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선언] 산업의학 공부를 하러 가는 의사의 출국을 막고 있는... > 기획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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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선언] 산업의학 공부를 하러 가는 의사의 출국을 막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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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다 유능한 직업병전문의사가 되고자 결심한 미국 유학길이 공안당국의 방해에 의해 좌절되기 직전에 놓인 저는 다음과 같이 저의 절실한 양심을 고백하는 바입니다.

<1. 사건의 개요>

 본인은 1991년 8월20일 오후 2시5분 노스웨스트 항공 030편으로 미국 디트로이트를 경유하여 보스턴(하바드대학소재지)으로 가기 위하여 김포공항에서 출국심사를 받던 중 아무런 설명도 없이 여권(번호 2331912)을 압류당한 뒤 여권보관증(아래 첨부)만을 전달받고 출국을 금지당했습니다. 보관중에는 보관사유가 "출국금지"라고 씌어 있는데 본인은 출국을 금지당할 만한 불법행위를 저지른 기억이 없어 매우 당황하였습니다. 김포 출입국관리소 직원도 상부의 지시일 뿐 자기들도 모르는 일이라며 무조건 "출국만은 안된다"라고 일방적으로 말할 따름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저의 처(金永姬, 34세, 하바드대학 영문학과 객원연구원)와 장남(金珉, 7세)이 함께 있었는데 비행기 탑승직전의 급작스런 출국금지 통지에 대해 모두 어쩔줄 모르다가 출국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혹시 지난 4, 5월 원진레이온 직업병 참사 및 김봉환씨 장례식 때 원진레이온주식회사에서 업무방해로 고소했다가 사건이 해결이 되지 않았나 하고 남양주경찰서와 관악경찰서의 담당자에게 확인을 해보았습니다. 직업병을 진단한 의사를 업무방해로 고소하는 기업주의 황당한 윤리의식은 누가 보더라도 하나의 비웃음거리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그래도 혹시 출국수속 중 업무방해피소건이 문제가 될까 싶어 8월19일 오후 2시 남양주경찰서를 방문하여 사건 마무리에 필요한 진술서를 써주고 왔는데 아직도 문제가 되는가 싶어 의아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남양주경찰서에서나 관악경찰서에나 그들은 법무부에 출국금지를 요청한 사실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결국 저는 출국을 포기하고 어떤 이유에서 저에게 출국금지라는 중대한 기본권 침해가 가해졌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오후 다섯시경 법무부 출입국 기본권 침해가 가해졌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오후 다섯시경 법무부 출입국 관리담당자(313호실 위재호씨)를 만나보았습니다. 그는 "시경에 가서 왜 출국을 금지했는지 알아보시고 문제가 있을 경우 처리를 하면 법무부에서는 출국허가를 해주겠다"고 하면서 참고로 "박노해씨를 은닉해준 일이 있는지를 조사한다더라"고 귀띔해주었습니다.

 "박노해씨를 은닉"해준 사실이 전혀 없는 저로서는 시경에 가서 사실을 진술하면 쉽게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생각하고 즉시 위재호씨가 일러준 대로 오후 여섯시에 서울시경 보안 2계를 방문하였습니다. 시경에서는 자기들은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고 하면서 여기저기 전화를 해보더니 장안평에 있는 공안분실(전화번호 248-1873∼4)로 알아보라고 하였습니다. 일러준 대로 알아보더니 출국금지는 8월19일 22시(오후 10시)부로 났으며 서울지방 검찰청 고천척 검사의 지시사항이니 장안평에는 올 필요가 없고 서울지검의 그분에게 알아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제야 문제가 해결되는구나 하는 희망을 가지고 오후 7시30분경 서울지방검찰청에 고검사를 찾아갔습니다. 업무시간 외이고 검사의 출두요구서가 없기 때문에 만나게 해줄 수 없다는 정문 직원에게 사정을 호소하여 겨우 연락을 취하였으나 고검사는 방금 퇴근한 직원에게 사정을 호소하여 겨우 연락을 취하였으나 고검사는 방금 퇴근한 다음이었습니다. 다음날 고검사를 방문하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여러 언론기관에서 제가 박노해씨를 집에 숨겨준 사실이 있느냐고 물어왔습니다. 저는 이에 대해 사실대로 "86년 겨울경 자신을 박노해 시인이라고 소개하는 어떤 환자가 진찰실로 찾아와 조용히 시를 쓸 수 있는 곳을 구해달라고 부탁하였으나 도와주지 못한 적은 있지만 그 뒤로 한번도 다시 만난 적은 없었다"고 대답하고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니 연합통신에서 "박노해씨 은닉 혐의로 내사 중, 출국금지 당해 연행되어 시경 공안분실에서 조사중"이라는 가시가 왔는데 사실여부를 확인하기 위하여 그런다는 것이었습니다. 급히 연합통신에 항의를 하고 정정보도를 요청하였으나 저는 공안당국에 커다란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당사자인 저에게는 한번도 사실확인 전화나 소환, 출석요구 등의 법적 절차를 실시하지 않고 언론기관에 간접적으로 본인을 음해하는 허위사실을 유포함으로써 본인의 명예를 실추시키려는 비열한 공작이 은밀히 행해지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고천척 검사댁에 전화(전화번호 400-2828)를 하였으나 고검사는 "자신에게 찾아올 필요 없이 장안평 공안분실에서 조사를 받아라"는 말만 할 뿐 출국금지의 사유 자체에 대해서는 일체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무슨 음모가 진행중인가 하는 밤샘 고민 끝에 저는 저의 양심과 명예를 걸고 진실을 사회에 알리기로 결심하였습니다.

<2. 무조건적(불법적) 출국금지에 대한 본인의 입장>

 그동안 저는 1988년 문송면군의 수은중독사망, 원진레이온의 이황화탄소 참사 등의 사건을 사회에 널리 알리고 정부와 기업들이 압도적, 인권적 차원에서 그 해결책을 강구하도록 함으로써 우리나라의 산재, 직업병 문제를 개선하기 위하여 나름대로 노력하여 왔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선진국 수준의 학문적 지식이 뒷받침되어야 직업병 문제를 보다 효과적으로 근절시킬 수 있겠다고 판단하여 많은 고민 끝에 하바드대학 유학을 결심했던 것입니다.
 그런 취지하에 저는 약 2년여전부터 하바드대학 보건대학원(보건학박사 과정, 산업의학전공)의 입학수속을 밟아왔으며 실은 작년 9월에 입학하도록 허락을 얻은 바 있으나 포항제철주식회사가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 의뢰한 연구에 참여하게 된 관계로 입학을 1년간 연기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9월2일부터 시작되는 1991∼1992학년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하지 못할 경우 정상적인 등록이 불가능해져 미국유학 자체가 포기되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출국을 금지당할 만한 사람이라면 민, 형사상의 불법행위를 저지른 도피자들이거나 외국에서 범죄행위를 저지르려는 목적을 가진 경우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땅히 불법행위에 따르는 사법 처리가 동반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저에게는 출석요구나 소환장이나 구속영장 등 하등의 합법적 조처가 없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급작스레 출국 전날 밤늦게 19일 밤 10시에(본인에게 아무런 통고도 없이 비밀리에) 출국금지가 되었고 19일 낮에 확인(confirm)해 놓은 비행기 예약이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 의해 다음날 아침에는 취소(cancel)되어 있었다는 사실(20일 11시 노스웨스트항공발권직원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재발급할 수 있었음)등은 저의 출국을 금지시킬만 한 불법행위를 찾을 수 없어 초조해진 공안당국이 전근대적인 비밀공작수법으로 저의 유학을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다. 왜 누구보다도 법과 정의를 수호해야 할 그들이 그렇게까지 하면서 저의 앞길을 가로막으려 하는지 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이번 사건은 산재, 직업병 문제와 의료보험제도 문제 등 이 땅을 살아가는 양심적 의사로서 당연히 담당하여야 할 국민건강권 확보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여온 저에 대한 비열한 보복행위요 탈법적인 인권유린입니다. 제가 하고자 한 것은 미국에서 더욱 발전된 산업의학(산재, 직업병문제를 전문으로 연구하고 진료하는 의학분야)을 공부하여 국민보건에 이바지하려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 일이 금지되어야 할 일입니까? 왜 저는 선진국에서 보다 전문적인 공부를 해올 자유가 없는 것입니까? 의사로서의 한평생을 우리나라의 산재, 직업병 추방을 위해 바치고자 하는 젊은 의사의 꿈은 이렇게 무참히 짓밟혀도 좋은 것입니까?

글/김록호

 

작성자김룩호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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