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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난사람] "부모들이 먼저 의식화되어야 할 것 같아요"

여성학자 오한숙희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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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자, 작가, 대학강사, 방송인, 교양강연 강사, 성교육 강사, 전문 상담가, 여성운동가로 잘 알려진 오한숙희 씨 는 발달장애를 가진 장애아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오한숙희 씨는 그동안 방송활동, 강연, 크고 작은 여성단체활동 등으로 바쁘게 지내다가 현재는 김포 고촌에서 측거하고 있다. 한적한 시골집에서 두 딸과 함께 살고 있는 오한숙희 씨를 만나 최근의 생활과 장애아를 키우면서 느끼는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요즘은 바쁘게 사는 것이  엄청 능력 있는 삶이라고  생각하잖아요. 또 사람들 만나면 흔히 하는 이야기가 ‘바쁜 게 좋은 거야, 너 일 없어봐라’ 이런 내용인데 어떻습니까, 여전히 바쁘게 지내시죠?

“한 3-4년간은 정말 정신 없이 바쁘게 살았던 것 같아요. 특히 장애아를 낳고 힘들어서 내가 뭘 해야할지 몰랐죠. 그래서 바쁘게 사는 것이 고민을 하지 않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나봐요. 그런데 어느 순간 ‘이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산 것을 후회하지는 않아요. 돈도 많이 벌고 쓰고, 바쁘게  지내면서 가장 어려운 시기를 견딘 것 같아요.”

 

▲여성학자 오한숙희씨

― 번잡한 도시를 떠나 시골에 정착하게 된 계기가 있을 것 같은데요.

“누구나 한번쯤은 돈 팍팍 쓰면서 바쁘게 살고 싶은 때가 있죠. 저도 한때는 그랬으니까요. 그것을 나쁘다고 보지는 않아요. 그런데 거기서 빨리 빠져 나와야죠. 순환버스를 타고 한바퀴 돌았을 때 ‘아, 여기까지구나’ 하고 내려야지 계속 돌면 바보잖아요. 그래서 정착한 삶이 시골에서의 삶인데, 제가 살고 있는 이 흙집 비 안 새고 바람 안 들이치면 살만해요. 사람의 욕망이라는 게 처음엔 에스컬레이터 단계에서 나중엔 엘리베이터 단계로 가거든요. 결국은 한계가 없어지는 거죠. 그런데 그 삶에서 벗어나서 작은 것에 가치를 두고 살다 보니 지금은 나를 돌아볼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모든 것에 욕심도 없어지구요. 그 한 예로 우리 아이들한테도 과욕을 안 부린답니다. 더군다나 작은 애인 희령이가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다 보니까 덩달아 큰 아이인 희록이가 수학 점수 50점을 받아와도 ‘그래도 수학문제 중 절반은 네가 아는 문제구나’ 라면서 전혀 스트레스를 안 주죠.(웃음) ”

 

특별한 이벤트보다는 일상이 중요

 

― 아이들이 아주 많이 컸네요.

“우리 희령이는 예전엔 말도 못 알아들었는데, 지금은 보다시피 카메라 앞에서 포즈도 취하고, 많이 발전했어요. 말은 못해도 의사소통은 거의 되는 셈이죠. 물론 큰 아이가 동생 때문에  내가 심부름 다 한다고 불평하기도 하지만, 그 때마다 제가 ‘동생이 있으니까 그래도 널 덜 볶잖냐’ 라면서 타이르죠. 전 작은 아이가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희록이를 더 고맙게 느끼고 기특하게 여기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희록이도 동생과 지내다보니 다른 장애우들을 봐도 어색해 하지  않아요. 자연스럽게 함께 사는 삶을 터득해 가는 거죠. 집에 장애아가 있어서 좋은 점이 많아요”

 

 ― 희령이 장애등급이 어떻게 되나요?

“자폐 1급 이예요 . 오늘 장애우 등록을 했어요. 우리 희령이가 벌써 10살인데, 곧 있으면 사춘기가 오잖아요. 그래서 이제는 제가 우리 작은 아이와 연애를 한 번 해볼 생각이예요. 지금은 순해져서 컨트롤이 많이 되거든요. 희령이가 미술과 체육에도 재능이 아주 많아요. 앞으로 그 부분을 발전시켜줘야지요.”

 

 ― 돌이켜보면 연초엔 새 천년이 시작된다는 이유로 우리 사회가 정말 번잡스러웠죠. 그래서 저도 새 세상이 온 줄 알았거든요. 미래에 대한 기대도 엄청 했고, 1년 동안 모든 것을 다 해낼 것 처럼요. 그런데 벌써 해논 일 없이 2천년이 다 지나갔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내년 초 언론이 ‘2001년이 사실은 21세기 시작이다’ 라면서 본격적으로 떠들어댈거에요. 저 개인적으로는 어떤 특별한 날짜나 이벤트보다 일상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항상성이 중요하죠. 그런데 21세기 운운하는 것은 언론이 무료한 대중들에게 이벤트를 심어주는 것에 지나지 않아요. 사실은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이 바위를 뚫듯이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고 그런 게 인생이죠. 제가 한심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나는 다음 달 1일부턴 이렇게 안 살아’, ‘내일부터 열심히 살 거야’ 라면서 계속 다음으로 미루는 일 이예요. ‘내가 내일부터는 4시에 일어날 거야, 진짜 오늘 같이는 안 살아’ 그러지만 사실 내일 아침 4시에 일어나려면 당장 오늘 저녁부터 7시에 자야됩니다. 다음에 뭘 하겠다는 게 아니라 당장 지금부터 시작해야 하는 거죠. 옛날에 어떤 선사가 제자 세 명을 불러 물었대요. 너는 인생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느냐? 라고 묻자 첫 번째 제자는 춘하추동에 있다. 두 번째는 밤과 낮에 있다. 세 번째는 인생은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에 있다고 대답했는데 선사가 세 번째 제자 손을 들어 줬다는 일화가 있어요. 이렇게 인생은 우리가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게 누적돼서 이뤄지는 건데 갑자기 어느 날이 기념할 날이고 대단한 날이라고 떠드는 것은 웃기는 거죠. 인생이라는 것은 꾸준함. 항상성. 이게 답이라고 봐요.”

 

 ― 희망 속에 맞은 2천년이 희망은커녕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경제 사정이 급격하게 어려워졌고, 그래서 사람들이 더 우울해 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IMF가 또 올까요? 라고 묻길래 제가 이렇게 말했어요. IMF라는 것이 불청객이라서 오지 말아야하는 거고, 또 오면 괴로운 거고 그런 게 아니다, 라고. 제가 보기에 IMF가 온 98년도는 21세기로 전환하는 길목이었어요. 그런데 그때 김영삼 정권이 거품경제를 더 키워버린 거죠. 속도를 조금 줄일 수도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가속시켜 버렸던 거예요. 길목에 다 와서야 회전을 하려다보니 결국 에어백이 터진 거죠. 에어백이 터진 것이 IMF 라는 거예요. 지금 우리가 에어백이 가라앉으면 다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거죠. 저는 경제와 관련해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게 우리나라 국민들이 TV를 통해 견인 당하는 사례가 많잖아요. 그런데 왜 TV에서 경제교육을 시키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IMF 때는 아껴야 된다고 대대적으로 켐페인을 펼치다가 언제 캠페인을 펼쳤냐는 듯이 곧 잠잠해졌어요. 결국 대중매체라고 하는 것, 소위 언론이 문제예요. 저는 이제 시민단체들이 자본주의와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자본주의의 첨병이 언론이라고 봐요. 언론들은 국민들이 경제에 눈뜨는 것이 싫은 거죠. 왜냐하면 국민들이 소비를 하지 않으면 자기들 장사가 안되니까. 그래서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대중매체에 속지 않는 것이라고 저는 말하고 싶어요.”

 

 사소한 것에서 느끼는 참된 행복

 

― 다른 얘기를 해보죠. 우리 집사람은 시골에서 자라고 저는 도시에서 자랐는데, 저는 시골이 좋은데 집사람은 싫어하더라구요. 여성이 사는데 어려움이 많아서 그런가요?

“다 이유가 있어요. 여기는 수도가 고장나면 여자가 다 고쳐야 해요. 전원생활이라는 게 아파트를 시골에 옮겨놓은 것은 아니거든요. 편리함을 생각하고 살려면 재미가 없어요. 시골 생활은 과거로 돌아가는 거거든요.”

 

― 요즘 주 관심사가 뭡니까? 어떻게 사시는지 궁금해하시는 분들을 위해 근황을 알려 주시죠.

“저는 전업주부는 아니에요. 사회적인 일이 많아 일에 치여서 살죠. 일이란 게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은 별로 없거든요. 해야 되는 일이고 나를 필요로 해서 하는 일이지. 요즘은 가능하면 외출을 안 하려고 해요. 집 주변에서만 이렇게 돌아다니고, 앞으로는 전업 작가로 가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생각해보니 제가 작가의 꿈을 키운 게 9살때 이더라구요. 그때 초등학교 2학년 때 제가 9시에 자서 새벽 4시에 일어났는데, 매일 저녁밥 숟가락을 놓으면 자고, 새벽에 일어나서는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책을 읽는 거였어요. 엄청난 독서가였던 거죠. 우리 집이 가난했지만 아버지는 수입의 일정금액을 늘 책을 사는데 쓰셨어요. 다달이 늘 책을 샀죠. 아이들이 지나가면서 ‘이 집 좀 봐 도서관인가 봐.’ 하던 곳이 우리 집 이었어요. 왜 이런 말을 하느냐면, 근황을 물어 보길래 대답하는 건데 전 지금도 책을 좋아해요. 한 번 책방에 가면 2~30만원 어치 책을 한꺼번에 사오죠. 인터넷으로도 책을 사는데 그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에요. 전업작가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건 점점 내 생활이 차분해지고, 일상생활속에서 시간이 많이 남으니까. 생각하는 것도 많고 글 쓰기도 더 끌리는 면이 있어요. 자신감도 생기고. 그래서 요즘 하는 일이 노트북을 항상 켜놓고 책 읽다가 책에서 제일 좋은 구절을 타이핑해 친한 사람들에게 메일로 보내주기도 하고, 또 프린트로 뽑아서 몇 자 적은 다음 편지로 보내고, 이렇게 살고 있어요.”

 

 ― 외출을 안 하는 대신 사람들과 온라인이나 편지로 연락을 하며 지내시는군요. 얘기를 듣다보니 사실 사소하고 작은 것이  행복인데 왜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느끼지 못할까요.

“아마도 획일주의 때문이 아닌가 해요. 획일주의라 함은 쉽게 말해서 획을 하나 죽 그어서 등급을 정하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획일주의에 동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한 아이가 시험성적을 80점을 받고 만족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다  무시하죠. 그 정도가지고 만족을 하느니, 마느니 하면서…. 마찬가지로 제가 장애아를 가진 것에 대해 많은 친구들이 ‘너는 애가 장애가 있는데 웃음이 나오냐’ 이렇게 말하거든요. 그런데 사실 전 희령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하나씩 확인하는 게 큰 기쁨 중 하나예요. 아까 우리 먹으라고 고구마 그릇 들고 여기까지 심부름 온 거 보셨죠? 전 그 모습 보고 또 감동했잖아요. 정신적으로는 발달장애가 있지만 가방메고 학교 왔다갔다 하는 것만 해도 그저 대견합니다. 그게 바로 행복이예요.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수준에서 얻을 수 있는 만족을 최대한 누리지도 못하면서 현실에 불만을 가지죠.”

 

 ― 말씀을 쭉 들으면서 행복이라는 것이 공식이 있는  것이 아닌데, 그 공식을 자꾸 찾으려 하니까 생각이 안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제 경우를 말씀드리면  장애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을 하다 보니 생기는 문제가 장애우들을 위해서 편의시설을 어떻게 하고, 정책은 어떤 식으로 적용하고 그런 것까지는 하겠는데, 장애우들이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기대하고 꿈꿀 경우는 정말 저도 어쩔 수 없더라구요. 이를테면 장애우가 비장애우처럼 똑같이 되길 바라는 거. 그런 사람의 행복지수는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죠. 당사자도 절대 만족 못할 것이고….

“하긴 그런 건 있죠. 어떤 선을 하나 그어놓고 그 아래에서 아무리 행복하려고 애쓰고, 만족하려고 애써도 그 선 이상으로는 갈 수 없는 부류. 대표적인 예가 장애우겠네요.”

 

“장애아부모 교육 절실해요”

 

 ― 그 선 이상으로 갈 수 없다면 그 안에서 그냥 ‘그래, 다른 애들 1년 할 거 10년 하긴 했지만 결과는 똑같잖아’ 하며 만족한다면 또 의미가 다를텐데요.

“사실 장애우건 비장애우건 가진대로 ‘난 이렇게 사는 게 좋다’, ‘이것이 나에게 어울린다’ 하며 낙관적으로 생각하면 좋은데 ‘난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을 닮아갈 수 있을까’ 하니까 불행한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저는 조건의 평등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느 칼럼에도 쓴 적이 있지만 전 장애를 개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성을 유지하기 위해선 뭔가 특별한 조건이 필요하죠.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건물의 편의시설을 설치해주는 것도 ‘걔네들이 몇 명이나 된다고 우리가 낸 세금을 거기에 다 쏟아붓느냐, 세금사용에 있어 형평성이 어긋난다’ 하며 따지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건 기회의 평등만을 이야기한 거죠. 이 사회에 장애를 개성으로 쉽게 받아들이는 철학이 있어야 조건의 평등이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해요.”

 

 ― 조건의 평등이 있어야 결과적 평등을 이룰 수 있다는 얘기군요.

“그렇죠. 조건의 평등을 사람들이 인식하려면 장애는 개성이라고 여기고 동정이나 시혜차원이 아닌 조건을 동등하게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편의시설 설치도 그런 맥락에서 당연한 거구요. 저는 이렇게 같이 이야기하고 있는 김정열 소장님이 다리가 불편한 사람이라는 것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어요. 그냥 이 사람의 하나의 특징일뿐이라고 생각하죠. 마찬가지로 교통사고로 장애를 가져 휠체어장애우가 된 우리 조카 경민이와 우리 작은 딸 희령이에게도 똑같이 대합니다. 일도 똑같이 시키고. ‘얘는 못할거야’ 라고 미리 한계를 두지 않아요. ”  

 

 ― 말씀 듣고보니 여성이 여성 철학을 가지고 있듯이 장애우도 장애철학이라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렇죠. 저는 비장애우에게 장애우에 대해 교육하는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장애우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되면 친화력을 빨리 느끼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잘 모르기 때문에 낯선 거예요. 그리고 낯설면 또 잘 모르는 건 당연하고, 이게 일종의 악순환이거든. 청각장애우들을 위해 수화교육을 하듯이 장애교육이 보편화됐음 참 좋겠네요. 개인적으로 장애우 교육은 부모교육, 가족 교육, 친지 교육 이런 식으로 단계적으로 전파를 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장애아가 태어나면 일단 부모부터 좌절하는 경우가 아주 많거든요. 저같은 경우도 장애아부모교육을 몇 번 다니다가 지금은 잘 안 가는 편인데요, 갈 때마다 부모들이 많이 우세요. 그러다보면 오히려 아이들이 잠재가능성과 발전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점점 퇴보하게 되죠. 희령이가 말은 못하지만 눈빛과 여러 가지 학습된 것으로 의사소통은 되거든요. 내가 아이에 대해 포기하면 아무리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듣는 아이라도 느끼게 된다구요. 그러면 아이도 같이 좌절하죠. 그렇게 좌절한 사람들에게는 솔직히 해줄 말이 없어요.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저까지도 지쳐가는 것 같아요. 그리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조언을 해준다거나  같이 이야기할 때 대안을 제시하면 ‘자기는 유명인사니까 해결책이 있겠지’, ‘자기는 좀 나으니까…’ 하면서 오히려 더 부정적이더군요. 그런 걸 볼때마다 장애우에 대한 인식은 가장 가까운 부모들부터 바꿔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발 부모들이 먼저 의식화돼서 "조금 다르지만 또 다른 행복"이라는 주제로 장애철학을 형성해 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얘기를 듣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면 얘기해 주시죠. 

 

"뭐, 그냥 똑같죠.. 숨을 들이쉬고 내리 쉬는 그 순간 하나하나가 삶인데 특별한 게 있겠어요.  산에 가서 나무 해 오고 가끔 개 데리고 산책하고 고민 없이 살면서 이따끔씩 강의 한번씩 나가고 하는거죠.  두 딸과 연애 좀 하구요."

 

 

대담 김정열 편집주간/사진 김학리/정리 김경희 기자

작성자김경희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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