 "지역주민들과의 충돌은 피해야 한다"는 원칙만 되풀이함으로써 사태해결의 아무런 전망을 세우지 못한 것은 최근 들어 부쩍 늘고 있는 장애우 시설에 대한 지역사회의 거부문제와 함께 시급히 해결해야 할 현실적인 과제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장애자 반대"를 외치며 도로를 점거하는 지역주민들의 핏기어린눈 속에서 그리고 공사현장을 철거깡패(?)를 동원해 지키는 "사상초유"의 모습으로 오늘도 마장동에서는 포크레인의 삽질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 땅의 장애우 복지가 과연 이런 모습으로 뿌리내릴 것인가‥‥ 


일문일답

조남호 성동구청장

  - 장애인종합복지관이 종합사회복지관으로 바뀌었는데.
  =기존의 장애인 복지시설을 그대로 수용한 상태에서 연건평을 늘린 것이기 때문에 장애인들에게 불이익은 없으리라고 본다. 현재는 오히려 이 때문에 주민들이 "구청에서 장애인편을 들고 있다"고 반대하고 있는 형편이다.
  - 주민들의 요구는 무엇인가.
  =구청장이 직접 나와서 "장애자 전용이 아니라는 각서를 쓰라"고 요구하고 있으나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 거절했다.
  - 많은 장애인들이 장애인종합복지관과 종합사회복지관은 행정적으로 관장하는 곳이 서론 다른 별개의 시설이기 때문에 원래의 계획대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행정상 관할 문제는 혼합형이라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안다. 건물의 공동관리 등 몇 가지 문제를 제외하고는 각기 전문가가 투입돼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식으로 운영의 묘를 살리면 될 것이다.
  -최근 장애인 복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등 장애인 단체에서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것을 결의했는데 장애인들의 반발에 대한 구청 측의 입장은.
  =현재 주민들의 반발이 다소 수그러들기는 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구청 측의 강경한 대응에 위축된 것일 뿐 근본적으로 이 문제를 이해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지금 이 시점에서 장애인 단체가 움직일 경우 다시 주민들이 들고 일어설 것이기 때문에 서로 한발씩 물러서 자제하는 지혜가 필요하리라고 생각한다.
만약 지역주민과 장애인이 서로 충돌하는 사태가 발생해 공사가 중단될 경우 결국 예산집행 기일을 넘겨 공사 자체가 파기되는 불행한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 주민들의 반대가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서로 만나 오해를 풀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도 사태해결의 한 방법이라고 보는데.
  =현재 격앙된 주민들의 감정 상태를 살펴볼 때 직접 만나는 것은 어렵다고 본다. 지금은 우선 건물이 들어서는데 모든 힘을 모으고 개관하기 전에 장애인과 주민들 간에 서로 이해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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