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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우리에겐 푸른 소망이 있어요"

장애우자활공동체 푸른집

본문

푸른향기 가득한 푸른집
나는 소망 하나를 품고 있다/ 우리 소망 한아름을 키우며 살고 있다/
그것의 한아름들은 우리네에게/ 풍요함과 / 따뜻함을 주었다/
그러기에 우린 부자다/ 나는 소망 하나를 간직하고 있다/ 그 풋풋한/
우리네 소망은/ 푸른/ ...../ 푸르른 그날

  아파트 23층, 1층 입구에서 눈에 띄는 휠체어 한 대. 아! 바로 찾았구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린 23층에는 벌써 휠체어 몇 대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푸른집" 이름부터 웬지 모르게 풋풋한 향기가 나는 듯하다.
  "푸른집"은 부산시 사하구 하단1동 가락타운 316동 2302호에 자리잡고 있는 이른바 장애우자활공동체이다. "푸른집"이라는 것은 생활하면서 항상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마음들이 필요한데, 이런 마음을 푸른 마음에 비유한데서 연유해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부산 시내에서도 한참 가야하는 이곳은 낙동강변을 끼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 곳 분위기가 그래서인지, 아니면 강변을 끼고 있어서인지 푸른집이라는 이름과 위치는 아주 잘 어울린다.

  그럼 얼마나 푸르름 들이 스며들어있는지 호구조사(?)부터 한 번 해 보도록 하자.
  푸른집 가족들은 모두 15명이다. 그 중 5명은 결혼을 하거나 독립을 해서 살고 있다. 이들에 대한 소개를 푸른집에서 발행하는 계간소식지에서 옮겨보겠다.

  전경환(48, 안토니오-푸른집 가장), 신종명(45, 심플리치오-바깥일꾼), 박동대(41, 발렌티노-바깥일꾼),  정경희(39, 아가다-가장보좌), 이진우(38, 마르티노-교정부장), 임덕재(35, 프란치스코-전천후봉사자), 최윤이(33, 카타리나-신종명씨 처), 임경수(32, 요한-컴퓨터 일꾼), 김광식(29, 시몬-가족), 이영수(26, 세실리아-각종보조 상주봉사자 처), 박현(21, 요한- 전례부장), 전바다(18, 로벨도-학생), 임푸름(2, 상주봉사자 딸) 이렇게 15명의 가족들이 푸른집의 주인공이다. 뇌성마비 3명, 근이양증 3명, 전신마비 1명, 언어장애 1명, 골형성부전증 등 10명의 장애우가 있다. 대식구인만큼 할 일도 많아 근처 성당의 레지오 단원들이 돌아가며 와서 청소며 빨래 등의 자원활동을 해주고 있다고 한다.

  집안에 들어서니 어느 인쇄기획회사에 들어온 것 마냥, 복사기며 가득 쌓인 하얀 종이며 노란 서류봉투들이 가득 쌓여 있다.

  먼저 이 집의 작은 (?) 가장이신 임덕재(35, 프란치스코)씨와 인사를 나누웠다.
  그런데 왜 임덕재 씨가 작은 가장이냐 하면 현재 큰 가장이신 전경환(48, 안토니오)씨는 또 다른 공동체를 꿈꾸며 다대포에서 두 자녀들과 분가해서 살고 있기에 푸른집 살림을 임덕재 씨가 맡고 있기 때문이다.

  큰 가장이신 전경환 씨는 부산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 등산도중에 목경추 부상으로 전신마비가 되었다. 사고 후 갑자기 가지게 된 장애, 주위환경의 변화, 가정의 불화 등 여러 가지 힘든 상황에서 가톨릭수도회인 "사랑의 선교회"를 접하게 되었고, 그 곳에서 수사로 있던 임덕재 씨를 만났다.

  전경환 씨는 비록 전신마비이긴 하나 뇌기능은 정상이었고, 팔의 일부분도 사용이 가능했으므로 임덕재 씨와 함께 장애우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다가 바로 지금의 장애우자활공동체인 "푸른집"을 만든 것이다.

  "1991년 9월 당시 비슷한 상황과 처지에 있는 식구들 6명이 방값이 싸다는 용호동에서 시작했죠. 장애우가 많다보니 집주인들이 거의가 방을 내주지 않으려고 했죠. 어떤 경우는 카톨릭 신자라서 잘 됐다는 이야기며 반갑다고 하더니 장애우들이 많다고 하니까 계약하기를 무척 꺼려하는 경우가 있었어요. 그렇게 힘들게 방을 구하다가 저희 사정을 딱 하게 보신 한 분을 만나 전세금을 나중에 차차 갚기로 하고 방을 얻었어요." 그렇게 방 구하기가 힘들줄은 미처 몰랐다며 임덕재 씨는 씁쓸한 표정으로 당시를 회고했다.

  일단 공간을 마련하고 나자 푸른집 식구들은 주위에서 장애우들이 할 수 있는 유망업종이 컴퓨터라는 소리를 듣고 흑백모니터 16비트를 가지고 컴퓨터 기술을 배웠다고 한다. 이게 계기가 돼 용호동에서 생활을 하다 1년 후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로 옮겨와서는 성당 내 각종 활동보고서, 행정서류 등 본격적인 전자 출판일을 하며 생활해나가고 있다.

따뜻한 가정 분위기 중요해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를 구할 때는 아예 장애우들이 산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아 쉽게 구할 수 있었고, 마침 주인이 좋아서 양해를 해줘 별 어려움이 없었다고 한다.

  푸른집 식구들이 처음 아파트로 이사올 때 우려했던 점들은 사나운 아파트 인심이었다고 한다. "저희들이 처음 이사올 때 여기 근처가 모두 아파트 단지이니 참 어려운 생활이 되겠거니 생각했어요. 예상대로 사람들은 엘리베이터를 같이 탈 때라도 저희 가족들을 피해가곤 했죠. 그래서 생각 해낸 것이 "반상회에 열심히 참석하자"로 정하고 어느 누구보다도 먼저 가서 열심히 듣고 우리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죠.

그러다가 이사온 지 두 달쯤 되던 날, 등기부 사본 접수 때 아파트 3천여세대 중 과반수가 저희집 소문을 듣고 복사를 하러 오셨더라구요. 그때부터 주민들과 친밀하게 지내고 있어요. 이 아파트 장애우 중에서 몇 명은 컴퓨터에 관심이 있으시다며 이야기도 하고 책도 빌려서 보시기도 해요. 어떤 분들은 방학기간 중 자녀들을 보내 컴퓨터를 가르치기도 하구요"

  이런 몇 년 간의 노력 끝에 주님들뿐만 아니라 이제는 근처에 사는 장애우들도 자주 푸른집을 방문하고 있다.
  장애우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나오는 이야기이지만 장애우들에게 갈 수 있는 곳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 푸른집 가족 역시 가장 아쉽다고 한다. 피정이나 야유회를 통해 가끔 밖으로 나가긴 하지만 매우 힘이 든다고 한다. 그리고 더욱 힘든 점은 푸른집 가족과 삶을 같이 할 사람들이 필요한데, 거의가 일시적인 생활은 가능하나 모든 생활을 오랜 기간 동안 함께 할 사람이 없어서 무엇보다도 고민이라고 한다.

  "우린 푸른집이라는 단체의 성격보다도 개인적 나눔이라든가 따뜻한 가정적 분위기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함께 생활할 사람들을 만나기가 힘이 듭니다. 현재 오경환(34)씨가 저희들과 함께 새 가족으로 생활하고 있는데 이런 분들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임덕재 씨는 얘기 중간 중간에 친밀한 개인적 나눔에 대해서 강조를 많이 했다.

임덕재 씨는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식구들 중 신종명씨와 최윤이 씨가 결혼한 일을 꼽았다. 두 사람 다 중증장애우라서 주위의 모두가 강철(?) 같은 반대를 했었지만, 결국 결혼에 골인한 이들은 지금 결혼 1주년을 맞이해 행복하게 살고 있단다. 지금 가끔 사랑싸움도 하지만 그들이 행복해 보여서 정말 기쁘다고 했다.

  "저희 푸른집 가족들에게 소망이 있다면 어렵고 힘든 부분들을 차치하고서라도 좋은 배필을 만나 분가해서 행복하게 사는 것과 자신을 있게 해준 가족들과의 빈번한 교류가 있었으면 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푸른집 가족과 늘 함께하는 동지가 있었으면 하는 것이죠"

  기자는 푸른집에 있는 잠깐 동안 이때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충만함과 편안함을 만끽했다. 그리고 감히 용기 내어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소망을 가지고 사는 것은 정말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는 것과, 따뜻한 영혼을 찍을 수 있는 카메라가 있다면 푸른집은 말 그대로 푸르름이 가득 차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 세상엔 돈으로 얻을 수 있는 것도 많지만, 그럴 수 없는 것도 많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서로를 지탱시켜 주는 사랑과 서로를 부둥켜안아 소망을 나눌 수 있는 마음의 넉넉함과 충만함이다. 만약 그것이 메말라버렸다면 우리 "푸른집"의 풋풋한 향기를 몰래 조금씩만 가져오는 게 어떨까? 옛날 우리 조상들은 부잣집 흙을 조금 훔쳐와 자기네 집 앞마당에 뿌렸다는데 이것도 괜찮은 방법일 것 같다.

작성자우정아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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