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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걷는 사람들 2] 한국의 스티비 원더를 꿈꾼다.

입학 거부 이기고 서울예전 입학해 과수석한 장유경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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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걷는사람들]

 

 

한국의 스티비 윈더를 꿈꾼다


입학 거부 이기고 서울예전 입학해 과수석한 장유경양

 

 

  지난해 말 대중음악가가 되고 싶은 꿈을 위해 서울예전에 출사표를 던졌던 장유경양.
  지난 학기 그녀는 실용음악과에서 수석을 차지해 또 다시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장유경이 누구인지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잠시 그가 서울예전에 입학하기까지의 과정을 이야기해보자.(함께걸음 97.2월호 참조)

 

 

 시각장애우인 유경 씨는 올해 1월 서울예전 실용음악과에 원서를 냈으나 학교측에 의해 원서접수를 거부당했다. 그러나 자신을 거부하던 학교를 상대로 19살 소녀는 좌절하지 않고 신문사로 전화를 걸어 자신이 당한 부당한 처사를 알렸다. 모일간지에 유경 씨의 어려운 사정이 보도되고 또 다시 장애우입학거부가 발생했다는 사실은 장애계의 분노를 자아냈다.

  곧바로 장애우직능대표인 국민회의 이성재 의원과 한국장애인복지공동대책협의회(의장 김성재) 공동대표들이 학교에 항의하고 입학원서접수를 요구했다. 결국 유경 씨의 입학원서가 학교측에 받아들여졌고 실기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15:1의 결쟁률을 뚫고 당당히 합격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입학한 유경 씨가 과수석을 했다는 소식은 유경 씨 본인뿐만 아니라 당시 유경 씨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가슴 아파하고 분노했던 많은 장애우와 장애계 관계자들에게 모처럼의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유경 씨가 남들보다 몇 배나 어려운 조건 속에서 과수석을 차지한 데는 그녀의 남모를 각오와 노력이 있었다. 갓 대학에 들어와 하고 싶은 일도 많지만 유경 씨는 엄격하게 자기 관리를 한다. 과친구들과의 모처럼의 술자리도 적당한 시간을 넘어서면 망설임 없이 일어난다. 적어도 하루 4∼5시간은 그날 배운 강의내용을 복습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보다 나은 신체적 조건의 친구들을 따라갈 수 없을 것이란 생각에서다.
  "성적이 좋다고 음악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사실 맹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수업시간에 졸기도 잘하고, 몰래 나가 야구장에 가기도 하고 하여간 말썽을 많이 피웠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럴 수가 없어요. 실력에 앞서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이 사회에서 저와 같은 시각장애우가 인정받으려면 열심히 할 수밖에 없잖아요." 자신을 거부했던 학교에서 인정받기 위해 잠시도 게을리 할 수 없었다고 담담하게 심정을 털어놓는 유경 씨의 얼굴 뒤로 잠깐 어두운 빛이 스쳐 지나간다. 그녀가 인정받으려 하는 이 사회란 과연 학교뿐이었을까? 사실 유경 씨가 지난해 대학에 가기 위해 부딪힌 벽은 비단 원서접수를 거부했던 학교만이 아니었다. 부모님은 유경 씨가 넘어야 할 보다 큰 벽이었다.
  "처음 제가 대학에 가고 싶다는 뜻을 밝혔을 때 부모님의 반대가 무척 심했습니다. 안마나 할 것이지 제 주제에 대학은 가당치 않다며 학비를 대줄 수 없다는 반응이셨어요.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학비는 제가 알아서 할테니 지켜만 봐 달라고 말씀드리고 겨우 허락을 받아냈어요."
  외로웠던 어린 시절, 학교에 놓인 피아노는 유경 씨의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대중음악을 좋아하고 유난히 음감이 좋았던 그녀는 무슨 노래든지 들으면 피아노로 옮기고 바꾸어 부르며 놀곤 했다. 그때는 세상의 모든 것이 달라 보였다. 화성악과 청음이란 것이 있다는 사실도 모르면서 몸으로 음감을 익히던 시절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문득 자신의 앞날을 생각해봤다. 갑자기 당연한 길로 여겨졌던 안마사의 길이 싫어졌다. 대학에 가고 싶었다. 대학에 가서 음악을 공부하고 대중음가가 되고 싶었다. 그때부터 집을 나와 직접 생활비를 벌어가며 자취를 시작했다. 부모님에게는 안마를 하기 위해서라고 둘러댔다. 그렇게 시작한 그녀의 자취생활은 이제 어느새 3년을 넘어서고 있다.  아직도 유경시는 틈틈이 안마일을 해서 생활비를 벌고 살림도 한다.
  시련은 사람을 성숙하게 만든다고 했던가. 어린 시절의 이런 기억들 때문에 유경 씨는 제 또래답지 않게 성숙해졌다. 그래서 유경 씨를 만나면 사람들은 주변 사람을 개의치 않는 그녀의 자신감 있는 태도에 놀라고, 걸걸하고 성숙한 목소리와는 다른 앳된 소녀의 모습에 또 한 번 놀란다.
  그러나 유경 씨가 가진 진정한 힘은 주변의 어려운 환경을 탓하기에 앞서 자신의 힘으로 뛰어 넘으려는 강한 의지에 있다.
  이러한 점은 그녀의 최근 학교생활에서 잘 드러난다. 고등학교가지 맹학교에서 생활한 유경 씨가 대학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겪는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아무런 편의시설이 되어 있지 않은 학교의 물리적인 환경을 비롯해서 시각장애우를 배려하지 않는 강의방식과 장애우에게 익숙하지 않은 과친구들과의 인간관계 등 학교에 가서 집에 돌아오기까지 모든 과정이 넘어야 할 벽이다.
  "많은 분들이 제가 어떻게 학교 수업을 따라가는지 걱정하지만 그렇게 어렵지는 않아요"라고 웃으며 말하는 유경 씨는 이런 문제들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우선 강의내용을 녹음하기 위해 유경 씨는 자신이 듣는 모든 수업의 담당 교수를 일일이 찾아가 수업시간에 칠판에 쓰는 것을 읽어주고 악보를 그릴 때면 구두로 말해주거나 피아노로 쳐주기를 부탁했다. 문제는 쉽게 해결됐다. 학교 교수 중 유경 씨가 가장 존경한다는 재즈피아니스트 김광민 교수는 그녀에게 무료로 개인레슨을 해주는 특혜(?)까지 베풀어주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런 교수님들의 호의와는 달리 좀처럼 그녀와 합주를 하려고 하지 않는 과친구들과의 벽을 허무는 문제는 그리 쉽게 해결되지 않고 있어 유경 씨를 고민하게 만든다. 요즘 대부분의 고민도 바로 친구들과의 관계이다. 그나마 잘 지내고 있는 친구 한 명이 다음 학기에 휴학을 할 예정이어서 유경 씨를 더욱 외롭게 한다. 그러나 그녀는 쉽게 좌절하지 않는다. "물론 어려운 점도 많지만 대학진학을 결심하면서부터 세상 사람들에게 속으로 외쳤어요. 두고 보자. 수많은 보이지 않는 잠재력을 쏟아 내겠다고 말이지요. 언젠가는 이런 저를 이해하는 친구들도 하나둘 생기겠지요."
  졸업 후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에 대해 유경 씨는 "유명한 시각장애우 대중음악가인 스티비 윈더보다 음악적으로 더 훌륭한 뮤지션이 될 것"이라며 자신있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음악적인 성공을 떠나 풍요롭고 여유있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라고, "그래야만 아름다운 음악이 나오는 것도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유경 씨의 얼굴 위에 새삼 최근 TV 등의 대중매체를 통해 연일 보도되는 방황하는 우리 사회의 청소년들의 얼굴이 겹쳐오는 것은 왜일까? 아마도 그들 모두에게 이렇게 묵묵하게 자신과 세상의 불리한 상황을 이겨내고 있는 유경 씨의 모습을 일깨워 주고 싶음에서인가 보다.

 

글/ 박숙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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