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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밀착취재] 민주화 바람이 몰고 온 허(虛)

민주화 바람이 몰고온 허-전북 이리 혜화학교 비리를 관중한다.-

본문

"정부에서 나오는 1인당 하루 부식비가 450원 정도입니다."
장애인이기에 주위의 환경이 주는 고통을 감수해야하는 입장이 가슴에 맺혀 있는 응어리를 더욱 단단하게 한다. 그 응어리는 무엇보다도 장애인 자신들의 노력과 그러한 노력을 하는 장애인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며, 어려움을 당했을 때 함께 그 고통을 나누어야 응어리는 풀어진다. 지금에 와서야 장애인들의 당당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몸부림이 일고 있고 또, 정부나 사회사업가, 교육자, 종교인 등등 많은 분양에서 현재 관심을 가지고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 속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으로 인하여 장애인 혹은 관심 있는 모든이에게  실망과 좌절을 주며, 또한 당사자의 실의와 고통은 더욱 가중된다.
이러한 부작용은 장애인과 함께 고통을 나누며 사회를 이끌어 가는 동반자로써의 차원이 아닌, 사회발생적 제도를 수행한다는 시혜적이고 동정적인 무관심을 일으키며, 이것은 장애인을 들에 업고 특정인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었을 때 부작용은 찾아온다.

그래서 이러한 여러 가지 부작용이 발생할 요건들을 충분하게 잉태하고 있었으며, 시대적 요청에 의해, 민주화 바람에 편승한 집단·단체들의 권익과 돈을 위한 투쟁 등이 만들어낸 작품(?)이 "이리 혜화학교 비리사건" 이다.
여기 게재되는 모든 내용들은 사실을 근거로 한 것이며, 직접 당사자들을 만나 그들의 얘기를 토대로 자료와 함께 게재한다.
단, 장애우 권익문제 연구소에서는 사건의 기록에 앞서 장애인 복지의 전반적인 것을 다룸으로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입장에서 이 사건을 객관적으로 다루었다. 장애인이라고 해서 잘잘못을 떠나 무조건적인 옹호는 불쌍한 사람 떡 하나 더 주는 것 밖에 안된다는 생각아래 무조건 옹호보다는 근본적으로 장애인 문제의 뿌리를 찾아 하나하나 점진적인 개선이 바람직하겠다.

이 사건의 결과를 가지고 왈가왈부할 것이 아니라 이 사건이 발생하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으며, 이 사건의 이해 당사자들은 어떻게 사건을 처리해 나가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농성이 과연 스승된 도리로써 인권유린에 대한 분노에서 시작되었는가도 의문이다.
진정으로 학생들을 위한다면 무엇이 교사로써 학생들을 위해서 할 일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교권탄압이 먼저냐, 아니면 학교의 공립화가 먼저냐, 교장과의 감정대립의 먼저였는가다.
현재 교장은 공금횡령으로 구속되었지만 성폭행, 암매장 등이 증명되지 않고 있고 또 증거도 없다 하더라도 이러한 사실들을 증언하는 농아인들의 태도가 문제이다.

과연 믿을 수 있는가?
우리는 여기서 어떠한 사건이 매스콤에 의해서 보도되면 무조건 믿는 사례가 많다. 이번 사건의 확실성보다는 우선 언론에서 특종기사를 잡았다는 듯이 앞을 다투어 보도되었다는 점이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못잡았다. 확실하지 못한 것을 조그만 가능성을 가지고 성폭행, 암매장, 영양실조, 교권탄압 등이 앞을 다투어 보도되었다. 이러한 일들이 비단 이 뿐이 아니겠지만 이 사건의 애매모호한 면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 지금에서 이러한 진단을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소문은 소문의 꼬리를 물고 풍선만하게 된다는 것과, 좋은 얘기 보다 비리를 더 좋아하는 우리네 인식이 진실의 여부를 떠나서 무조건 받아들인다는 것, 이것이 문제이다.

이제는 귀가 얇아서는 안된다.
한 번 더 뒤를 돌아보는 여유와 한번쯤 나보다는 타인을 위해 생각해보는 여유를 가져야 하겠다.
이 사건을 멀리서 바라보는 구경꾼이기 보다는 자신을 돌아보면서 잘못 채워진 단추를 바로잡는 마음으로 이 일을 함께 생각하자.


<고목의 나뭇잎은 흔들리고>
우선 이 사건은 민주화 바람이 몰고 온 허(虛)라고 생각한다.
그럼 민주화란 무엇인가? 민주주의에, 또는 그렇게 되게 함. 다시 말하면 "민주적이란 민주주의에 적합한 것이다.
즉 민주주의란? 국가의 주권을 국민이 가지고 국민을 위하여 정치를 행하는 제도 또는 그러한 정치를 지향하는 사상, 기본적인 인권, 자유권, 평등권, 법치주의 따위가 주된 성질이다.
그러나 우리는 민주주의가 "내 멋대로 하면 된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다하면 그만이지", "남이야" 하는 식의 생각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어 민주주의를 잘못 오인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가장 무서운 게 민주화를 빙자로 한 올가미들이다.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광주사태의 진상을 밝혀라. ○○열사 사망, "성고문", "통일론", "자살", "민주화" 전, 전대통령의 비리, 5공화국이냐 6공화국이냐 임시국회 국회의원선거 등등이 몰고온 폭풍우로 온 국민의 가슴은 포화상태가 되어 있어,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나기만 하면 터질지경이 되어있다.

그런데 때를 맞추어 희기한 사건이 신문지상에 등장했던 것이다. 사실 희기한 사건이라고도 할 수 없다. 형제복지원사건도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거의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다.
1988. 5. 17 일자 한겨레신문에 전북 이리 혜화학교(정박) 교장(김현수)이 50여명 암매장을 했다. 농아를 죽였다. 보명원생들은 영양실조, 혜화학교 교사들의 강제노역, 성폭행, 강제노동 등의 기사가 국민들의 눈을 자극했던 것이다.
이래서 일은 생겼고 민주화 바람은 전북 이리시에 자리하고 있는 혜화학교로 옮겨갔던 것이다.  이리시민들은 메마른 소나무에 불붙듯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틈을 노린 자들에게는 이러한 바람이 하늬바람같이 느껴졌고, 일을 추진하기에는 적격의 바람이었다.

우선 현실이 불붙이기에 좋았다. 죽일 놈하고 있던 차에 성폭행이니, 암매장이니, 교권탄압, 영양실조 등이 흥분하기에 충분했고 요즘 한창 장애인 복지에 대한 문제로 시위가 있었던 차에 이러한 현상은 잘 잘못을 가리기 전에 김현수 죽일 놈부터 나오는 것이 당연했다. 이래서 일의 진행은 한쪽의 계획대로 나가는 것이다. 아무것이라도 비리다라고 폭로하면 그것이 진실이냐 거짓이냐를 떠나서도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 는 식으로 사실을 믿으려하지 않는 게 우리네 실정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모든 사건이 거짓이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장애우 권익문제 연구소는 엄연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정말 이래서는 안된다는 것을 즉, 어느 사건의 기사화보다 그 사건으로 해서 우리가 자각해야 될 것은 무엇인가를 찾아봄으로 장애인복지에 밑거름이 되고자 하는 뜻에서 이번 사건을 다룬다.
먼저 이 사건을 싣기 전에 우리는 어떠한 결과를 가지고 판단하기 전에, 왜 그랬는가 원인은 어디에서부터 출발됐는가를 먼저 생각해 보자.
1988. 5. 17일자 한겨레신문을 보고 우리는 다 같이 놀랬다. 이럴수가 있나, 이게 사실이란 말인가. 그렇지 않아도 장애인복지에 대한 얘기가 거론되고 있던 차에 신경이 곤두섰다.
전북 이리 혜화학교 우선 장기자에게 연락했다. 통화, "정말 입니까? 예 저희도(한겨레)심층취재를 하려고 합니다. 그럼 내려오시면 연락하세요." 이렇게 해서 전화 통화는 끝났다.
5월 21일자로 이리에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5月 21日 오후 5시 전북 이리 한겨레신문사 방문
먼저 "함께 걸음" 기자는 한겨레신문사를 찾아갔다. 지국장과, 평민당위원을 만나 전체적인 사건의 이야기를 종합했다.
사건의 시초는 이러했다. 류만영 교사와 김현수 교장과의 감정싸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5월 5일 어린이 날을 맞이하여 이리 Y.M.C.A에서 행사를 하는데 특수교육교사와 학생들을 초대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장이 교사들에게 학생을 인솔해 달라고 부탁, 교사들 중에는 쉬는 날 가기싫다고 하며 그러면 7(토요일) 대신 쉬게 해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교장은 반대했고 교사들은 불만이 있었으나 행사장까지 인솔했다. 그런데 류만영 교사만은 행사장에 부인과 아이를 데리고 카메라를 메고 나와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다.
어떻게 특수학교 교사가 놀러왔냐는 식의 얘기가 교장에게까지 들려왔고 그 다음 날 아침 류만영 교사는 교장실로, 교장의 언성이 높아졌고 류만영 교사는 평상시의 감정 때문에 같이 꼿꼿이 앉아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성격이 급한 교장은 앞에 있던 전자계산기를 교사에게 던졌고 교사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곧 바로 이리 민주화 협의회로 한겨레신문사로 평민당사로, 농아복지협의회로 찾아가 보명원과 혜화학교의 비리를 폭로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비리는 신문지상의 한 공간을 차지했던 것이다.
1. 장애가 심해 관리하기 힘든 학생을 내 버렸다.
2. 1983 학생이 불빛이 비치는 곳을 보니 교장이 트렁크에서 애를 죽이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그것을 본 학생이 소스라쳐 놀라는 것을 본 교장이 칼로 위협을 했다. 그것을 또 먼곳에서 다른 학생이 보았다. 지금까지 그때의 피자국이(브라우스) 남아있다. 지 신부 보관
3. 학생이 공포에 질려 장교사에게 얘기를 했는데 그것을 또 다른 쪽에서 본 학생이 장교사에게 얘기했다. 그래서 사건이 일치한다.
한겨레신문(이리지국장과 평민당위원 이동우씨)에서 말하는 문제점은 학생이 170명 한 학급당 12∼14명, 공적으로는 270명.
"원생 중에서 숫자가 모자라야 하는데 학생들 숫자를 세어보았는데 없어진 애도 없고 숫자가 맞는 게 문제다. 아무튼 이 사건은 애매모호 합니다." 라며 교사들이 농성하고 있는 평민당사로 가보라고 했다.

5月 21日 오후 6시 10분 이리시 평민당사에서 교사들 만남
기자가 평민당사로 찾아갔을 때 교사들과 졸업한 농아인들이 층계에, 당사에 여기저기 서 있거나, 앉아 있었다. 벽에는 "김현수 일족을 구속 수사하라" 프랭카드와 성명서에는 이리시민에게 고함, 등등의 벽보가 붙어있고, 데모가도 같이 붙어있었다. 먼저 류만영 교사를 만나 같이 얘기를 하려고 하니 그 교사는 시간이 없다며 급히 자리를 피하고 다른 교사가 대신 자리를 같이 했다. 그런데 급하다고 나간 류교사가 평민당사에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성폭행이니, 암매장이니, 영양실조니 하는 문제가 있었는데 그럼 교사들이 이제까지 묵인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것도 몇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폭로가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왜 지금에서야 교사들이 이렇게 농성까지 하며 싸우고 있는 이유가 단지 학생들의 인권만 위한 것입니까? 하는 질문에 교사들은 그 동안 교사들도 잘못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한 사실들을 알면서 묵인할 수밖에 없었다며 얼버무렸다. 아무튼 평민당에서 농성하고 있는 교사들이나 농아(혜화학교) 졸업생들의 분위기는 그랬다. 술을 많이 마셔 얼굴이 빨개져 올라오는 층계에서 서로 몸싸움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어딘가 모르게 정돈되어 있지 않았다. 교사들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가족일동이 보명원에 근무.
·보명원 125명 학교 280명 교사 28명
·87년 정부보조 6억 6천 8백만원 등이다.
그럼 여기서 자료를 첨부한다. 이 자료는 교사들이 준비한 자료이며 여기에 게재되는 것은 복사물이다. 그 중 한 자료만 첨부하기로 한다.

0+전북 혜화학교 및 보명원에 대한 혜화학교 교사, 졸업생들의 증언 내용
1988년 5월 11일 오후 9시-11시
이리, 익산 민주화운동 협의회 사무실에서 혜화학교에 대한 교육비리를 최초로 공개한 교사(성명서를 냄) 류만영, 국회의원이 협, 평민다, 한겨레당 관계자, 민가협 전북의장, 이익민협 관계자, 이익교협 관계자, 혜화학교 교사들, 졸업생들이 모여 2시간 동안 학교의 비리와 보명원생들에 대한 인권유린 사례 등의 내용을 녹음하였다. 졸업생들이 하는 증언 내용이 너무도 충격적이고, 상상 이상이어서 그 생생한 증언을 기술하기로 한다.
농아들의 이야기였기에 수화로 통역하였고 통역은 농아복지회 소속 최현숙씨가 맡아서 해주셨다.
첨부 : 증언 내용을 녹음한 테이프 2종.

민주와 바람이 몰고 온 허와 실의 발문 원생 중에서 숫자가 모자라야 하는데 학생들 숫자를 세어보았는데 없어진 애도 없고 숫자가 맞는 게 문제다.

혜화학교 현지교사 증언
- 류만영 교사 -
"민주교육을 바라는 학부모님께" 라는 유인물(5월 10일자 배포)과 "비리 보고서"에 아는 바를 적었음.
- 1980년 이전에는 30%이상을 80년부터는 20%를 월급에서 공제하여 서무과 직원의 월급으로 주어왔음. 86년부터 공제 없어졌음. 당시 7명의 일반학교 교사자격증을 소지한 교사가 있었는데, 이들은 특수교사 자격증이 없다는 약점 때문에 교장의 월급공제 등의 요구에 순순히 복종했음. 이 밖에는 쌀값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종종 반강제적인 도움 요청.
페리그라병(옥수수를 주식으로 하는 경우에 걸리는 피부병)으로 김정민 87년에 사망 87년 3월 폐결핵으로 - 정례 사망 - 원대병원에 입원했었으며, 하루에 계란을 10개 이상씩 먹이라고 (고단백 섭취를 위해)의사가 지시했으나 이행되지 않았고, 퇴원 후 정례가 있었던 방에서는 고통스런 신음소리가 문밖에까지 확실하게 세어나왔음.
주로 사망시기는 겨울을 나고 악화된 증세가 폭발하는 봄이 대부분이다.
잘 먹어야하고 최소한 보통은 되어야하나 식사의 질이 형편없기 때문에 영양실조에 걸려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동시에 합병증까지 겹쳐 사망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사체의 확인없이 책상에서 이루어지는 사망진단서의 사인에는 심장마비나 폐결핵만으로 되어있는 경우가 99%이다.
- 증언에 참석한 10명의 교사가 생각하는 혜화학교 비리해결 방향
김현수 교장은 퇴진하고 형사처벌을 받아야 한다. 학교는 공립으로 바뀌어야한다.
- 학교재정은 교육위원회에서 100%지원되고 있으며, 보명원은 보사부(이리 시청경위)에서 100% 지원되고 있음.
- 혜화학교 진상 조사대책위에 국회의원이 포함되어 있는데 비리가 밝혀지고 문제가 해결 될지가 미심쩍다. 그 이유는 그 동안의 감사가 수 차례나 있었음에도 혜화학교 비리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5月 22日 오전 10시 이리 익산 민주화 협의회 사무실 방문
사건의 실마리보다 우선 하나의 운동이 생겨 젊은 혈기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 기자가 찾아갔을 때 마침 혜화학교 교사가 있었다. 기자를 보자 급하게 퇴장했고 젊은 운동가와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사실인 즉, 이 사건은 애매모호 합니다. 우리는 잘 모르니 교사들을 찾아가 보세요." 라는 말이 첫마디로 나왔다. 어떠한 증거도 없이 일이 먼저 터졌고 또 이 사건이 어쩌면 교사들이 학교를 공립화 시키자는 뜻에서 조그마한 사건이 고무풍선처럼 커지고 있는 거가 아니냐는 질문에 그저 잘 모릅니다며 진술 사진과 농성사진을 보여주었다.
"함께 걸음" 팀은 교사를 먼저 만나보고 온터라 더 이상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없어 다시 혜화학교로 찾아갔다.

5月 22日 오후 2시 혜화학교 방문
"함께 걸음" 팀이 찾아갔을 때 김현수 교장은 입건되어 있었고 아들 김윤배씨(원광 중학교 영어 교사)가 있었다.
장애우 권익문제 연구소에서 왔다고 미리 인사를 하고 함께 교장실에서 이야기를 했다. 교장실 안 여기저기에는 표창장 위촉장 감사장 등등 상패 상장들이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며 잠시 분위기를 살피고 있는데 "의문나는 것 있으면 물어보세요"라며 먼저 말문을 열었다. 이 사건이 일어나게 된 동기는 어디에 있습니까? 라는 질문에 그는 (김윤배) 앞에서 말한 것을 (5월 5일 행사) 말했다.
"사실 류만영 교사는 교사들 중에서 점수가 가장 낮은 사람입니다." 학생들을 더럽다고 나무막대기로 옷을 걸어서 오라고 하고 나무막대기로 밀며 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학생을 때리는 사례도 많았다고 했다.
그럼 교사들과 교장 선생님과의 사이는 어떠했습니까?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자주 트러블이 있었습니다. 학생들을 때릴 때마다 아버지(교장)가 좋지 않은 말을 했습니다. 김현수씨는 학생들만은 절대 때리지 못하게 했다고 했다.
그러나 모든 일은 쌓인 감정에서부터 출발하듯 이번 혜화학교 사건은 교사들과 교장과의 감정대립에서 시작되었다는 게 어처구니가 없다.
기자는 이리 익산 민주화 협의회에서 얻은 사진자료를 토대로 질문을 했다.
시설면에서 목욕탕, 화장실, 페라그라병, 손을 묶어 놓은 사진, 이를 잡고 있는 모습 등의 자료를 토대로 하나 하나 질문했다.  여기에 김윤배씨는 차근차근히 답변, 건물지은 지 얼마되지 않아 하수도 시설공사를 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화장실 변기는 아이들이 정박이다 보니 돌을 던져 자주 막힌다. "또 아이를 결박한 것은 교장이 아니고 같은 방에 있는 아이가 묶었다. 밖에서 풀을 뜯어먹거나 되새김질을 하는 아이를 묶어 놓았다고 했다. 이런 저런 것은 둘째치고 성폭행이니, 암매장이니 하는 얘기는 어디에서 근거를 둔 것입니까? 사실 28년 동안 죽어간 아이가 48명 정도 됩니다. 그동안 85년 전 까지만 해도 장례비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죽으면 갔다 묻고 그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또 주거지가 없는 아이는 보사부에 외래계 사망이라고 보고하면 됩니다. 그런데 성폭행은 저희 아버지(교장)이 한 것이 아닙니다. 거지와 1년 동안 동거하다 들어온 여자아이도 있고 그 당시 남, 녀 나이들이 많았습니다.
옥상에서 봉변을 당했다. 그럼 그 사람이 누구냐? 캄캄해서 잘 모르겠지만 교장 같은 사람이다라고 하는 것을 가지고 이렇
억울하고 공금횡령도 정부에서 100%를 주면 다른 관(즉 시청)에서 30%는 떼고 주니 위조를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모든 사실이 밝혀지려면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하고 아버지(교장)가 28년 동안 쌓아온 공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기 있는 상장들은 모두 휴지통에다 집어넣어야겠습니다." 라고 한참 연설을 하는 교장의 큰아들은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몇 십년이 지나면 아버지의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혜화학교에서 어느 정도 실마리를 잡고 다시 평민당사로 왔다. 교사들의 눈치가 이상해졌다. 기자는 성폭행 당했다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어디  있냐고 물어보았더니
냉담 "서울로 올라갔습니다","그럼 진술은 하고 갔습니까?" 네 한 교사가 짤막하게 대답했다. 죽치고 앉아 있으려니 그 중한 교사가 "창인동 교회 문정현 신부님에게로 가 보세요. 거기서 4자 진술이 있었습니다."
통역교사 한 명, 신부, 당사자, 당사자 친구 이렇게 진술이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22일 저녁 8시 30분에 문정현 신부를 만났다. 문 신부는 어떻게 알고 왔냐며 깜짝 놀랐다. 교사들이 알려 주었다고 하니까 그제서야 앉으라며 자리를 권했고 문 신부는 며칠이 지나서 밝히겠다. 지금은 비밀이고 또 당사자의 신변도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시기가 아니다며 급기야는 거절했다. 그러면 어떻게 교장이 없는 가운데 진술이 이루어 졌습니까? 직접 교장과 대면한 가운데 이루어져야 되지 않습니까? 또 통역한 교사의 통역이 진술이라고 믿습니까? 문 신부님은 수화를 할 줄 아십니까? 이러한 질문에 문 신부는 얼굴을 붉히며 어떻게 좋은 일을 하시는 분이 그리 의심을 합니까?" 라며 화를 냈다. 우리 연구소에서는 무턱대고 장애인라고 해서 옹호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상인과 장애인가 함께 살기 위한 것이고, 권익을 보호해 주기 위해서이지 어느 쪽이 잘못했는지를 떠나서 무조건적인 옹호는 자격상실입니다." 라고 하니까 다시 얼굴을 들면서 미안하다고 했다. 여기서 문신부는 이리시로 온 지 이제 겨우 4개월 뿐이 안되었다. 그러기에 김현수씨에 대해서 아는 게 소문이었다고 한다. 그냥 나쁜 사람이라는 것이다. 바쁘다며 자리를 피하는 문 신부보다 먼저 나와 다시 정리를 했다.

5月 23日 오후1시 이리 한겨레 지국장
한겨레신문에서 너무 일찍 보도를 했고, 사건의 사실 여부를 알리기도 전에 보도가 되었다는 게 잘못되었다고 지국장에게 말했더니 지국장은 잘못을 인정하며 이 사건이 어찌보면 교사들의 이권이 먼저였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현실, 민주화 바람이 이렇게 만들었고 장애인 문제가 일찍 고개를 들고 있다는 증거이다. 지국장은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사건의 애매모호 함을 강조하기만 했다.
<이것이 문제다>
3일간의 사건 취재가 돌아올 때 허탈감만 주었다. 어수선한 세상, 분단된 한국, 그리고 지금의 현실이 아이러니칼하게 흐르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나약한 자를 등에 업고 뛰기는 쉽다. 1+1은 2라고 하면 2이고 3이라고 하면 3인 사람들을 이용하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되는데 말이다. 이번 사건은 어떤 한 개인의 방탕한 생활을 빙자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있다. 영국의 속담 중에 끝이 좋아야 모두 좋다는 얘기가 있다. 한 번의 실수로 그 동안의 공적은 무너져 버린다는 것이다.
이번 혜화학교의 일도 마찬가지라고는 할 수 없어도 집고 넘어가야 하겠다. 지금으로부터 28년 전 우리나라 복지제도는 암흑이었다. 나 하나 살기에 바쁘던 시기였고 감히 누가 장애복지에 신경쓸 겨를도 없었다.
그 당신 김현수씨는 두 아들을 잃고 방황하다, 농아를 만났던 것이다. 세상에서 버린 몸 같은 동류의식을 느껴 농아인들을 모아 글을 가르치자는 생각으로 재산을 한데 모아 학교를 설립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러다가 정박 지체 학교로 요즈음에 바뀌고 28년 전 호남지방에서는 최초로 장애인학교를 세웠던 것이다. 28년 동안 일을 해 오다보니, 처음의 신선한 감이 없어진 게 사실이고, 장애인복지가 쪼들리다보니 많은 사람들에게 감정을 일으키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이 비단 혜화학교에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보다 더 했으면 했지 하는 생각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는 교장과 정부(보사부), 교사, 장애인, 민주협 이 모두를 놓고 생각하기 전에, 전체적인 잘못은 우선 자기들의 이권이 먼저였다는 것이다.
교장은 공금횡령, 교사는 공립화, 민주협은 홍보적인 운동, 농아인복지회는 경작권 등이다. 교사, 농아인, 익산민주화협의회 이 모두가 합쳐서 한 사람 김현수 교장의 비리가 폭로된 것이다. 우리는 결과를 떠나서 장애인 쪽에서 일을 하시는 분들에게 격려를 보내야 할 것이다. 지금 보다도 장애인복지가 암흑상태인 상태에서 일을 하신 분들에게 말이다. 정부 보조 없이 자산을 털어서 일을 시작한 사람에게 더욱 열심히 하라는 격려의 갈채를 말이다. 어용복지원을 제외한 숨은 가운데 어렵게 살림을 끌고가는 분들에게 이러한 일은 용기는커녕 힘을 빠지게 하는 사건이다.
진정으로 교사들이 학생을 위한다면 수업을 전패한 농성보다는 지혜롭게 해결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보사부에서는 탁상공론의 장애인복지 보다는 현장감 있는 현실에 맞는 공무를 해야하며 장애인들은 한 인격체로써 정정당당하게 주체성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어느 개인 혹은 단체에 이용당해서는 절대 안되어야 한다. 수용할 것은 수용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이 사건으로 인해 우리가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할 것은 대세의 회오리에 쓸려다니는 사태가 없어야 하며 이성적인 판단이 먼저여야 한다.
이 한번의 실수가 장애인복지에 박차를 가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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