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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 이야기] "이제 사랑을 찾았어요"

늦깎이 예비신부 김진옥씨

본문

[사람사는 이야기]

 

"이제 사랑을 찾았어요"


늦깎이 예비신부 김진옥씨

 

 

 

  "진옥 언니가 결혼한대. 얼마 전 약혼식까지 치렀대." "정말이야?" "그렇다니까, 상대는 비장애우 남자인데 진옥 언니밖에 모르는 착한 사람이래" "어쩜, 진옥 언니는 정말 좋겠다."
  여성장애우모임 "빗장을 여는 사람들"에서 김진옥씨의 결혼이 화제가 되고 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마흔 살 먹은 노처녀가 결혼하는 게 뭐 그리 대단하냐고 핀잔을 줄지 모르지만, 진옥 씨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그녀의 결혼이 단연 톱뉴스다.
  왜 그럴까? 적지 않은 나이 외에도 그녀가 중증 뇌성마비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그럴까, 아니면 장애우 남성과 비장애우 여성이 결혼하는 사례는 많아도 장애우 여성과 비장애우 남성이 결혼하는 예는 드물어서 그럴까, 그도 저도 아니면 부러워서?
  그럴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녀의 결혼이 용기있는 결단이라는 데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다.
  진옥 씨는 결혼을 하기 위해서 실제로 큰 용기를 내야 했다. 그런 진옥 씨에게 결혼하는데 무슨 용기씩이나 필요하냐고는 말하지 말자. 현실은 여성장애우들이 결혼하는데 있어서 고민을 거듭하게 하고 있고, 그 고민 끝에 내린 결단은 용기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비장하니까.
  내친 김에 여성장애우 이야기를 해본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장애우가 삼중의 고통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여성, 장애, 빈곤의 고통으로 알려진 여성장애우 문제는 해결의 기미가 보이기는커녕 날로 심각성을 더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여성장애우들이 겪고 있는 고통의 실체를 굳이 다른 데서 찾아볼 필요가 없다. 결혼을 앞두고 있는 진옥 씨의 사십 년 동안 살아온 삶이 여성장애우 문제를 생생하게 대변하고 있다.
  선천성 뇌성마비 장애우인 진옥 씨, 몸이 굳어 팔 다리를 전혀 사용할 수 없었고, 그래서 혼자 힘으로는 밥도 먹을 수 없었던 진옥 씨는 버둥거리며 살아야 했던 암흑의 시기를 다음과 같이 회상하고 있다.
  "제가 자라던 당시에는 지금하고 달랐어요. 지금은 손을 내밀면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그때는 도움을 받을 곳이 없었어요. 리프트가 달린 차와 휠체어를 탄 장애우의 모습은 외화의 한 장면일 뿐이었고, 편의시설이라는 말 자체가 없었던 시대의 암흑이 곧 내 삶의 암흑으로 이어졌지요. 취학통지서를 받아 들고 우시던 부모님들의 표정이 지금도 내 기억 속에 또렷이 새겨져 있는데, 제가 살아오면서 제일 힘들었던 건 정규교육을 받고 싶었지만 학교를 다닐 수 없었다는 거예요. 이동문제가 거의 불가능했죠. 엄마가 집안생계를 책임지시고 있었기 때문에 미처 저한테 신경을 쓰지 못했어요. 움직일 수 없었던 저는 집에 혼자 남아, 물을 마시고 싶어도 컵에다 물을 따르지 못하니까 마시지 못 하고, 식사도 빵이라 김밥 같은 걸 사다놓지 않으면 혼자 먹을 수 없으니까 굶으며 힘들게 살아야 했죠."
  설상가상으로 진옥 씨는 그녀의 나이 열한 살 때 식구 중 그녀를 가장 장 이해해주던 아버지를 잃는다. 그때부터 진옥 씨는 본격적으로 절망에 몸부림친다.
  "나는 망가져버린 내 팔다리가 수치스러웠고, 그런 수치를 느낄 수 있는 내 명료한 정신이 원망스러웠어요. 어쩌다가 집 밖을 나서면 동물원 동물 구경하듯이 나를 구경하는 사람들의 시선과 마주칠 때마다 나 자신이 혐오스러웠죠."
  이렇듯 자신이 못견디게 혐오스러웠던 그녀는 결국 자살을 꿈꾼다.
  "십대 후반이었을 거예요. 내가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가, 이런 모습으로 산다는 건 너무나  자존심 상한다는 생각을 했죠. 태어나는 건 내 의지가 아니었지만 끝내는 건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바늘을 동맥에 꽂아 자살을 기도했어요. 그게 실패로 끝나자 약도 모아보기도 했고, 그때는 정말 죽는 게 절실한 제 꿈이었어요."
  그녀가 이렇듯 온통 암흑뿐인 환경을 극복한 것은 전적으로 종교의 힘 덕분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교회에 다니고 하나님을 믿게 되면서 그녀는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 계속 염세주의에 빠져서 죽음만 생각하고 산다면 내 인생에 아무런 도움이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신앙인이면 남들에게 전도도 해야 하는데 어두움 표정을 짓고 있으면 어울리지 않잖아요. 내가 먼저 밝아져야 하고, 내가 먼저 극복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렇게 결심을 하자 그녀는 본격적으로 외출을 시작했다. 휠체어를 타고, 남의 도움을 받아 돌아다니면서, 비장애우 친구들을 만나고, 검정고시를 거쳐 방송통신고등학교에도 진학했다. 친구들과 같이 여행도 다니면서 바깥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완전히 극복했다.
  그렇지만 그녀 내면에는 여전히 아픔이 있다. 그녀는 사십 평생을 살면서 제일 힘들었던 게 뭐냐고 묻자, "사람들의 편견"아리고 대답한다.
  "내가 무슨 일을 하려고 하면 가족들을 포함한 주위 사람들이 내가 장애우라는 편견을 갖고 보는 게 제일 힘들었고 가슴 아팠어요. 심지어 내가 결혼을 한다고 하자 가족들은 몇 달 전까지도 무슨 결혼을 하니, 그냥 살지 그러더군요."
  사람들의 편견 외에도 그녀를 힘들게 했던 건 깨진 사랑의 아픔이다. 그녀는 한창 종교생활을 열심히 할 때 한 비장애우 남자를 만난 적이 있다. 결혼을 약속하며 사귀었던 두 사람은 결국 헤어졌다. 그 과정이 그녀의 수기 "공통 한가운데에 섰노라면 고통은 사라지고"에  다음과 같이 기술돼 있다.
  "나는 오랜 종교생활 중에 한 사람을 알게 되어 사랑을 하게 되었다. 그는 비장애우와의 교제에 용기가 없었지만 그의 조용하고도 지속적인 관심에 내 마음을 열렸다. 우리는 결혼을 약속하고서 어른들께 발표했다. 그러자 그 남자의 부모가 반대하고 나섰다. 동정심으로 결혼하면 후회하게 된다. 빨래도 밥도 못하는 여자와 어떻게 결혼을 하느냐고 펄쩍 뛰었다. 나같은 여자와 데이트를 하나 것만도 대단한 일이라고 그를 부추겼다.
  점점 결혼의 결심이 약해지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와 헤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삼사 년간 그와 주고받았던 편지와 그가 내 손가락에 끼워주었던 반지를 되돌려주던 날 내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뛴다던 그는 오열했다. 나는 가슴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악수를 청하며 미안하다고, 미처 세상을 몰랐었노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장애우들의 가사와 자녀 양육까지 도와주는 시스템을 가진 선진국에서 살았더라면 내가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지는 않았으리라."
  이렇게 모진 이별의 아픔을 겪은 그녀가 다시 비장애우 남자와 결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뭘까?
  "오빠가 바르게 사시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그리고 너무 편해요. 내가 어떤 모습도 다 보일 수 있을 만큼 편해요. 오빠랑 사귀면서 장거리 여행도 갔는데, 저를 대하는 게 전혀 편견이 없고, 참 편하고 괜찮은 분이어서 저 정도의 인격을 가진 사람이면 결혼을 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사실을 얘기하면서 진옥 씨가 결혼을 서두른 감도 없지 않다. 두 사람이 만난 건 불과 오 개월밖에 안된다. 지나 유월 진옥 씨는 한벗 장애인 이동봉사대 자원활동자였던, 올해 마흔여덟 살인 김정금씨를 만났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만난지 오 개월만에  결혼을 약속하고 약혼식을 치른 것은 아무래도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결혼을 너무 서두르는 게 아니냐고 묻자 진옥 씨는 "왜 그렇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오빠랑 사귀면서 급속도로 가까워진다는 말을 실감했어요"라고 말하며 웃는다. 그녀 말을 받아 정근 씨가 거든다.
  "왔다갔다 자주 하다보니까 가까워지고 거리감도 없어지더라구요. 마치 오래 전에 만났던 사람처럼 친밀감이 들고, 무엇보다 진옥 씨가 명랑한 게 좋았어요. 내가 진옥 씨와 결혼을 결심할 수 있었던 건 결혼하면 다른 건 다 똑같은데 내가 일 좀 더하면 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짧은 기간이었지만 진옥 씨와 사귀면서 진옥 씨 손발이 돼 주는 게 전혀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더군요."
  두 사람은 누가 먼저 얘기를 꺼냈는지 모르게 자연스럽게 결혼을 약속하게 됐다고 한다. 이런 두 사람을 두고 "눈이 맞았다"는 표현을 쓰는 걸까. 아무래도 두 사람은 천생연분인가 보다.
  결혼을 결심하게 된 데에 대한 설명이 미진했다고 판단했는지 진옥 씨가 말을 덧붙인다.
  "아마 오빠가 나와 다니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힘겨워 하는 오빠를 선택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건 사랑이 아니죠. 내가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고 하면 그 사람의 약점이 있다고 해도 창피해 하거나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오빠를 사랑하게 된 경위도 나랑 다니는 것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신뢰가 생겼죠. 사랑은 "나 너 사랑한다"고 말로 해서 되는 것 아니잖아요. 느껴지는 게 있어야 해요. 그게 진짜 사랑이죠." "평소에 휠체어를 뒤에서 밀고 가는 상상이 참 좋더라구요. 공원 같은 데서 남녀가 손잡고 걸어가는 것보다 휠체어를 밀고 가는 모습이 멋져 보였어요. 이제 나도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게 된 것 같아 가슴이 뛰어요. 쳐다보는 시선이요? 그런 건 신경 안쓴지 오래 됐어요."
  주거니 받거니 두 사람은 신이 나서 얘기한다. 분명한 건 결혼을 앞둔 두 사람의 얼굴에 그늘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사실 건축업에 종사하는 정근 씨 입장에서는 지난 유월 벼룩시장을 보고 한벗회에 차량 자원봉사자로 등록했을 때, 그게 계기가 돼 결혼까지 이어지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우연히 차량 이용자로 그의 차에 탄 진옥 씨가 이동수단이 없어 애태우는 모습을 보고 "저녁때는 언제든지 시간이 있으니까 차가 필요할 대는 연락하라"고 언질을 준 게 계기가 돼 귀가 수단이 없었던 진옥 씨가 늦은 밤 연락하게 되고, 그렇게 일주일에 두세 번 만나면서 지루함을 떨쳐버리려 차 속에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던 게 결국 결혼으로 이어졌다.
  물론 진옥 씨와의 결혼을 정근 씨 집에서 찬성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반대를 극복할 자신이 있다는 게 정근 씨 말이다.
  그런데 정근 씨는 그렇다 치고 진옥 씨는 어떻게 결혼을 결심했을까. 남자가 도와준다고 하지만 여성장애우들은 결혼을 앞두고 여러 가지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그 중 가장 큰 고민은 자녀 양육 문제다.
  진옥 씨는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생기면 낳겠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진옥 씨는 자녀 양육에 대한 어떤 대한을 가지고 있는 걸까.
  "지난 여름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주최로 열린 한일장애인교류대회에 참석했을 때 일본에서 온 여성장애우 한 명을 만났어요. 그분도 휠체어를 탔는데 장애가 저보다 심했고, 외모도 저보다 더 뚱뚱했어요. 그런데도 시의원으로 활동하면서 두 아이를 키우고 있대요. 그 분 얘기가 결혼해서 살다가 도중에 이혼해서 지금은 혼자 아이를 키우고 있다고 하길래 내가 물어봤죠. 가사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제일 염려되는 건 아이를 키우면서 정서적인 점, 예컨대 내가 아이를 보듬어 줄 수 없을 대 파생되는 정서불안 문제라든지 또 아이가 자라면서 엄마가 장애우이기 때문에 혹시나 열등감을 느끼지 않겠느냐고 물어봤더니 내 어깨를 자기 어깨로 툭 치면서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고 그래요.
  내가 깜짝 놀라서 "그게 왜 쓸데없는 걱정이야, 나는 그게 제일 걱정인데"라고 반문했더니 그 분 얘기가 아이하고 엄마는 아버지하고 달라서 정신적으로 이어진 끈이 있대요. 돌봐주지 못해도 엄마를 따르게 돼 있기 때문에 하나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그러시잖아요. 장애를 가진 부모지만 비장애우 부모보다 더 정성으로 돌봐주고 정신적으로 대화를 해주면 오히려 긍지를 갖는대요.
  매일 보기 때문에 자기 부모를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고 그러면서 바로 그게 통합사회 아니냐, 진정한 통합사회는 여성장애우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사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데 그 분을 만나면서 용기를 얻고 내 인생관이 달라졌죠. 내가 쉽게 결혼을 결심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그 분 덕분이라고 볼 수 있어요."
  자녀 양육 문제 외에 가사 문제도 심각하지 안겠냐고 물어보자 그녀는 "밥은 전기밥통에 하면 되고, 빨래는 세탁기가 알아서 해줄테니까 걱정을 하지 않는다"며 "그래도 힘들면 복지관에 연락해서 가정도우미를 부를 거예요. 앞으로 도우미 제도가 활성화되면 여성장애우들이 결혼하는데 가사 문제는 큰 어려움이 되지 않을 걸로 알고 있어요"라고 야무지게 대답한다.
  때문에 진옥 씨에 따르면 여성장애우들이 결혼하는데 있어서 정작 큰 걸림돌은 여성장애우 자신이 결혼에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자기 인생은 자기 거예요. 외부의 시선이 두려워서 자기 인생을 못살면 실패한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어요. 어떤 사람을 좋아하면 자연스럽게 결혼하면 돼요. 마음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거죠. 비단 결혼문제 뿐만이 아니라 매시간 적극적으로 살다 보면 아무리 장애가 심해도 자기가 원하는 걸 반드시 얻을 수 있는 거죠."
  그녀 말이 끝나자 옆에서 정금 씨가 끼여든다.
  "진옥 씨와 결혼하면 우선 내 특기를 살려서 진옥 씨가 집안에서 움직이기에 불편이 없게끔 편의시설을 모두 갖출 겁니다. 여성장애우를 위한 편의시설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줄 테니까 그때 꼭 놀러 오셔야 합니다."
  두 사람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방안을 가득 메우고 넘쳐났다.

 

글/이태곤 기자

사진/ 곽성호 객원기자

작성자이태곤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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