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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 이야기]"왜 같이 사는데 돈이 필요합니까."

지체장애우 이남노씨

본문

"왜 같이 사는데 돈이 필요합니까."
                          지체장애우 이남노씨
충북 증평에 사는 이남노씨는 결혼 문제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구체적으로는 많은 여자들이 그에게 상처를 입혔다 그럼에도 여전히 짝을 찾아 소박한 꿈을 이루며 살고 싶다는 그의 결혼문제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 본다.
이태곤 (함께걸음 기자)

 

 결혼에 목 맨 장애우는 비단 "그" 뿐만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도 많은 장애우들이 결혼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썩히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안다. 그렇다면 왜 이남노씨인가. 그에게는 남들이 쉽게 경험할 수 없는 특이한 경력이 있다.
 "오로지 짝을 찾기 위해 거금을 들여 먼 나라 중국에 가서 어렵게 찾은 짝을 데려왔더니 그 짝은 돈만 챙기고 자신을 헌신짝처럼 버렸다(?)" 이게 한마디로 정리한 이남노씨의 사연이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사연인가.
 이남노씨의 예에서 보듯 성급한 진단이지만 바야흐로 이제 장애우 결혼도 국제화 바람을 타나 보다. 그는 결과가 안 좋았지만 혹시 모른다. 멀지 않은 장래에 필리핀과 방글라데시 그리고 중국 처녀와 총각을 대량 수입해 와 장애우들의 짝을 찾아주는 정부 정책이 시행될지, 그렇게 되면 또 약삭빠른 주식회사는 돈이 되는데 가만있겠는가. 이렇게 돼서 만약 장애우 국제결혼 붐이 일면 언론사 기자들은 한참 헷갈리겠다. 이 사실을 미담기사로 써야할 지, 아니면 문제성 기사로 써야할지 몰라서 말이다.
 아아 망할 것, 이 나라는 어떻게 도 철저하게 장애우들을 버리고 있구나.
 충북 증평에 사는 올해 서른네살인 이남노씨가 이 나라에서 짝을 못 찾고 중국까지 가게 된 건 물어보나마나 그만큼 결혼이 절실해서이다. 왜 절실한가. 단지 혼기를 넘긴 나이 때문만이 아니다. 그렇다면 한쪽 팔과 두 다리가 자유롭지 못한 장애 때문에 "이러다가 평생 혼자 사는 거 아냐"라는 위기감으로 인한 그 자신의 조급함 때문만도 아니다. 그보다는 그의 부모가 각각 일흔네살, 일흔한살로 황혼기에 접어들면서 그의 결혼을 마지막 소원으로 여기고 서두르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절실한 이유이다.
 슬하에 네 형제를 낳아 장애를 가지지 않은 자식들은 모두 다 결혼시켜서 내보냈지만 셋째인 남노는 장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품에 안고 살고 있다. 매일 조석으로 집에서 뒹구는 자식을 보며 부모는 어떤 심정을 느껴야 하는가, 더욱이 당신들이 지상에 없는 미래를 생각하면, 거기에 생각이 미치면 억장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무슨 수를 써서든지 남노를 결혼시켜야 하는 것이 지상과제가 된 것이다.
 그 무슨 수가 이남노씨의 중국행을 촉발시켰다. 그의 중국행은 그의 집안의 재력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렇다고 이남노씨 집안이 큰 부자인 것은 결코 아니다. 생업수단으로 그의 늙으신 부모는 팔천평 땅에 논농사와 밭농사를 직접 짓고 있다. 거기서 나오는 소출이 쏠쏠하다 보니 먹고 살 걱정은 하지 않고, 나아가 여유가 조금 있는 셈이다. 이런 집안 형편에 남노씨의 중국행은 어쨌건 무리였다. 무려 경비로 이천만원이 깨졌으니 말이다.
 남노씨가 생애 첫 해외 나들이에 나선 것은 작년 시월 말이다. 노모가 답답함 끝에 어디서 "중국여자를 데려오면 잘 산다."는 얘기를 듣고 청주 사는 둘째 아들에게 부탁해 한 여행사를 소개받게 되면서 그의 결혼을 위한 중국행이 이루어졌다.
 여행사는 떠나기 전 경비로 일천만원을 요구했다. 그리고 여자에게 줄 지참금 오백만원을 더해서 합계 일천오백만원을 선금으로 여행사에 주고, 그는 연변 조선족 처녀 중 "이왕이면 장애우와 결혼하년 서로 이해하고 살 수 있겠지" 싶어서 장애가 경한 여자를 소개받기로 하고 중국땅에 발을 딛었다.
 연변 백산호텔에 여장을 푼 그는 곧바로 그 곳 중매쟁이로부터 여자를 소개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처음 그 앞에 모습을 드러낸 여자는 약속과는 달리 비장애우 이혼녀였다 자기 입으로 이혼녀라고 신분을 밝힌 그녀는 이어 "나는 중국에서도 장애우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많이 했다. 그래서 한국에 나가서도 봉사활동을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가만히 여자 말을 듣던 그는 기분이 몹시 상했다. "그러면 내가 장애를 가졌으니까 나한테 시집와서도 방사를 하는 심정으로 산다는 얘기인데 참 내가 기가 막히는구나. 인간이 사는 것은 똑같이 사는 건데 봉사고 희생이고 그게 왜 전제가 되어야 하지…" 이런 생각이 든 그는 여자를 향해 "됐습니다. 그만둡시다."라고 그 자리에서 퇴짜를 놨다.
 다음 날 그는 "그 여자밖에 없으니 결혼해라"라고 부추기는 여행사 직원에게 "내가 결혼하러 왔지 이혼녀 구제하러 온 거요"라고 면박을 주고 "다른 여자를 데려오라"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그는 그곳에 머무는 열흘 동안 다섯 여자를 상대로 선을 봤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의 마음에 드는 여자는 없었다.
 그가 선을 본 다섯 명의 여자 중 세 명의 여자는 이혼녀였고 두 여자는 명색이 처녀였다. 그 두 명의 처녀 중 한 명은 눈으로 보아도 정신이상기가 있었고 한 처녀는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몰라 퇴짜를 놨다.
 결국 다섯 번째 여자인, 역시 이혼녀인 서른다섯살의 방아무개씨와 그는 썩 마음에 들지도 않았는데 여행사 직원이 "더 이상 여자도 없고 시간도 없다."고 윽박지르는 통에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결혼 수속을 했다.
 그렇다면 그가 이역만리에서 택한 방아무개씨는 누구인가. 그녀는 이혼녀로 슬하에 아홉 살 난 아들이 하나 있었고 연변에서 사법학교를 나와 유치원 선생을 하고 있는 소위 말해 배운 여자였다. 그런 여자가 돈에 팔려 낯선 이역에서의 삶, 그것도 장애우와의 결혼에 동의한 것이다 .이 사실 또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그는 그녀에게 지참금으로 인천만원을 주기로 했다. 먼저 여행사를 통해 오백만원을 건네주고 나머지 오백만원은 국내에 들어와 한 달을 넘기면 주기로 하고 그는 그녀와의 혼인 수속을 마쳤다. 중국에서는 혼인신고만 하면 여자를 데려올 수 있기 때문에 그녀와의 결혼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로부터 팔 개월 후인 올해 유월 마침내 방아무개씨는 가방 하나를 들고 그가 사는 증평땅에 발을 딛었다.
 과정의 비도덕성이야 그렇다 치고 어쨌건 힘들게 결혼했으니 그와 방아무개씨가 아들딸 낳고 잘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그의 결혼은 깨졌다. 정확하게 같이 산지 사십일만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파경은 과정 자체에서 이미 예고돼 있었는지 모른다. 이제 그의 노모의 기억을 더듬어 보자.
 "그 얘가 오고 나서 일주일부터 시원찮았어. 애는 살림도 잘하고 똑똑해서 하나 내버릴 게 없는데 공연히 트집을 잡는 거야. 동도 한 달 후에 준다고 한건데 일주일만에 달라고 그러고, 우리가 돈을 안준 거지. 사람을 겪어보고 돈을 줘야지 그냥 돈만 디밀 순 없잖아. 돈을 안주니까 트집을 잡는데 뭐라냐면 남노더러 남자 노릇을 못한다는 거야. 장애 가진 거는 지가보고 왔으니까 문제없는데 남노더러 남자구실을 못한다고 허구헌날 찔찔거리며 앉아서 우는데, 아니 그전에도 한 남자구실을 왜 저한테는 못한다는 거야.
 그래서 병원에 가서 진찰도 받아 봤는데 남노에겐 아무 이상도 없고 오랫동안 여자를 겪지 않아서 그렇다는 거야. 긴장을 해서 그렇지 더 있으면 괜찮다고 그러는데도 저는 막무가내니 견딜 수 가 있어? 그리고 내가 노파심에서, 저한테 오자마자 바로 아이를 가지라고 그랫는데 아이를 가지려고 노력하기는커녕 오자마자 피임약을 먹는 거야. 남노가 여자가 자꾸 이런 약을 먹는다고 그래서 그 약을 들고 약국 가서 물어보니까 피임약이라고 그러잖아 글쎄, 그래서 내가 꾸짖었더니 저는 자꾸 애만 낳으면 뭐하냐고, 안 낳는다고 그러더라구,
 이런 거는 내가 다 참았어. 그런데 남노를 짓밟아 대니 두고 볼 수가 있어야지. 아예 남노를 사람취급을 안해. 남노가 나가면 나가나보다, 들어오면 들어오나 보다, 쳐다보지도 않고 내가 들에 나갔다 오면 멀리서부터 들들 볶고 싸우는 소리가 들리는데, 야 남노야 너는 내 동생이나 한가지야. 너를 내 동생으로 안다. 그러면서 야 남노야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들들볶고 싸우는 거야 그러니까 남노가 속이 상해서 말을 안했다구. 그러면 또 말을 안 한다고 들들 볶고, 말도 말아. 하루라도 맘 편할 날이 없었어."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그와 방아무개씨가 결정적으로 헤어지게 된 것은 방아무개씨가 중국에 있는 친구에게 보내려다 버린 편지가 쓰레기통에서 발견되면서였다. 그는 방아무개씨와 산 지 한달이 도는 어느 날 우연히 쓰레기통에서 구겨진 그 편지를 발견했는데 편지에는 "나머지 돈 오백만원을 받고 주민등록증이 나오면 돌아갈 계획이다."라고 적혀 있었다.
 방아무개씨가 그와의 불협화음외에 중국에서 가져온 약을 팔러 나가겠다고 자꾸 우기는 통에 가뜩이나 미운 털이 박혀 가는 중에 발견된 그 편지는 그와 부모가 방아무개씨에게 정내미가 떨어지는 경정적인 계기가 됐다. 다시 노모의 얘기를 들어보자.
 "아무리 생각해도 남노와 살 애가 아니더라구. 그래서 살 애가 아니니까 가라고 그러니까 못 간다고 바락바락 대들더라구. 연변에 있는 살림을 정리해서 왔고, 가면 먹고 살 길이 없다는 거야. 그래서 너 친구한테 편지 써서 어디다 뒀냐고 채근하니까 그제서야 기가 팍 죽대. 너 편지에 이래저래 쓰지 않았느냐 그러자 그저 장난삼아 썼다가 버렸다고 발뺌하는 거야. 그래도 너 머리에 생각한 게 있으니까 그런 편지 쓴 거 아니냐, 내가 야단쳤지. 그 다음날 이혼 수속해서 일주일 후에 출입국관리소에 가서 보냈어. 가느라고 돈 들어가고, 보내느라고 돈 들어가고 족히 이천만원은 들어간 셈이야. 이젠 중국 얘기만 들어도 진절머리가 나. 남들은 잘 산다는데 어떻게 그런 여자가 오게 됐는지 원…"
 단지 운이 없어서였을까. 그의 짧았던 결혼 생활은 이렇게 허망하게 끝이 났다. 그 후로 지금까지 그는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고독은 더 깊어가고, 견딜 수 없는 자괴감은 수시로 그의 가슴을 헤집는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얘기지만 그의 결혼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동안 그는 선을 열 번이나 봤다. 그 중에서 두 여자는 그 곁에서 잠시 머물다가 떠나기도 했다.
 그가 선을 처음 본 것은 그의 나이 스물한살 때였다. 상대는 청각장애우였는데 그 당시에는 그도 꿈이 많아(?) 여자가 성에 차지 않았다. 그 후 스물세살 때 본 여자는 목발을 짚은 소아마비 장애우로 그 여자는 그의 곁에 잠시 머물렀다.
 "그 여자는 보조기를 차고서도 나보다 상태가 더 나빴어요. 걷는 것도 힘들고, 그 여자는 집에 들어와서 이틀을 같이 살았는데 답답하더라구. 나도 앉아서만 지내는데 여자마저 그러니 엄마가 고달플 것 같아서 결국 부모님이 내 보냈어요."
 그와 짧은 동거 생활을 한 두 번째 여자는 얼굴에 약간 이상이 있는 여자였다. 그 여자와는 약혼식까지 올리고, 두 달여 같이 살았는데 그의 표현에 따르면 "여자가 자존심을 팍팍 건드려요. 내가 몸이 이렇다고 밥이나 해주고 빨래나 해주면 된다고 그러니 같이 살 수가 없죠."
 그래서 헤어졌다. 그가 이런 식으로 여러 여자를 소개받는 과정에서 내국인 여성과 마지막으로 선을 본 것은 재작년이었다. 충주에 사는 한 이혼녀를 소개받아 몇 차례 만남을 가졌다. 그런데 그 이혼녀가 제사하는 조건이 너무 까다로워 결국 결혼에 이르지 못했다. 그 이혼녀는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고 중학교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 둘을 키우며 살고 있었는데, 요구인즉슨 "아이들이 먹고 살 수 있는 돈을 달라."는 것이었다. 그의 집에서 여자 요구가 그렇다면 "가게를 하나 내줘서 먹고 살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더니 그 방안은 여자가 거부했다. "이젠 고생이 지긋지긋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편히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매사가 이런 식이었다. 그의 결혼의 가장 큰 걸림돌은 이 이혼녀처럼 상대 여성이 그를 인간 자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재물을 바라면서, 같이 살아주는 것에 대한 대가를 요구했기 때문에 번번이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때마다 그는 "왜 같이 사는데 돈이 필요하냐."고 항변했지만 그의 하소연은 냉엄한 자본주의 체제하에서는 변죽도 울리지 못한 채 허공에 뱉는 한숨에 그칠 따름이었다.
 어쨌든 이렇게 결혼을 위해 그동안 누구보다 애태우며 노력해온 이남노씨, 그가 최근 들어 전략을 바꿨다. 그의 다년간의 경험에서 비롯된 분석에 따르면 자신의 결혼 실패가 첫째는 장애, 둘째는 농촌 총각이라는 악조건, 세 번째는 자신이 뚜렷하게 하는 일이 없어서 내세울 게 없기 때문이라는 판단을 한 그가 첫 번째 두 번째 악조건은 인위적으로 어떻게 할 수 없지만, 세 번째 악조건은 자신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스스로 진단을 내리고 곧바로 행동에 옮긴 것이다.
 사실 그는 서른네살이라는 나이에 이르도록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다. 청소년기에 삼육재활원에 들어가서 시게수리와 도장 파는 기술을 배우기도 했지만 불편한 손 때문에 얼마 안가 그만둬야 했다.
 그럼 그는 그 억겁의 세월을 무슨 일을 하며 지냈나. 그는 시를 썼다. "늘 혼자 지내다보니 저점 사람이 나태해지는 것 같아 무슨 일이든지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시를 쓰기 시작했어요."
 그렇다. 그는 시를 썼다. 라디오 엠비씨 에프엠의 아침프로 "김세원의 아침의 음악살롱"이라는 방송이 있었는데 그 프로에서 열시 이십분쯤에 매일 한 편씩 낭송해 주는 시를 녹음했다가 되풀이해서 들으며 그 시를 그대로 노트에 옮겨 적는, 그런 원시적인 방법으로 그는 습작을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쓴 시가 어느덧 팔백편 가까이 된다. 그리고 제법 이력이 생긴 요즈음에는 구상이 떠오르면 "단숨에 써서 끝내는" 단계에 다다르고 있기도 하다.
 이 시 쓰기는 그에게 여러모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지 않아 그는 최근 "순수문학"이라는 문예지에 시가 추천돼 문단 데뷔를 마쳤고, "평생 소원"이라고 부모님에게 매달려 <눈이 내리지 않는 까닭>이라는 제목의 시집을 자비 출판하기도 했는데, 이렇게 됨으로써 이제 그는 "시인"이라고 자신의 직업을 떳떳이 밝힐 수 있게 된 것이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그동안은 시집이 안 나왔으니까 내가 할 일이 있었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죠. 그래서 부모도 아무도 갖다 끼워 맞추면 내가 그냥 잘 사려니, 그리고 여자들도 저 집에 가면 호강을 하려니, 그러면서 접근했는데 이젠 아니죠. 나도 직업이 있고 자존심이 있는 거예요. 이젠 상황이 예전과는 많이 다를 거예요."
 그가 덧붙인 말에 따르면 시집을 내게 된 데는 "결혼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하는 약간의 바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예전처럼 결혼을 서두를 작정은 아니라고 한다. "지상목표가 결혼이긴 하지만 결혼에 너무 집착하니까 더 안되는 면이 있어요.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결혼을 하게 되면 같이 살고 그렇지 않으면 혼자 살 각오도 하고 있어요. 옛날부터 이렇게 마음먹었으면 편한 건데 너무 조급해했던 게 후회돼요."
 그가 원하는 여성은 비장애우다. "어차피 삶은 기대서 사는 거니까 이왕 기대려면 장애우보다는 비장애우에게 기대고 싶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시를 이해하고 카톨릭 신앙을 종교로 갖고 있는 여성을 만나 우선 책대여점으로 시작해서 장차 출판사를 경영하고 싶다는 것이 그의 야무진 꿈이다.
 이런 그의 소박한 꿈이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
 어쨌든 그는 현재로서는 자신을 무능력자로 보고 "밥이나 해주고 빨래나 해주면 되겠다."고 접근해 오는 여자는 절대 사절이다. 이건 그 자신, 나아가 장애우가 결혼하는 데 있어서 가지고 있는 최소한의 자존심이다. 바라기는 세상 여자들이 이 자존심을 알아주기를…

작성자이태곤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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