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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그 길고도 짧은이야기] "은혜는 저한테 꽃과 같은 아이예요"

다운증 은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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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증은혜네

 올해 초등학교 2학년 정은혜의 어머니 장현실 씨는 사실 좀 유명하다면 유명하달 수 있는 사람이다. 페미니스트 여성잡지 "이프(IF)" 창간호부터 연재하고 있는 "색녀열전" 이라는 만화뿐만 아니라 현재 편의시설운동시민단체 소식지와 모 장애주간지에 여성 혹은 장애 관련 만화·만평을 그려오고 있는데, 특히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기존에 전해 내려오는 설화나 민담 속의 "기세고 씩씩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재조명하는 "색녀열전"은 내용만큼이나 파격적이고 시원시원한 필치가 은근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여성학자로 또 방송인으로 이름난 오 한숙희 씨도 둘째 딸이 자폐아임을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는데 그렇게 여성주의적인 사고를 가진 엄마들은 자녀의 장애에 대해서 어떤 자세와 태도를 가질까가 오래 전부터 기자의 흥미를 끌어 왔다. 이들은 적어도 엄마 때문에 장애아가 태어났다는 비과학적인 오해와 누명 앞에서 "그래, 다 내 탓이야, 내 팔자야" , 하면서 체념하거나 무조건 죄스러워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하는 대상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기대대로 장현실 씨는 서울 천호동에서 올해 3월 옮겨온 팔당 인근의 덕소에 둥지를 틀고 은혜와 "씩씩하게" 살고 있었다. 태권도를 배우고 있는 은혜는 도장에 다녀오면서 아파트 마당에서 9층에 있는 엄마를 한 번 불러낸 뒤, 잠시 후 "태권"을 외치며 힘차게 뛰어 들어왔다.

 

- 은혜가 참 밝네요. 뭐가 남 다르게 교육하고 있다 하는 점 있으세요?
  "저도 예전에는 은혜를 장애아로 생각했어요. 처음부터 제가 장애에 대해서 다 알고 키우는 것이 아니라서 저도 배워나갔는데, 얘는 확실히 장애가 있으니까 이건 안될꺼야, 하고 미리 속단하는 경우가 있어요. 어느 날 제 머리 속에 그런 생각이 있다는 걸 발견한 순간, "난 너무 나쁜 엄마구만"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은혜는 가만 보니까 굉장히 의지가 있는 아이여서 뭐든지 스스로 하고 싶어하고, 하려고 해요. 제가 그걸 놓치지 않았다는 게 다행이죠. 뭔가를 조금만 잘 해도 잘난 척하고 싶어 하거든요. 그런 것들을 키워줬어요. 은혜는 자기가 뭘 자꾸 하려고 해요. 제가 극성을 부릴 때는 애를 한 번에 네 가지씩 가르치기도 했는데 다 해내요.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자기가 좀 떨어지는 걸 알면서도 그걸 내색을 안하고, 기죽는 것도 없이 "못하면 어때" 하고, 친구들이 "쟤 이상해서 안놀아"하면 "놀지마라. 나는 이거 하고 놀거다"하죠. 친구들이랑 어쩌다 싸워도 안 울어요. 자기가 주로 때리고 오고 자기가 맞아도 걔 앞에서는 안 울고 와서 시무룩하고 딴짓 하고 있지, 마치 제가 보기에는 괴로움을 잊으려고 그러는 것 같아요(웃음)"

 

- 그래서 이젠 "은혜가 이걸 못하지"하는 것들은 안 보이시나요.
  "보이긴 보이죠. 같은 또래 보다 문장력이나 수학도 떨어지지만 그것을 다른 아이들하고 비교해서 볼 수는 없는 노릇이죠. 그래도 은혜가 밖으로 표현하는 건 단지 이것 뿐일지라도 많은 것이 내재 되어 있는 것같거든요. 그것을 조리있게 끄집어 내주는 것이 제 역할인데 이제 그 문을 조금 열어 놓은 거죠. 그런데 실은 아직도 "너 정말 그거 할 줄 알아"하고, 의심하면서 물을 때도 있어요."

 


 

"내가 그 사람들 버리려고 했어요"

 

- 흔히 장애아가 태어난 것에 대해서 가정 내에서도 엄마한테 그 책임과 의무를 떠넘기려는 분위기가 많잖아요. 그런데 선생님의 여러 작품들을 보면서 그 부분에 대해서도 조금 "씩씩하게" 정리하고 해결해가고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졌었거든요.
  "저는 워낙 제 자신이 강한 태도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주위에서 아무도 내 탓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오히려 제가 이런 생각을 했죠. "은혜가 장애아로 태어난 것이 내 탓이라고 한다면 그 사람들은 내가 먼저 버리겠다, 그리고 은혜는 내가 잘 키워야지." 그런데 조기교실 다니면서 같은 처지의 엄마들을 만나면 맨날 하는 얘기가 "내 탓이야, 내 탓이야"하는 거예요. 아마 끊임없이 가정 안에서 여성한테 그런 생각을 은연중에 키워주는 것 같아요. 그 엄마들 개개인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 사람들 탓이 아니에요. 물론 간혹 임신인줄 모르고 약을 먹었다든지 하는 그런 경우는 있었어요. 그런데 원인을 알 수 없는 장애의 경우에도 자기 탓으로 생각하고 그러는데 엄마들한테 그런 강박관념을 벗겨주지 않으면 결국엔 애에 대한 미움이 남을 것 같아요. "그래, 내 탓이다. 대신 내가 잘못한 만큼 내가 이 아이를 끌어안고 살겠다"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그 마음은 괴롭거든요. 그런 마음이 있는데 어떻게 즐거운 마음으로 아이를 사랑해요."

 

- 그렇죠. 사실 모든 걸 희생한다 해도 금방 금방 보상해줄 수 있는 아이들도 아닌데요. 
  "그건 아이를 하나의 독립된 존재로 생각하지 않아서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이만큼 했으니까 아이도 그만큼 오겠지, 하는 생각은 이 아이의 인생은 내가 생각한 대로 된다는 생각이 있는 것 아니겠어요?"

 

- 그런데 출산 전에는 장애사실을 전혀 모르셨어요?
  "예, 양수검사를 해야 정확히 아는 건데 저는 안했거든요. 직장 상사가 미국에서 아이 두 명을 낳았는데 양수검사가 기본이래요. 저보고도 양수검사 해달라고 해라, 해서 의사한테 양수검사 안하냐고 말했는데 그 때 양수검사 해서 딸이면 낙태시키는 일이 사회적으로 한참 문제가 됐었어요. 그래서 의사들이 권하지 않았고, 초음파검사 까지 정상을 나왔는데 별다른 이유없이 양수검사까지 해달라고 하면 의사들이 의심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나중에 은혜가 예쁘게 커가는 걸 보니까 그 때 검사해서 제가 무슨 짓 했었으면 어쩔뻔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주변에서 그 이사를 고소를 해야 한다거나 그런 말도 많았지만 오늘날 은혜를 갖게 된 것이 그 의사 덕택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 다운증 아이는 외모상으로 금방 표시가 나서 태어난 후에 발견은 빨리 됐겠어요.
  "예, 은혜도 낳은지 이틀만에 알았어요. 그렇게 빨리 알고 빨리 받아들이는 것도 부모 입장에서는 다행스러운 일일지도 몰라요. "아니, 애가 멀쩡했는데 무슨 일이야" 하면 정말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 것 같은데 얘는 태어난 후 금방 알았으니까. 물론 슬프긴 엄청 슬프죠. 그래도 그 슬픈 기간이 짧은 것 같아요. 왜냐면 슬픈 감정에만 빠져 있을 때가 아니라 해야할 일이 갑자기 아주 많아졌거든요."

 

- 그래서 축복과 축하 속에 있는 기간이 짧았지요? 친척들이 아이를 낳았다고 보러와서 축하를 해주긴 하는데 금방 외모에서 다른 아이와 차이점이 두드러지니까.
  "사실 그렇죠. 한 이틀이었나, 낳는 순간하고 하루 정도, 병원에서 이상하다고 해서 이틀 후에 정밀검사를 하고 3주 후에 결과가 나왔어요. 그런데 그걸 기다리는 시간이 참 참기 어려웠어요. 그래도 결과를 듣고도 우루루 무너지는 감정은 단 며칠이고, 그 다음에는 다른 애들보다 위험하다고 하니까 해줘야 하는 일들이 많아서 바빠졌죠. 그런데 그 의사는 은혜가 열몇살까지밖에 못 산다고 그래요. 그렇게 장애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의사들도 많더라구요. 그땐 의사 말을 다 들으니까 그러면 오래 살지도 못하니까 살 때까지만이라도 행복하게 살게 해주자 하는 생각이 들어서 젖떼고 우유먹일 때 어디서 좋은 우유만 구해서 먹이고 수영하면 좋다고 해서 6개월부터 수영장에 데라고 가보고 그랬어요."

 

-그렇게 다녀보니 의사말이 틀렸다는 사실은 금방 아셨겠네요.
  "그렇죠. 도대체 다운증후군이 어떤 장애 증상을 갖고 있고, 어떤 교육을 시켜야 하는지 알아야겠어서 남편이랑 복지관들을 찾아다녔어요. 그런데 복지관에도 자료가 별로 없더라구요. 그나마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에 갔더니 자료가 좀 있어서 봤죠. 그곳을 통해서 다운회도 알게 됐어요. 그 어머니한테 많은 도움을 받았죠. 그 엄마들은 활동도 열심히 해서 우리 나라에는 자료가 별로 없으니까 외국에 있는 좋은 책 있으면 갖다가 번역해서 돌려보고 그러더라구요. 저도 다운회에 "은혜의 하루"라는 육아일기도 그리고 회보 편집해주고 그랬어요."


 

 

"건강하게 낳아주지 못해 늘 미안해요"

 

- 은혜가 건강문제 때문에 마음을 졸이게 한 건 없었어요"
  "크게 병치레한 일이 이제까지 없어서 저나 은혜나 운이 좋은 편이죠. 만약 은혜가 오랜 동안 입원을 하느라 병원신세를 져야 했다면 제가 일을 할 수 있었겠어요? 별 탈 없이 자라줘서 이렇게 저도 일을 할 수 있었고, 그나마 행복하게 지낼수 있었죠. 다운증은 자폐나 운동장애까지 동반하는 경우도 있고 암튼 중복장애 유형이 너무나 다양해요. 그리고 다른 다운증 아이를 보니까 멀쩡하게 잘 자라다가 폐쬭에 문제가 생겨서 수술하고 그래서 은혜도 먹는 것이나 운동에 항상 신경쓰고 그러죠. 이는 역치여서 교정도 해야 되고 눈도 시력 같은 걸 잡기도 어렵대고 귀도 중이염 같은 것도 잘 걸린다고 해서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어요."
 
- 저기 그려진 만화에서처럼 은혜랑 다닐 때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거나 하는 일도 많이 당하시죠?
  "그런 데는 정말 하나도 신경이 안 쓰여요. 나는 그렇게 우리를 보고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한테 오히려 기회를 주고 싶은 마음이에요. 그냥 쳐다보고 가는 사람들은 저도 하나도 신경 안 쓰여요. 그런데 사람들이 저보다도 훨씬 은혜한테 호의적이고 은혜를 몇 번 본 사람들은 금방 말 걸어오고 그러거든요. 제가 거래처 다닐 때 항상 데리고 다니는데 은혜가 특이하니까 두 번 가도 단골인줄 알아요. 은혜아빠는 쟤가 타고나 복이 있어서 그렇다고 얘기를 하는데, 그럴까, 싶은 생각도 드는 게, 은혜가 정말 사람을 끄는 접이 있고 사람을 즐겁게 해요."

 

-은혜가 이제까지 일반학급에 다녔다고 했는데 같은 반 학부모들이나 반 친구들이 어떻게 대하는가 유심히 보셨겠어요.
  "그게 늘 제 관심거리죠. 그런데 유치원에서도 애들한테 은혜가 장애아니까 잘 이해해주고 같이 놀아달라고 얘기하지만 6살 정도 되는 아이들이 친구의 상황을 일일이 이해하면서 놀 수는 없어요. 재미있어야 놀지. 은혜는 굉장히 친구들을 좋아해요. 저는 은혜가 좋아하는 사람 리스트 다섯 번째에 낄까 말까, 다 친구들 이름이 올라 있을 거예요. 그런데 지금까지 다녔던 학교 아이들하고는 우정이 없는 것 같아요. 그 부분에 있어서 교사의 역할이 클 텐데 지난 학교에는 한 반에 37명이에요. 사실 저도 일일교사같은 걸 해봤지만 아이들한테 선생님의 관심이 고르게 가기가 힘들어요. 그런 문제들이 있어서 2학기 때부터 여기 월문리 초등학교로 전학시키려구요. 그 학교는 한 학년이 한 반이고 전체 학생이 1백명도 안돼요. 암튼 이 학교에서는 졸업할 때 까지 같은 반이 될 테니까 그 4년 반 동안 같은 애들하고 있게 되면 아이들이 은혜에 대해서 갖는 벽이 무너지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은혜 학원 보내는 것도 뭘 잘하라고 보내는 건 아니에요. 태권도하구언에서 남자애들한테 깨지고 놀림도 당하고 언니들하고는 또 친해지기도 하고 그러라는 거죠. 이제까지 그렇게 성공적이 친구관계는 없었지만 모두 그렇게 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부모 이혼에 대한 상처는 아직 없는 듯

 

  장현실 씨는 오한숙희 씨와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는데 바로 이혼녀라는 사실이다. (그 점이 "여성주의자" 하는 타이틀에 덧붙여져 필요 이상의 오해로 작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지점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제 엄마인 그에게 오롯이 은혜를 키우는 부담이 안겨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 아까 "엄마 아빠가 결혼을 했어요. 그래서 낳은 아이가 저예요"하면서 은혜가 결혼에 대해서도 관심있게 얘기하곤 하던데, 이혼에 대해서는 이해를 어느 정도나 하고 있나요?
  "아마 잘 이해를 못하고 있겠죠. 이혼 후에 그냥 아빠는 그 언니랑 살고, 엄마는 은혜랑 산다고, 옛날에 엄마랑 아빠랑 살았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고 간단히 얘기를 했더니 은혜가 울더라구요. 그러면서 엄마랑 아빠랑 결혼을 하래요.. 이제는 그런 소리 안하는데 제 생각에 은혜가 한편으로는 예전에 엄마랑 아빠랑 살면서 싸우고 그랬던 좋지 않았던 기억이 있으니까 아빠가 지금 부인이랑 재미있게 살고, 엄마도 예전 보다 신경질 덜 하고 그러는 점을 좀 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이 느껴져요. 그리고 이 상황에 점점 적응하는 것 같아요. 은혜가 엄마가 둘, 아빠가 하난데 다 보고 싶어도 못 보는 상황은 아니니까 다행히 지금으로서는 이혼으로 인한 상처는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건 좀 걱정이에요. 사람이 만나서 좋아해서 오랜 동안 그 사람하고만 사는 것, 그것에 대한 기대감 같은 게 없어졌다거나 결혼을 했다가도 또 헤어지는구나 하면서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 이혼 얘기 나오고 자연스럽게 아이 양육 얘기가 거론될 때 전 남편 되신 분이 선선히 은혜를 양보하시던가요.
  "그 전에 싸울 때도 협박 비슷하게 저보고 "애는 내가 데려간다, 다신 못 볼 줄 알어" 그러기도 했었는데 제가 더 강하게 원해서 은혜는 제가 맡기로 했죠. 그런데 며칠 전에도 괜히 은혜를 자기가 데려가겠다고 그래요. 안된다고 분명히 말해놓고 방학 맞아서 은혜를 한 번 일주일 내내 보내봤어요. 그랬더니 그 얘기 다시 안하더라구요. 생각 같아서는 키울 수 있을 것 같지만 은혜 키우기 힘들죠."

 

- 주위에서 보면 장애아 아버님들도 보육에 있어서 일정한 책임을 느끼고 퇴근 후나 주말에 나름의 역할을 하는 모습을 요즘엔 비교적 자주 접하게 되는데요. 그렇게 사실 부부가 함께 서로 번갈아 가면서 장애자녀를 돌보고 그래야 소진도 덜 될 텐데, 오로지 혼자 다 책임져야 한다는 현실이 때로는 버거우시죠.
  "모든 걸 혼자 짊어져야 한다는 생각도 그렇고, 주민등록등본을 떼어봐도 은혜하고 저하고 딱 두 사람 이름만 올라 있는 거예요. 아, 정말 우리 두 사람뿐이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 들죠.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홀가분하게 느껴지기도해요. 불가피하게 엮어지거나 또 다르게 책임져야 할 사람이 없구나 싶어서."

 

- 그런데 죄송한 질문이지만 혹시 은혜가 이혼에 약간의 이유로 작용을 하기도 했나요?
  "아니에요. 오히려 두 사람이 서로 너무 안 맞는데도 은혜 때문에 서로 더 오래 참고 살 수 있었죠. 은혜아빠도 은혜 굉장히 예뻐해요. 주말에는 아빠한테 가서 지내고 있어요. 방학 때 되면 같이 휴가도 가고 은혜아빠랑 결혼한 여성분도 은혜를 잘 받아주고. 지금은 저랑 은혜아빠랑 친구처럼 지내요. 우리는 좋은 이혼이에요. 이제 은혜아빠도 다시 결혼하고 저도 이제 은혜아빠도 다시 결혼하고 조도 이제 생활이 많이 안정되고 하니까 더 편해요."

 

- 바깥활동은 주로 은혜가 학교가고 학원가는 시간에 맞춰서 대 해결하시나봐요.
  "그렇죠. 그런데 도저히 은혜를 데려갈 만한 분위기가 아닌 곳에 가야 하는데 어디 맞길 데는 없을 때 굉장히 답답하죠. 결국 "에이, 그냥 가자" 하면서 은혜를 데려가요. 그래서 어디든 같이 다녔어요. 어지간하면 제가 나가지 말아야죠. 예전에 천호동에 살 때 그래도 사람을 만나서 좀 오래 얘기를 해야 하면 저희 집으로 불렀어요. 작업도 은혜가 잠이 든 다음에야 시작할 수 있으니까. 은혜가 좀 더 어렸을 때는 어리니까 어쩔 수 없이 다 쫓아다녔죠. 이제는 어느 정도 컸으니까 자립심을 키워야 되는 데 은혜 하나라 그런지 불안해서 손을 놓지를 못해요. 요즘에는 혼자 슈퍼에 물건 사러도 가고 학원이나 친구네도 한자 가고 그러지만 그 전까지는 애 혼자 어디 보내면 별 불길한 상상이 다 드는 거예요. 요즘엔 맨날 내가 다 해줄 수 없다는 생각이 드니까 이제 손을 좀 놓으려고 해요. 애를 더 응석받이로 만들지 않으려면."

 

- 사실 은혜는 편의시설이 특별히 요구되는 장애를 갖고 있는 건 아닌데 편의시설관련 만평도 그리고 계신데요. 그렇게 장애문제 전반에 걸쳐서 관심의 지평이 갈수록 넓어지시나 봐요.
  "장애관련 일들을 하겠다고 생각을 한 건 은혜가 앞으로 나이가 들어서나 현재의 장애로 인해서 어떤 추가적인 장애를 갖게 될지 모르니까 지금 일을 하면서 정보나 지식을 알게 됐으면 좋겠어요. 나중에 그것이 나의 문제로도 다가올 테니까."


 

 

"은혜도 자기 일을 하며 즐겁게 살았으면"

 

- 아이를 앞으로 어떻게 키울까 이런 고민도 자주 하시죠.
  "은혜가 커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됐으면 정말 좋겠어요. 은혜는 벌써 일하면서 사는게 좋은 거라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자기도 커서 열심히 일하면서 산다, 이런 생각을 하는데 그런 환경이 과연 주어질지, 직업학교 다니면서 거기 개설된 기술만 배워가지고 제한된 틀 속에서 사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울 것 같거든요. 그렇게 활기차게 사회 속에서 비장애우들 사이에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돼야 할텐데...
  그리고 아프지 않는 것도 바라구요. 또 애아빠한테 양육비를 조금 받고는 있지만 제 일이 또 생계를 꾸려나가는 근간이 되기도 하니까 주어진 일 열심히 그리고 가능한 한 욕심껏 많이 해나가면서 애 잘 키우는 것이 제 목표인 것 같아요. 소박한 꿈이죠. 끈질기게 오래 살면서.(웃음)"
  은혜가 기분이 좋을 때 엄마에 대한 서비스차원에서 부르는 노래라는 "어머니 은혜"를 기지도 들었다. 취재차 가져간 녹음기에 녹음된 그 노래를 듣다보니 또박또박한 음성은 아니지만, 그리고 자기 이름과 같은 "은혜"가 무슨 뜻인지 알고나 부르는 건지 모르지만, 충분히 감동스러웠다.
  열살짜리 딸아이와 벌써 친구가 돼버린 엄마, 말띠여자, 용띠여자 두 모녀가 사는 집의 하루는 그렇게 "은혜"로 충만해 있었다.

 

글/ 한혜영  사진/ 김학리 기자

작성자한혜영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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