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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모녀 이야기

“우리 딸 아름이 연애 얘기 한번 들어보실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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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는 즐겁다. 연애를 하면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고 긍적적으로 보인다고 말하는 사람까지 있다. 뿐만 아니다. 주위사람들한테까지 그 즐거움이 감염된다. 박순자씨가 요즘 그렇다. 정신지체 장애를 가지고 있는 딸 아름이가 남자친구를 만나면서부터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두 모녀의 행복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아름이의 이야기를 하는 동안 박순자씨는 연신 웃는다.
“신기해 죽겠어요. 얼마 전에는 둘이 커플반지를 사가지고 왔는데…” 하면서.

누구나 하는 연애?

 
오늘 연애담의 주인공은 권형권(뇌성마비)씨와 오아름(정신지체)양이다. 우선 형권씨와 아름양의 관계를 보면, 요즘 유행하는 연상?연하커플이다. 아름씨가 3살 더 많다. 둘이 만난 곳은 직장으로 이제 1년이 조금 넘었다. 둘이 어떤 경로로 만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너무 좋아한다는 거 밖에는….
박순자씨가 신기해하는 에피소드 몇 가지가 있다. 얼마전 아름씨와 형권씨는 커플반지를 맞췄다. 아름씨가 “커플반지, 커플반지…”하고 노래를 불렀던 걸로 봐서 아마 아름씨가 갖고 싶다고 떼를 썼을 거라는 게 박순자씨의 생각이다.
일요일 남산에 놀러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둘의 커플반지를 맞춰줬다. 그런데 월요일 출근하는 아름씨의 손가락에 반지가 없더란다. 반지 어디에 뒀냐고 물었더니 아름씨의 대답이 가관이었다.
“형권이가 회사에서는 끼지 말랬어.”
둘 다 회사에 들어가기 전 반지를 뺐다가 퇴근하는 길에 끼고, 매일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사내커플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회사 사람들은 모르기 때문일텐데, 형권씨가 그러랬다고 그 말대로 따라하는 아름씨가 박순자씨에게는 신기하게 느껴졌다. 인터뷰를 하러 나온 아름씨 손가락에 예쁜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일요일이었으니까.
두 번째 에피소드. 얼마전 아름씨가 형권씨랑 영화를 보러가겠다며 나갔는데 조금 있다가 아름씨가 그냥 들어왔다는 것이다. 형권씨가 농담삼아 한 말에 아름씨가 삐진 것이다.
“누나는 왜 이렇게 늦게 나와?”
그말 한마디에 아름씨는 그냥 집으로 향한 것이다. 약속시간이 2시면 2시에 집을 나서는 아름씨 때문에 형권씨가 ‘열받는’ 일이 가끔 있었던 것이다. 한번은 형권씨가 박순자씨가 하는 가게에서 아름씨를 기다리다가 소리를 지르더란다.
“누난 왜 이렇게 안오는 거야?”
덕분에 둘 사이의 원만한 관계유지를 위해 바쁜 건 박순자씨다. 형권씨한테는 아름씨가 형권씨보다 장애가 더 심하다는 것을 이해시켜야 했고, 아름씨에게는 약속을 하면 약속시간보다 미리 나가야 한다는 걸 교육시켜야 했으니까.  결국 ?범죄의 재구성?은 그 다음주에나 볼 수 있었다.
세 번째 에피소드. 아름씨는 갖고 싶은 건 가져야 하고 형권씨는 예쁜 걸 보면 아름씨한테 사줘야 한다. 그래서 가끔 형권씨가 아름씨한테 “큰 가방 가져와”라고 말할 때가 있다. 그럼 아름씨는 커도 너무 큰 가방을 들고 나간다. 박순자씨가 그거말고 좀 작은 걸 가지고 가도 된다고 하면 “형권이가 큰가방 가져오랬어”하며 그냥 들고 나간다. 그럴 때는 누구도 못말린다. 저녁때 들어오는 아름씨의 ‘큰가방’에는 뭐가 들어있긴 하다. 예쁜 머리띠 하나, 작은 손가방 하나…

못말리는 오아름!
이런 연애담은 연애하는 커플이라면 누구에게나 있을법한 이야기다. 특별할 것도 없고 못

 
할 것도 없는. 그런데 이런 둘의 연애를 바라보는 박순자씨의 마음은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언뜻 보면 핏줄이라 그런가보다 싶지만 뒷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마음이 이해가 된다.
사실 아름씨는 정신지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폐증도 함께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동안 가족을 많이 힘들게 했다는 것이다. 자기 맘에 안들고, 수틀리면 가족들이 나간 사이 문을 걸어 잠그고 열어주지 않아서, 옆집 사람들한테 신세진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어떤 날은 아름씨가 방에 들어가서 하루종일 나오질 않는다. 자기방에 있는 물건들을 옮겨놓느라고 낑낑거리고 있는 것이다.
“어디서 그런 괴력이 생기는지… 나랑 제 오빠랑 같이 움직여야 할 것같은 가구를 혼자 옮기는 거에요.”
무거운 화장대며 침대를 혼자서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기고, 책상을 방 한가운데 ‘떡’하니 옮겨놓기도 한다. 그리고 좋아한다는 것이다. 더운 여름날씨에도 끄떡없었다. 
한 여름에 겨울옷을 입고 나간다고 고집을 부르는 일도 많다. 아무리 말려도 갈아입지 않고 두꺼운 옷을 입고 회사에 간다는 것이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아줌마들이 “왜 그런 옷을 입고 왔냐?”고 해야 여름옷으로 갈아입는다.
“다른 사람들 말은 듣지만 엄마 말은 죽어도 안들어요.”
뿐만 아니다. 박순자씨는 아름씨한테 맞기도 많이 맞았다고 한다. 가끔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말을 안하고 괜한 떼를 쓴다는 것이다.
“아름아 갖고 싶은 게 있으면 말을 해. 말로!”
아무리 말로 하라도 이야기해도 듣지 않는다. 길거리를 가다가 성질을 부리기 시작하면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단순히 투정만이 아니라, 답답한 마음에 옆에 있는 엄마를 때리는 일도 있었다. 창피한 마음에 이웃가게로 후다닥 뛰어들어간 적도 있다는 말을 할 때, 박순자씨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노트북을 사달라고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출퇴근하는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노트북 쓰는 걸 보고는 짜증을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텔레비전에 나오는 선전을  보고야 노트북을 사줬다. 물론 그걸로 끝은 아니었다. 노트북을 사기 전 박순자씨와 아름씨 오빠는 작전을 펼쳐야 했다. 용산 중고매장에 가서 미리 물건을 골라놓고 그 물건이 좋다고 권하도록 하는 것이다. 아름씨가 마음에 드는 것을 갖겠다고 고집을 피울까봐 이미 조치를 취한 것이다.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중고매장의 일하는 사람이 권한 물건을 샀고 나중에 쓰지 않는다면 카세트로 바꿔준다는 약속까지 받았다. 아름씨는 한동안 열심히 노트북을 들고 다녔지만, 지금은 자기 방 어딘가에 넣어놓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40만 원짜리 장난감 노트북을 산 셈이다.

직장경력 9년차, 당당한 여성으로…
아름씨가 언제부터 장애를 갖게 됐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태어났을 때 의사가 구개파열이

 
있으니까 수술을 하면 된다고 해서 생후 10개월에 수술을 했다. 그리고 나중에 언어교정이나 좀 시켜주면 되겠거니 하고 쉽게 생각했는데. 사고는 아름씨가 3살이 되던 해에 일어났다. 워낙 아빠를 좋아하던 아름씨인지라 아빠 곁을 떠나지 않았고 그날도 머리를 감는 아빠 옆에 아름씨가 지키고 서 있다가 사고를 당한 것이다. 머리 감으려고 데워 놓은 물솥에 그대로 넘어진 것이다. 다행히 등쪽으로 넘어져 얼굴화상은 없었지만 어린 나이에 엄청나게 고생을 했다. 화상은 그렇게 해서 별 무리없이 나았는데, 그때 충격 탓인지 아님 뭐가 잘못됐는지 초등학교 2학년때 담임선생님의 부름을 받았다. 1학년은 그럭저럭 넘겼지만 더 이상은 안되겠다고 특수학교에 보내는 것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선생님한테만 잘하면 될 줄 알고 음식도 해가고 온갖 정성을 다했었죠. 그런데 그렇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던 거에요. 결국 2학년때 특수학교로 옮겼어요”
아름씨가 특수학교에 입학을 하면서 가족이 서울로 이사를 했다. 지방공무원이었던 아름씨의 아버지도 공무원 시험을 다시 봐서 서울로 발령을 받아야 했다.
“아름이 오빠(오다운)가 많이 힘들었을 거에요. 다운이를 좋아하니까 옆에 붙어서 공부를 못하게 하는 거에요. 교과책들도 다 가져가고…”
학교에 가서 보면 책이 없는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오빠 다운씨가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때는 아름씨를 ‘성분도 직업재활원’에 데려다 놔야 할 정도였다. 그곳에서 아름씨한테 정신지체만이 아니라 자폐증상이 있는 것을 알게됐다고 한다. 하루는 수녀님이 불러서 가봤더니 아무래도 아름이가 자폐가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제서야 아름씨가 막무가내로 하는 행동들이 이해가 됐다.
아름씨는 학교에서도 그렇고 직장 기숙사생활에서도 문제가 많았다. 같은 방을 쓰는 친구들을 너무 힘들게 하는 것이다. 집에서 처럼 툭하면 나가라고 때리고 방문을 잠궈버리기가 일쑤였으니 누구나 손을 내두를 정도였다. 그래도 직장생활을 잘 했다.
명일동의 복지관에 다닌 지 2년만에 복지관의 선생님이 아름씨를 취업 내보내자는 이야기를 건네온 것이다. 처음에는 엄두도 못 낼 일처럼 느껴졌다. 당연히 박순자씨는 반대를 했고, 복지관의 선생님이 6개월을 설득했다. 그리고 나간 처음 직장이 성남에 있는 양말공장이었다. 다행히 기숙사 생활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아름씨로부터 가족들이 자유로울 수 있었다. 물론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이런저런 문제들이 많긴 했지만 자그만치 3년을 다녔다. 처음에야 힘들지만 일단 익숙해지면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한다는 것이 아름씨의 장점이다. 현재 ?직장경력 9년의 베테랑?이 바로 오아름씨의 경력이다.
박순자씨가 광화문에 순대국밥집을 낸 것도 그때였다. 아름씨가 기숙사 생활을 하기 시작했으니 가족들이 여유가 생긴 것이다. 여의도에 큰 순대국밥집을 하는 조카의 권유로 세종문화 회관 뒷길에 ‘화목순대국집’을 열었다. 장사는 성공적이었다. 가끔 아름씨와의 한바탕 전쟁만 없다면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연애가 성격을 바꾼다?
아름씨가 요즘처럼 바뀐 건 연애를 시작하면서 부터이다. 전에는 가족끼리 영화라도 보러 가자고 하면 자긴 집에만 있겠다며 텔레비전을 보며 일어나질 않았다. 친척들까지 모이는 가족모임에 같이 가야 하는데 도무지 말을 듣질 않았다.
“아름이가 안가겠다고 하는 건데도 친척모임에 안 데리고 가면 한소리 들어요. 애가 장애가 있다고 안 데리고 다니면 어떻하냐고요. 그러니 억지로라도 끌고가야 하는데 그게 돼야 말이죠. 정말 힘들었어요.”
그런 아름씨가 자진해서 남자친구랑 영화를 보러 가는가 하면, 가족모임에도 순순히 따라나서는 것이다. 형권씨 핑계를 대면 엄마말도 잘 듣는다.
“아름아, 그 옷 입고 형권이 만나러 가게. 별로 안 예쁘다.”
아름씨를 달랠 때 쓰는 말이다. 1년 넘게 다닌 수영장에도 이제 혼자서 다닐 수 있을 정도다. 물건이 사고 싶거나 필요한 게 있으면 무조건 떼를 쓰기보다는 오빠랑 약속을 한다. 그럼 그때까지 잘 참아낸다는 것이다. 핸드폰이 그렇다. 매일 형권씨로부터 오는 문자를 받아보던 아름씨가 핸드폰을 사달라고 떼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5월 달에 사주기로 약속을 했고, 형권씨가 핸드폰 문자 보내는 법을 가르쳐 줄거라며 아름씨가 자랑이다. 하지만 엄마나 오빠를 괴롭히는 일은 없어졌다. 기다리는 법을 배운 것이다.
“형권이가 그러랬다고 회사에 들어가기 전에 커플반지를 빼서 주머니에 넣는 아름이가 그렇게 신기할 수 없어요. 정말 사람됐구나 싶어요.”
박순자씨가 옆에 있는 아름씨한테 농담삼아 한마디 건넸다.
“아름아 공장에 있는 아줌마들한테 형권이랑 커플반지 샀다고 이야기했어?”
아름씨 대답하길.
“아니.”
“자랑하고 싶어서 죽겠지. 아줌마들한테 다 이야기하잖아?”

“아름이를 예뻐해주니까, 나도 예쁘게 봐줘야죠.”
박순자씨는 그런 아름씨가 대견하기만 하다. 현재 아름씨가 일하는 공장은 볼펜을 만드는 곳이다. 아름씨 설명으로는 스프링을 끼우는 비슷한 일을 하는 것 같다.
“아름이 오빠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아름이 직장에 가보고는 놀랐어요. 들어서자마자 보통 사람들마냥 자기 가방을 선반에 얹고는 자기 자리로 가서 일을 하는 거 있죠. 공장에서도 그래요. 아름이 일자리 걱정은 하지 말라고요. 복지관에서도 좋아졌다고 많이 이야기해주시고요. 남자친구를 만나면서 조금씩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배우게 되는 것같아요.”
고마운 마음에 박순자씨는 아름씨의 생일날이나 특별한 날이면 음식을 해가지고 찾아간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표시도 하고 인사도 나누고 싶어서다. ‘형권’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것도 음식을 해가지고 가서였다. 같이 일하는 아줌마들이 ‘형권’이라는 이름을 들먹이며 아름씨를 놀리더라는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우연히 같이 김밥을 먹을 때였다. 아름씨가 음식을 먹느라 정신이 없어서 머리카락이 입으로 들어가자 형권씨가 아름씨의 머리카락을 쓸어 주더라는 것이다.
“누가 내자식한테 그렇게 해주겠어요. 머리카락 먹을까봐 머리카락을 쓸어서 귀 뒤로 넘겨주는데, 고마워서 가슴이 뭉클해지더라고요.”
예쁜 얼굴에, 아름씨라면 어쩔 줄 모르는 가족들, 좋아한다는 남자친구까지, 장애를 가졌다는 거 말고는 뭐하나 부러울 것이 없는 게 아름이 아니냐고 박순자씨는 말한다. 이야기 끝에 형권씨에 대한 자랑도 빼놓지 않고 덧붙였다.
“표현도 제대로 안하는 아름이만 보다가 형권이를 보니까 속이 다 후련해요. 머리도 똑똑하고 잘 생겼어요. 덕분에 아름이도 좋아졌으니 형권이가 얼마나 예뻐 보이겠어요.”

“결혼은 엄두가 안나고, 그룹홈을 생각하고 있어요.”
오빠 다운씨는 결혼을 앞두고 있다. 아름씨의 올케 될 사람도 자주 오고 집에서도 ?결혼?이라는 단어가 자주 나오기 시작하니까 아름씨도 덩달아 난리다. 자기도 결혼하겠다고. 그러나 아름씨 집에서는 엄두가 안나는 일이라고 말한다. 아름씨보다 장애가 덜 심해보이는 형권씨인지라 더 그렇다.
“아름이는 단순해서 설혹 형권이랑 헤어져도 금방 잊을지 몰라요. 다운이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걱정은 형권이죠. 상처받을까봐서요.”
박순자씨는 형권씨를 붙잡고 둘은 친구라는 다짐까지 했다고 한다. 지금처럼 좋은 친구로 오래오래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다. 이번 인터뷰도 형권씨와 함께 하려했지만, 형권씨 집에서 아름씨를 모른다는 것 때문에 아름씨와 박순자씨만을 만났다.
“핸드폰으로 아름이 사진을 찍어서 형권이 어머님한테 보여줬었나봐요. ?예쁘네?하셨다지만 아름이 장애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시니까 하는 말 아니겠어요. 결혼은 엄두도 안나고, 그룹홈에 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아름씨의 한달 월급은 50만원이 채 안 된다. 그래도 9년 동안 차분히 모아서 그룹홈에 들어갈 만큼의 돈은 모아 놓았다. 문제는 아름씨랑 같이 할 장애우들이 없다는 거다. 아름씨가 많이 좋아졌다는 걸 모르는 다른 장애우 가족들이 과거의 아름씨만 생각하고 같이 살기를 꺼려한다는 것이다.  
“며칠 전에 텔레비전에서 자폐아이를 훌륭하게 키운 어머니 이야기를 봤어요. 보면서 반성 많이 했어요. 요즘 아름이가 좋아진 걸 보면 힘들더라도 더 노력할 걸 그랬구나 싶어요”
얼마전 버스를 타고 오다가 박순자씨가 운영하는 가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폐증 치료’라는 간판을 봤다며 한번 들려서 상담을 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아름씨가 좋아진 것은 단순히 연애를 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박순자씨의 말대로 남자친구를 만나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맺고, 다른 사람들은 가족처럼 무조건 이해하고 받아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조금씩 양보하고 상대에 맞춰 이야기하는 법을 배우게 된 것은 아닐까.
이번 ‘사람사는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하고 싶은 말 한마디.
“장애우들이여 연애를 하자!”

글 서현주 객원기자?사진 정선아 객원사진기자


 

작성자서현주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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