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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특별기고] 나는 맞을 이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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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에 취한 경관이 뇌성마비 장애우를 무차별 폭행한 사태가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폭행을 당한 장애우는 신승구(27세)씨로 그는 9월 26일 저녁 집으로 돌아가던 중 서울 약수동 사거리에서 신당파출소 소속 심기만(36세) 경장에게 아무런 이유 없이 무자비한 폭행을 당했다.
  신씨는 심경장의 폭행으로 한쪽 고막이 파열되고 왼쪽 갈비뼈 연골이 파열됐으며 팔과 다리에 찰과상을 입는 등 중상을 입고 10월 2일 현재 국립의료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다. 가해자인 심경장은 현재 대기발령 상태에서 경찰서에서 경위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폭행사건이 일어나자 신씨의 가족과장애무 단체들은 심경장 파면과 경찰의 대국민 사과문을 일간 신문에 게재할 것을 요구하며 항의방문 등 대응에 나서고 있다.
  아래는 신승구 씨가 직접 작성한 사태의 내막이다. 본지는 폭력정찰을 규탄하며 신씨의 경위서를 전재한다. (편집자 주)

  내 이름은 신승구 나이는 27세, 장애등급 4급 판정을 받은 장애우이다. 직업은 컴퓨터 기술자로 자유직에서 일하고 있다.
  1992년 9월 26일 토요일. 오전에 대학동창인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27일에 열릴 예정인 동아리 창립기념일 행사에 관해서 선배들끼리 모여서 미리 계획을 잡자고 했다. 좋다고 하고 오후 5시에 약속을 했다. 장소는 논현동에 있는 친구네 아파트. 5시 정각에 도착해서 친구들끼리 내일 열릴 일에 대해 의논을 하였다. 아파트에 모인 친구들은 모두 5명. 얘기가 끝나고 보니 8시40분쯤 되어 있었다. 친구들이 저녁때가 지나자 배가 고픈지라 중국집에 음식을 시켰다. 냉장고문을 열어보니 소주 두병이 있었다. 요즘 들어 몸이 안 좋은지 술이 안 받았다. 그래서 술을 안 마시고 친구들도 조금만 먹으라고 해서 조금 먹었다. 약 3∼4잔정도.
  시계를 보니 어느덧 10시 20분 가량. 친구들이 일어났다. 그런데 한 친구가 몹시 취해서 내가 부축을 하고 나갔다. 버스 정류장에서 친구가 나에게 한잔만 더하고 가자고 해서 옥신각신 실랑이를 한참하고 나니 피곤이 온몸을 덮쳤다. 여기서 계속 이렇게 실랑이를 하면 집에 가기 힘들겠기에 친구를 부축해서 다시 아파트로 갔다. 아파트에 사는 친구에게 인수인계를 해주고 난 후나 혼자 버스를 기다렸다. 그때 시간이 대략11시경. 버스가 없겠구나 생각했는데 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집 앞에 가는 것이 아니라 갈아타야 했다. 그래도 여기서 택시를 타는 것보다 중간에서 택시를 타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밤공기를 가르며 달리더니 어느덧 약수동 사거리를 앞에 두고 섰다. 버스에서 내려서 보니 시간은 11시 20분을 지나고 있었다. 버스가 없겠구나 생각하고 조금 아래로 내려와서 택시를 기다리는데 택시들이 잘 안 잡혔다.

  몸은 점점 피곤에 못 이겨서 굳어오고 택시는 그냥 지나가서 짜증이 났다. 그런데 조금 전부터 20∼25m 전방에 경찰 순찰차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어렴풋이 보니 운전석은 비어 있고 조수석에 한 명이 보였다. 순찰차가 있어서 택시들이 안 서고 그냥 가나 싶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앞에 횐옷입은 사람 이리로 오라"는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울려나왔다. 나는 속으로 생각하기를 여기서는 택시를 잡으면 안 된다는 얘기를 하려고 그러는가 싶어서 순찰차 옆으로 발길을 옮겼다. 조수석 문 앞으로 가서 열린 창문에 대고 물었다.
  "저 불렀어요?"하고. 그리고 얼굴을 보니 경관은 술에 만취가 되어 눈동자에 초점이 없었다.
  순간 "이 자식이"하면서 날아오는 주먹이 오른쪽귀밑을 강타했다. 얼떨결에 주먹맛을 본 나는 화가 나서 뒷문을 열고 순찰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소리를 질렀다. "당신네들 관할 파출소로 가자"고. 그 소리가 끝나기가 무섭게 어디로 가서 없어졌던 경찰 한 명이 운전석에 올라탔다.

  그리고 옆에 있던 만취한 경찰에게 뒤에 애가 왜 탔냐고 물었다. 만취한 경찰이 횡설수설했다. 나는 또 한번 소리를 냈다. "내가 이유도 없이 맞았으니 파출소로 가서 얘기하자"고. 차가 움직였다. 그런데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던 경찰이 운전하던 순경에게 "이 새끼 어디 조용한 골목길로 끌고 가 반쯤 죽여 놓고 가자"고 소리쳤다. 순간 겁이 났다. 그래서 창문을 바라보니 약수동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해서 고가도로 바로 밑에 있는 해장국집 골목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참고로 그 골목은 내가 잘 다니는 골목이었다. 밤늦게 공부를 하고 배가 고프면 그 골목으로 차를 몰고 와서 해장국을 먹고 돌아오는, 그 옆의 카페에도 잘 아는 형이 있었다). 순간 카페에 있는 형이 길거리에 나와 서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순간적으로 문을 열고 뛰어 내렸다. 뒤이어 만취한 경찰이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날아오는 무수한 주먹들‥‥‥ 이미 골 목안은 이런 소란으로 인해 구경꾼들이 모여들었다.
  잠시 후 보다 못한 구경꾼이 "무슨 잘못을 했길래 그렇게 때리느냐"고 했더니 한번 힐끗 보더니 "모르면 잠자코 있으라"고 욕을 하는 것이었다. 나를 잘 아는 형도 내가 "뭘 잘못했길래 그러냐"고 했더니 한번 힐끗 보더니 대답도 없이 또 주먹이 날아들었다. 그러면서 나를 뒷좌석에 다시 집어넣으려고 하는 경찰과 안 들어가려고 하는 나와의 힘대결이 한참을 지속했다. 갑자기 등골에 주먹이 날아들면서 오른쪽 어깻죽지가 뒤로 꺾였다. 그래도 안 들어가려고 왼쪽 손으로 문짝을 잡고 버텼다. 잠시 후 왼쪽 손목을 당수로 강타 당한 뒤 힘없이 차안으로 밀려들어갔다. 순간 원문을 안에서 못 열게 로크를 채우는 소리와 문 닫는 소리. 나는 거기서 발로 문짝을 차며 소리를 쳤다. 형에게 "도와 달라"고‥‥‥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서 왼손으로 운전석 옆에 있는 옆 브레이크를 위로 힘껏 잡아 당겼다. 차가 멈추고 무수한 욕지거리와 함께 왼손을 브레이크에서 떼어내려는 힘이 무지하게 통증으로 느껴졌다. 얼마 후 통증에 못 이겨 왼손을 놓는 순간 차는 힘있게 출발이 되었다. 조금 있으니 파출소가 눈앞에 들어왔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것도 잠시뿐. 파출소로 들어간 순간, 정신없이 날아오는 정권과 발뒤축으로 내리찍는 발길이 나의 온몸을 한군데도 빠짐없이 강타했다. 그래도 얼굴만은 안 맞으려고 양 팔뚝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잠시 후 한참을 때리더니 자기도 힘이 드는지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러더니 밖으로 나갔다와서 또 가해오는 발길질과 주먹들‥‥‥ 그러기를 두 번 쉬고 세 차례.(참고로 얘긴데 나는 공부보다는 운동을 많이 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배워온 쿵푸가 석줄, 대학에서 배운 특공무술이 나에게는 커다란 자신감을 주었다. 그래서 이제는 어디에 가도 누구에게도 안 맞을 자신이 있다. 그래서 내 몸은 크게 타격을 입어도 멍이 안 든다. 상처가 생겨도2-3일이면 깨끗이 아문다.) 마지막에는 그렇게 때리고도 분이 안 풀렸는지, 아니면 아프다고 한마디 없는 나에게 얄미운 기분이 들었는지, 이런 병신 같은 새끼는 총으로 쏴 죽여야 한다고 하면서 권총지갑에서 총을 캐고 있었다.
  순간 옆에서 맞을 때는 구경만 하던 경찰들이 겁이 났는지 만취된 경찰을 안고 권총을 뺏어서 무기고에 집어넣고 데리고 나갔다. 의자에 앉아서 분에 못 이겨 식식거리는 나에게 나를 끌고 온 경찰이 책상에 앉더니 나에게 엄포를 놓는 것이었다. 속으로 너무나 가소로워서 아픈 것도 잊고 웃고 있는데 나에게 즉결에 넘기겠다고 했다.
  나는 너무 좋아서 넘기라고 했다. 그랬더니 계속 정말 넘긴다고 하길래 정말 넘기라고 하고 집에 전화를 걸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여기 있는 전화가 무슨 공중전화냐고 하더니 안 된다고 했다. 옆을 보니 공중전화가 있길래 주머니를 보니 동전이 한 닢도 없어 천 원짜리를 주면서 바꿔달라고 했더니 잔돈이 없어서 안 된다고 했다. 엄포놓기를 몇 차례, 갑자기 즉결처분 용지를 치우더니 나에게 가까이 오라고 했다. 그러더니 담배를 주었다. 갑자기 말소리가 부드러워 지더니 젊은 사람끼리 좋은 게 좋은 것이니까 좋게 좋게 끝내자고 했다. 그러더니 이 계급은 아무것도 아니고 이 계급 버리고 버스기사를 하는 것이 낫다는 등 경찰비리에 대해서 얘기를 늘어놓았다. 한마디로 자기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결여되어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굉장한 통증이 밀려들었다. 속으로 생각하기를 일단은 집에 가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어서 집에 전화를 걸어 나를 데리러 나오시라고 하고 싶어서 전화를 한다고 했더니 웃으며 하는 말이 집도 가깝고 밤늦게 전화하면 부모님이 걱정하시니까 자기가 순찰차로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마음은 싫었지만 전화도 완강히 못하게 하고 몸도 계속 통증이 와서 순찰차를 타고 집으로 왔다.

  그 이후로 신당 파출소 소장 이하 성동 경찰서서장까지 병원에 찾아왔다. 겉으론 미안하다고 하면서도 속으론 미안한 기색이 전혀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동아일보 신문기자에게 돈을 주면서 기사를 내지 말라고 했단다. 하지만 그 기자는 그 돈을 안 받았다고 한다. 지금도 계속 우리에게 합의를 보자고 찾아온다. 하지만 난 절대 그럴 수 없다. 보통사람들도 물론이려니와 우리나라에 있는 장애인을 대표해서 난 절대 용서 못한다. 만약 내가 여기서 물러난다면 힘없고 빽없는 우리국민들은 누굴 믿고 살겠는가? 그리고 지금도 이사회에서 장애인들이 설 땅이 없는데 이 사건을 덮어둔다면 더더욱 장애인들 보기를 지나가는 개새끼 보듯이 할 것이란 건 불을 보듯이 뻔한 일이다. 난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까지 생각하고 있다. 

작성자신승구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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