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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걸음이 만난 사람] "장애우들을 위해 내 남은 생을 바치겠습니다"

대한 성공회 김성수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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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걸음이 만난 사람]


"장애우들을 위해 내 남은 생을 바치겠습니다"
대한 성공회 김성수 주교

대한 성공회 김성수 주교가 관구장에서 정년 퇴임했다. 우리 사회의 존경을 받는 정신적 스승의 한사람인 그는 관구장 재임시 특별히 장애우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여러 가지 활동을 해온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관구장에서 퇴임후 장애우복지에 전력하기 위해 여러 가지 구상을 하고 있는 그를 만나 심경을 들어 보았다.

대담 김성재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이사장

 

김성재 - 주교님이 사복을 입으신 것을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사복을 입으시니까 아주 포근해 보입니다. 지난 6월 30일에 퇴임식이 있었죠. 그동안 관구장직을 수행하시느라고 못하신 일도 많으실텐데, 은퇴하신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요.
김성수 - 관구장직에서 물러난지 꼭 열흘이 되었네요. 어려운 자리를 내놓고 나니 이렇게 마음이 편안할 수가 없습니다. 열흘동안 자유를 얻어 마음껏 지낼수 있었습니다. 우선 그동안 모자랐던 잠도 실컷 잤고, (웃음) 앞으로 해야할 일들에 대한 계획을 세우며 여유있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김성재 - 실제로 정년퇴임은 하셨지만, 관구장으로서의 임기는 아직 2년이 더 남아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권한있는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게 여겨지는 세태이지 않습니까? 이런 세태를 비추어 볼 때 이번에 주교님께서 많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은퇴를 결정하신 것은 종교계를 넘어서서 우리 사회에 아주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역시 주교님이시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김성수 - 이런 경험이라고 애기하면 조금 우습지만, 중고등학교 시절 내가 아이스하키 선수로 뛰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동점이 되면 연장전을 하는데, 연장전을 해서 이겨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인생이라는 것이 자기가 맡은 기간동안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젊었을 때 불법적으로 정권이 유지되는 것을 보면서 안된다고 데모도 하고 그랬는데, 그랬던 사람이 임기가 만료되고 난 후 더 할수 있다고 해서 잘됐구나 하고 더 한다면 그건 양심에 큰 가책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생각하면 내가 무능력하기 때문에 그만 두는 것입니다.
   사실 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예요. 주변에서 잘한다, 제일이다 하면서 좋은 소리만 하는데, 그렇게 하다 보니까 고충은 나와 우리 하나님밖에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저 그만 끝을 내겠습니다 했더니 하나님도 더 있으면 실수도하고 사람들에게 추한 꼴 보일까봐 네 마음대로 해라 하시기에 끝을 낸 것이죠.
  지금 우리사회에서는 정해놓은 것을 지키는 것이 무척 중요한 것 같습니다. 주변에서 잘한다며 조금더 하라고 할때 그런걸 뿌리치고 제때에 물러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진심으로 나를 위한다면 축하합니다 라고 인사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그런 사람은 별로 없더군요. 김수환 추기경께서만 전화로 부럽다고 축하한다고 하시더군요. 역시 내 고충을 아는 분이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성재 - 말을 듣고 보니 정말 축하드려야 겠는데요.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웃음) 그런데 주교님, 주교님이 성공회의 사제로서 일하기 시작하신 것이 전부 몇 년입니까? 평신부로서 목회하시고 또 베드로 학교 교장으로 있다가 주교직을 수행하신 것까지 합치면 무척 오래 활동을 해오신 것으로 알고있는데요.
김성수 - 전부 합쳐서 31년동안 사제로서의 하나님 일을 수행해왔습니다. 초기 10년은 평신부로 농촌이나 광산촌 같은 곳 목회를 했고, 그후 정신지체 장애아들과 함께 생활하라는 명령을 받고 베드로 학교 교장으로 부임했습니다. 역시 10년을 그곳에서 활동하고 그리고나서 지금까지 11년을 주교로서 일했습니다.
김성재 - 거의 10년 단위로 여러곳에서 활동을 하셨는데 배제고등학교시절 만능 스포츠맨이셨다고 들었습니다. 무척 자유롭고 활기찬 학창시설을 보내셨다고 하던데요, 그런데 그 후에는 폐병을 앓게되어 무척 어려운때도 있으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활기찬 학창시설을 보냈지만 나중에는 극한의 외로움과 고통을 겪으시면서 그런 일련의 인간적인 경험들이 사제로서 생활하시는 것에 많은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그 시절의 이야기를 좀 들려주시죠.
김성수 - 아마 신부가 된 사람 중에 나처럼 그렇게 자유스럽게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사람은 없을 겁니다. 십대에 내 나름대로 재미있게 때로는 거짓말 같은 것도 하고 말썽도 많이 부리며 생활했습니다. 때문에 신부가 된 후에 나는 아이들이나 젊은이들을 충분히 이해할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학창시절과 더불어 소중한 경험 한가지는 내가 폐병으로 인해 죽어가던 때의 경험입니다. 농촌문제다, 광산촌문제다 해서 10년정도 활동을 했는데 덜컥 폐병이 걸려서 죽게 되었었죠. 그때 얼마나 쓸쓸하고 외로운지 그 소외감은 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겁니다. 그런 여러 가지 인간적인 경험들이 쌓여서 오늘의 나를 만든거죠.
김성재 - 주교님 말씀을 듣다 보니까 대부분의 목회자들에 대한 교육이 책을 통해 지식을 얻고 명상훈련을 하는 등의 방식으로 진행되다 보니 산교육이 부족해 사람이 산다는 것, 즉 현실적인 사람들의 어려움이 무엇이고, 슬픔이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교육이 진행되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김성수 - 김 교수의 지적에 공감합니다. 나의 경우 어려움을 겪다보니 주교가 된 후에도 과거의 내 어려움을 생각하면서 나름대로 나를 되새기며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일할수 있었습니다.
김성재 - 주교님께서 처음으로 장애우와 인연을 맺으신 곳이 베드로 학교인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그곳에서 10년정도 교장으로 일하시는 동안 다른 차원의 고통과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드르에 대한 문제점을 느끼셨을텐데요. 장애우들이 일반적으로 이 사회에서 차별받고 있는 상황과 차별의 문제에 부딪쳐 있는 장애우들과 함께 생활하셨을 때에 주교님이 느끼셨던 경험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장애우 문제 해결방안에 대한 얘기를 듣고싶습니다.
김성수 - 내가 영국에서 산업선교 실습을 끝내고 돌아오려고 할때 성공회 본부로부터 정신지체 장애우들의 교육을 맡아서 일하라는 명령을 받고 베드로 학교에 부임했습니다. 다행히 그일이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어떤 일보다 적성에 잘 맞았고, 그 일을 하는 동안 사람들이 내가 주교직을 맡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주교가 될 수 있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기도 했죠. 사실 그일을 맡기전 나는 장애아에 대해서는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로 돌아오는 길에 미국, 캐나다, 영국 등 선진국의 장애우 시설들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때가 20년전인데 그때 이미 선진국은 모든 것을 갖추어 놓고 있었고, 심지어 일본까지도 다른 선진국에 비교할수 없지만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돌아와 장애우들을 보니 이건 정말 큰일이다 라는 생각이 어쩔 수 없이 들었습니다.
  요즘 엄마들은 장애를 가진 자식의 교육에 대해 희망을 가지고 긍정적인 사고들을 하기 때문에 장애아들을 내놓고 키우지만, 그 당시에는 아이들을 내놓지도 않을 때였어요. 그저 아이들을 방에만 가두고 먹을 거나 주면서 키우고 있었죠. 그런 아이들이 베드로 학교에 와서 교육을 받고 나서 하루하루 달라지는 것이 느껴지더군요. 장애아들이 얼마나 사람을 그리워하는 지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장애아들을 껴안아주고, 쓰다듬어 주고, 네가 제일이라고 얘기해 주었습니다. 아무리 장애아들이 잘못해도 이해해 주려고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생활하다 보니까 한편으로 장애아들을 방관하는 우리 건강한 사람들이 많이 밉더라구요. 그래도 20년전에 도움주는 사람이 많아서 기숙사도 크게 짓고 좋은 학교를 만들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외로운 사람들한테 밥만 주고 마음없이 형식적으로 대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형식적으로 대할 때 아이들이 먼저 느끼거든요.
  엄마들한테도 처음에 내가 이런 위로를 많이 했습니다.  성경말씀에 눈먼 자가 누구 때문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시기 위함입니다 라고 내가 얘기했죠. 그런데 엄마들이 신부님 왜 하필 내 아이만 그렇습니까 하는데 내가 할 말이 없었어요. 건강한 사람들이 장애우를 보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해 장애를 가졌으나 당신은 복받은 사람이요. 라고 말한다면 이게 말이 됩니까? 그래서 그 다음부터 나는 그런 얘기 못했어요.
김성재 - 10년간이나 장애아들을 교육하시다 보면 느끼시는 문제점도 많았을텐데요. 요즘은 장애아동과 비장애아동과의 통합교육 문제가 부각되고있습니다. 저는 장애아동의 교육에 있어서 가장 궁극적인 목표는 역시 통합교육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많은 수의 장애아들이 비장애아동과의 통합교육이 가능한데도 사회의 인식과 정부의 정책부재로 이루어지지않고 있지만, 장애우가 차별받지 않고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드는데 있어서 어려서부터의 통합은 무척 중요한 과제인 것 같습니다. 제가 모 일간지 인터뷰에서 주교님이 관구장에서 퇴임후 다시 베드로 학교로 돌아가서 활동하시기를 희망한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주교님 개인적으로 특별히 계획하고 계신 일이 있으신지요?
김성수 - 장애아들을 교육시키다보면 몇 가지 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예를 들어 달리기를 들어보면 20년 전에 아이들은 결승점까지 가기 전에 앞서가는 아이가 뒤에오는 아이한테 야 빨리와 하면서 같이 들어가고, 엄마한테도 가고, 거꾸로도 가고 제멋대로 달리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훈련을 시켜 놓고 보니까 이젠 서로 생존경쟁이 돼서 서로 일등 하려고 옆에 있는 아이를 밀치고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 것을 보고서 이거 교육을 잘못시키고 있는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아이가 남을 누르고 경쟁에서이기고 또 그중에서 군림을 하도록 아이들을 정말 그렇게 교육을 시켜야 되느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렇게 됐을 때 그 또래에서는 위에 있지만 사회 속에는 끼어들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공동체의 소중함도 모르게 됩니다. 비단 장애아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영재교육 방식은 정말 큰 문제점인 것 같습니다.
 김교수가 퇴임후 내 계획을 물어봤으니 대답을 하겠습니다. 앞으로 나는 장애아들을 위해 내 남은 생을 바칠 계획입니다. 베드로 학교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학교에서 나를 받아줘야 가능한 거고, 우선 특수학교에서 국민학교 과정부터 시작해서 고등학교 과정까지 마쳤지만 갈 곳이 없는 장애우들을 위해 조그만 시설을 하나 만들 계획입니다. 조그만 단위로 동네에 집을 얻어서 시작을 하고 또 나이 많은 정신지체 장애우들을 위해서는 작은 공장을 만들어 가지고 자급자족을 할수 있게 하고싶습니다. 이 계획을 위해 내가 강화도 온수리에 땅이 2천평 정도 있는데 그 땅을 내놓을 예정입니다. 내가 먼저 그 땅을 내놓겠다. 대신 집은 당신이 지어주시오. 이렇게 호소에서 조그맣게 뭔가 시작이 되면 그 일에 전력할 것입니다.
김성재 -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 중 하나가 자꾸 정부는 전시효과적으로 장애우 복지 사업을 하려고 큰 시설을 짓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말고 주교님이 지적하신 것처럼 사람들이 생활하고 있는 거주지안에 작은 단위로 이용시설을 만들어서 그 시설에서 생활하는 장애우들이 인격적인 대우를 받으며 살수 있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얼마전 모 일간지에도 썼는데 정부가 30대 재벌에 특혜를 주는 형식의 복지공장을 만들겠다고 발표한 것입니다. 재벌이 50억을 내면 정부가 50억을 지원해 주고, 편의시설을 갖추라고 2억원까지 무상지원해 주고, 여기에다 인건비도 지원해 주면서 결과적으로 분리고용을 조장하는 것이 정부의 의도인데요. 아직도 정부와 기업은 장애우가 같은 사회 구성원으로 더불어 살아가야 할 존재라는 걸 모르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우리 사회가 넘어야 될 큰 과제 인 것 같습니다.
김성수 - 비장애우들이 전시효과를 노려 장애우들을 내  형제로 생각하지 않고 1년에 한번 그저 돈가지고 찾아가는 대상으로 여기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그러지 말고 생활 속에서 장애우들을 끌어안아야 합니다. 같이 살아야겠다는 정신을 가지고, 우리 이웃으로 장애우들을 받아들여야지 장애우 문제가 해결됩니다.
김성재 - 마지막으로 장애우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김성수 - 나를 좋은 친구로 받아달라는 부탁을 간절하게 드리고싶습니다.
김성재 - 귀한 시간 허락해 주셔서 감사드리고 김주교님이 장애우들과 더불어 사는 소중한 의망,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진/이정률 (본지 사진기자)
진행․정리/김성연(본지 기자)

 

작성자김성연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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