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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 빗장을 여는 사람들의 주간 모임

우리의 현실 가식 없이 그린 "기적의 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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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장을 여는 사람들의 주간 모임


10월 10일 장애우 권익문제연구소 여성장애우 모임 "빗장을 여는 사람들"(이하 빗장)의 첫 주간 모임이 장애우 권익문제연구소 강당에서 있었다. 이 날 모임에서는 여성장애우를 다룬 영화 "기적의 가비"를 관람하고 토론하는 시간이 마련됐다. 빗장 회원 윤미경 씨가 영화를 보고 느낀 소감을 보내왔다.




우리의 현실 가식 없이 그린 "기적의 가비"
  이날 주간 모임에 모인 여성장애우는 9명이었다. 나의 경우엔 처음 만난 사람들이었지만 조금은 어색하면서도 아주 친숙한 분위기로 모임이 진행되었다. 시간이 되어 영화 상영이 시작되었는데, 제목은 "기적의 가비"라는 뇌성마비 여성장애우의 성장과정과 사랑을 그녀의 유모가 회상하는 형식의 영화였다.
  줄거리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부유한 가정에 말도 하지 못하고 겨우 왼쪽 다리와 발만 움직일 수 있고 사고력만 있는 뇌성마비 장애아 가비가 태어난다. 가비가 부모와 유모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여성으로 성장하면서 인간으로서의 권리와 본능을 쟁취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그려진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충격적인 것은 가비의 이성에 대한 사랑이 매우 솔직하게 그려졌다는 것이다.
  가비의 사랑은 "그리움"이라는 표현이 더욱 적당할 것 같다. 말을 못하기에 유모만 상대해 주니, 집에서도 혼자이고 특수학교에서조차 친구가 없을 때 관심을 가져주는 남자친구가 나타나자 만져보고 싶고 사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건 여자친구였더라도 같았을 것이다.
  영화는 첫 화면으로 신랑, 신부의 행복한 결혼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 모습이 장애 딸로 인해 깨져 가는 과정의 장면에서 나는 나의 부모님을 떠올렸다. 아마 그 날 모인 여성장애우들 모두 자기의 부모님을 생각했을 것이다. 부모의 자존심, 또는 체면유지라는 이유 때문에 가비는 바깥세상과 차단된다. 그래서 동네에서 머리가 거꾸로 달린 괴물이라는 소문이 나게 된다. 이 부분은 나의 가슴을 가장 아프게 했다.
  모든 장애우 부모들은 장애아가 생기면 처음 당하는 일이라 당황하고 불쌍하게만 생각하기 때문에 정작 아이의 인생을 결정할 수 있는 행동을 발견치 못하거나 아예 장애아를 아무 것도 못하는 사람으로 낙인찍는 경우가 있다. 모든 사람이 본인과 장애우와는 상관없다는 생각을 버리고 장애에 대한 대비를 했으면 좋겠다. 물론 더 이상의 장애우가 나와서는 안되지만 요즘처럼 사고가 많은 환경오염이 심한 세상에서는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이 영화에는 장애아 에게는 조기발견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주는 장면이 있었다. 가비가 밥을 주면 발로 차버리는 것을 부모와 첫 유모는 당연한 걸로 받아들였는데, 둘째 그 움직임을 대화의 통로로 바꾼 것이다. 정말 너무 너무 중요한 일이 아닌가?

우리의 이야기 공감해
이 영화를 보며 내가 가장 부러웠던 것은 아버지가 가비와 대화하며 딸을 안아주는 모습이었다. 나에게는 이 장면이 가비의 성관계 장면보다 더욱 더 충격적인 장면으로 다가왔다. 내가 알기로는 우리나라의 경우 아버지들은 대개 밖으로 겉도는 경우가 많다. 역시 나의 아버지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지난 세월을 아버지와의 대화가 거의 없이 산 것 같다. 다만 대화 내용은 "용돈 좀 주세요" 부탁하면 "얼마나 줄까" 정도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지금까지도 나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한다. 물론 아버지가 외도를 했다거나 노름을 하지는 않았지만 나에게만은 그저 겉도는 아버지였다. 그러니 엄마가 얼마나 괴로웠을까?
  사람의 인생의 반은 부모가 살아 준다 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뜻은 부모의 의식과 교육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나타내 주는 말이다. 그러니 우리 장애우에게는 두말할 것도 없이 너무나 중요한 게 우리의 부모님인데, 부모의 사망(생각하기도 싫지만)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내 얘기를 하겠다. 지난 4월5일 그렇게도 건강하시던 아버지가 고혈압으로 쓰러지셨다. 고혈압의 90%이상은 그 자리에서 사망한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 하나님이 보호하사 왼쪽만 마비가 오고 정신도 언어도 아무 이상이 없이 지금은 많이 좋아져 가고 있다.
  그때 내가 받은 충격이 아직도 가시지 않았는데, 만약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면 나는 가비보다 더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여기에서 보듯이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이 있을 것 같다. 우선 마음의 준비와 경제적인 준비, 동행인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 동행인이 필요한 것은 우리 장애우는 더욱 더 사람들과 어우러져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 속의 가비가 친구를 사귀려고 노력하고 아이를 입양했을 것이다. 이제는 맺어야겠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헬렌켈러를 생각하고 또 나를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 빗장 회원들을 생각했다. 헬렌켈러는 설리반 선생이 그녀의 일생을 헬렌켈러에게 바쳤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가비에게도 플로렌시아 라는 유모가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라고 묻고 싶다. 그래도 우리는 우리 부모님이 계셨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지 않나 하는 여운을 남겨본다.
  한가지 지적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영화제목이다. 그것은 기적이 아니다. 우리 여성장애우의 현실이고 삶 자체이고 일상 생활일 뿐이다. 이 영화제목은 분명 비장애우 번역자의 시각에서만 바라봤기 때문에 나온 제목일 것이다.
영화상영이 끝나자 돌아가며 각자 소개를 하고 영화 본 소감을 이야기하는데, 어떤 여성장애우는 감정이 복받쳐서 말도 못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모두들 나의 이야기다 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아무튼 그 영화 한편 속에 여성장애우 모든 이야기가 다 들어있었다. 시간이 짧아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털어 내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 첫 모임이었다.

 


윤미경 / 뇌성마비 장애우로 "빗장을 여는 사람들"회원이다.

작성자윤미경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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