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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배움의 나눔터 " 나사로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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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뭉친 한가족>

개미와 베짱이의 우화가 뒤바뀐 채 순간의 편안함과 안락함에 우리의 양심과 이성이 유혹당하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도 일할 수 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땀흘리는 사람들이 있다. ‘나사로의 집’은 일의 신성한 가치를 되찾고 그속에서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공동체이다.

‘나사로의 집’은 서울시 관악구 봉천 1동에 있는 한 건물 지하에 보증금 3백만원 월세 20만원을 주고 세들어 있다. 이 곳은 한마디로 말해 ‘정신지체 장애우 보호 작업장’이다.

‘나사로의 집’은 91년 12월 만 20세 이상의 통원이 가능한 남녀 정신지체 장애우들을 대상으로 단순작업 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의 적응력을 향상시키고 삶의 희망과 의욕을 북돋아 주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현재 이 곳엔 원장 박민정(64)씨를 비롯한 작업교사 3명과 교육봉사자 13명, 정신지체 장애우 21명, 기타 자원활동자 4명이 한식구처럼 지내고 있다.

“이 곳에 있는 장애우들 중에서 나이가 제일 어린 사람이 스물 두 살이예요. 그렇지만 다섯, 여섯 살 정도의 지능을 가진 사람들이지요. 전부가 특수학교를 졸업한 장애우들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이들이 맘놓고 일할 수 있는 곳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 식구들에게는 자신들도 사회에서 꼭 필요한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하는 것,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원장 박민정(62)씨는 이렇게 말하면서 장애우들과 함께 생활해 온 지난 몇 해를 회고한다. 처음 아는 목회자로부터 나사로의 집을 넘겨받았을 때 박민정 씨는 많은 갈등을 느꼈다고 한다. 직접 일에 부딪쳐 보니 정신지체 장애우들이 처한 현실적인 문제가 막연히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각했고, 그래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암담하기만 했다고 한다.

더군다나 물질적·정신적으로 자립이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주위에 도움을 청해보기도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장애우들을 골치 아프게 뭐하러 맡으려고 하느냐’는 핀잔과 조소 뿐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박민정 씨는 굴하지 않고 자신 또한 한 장애우의 어머니로서, 장애우도 마땅히 보호받고 존중받아야 할 인격체이고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동등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인식시키기 위해 이 일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고 한다.

“이 세상에 자기가 원해서 장애우가 된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사람은 하나님이 다 계획하시고 뜻하신 바대로 만들어졌기에 그 뜻에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곳 장애우들은 아마 평생을 어린아이과 같이 행동할 것입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탐욕과 시기, 질투, 미움, 살인까지 별의별 악한 일을 다저지르고 살지만 이 곳에 있는 사람들은 너무나 깨끗한 마음을 지닌 천사같은 사람들입니다. 천국이 따로 있겠습니까? 저는 이곳, 바로 이들과 함께하는 곳이 천국이라고 생각합니다.

<작업 자체가 교육이고 삶의 원동력>

‘나사로의 집’의 아침 시간은 친구들의 건강과 안부를 묻고, 청소하고 작업 준비하기에 바쁜 움직임들, 전화벨 소리, 물 끓는 소리... 이렇게 정겨운 분주함으로 시작된다.

‘나사로의 집’의 공식적인 출·퇴근 시간은 오전 9시, 오후 4시로 정해져 있다. 그러나 정확히 몇 시에 문을 열고 닫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만큼 작업교사들의 정신지체 장애우들을 위한 헌신은 눈물겹다. 장애우들보다 일찍 와서 작업 도구를 챙기고, 늦게까지 남아 뒷정리를 마치고서야 교사들은 퇴근을 한다.

‘나사로의 집’에서 현재 하는작업은 국민학교 학습 교재로 사용되는 재료들을 하청받아 포장하는 단순 작업이다. 리더교재사라는 작은 회사에서 만든 막대 자석, 말굽 자석, 팽이, 저울, 끈 등을 적당한 개수로 나누어 포장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 일은 단가가 채 10원도 안되는 일이 대부분이다. 단순작업이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큰 노동력을 요하는 일은 아니지만 작업 종류가 바뀔 때마다 일을 습득하기까지에는 많은 시간과 어려움이 따른다. 그렇기 때문에 장애우들이 할 수 있는 작업량은 그리 많지 않다.

장애우들은 하루 4시간 정도의 일을 하고 한 달에 대략 1만3천원에서 많으면 3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는다. 비장애우들이 보면 형편없는 금액이겠지만 장애우들에게는 매우 큰 의미를 주는 월급이다. 장애우들은 이 월급을 가지고 저축도 하고, 필요한 물건을 사는 법을 배운다. 장애우들에게 있어 작업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기보다는 작업 그 자체가 교육이고 삶의 원동력이다.

‘나사로의 집’에서 뭐니뭐니 해도 가장 즐거운 시간은 간식과 점심 시간이다. 식구들은 작업장에서 공동으로 점심을 준비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지만 작업장 공간이 부족하고 손이 많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점심은 각자 준비해 온다. 가끔은 친구들의 빈 도시락을 말없이 채워주며 온 식구가 둘러 앉아 밥을 나눠 먹는다.

오후 3시부터 4시까지는 레크레이션 시간이다. 이 시간에는 교육봉사자들의 도움으로 많은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평생교육이라는 말도 있지만 우리 정신지체 장애우들에겐 교육의 중요성이 더 큰 것이잖아요. 저희들은 특수교사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 식구들을 어떻게 교육해야 할 지 고민이 많아요. 우리는 전문적인 지식은 부족하지만 끊임없는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함께 배워나가는 마음으로 가르치고 있어요” 교사 정희주(39)씨 말이다.

‘나사로의 집’ 식구들은 매주 수요일이 되면 근처 한 교회의 목회자로부터 찬양과 율동을 배운다. 그리고 매주 토요일에는 작업을 하지 않고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야회수업을 나간다. 요즘은 인근 재활원과 축구 시합을 앞두고 있어 식구들은 축구 열풍에 휩싸여 있다.

“여기서 우리가 하는 일이 뭐 도움이나 되겠어요? 다 내 자식들이다 생각하고 나오다 보니 정이 많이 들어서 안 보면 걱정되고 궁금하고 그래요. 그리고 여기 장애우들 작업하는 모습 모면 참 대견해요. 누가 요즘에 이런 돈도 안되는 일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여기 있는 장애우들이 오히려 사회에 봉사하는 거라구요” 자원활동자 신정자(56)씨의 말이다.

‘나사로의 집’은 햇볕 한 줌 들지 않는 곳에 자리잡고 있지만 지상의 그 어떤 장소보다 풍요롭고 사랑이 넘치는 곳 일 것이다.

작성자전경애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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