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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장애우]앉아서 세계를 지휘하는 제프리 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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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비평가는 제프리 테이트를 현재 영국에서 가장 훌륭한 지휘자 중의 한사람을 꼽히며,
제2의 "오토크렘페르"로 부르고 있다.
따라서 최근 그가 1991년 9월 취임한 노트르담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수석 지휘자와 예술
감독에 지며된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테이트에게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척추질환과 뇌수종을 위한 영국 협회의 회
장에 지명된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 따뜻한 동기는 그의 마음과 생활에
매우 밀접해 있다. 왜냐하면 테이트 그 자신이 척추 뼈의 미발달로 등뼈가 극도로 휘어지는
병에 걸렸으며 이 병으로 그는 곱추와 내발족(기형발)이 되어 오직 지팡이에 의지해서만 걸
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장애를 극복하고 자신이 택한 직웝의 정상에 도달한 것은 주목 할만 하지만 오랜
세월동안 음악은 테이트가 좋아서 택한 직업은 아니었다. 그는 원래 의사가 되려고 공부했
었다.
그는 「나를 위하여 수고해 주었던 모든 의료인들에게 보답해야 한다는 점을 느꼈습니다.」
고 말해왔으며, 27세의 비교적 늦은 나이에 음악에 빠져들었다.

정확하게 20년이나 지난 오늘날 그는 세계가 요구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가 누리고 있는 지
위는 그의 성공담을 말해주고 있다.

런던 코벤트 가든(런던의 중심 지구의 하나, 청과물 도매시장과 오페라 극장이 유명함)의 로
얄 오페라의 영국 실내악 오케스트라의 수석 지휘자,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와 재네바 오
케스트라의 초대 수석 지휘자, 그는 또한 유럽과 미국의 정상 오페라단의 훌륭한 오케스트
라의 정규 초대 지휘자이다.

<필연의 결심>
장애는 처음부터 그에게는 매우 불리한 것처럼 보였다. 테이트는 10살 때쯤 두 번의 중요한
수술을 받고 오랜 시간 병원에 입원해 있었으나 그에게는 음악이 있었다.

학교에서는 뛰어난 소년 소프라노였으며, 12살 때 바그너의 "반지"를 연주한 정도로 훌륭한
피아노 연주자였다.
「음악은 언제나 나의 전부였으나, 부모님은 나의 장애 때문에 의학이 가장 좋은 직업」이
라고 생각하셨습니다.

테이트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여 의학공부 뿐 아니라 많은 성가대와 음악회
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케임브리지에서 런던 최고의 성 토마스 대학부속 병원으로 옮긴 제프라는 그곳에서 의사자
격을 땄으며, 성가대의 지휘자가 되었다.
마침내 운명의 결정을 할 때가 왔다.

의학이냐 음악이냐?
그런데 런던 오페라센터의 연습감독제의를 받자 테이트의 운명은 음악으로 돌아섰다.
그는 일년 남짓 로얄오페라하우스의 연습감독으로 콜린 데이비스, 조오지 솔티경 등과 함께
일했는데 그들로부터 「훌륭한 조련사」라는 칭찬을 들었다.

<지휘자의 첫걸음>
테이트는 그가 인정하듯 처음부터 지휘자가 되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가수로서 그리고 피아노 연주자로서의 내 경험 때문에 나는 성악지도자나 운영에 참여하
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 칼라스- 몇 년 전 만해도 그녀의 공연 입장권을 얻기 위해 코벤트 가든 가
장자리를 맴돌아야 했던-가 그녀의 개인 연습감독으로 그를 파리로 초청하고, 피에르 부레
즈가 1976년 바이로이트의 "반지"」백주년 기념 공연에 테이트를 보조자로 지명하면서 성악
지도자와 경영참여라는 그의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2년 뒤 테이트는 스웨덴에서 "카르멘"으로 지휘자로 첫 발을 내디딘 후 뉴욕 메트로플리탄
오페라, 샌프란시스코, 함브르크, 윈헨, 파리 등 수많은 오페라를 지휘했다. 그는 뉴욕 에트
로폴리탄 오페라에서 단 한번의 연습도 없이 베르그이 "루루"를 완벽하게 소화해 내 이름을
날렸으며, 1985년에는 셀즈버그 축제에서 "율리시즈의 귀환"을 세계 최초로 지휘하였다.

다음해 테이트는 로얄오페라 최초의 종신 상임 지휘자로 코벤트가든에 돌아와 최근까지 모
차르트, 바그너, 스트라우스의 탁월한 해설자 분만 아니라 오페라 지휘자로 명성을 드높였
다.

<위풍당당한 손>
장애 때문에 앉아서 지휘해야 함에도 테이트는 「어떤 점에서는 앉아서 지휘하는 것이 단원
들을 통제하기에는 더욱 좋습니다. 스트라우스는 항상 최소한의 몸짓만을 사용하라고 했거
든요. 나는 두 팔이 긴 은총을 받았으며 이것으로 나는 어느 정도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
다.」
사실 테이트의 팔과 섬세한 손은 참으로 위풍당당하다. 웨일즈 소프라노 데임조운스는 「당
신은 그의 팔에서 강력하게 퍼져 나오는 음악에 대한 진실과 헌신을 느끼고 전적으로 그를
신뢰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몸이 거의 반으로 접혀졌으나 테이트는 매우 빨리 걷는다. 항상 지휘대에서 서기를 갈망했
던 그가 한번은 발을 헛디뎌 연주석 뒤로 넘어졌다. 즉시 일어난 그는 다시 연주를 이끌었
는데 후에 「단말마의 고통이 한 시간이상이나 계속되었다」고 회상했다.

고통은 결코 멀리 있지 않으며 따라서 그는 그의 힘을 적절히 보존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
고 있다. 그러나 그의 연주계획은 운동선수라도 지쳐버릴 정도로 빡빡하게 짜여져 있다.

올해 만해도 대표적인 것으로 클리블랜드, 피츠버그 오케스트라와의 미국 공연을 비롯해 베
를린 필하모니, 노트르담 필하모니,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 등과의 공연이 남아있으며, 영
국 실내악 오케스트라와 이탈리아 오페라 하우스의 순회 공연 등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내가 조심해야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거의 대부분 내가 장애를 입고 있다는 것
을 잊고 지냅니다. 결국 많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는 장애를 입은 것이 아닙니다. 움직일
수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작성자함께걸음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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