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장애우의 성, 다큐제작하는 서동일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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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표 냈어요”
서.동.일. 그 이를 처음 만난 건 지난 2003년 7월경이었다. <함께걸음> 2003년 6월호 특집 기사였던 「장애우들이여, 성적 권리를 주장하라」를 보고 연락하는 것이라며 대뜸 일반 회사에 다니는데, 영화공부를 하고 있다며 만나서 이야기 좀 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좀 더 구체적인 현황과 문제들을 알고 싶다며. 우리 글을 열심히 읽고, 그래서 궁금한 게 생겼다는 데, 잡지를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것만큼 반갑고 고마운 일은 없으니, 그를 만
그러던 중 4?20 장애인의 날을 맞이해 인사동에서 열린 장애체험 행사장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는 그를 만났다. 토요일이긴 했어도 이른 10시경이었는데, 반가운 마음보다 어찌 이 시간에 카메라를 들고 서 있는가 의문이 먼저 앞섰다.
“어떻게 왔어요? 회사 짤렸어요?”
농으로 건넨 말에 그의 답 “아뇨, 제가 그만뒀어요. 아마 오늘 정식으로 사표 처리가 됐겠네요”
그 후로도 간혹 집회 현장에서 그를 목격할 수 있었다. 평범한 회사원이었고, 장애를 가진 가족도 친구도 없으며, 살아오면서 단 한 사람의 장애우도 만나보지 못했다는 그가 지금은 장애 가진 사람들의 모습만 카메라에 담고 있다.
“나를 들여다보기 위한 작업이기도 해요”
현재 그의 공식 직함은 ‘핑크 팰리스’의 감독. 장애우의 성(性)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제작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다. <함께걸음>을 통해 장애우의 성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지만, 성(性)이란 원래 그의 화두이기도 했단다.
“성에 대해 무척 관심이 많았지만 정보가 없었죠. 대학 때는 성인 에로비디오 보는 게 취미 중 하나였는데, 그래도 해결되지 않는 뭔가가 있었어요.”
그는 남들은 연애도, 성관계도, 결혼도 참 순탄하게 하는데, 왜 유독 자기만 그런 충만한 느낌의 관계형성을 못하는지 항상 의문이고 숙제였다고 한다. 그 고민은 언제나 풀리지 않는 무엇으로 남아있었는데, 그래서 미디어영상 아카데미 교육과정을 수강한 후 졸업작품의 주제도 성(性)으로 했었단다. “4-5편의 시나리오를 쓰기는 했지만 실제 촬영작업에는 들어가지 못했어요.” 이유는 배우가 섭외 되지 않아서라는데, 그때 눈에 꽂힌 것이 바로, <함께걸음>의 장애우 성(性)에 대한 특집 기사였다. “섹스는 애정 표현의 하나로, 서로 교감을 나누고 소통하는 것, 그러면서 서로의 존재를 인정받는 거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기사에 나타난 중증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신체적 장애 때문에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건 자신의 존재를 부정 당하는 것 아닌가요? 한평생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무척 가슴아프게 다가왔습니다.”
그는 자신도 섹스를 통해 소통하지 못한다는 게 숙제 중 하나였는데, 장애 가진 사람들의 현실적 상황을 알게 되면서 오히려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여성을 단지 ‘섹스의 대상’으로만 여긴 것은 아니었을까 반성하면서.
“나는 왜 사람과 관계를 형성하는 게 힘들까 생각해 봤어요. 장애 가진 사람들은 신체적 조건과 그 외 객관적 상황 때문이라지만, 전 그런 게 아니었거든요. 여성을 바라보는 의식과 태도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섹스는 도대체 무얼까? 그런 고민이 더 구체화되기 시작했죠.”
그는 6개월 간 가슴속으로만 끙끙대던 문제해결(?)을 위해 급기야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정한다. 우선 퇴직금으로라도 그들의 속내와 장애우 성(性)의 정체성을 찾는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온전히 말로 푸는 거죠”
그는 지금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에게 연락해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자, 의외로 기다렸다는 듯 많은 말들을 솔직하게 쏟아놓고 또 함께 작업에 참여할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서 “아, 이들의 성(性)이 이토록 억눌려 있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는데, 워낙 솔직하고 관계망이 넓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다보니, 사람들을 직접 만나는 인터뷰나 촬영은 그리 어렵지 않게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서동일 감독이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은 ‘일반인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성 욕구와 성 생활’이다. 처음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고민의 지점이 있었지만, 지금은 적극적으로 성을 향유하고 있는 밝은 당사자들의 모습을 담아내고 싶단다. 비록 현실은 그러지 못한 장애우가 대다수라는 걸 알고, 사회적으로 억눌린 성을 어떻게 풀 것인가 하는 문제도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우선 정해진 틀 속에 인위적으로 맞춰가기 보다 더 다양한 이야기들을 통해 ‘비장애우와 마찬가지로 성을 향유할 권리가 있다’는 자연스런 결론에 도달하길 원한다고 한다. 그는“?그게 다큐의 매력 아니겠어요?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과정 속에서 깨닫는 것이 그대로 묻어날 겁니다.”
구성이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본인이 남성이다 보니 남성 장애우 중심으로만 생각했다가 지금은 여성 스텝의 참여로 여성 장애우의 성도 포함될 예정이라는데, 이렇듯 미리 그림을 그리고 가기보다는 촬영을 해나가면서 줄기를 잡아갈 계획이라고 한다.
하지만 모든 것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호주 등 해외 촬영도 계획중인데, 퇴직금이 벌써 바닥을 드러내는 것 같아 약간 불안불안한 상태. 7월까지 촬영을 하고 10월까지 편집을 마무리 한 후, 영화「죽어도 좋다」처럼 일반 극장용 영화상영과 영화제 출품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그 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 벌써부터 고민이다. 그래서 그는 스텝들과 함께 5월 중순 경 정식 제작발표회를 준비하고 있다. 개미군단을 모집해, 영화의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들을 모아 회원제를 도입할 예정이라는데, 재정도 심각하지만 더 절실한 것은 실제 자신의 성생활과 욕구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줄 ‘사람’이 아직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당당한 드러내기 한 장면은 백 마디 말을 무색케 할 테지만, 말로는 모든 걸 솔직하게 표현해도 자신이 나서는 것에는 ‘주춤’한 것이 장애 가진 사람들이 일관되게 드러낸 태도였기 때문이다.
“그냥 하는데 까지 해보고 싶어요”
“내가 무슨 자격으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문득문득 고민이 들 때도 있어요. 그래도 계속 하고 있죠. 그건 내가 잘 해서가 아니라 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일 겁니다.”
영화 촬영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장애우를 만났고, 처음 만난 사람이 언어장애가 심해 거의 알아들 수 없었지만, 그 때의 당혹감과 두려움은 이제 없다고 담담히 말한다. 영화를 시작하면서 장애우를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무책임한 한국 사회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는 서동일 감독. 그가 준비하는 작품이 모쪼록 쪼개지고 부서진 장애우들의 숨은 권리를 되찾는데 한 몫 하길 기대해 본다.
글사진 홍여준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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