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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 이야기]일본 장애인차별과싸우는전국공동체연합 동경대표 노구찌 로시히로 씨

“장애를 넘고, 국가도 넘어, 함께 일하고 함께 사는 사회 만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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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이 걸린 엘리베이터 설치 운동
이번 호 ‘사람사는 이야기’를 쓰는 데는 몇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기자는 ‘노구찌 로시히로’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어 일본 장애우면 어떻게 대화를 나누지?’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통역할 사람이 있다니 한편으로 안심했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통역하는 사람에 의해 전달되는 말로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느끼는데 한계가 있었다.
물론 그가 했던 일들이나 사실들은 나중에 통역인에 의해 전달됐지만, 그의 표정과 ‘슬펐다’라는 말을 연결시키기는 한계가 있었다. 그건 생각보다 난처한 일이었다.
인터뷰 내내 마치 속기사처럼 통역인의 말을 열심히 받아 적어야만 했다.
그의 말을 외울 수 없으니 받아 적을 수밖에. 그런데 왜 하필 일본 장애우를 ‘사람 사는 이야기’에 섭외했을까.
노구찌 씨는 일본 장애운동의 역사와도 같은 존재다. 적어도 그가 살고 있는 ‘다치가와’에서는 그렇다.
1980년 다치가와에서는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라는 장애우들의 요구가 있었다.
제이알(JR)회사가 역에 들어서면서 역사가 개조될 때 장애우들을 위해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달라고 장애우들이 요구했고 회사 측은 이를 거부했다. 에스컬레이터와 장애우용 승강기가 따로 있으니 굳이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일본 장애우들은 설명서를 들고 시청과 구청을 찾아가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뿐만 아니라 매주 토요일에는 역에 모여 시민들을 상대로 설명서를 배포하고 서명운동을 벌였다.
그렇게 해서 2만 명의 시민들로부터 서명을 받았고 이를 전달하기까지 했다. 그럭저럭 문제가 풀리는 듯했다.
시청과 구청에서 엘리베이터 설치비용을 내겠다는 제안을 철도회사에 한 것이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제이알 회사가 이를 거부했다. 역시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다치가와 역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기 까지는 그 뒤로도 오랜 시간이 거렸다. 1980년에 시작한 ‘다치가와 역사 엘리베이터 설치 운동’이 1996년에 끝났으니 무려 16년이나 걸린 셈이다.
노구찌 씨는 1989년부터 이 운동에 동참했다. 장애우들의 모임에 갔다가 일본의 ‘장애인차별과싸우는전국공동체연합’(이하 공동연)을 알게 됐고, 자연스럽게 토요일 역사 앞 집회부터 시청방문 등에 참여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노구찌 씨는 “처음 역사를 개조할 때부터 엘리베이터를 설치했으면 배용도 적게 들었을 텐데 ,나중에 설치하려니 5배에서 8배가 넘는 금액이 들었어요. 아마 제이알사는 비용문제보다 한곳에 만들면 다른 곳에서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할까봐 그랬던 것 같아요.”라고 기억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설치운동에 함께하면서 가장 기억하는 것으로 ‘지하철 탑승하기’를 꼽았다.
노구찌 씨는 “일본 역시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라는 운동을 벌이면서 ‘지하철 탑승하기’를 했습니다. 장애를 갖기 전에 출퇴근하면서 타던 지하철을 다시 타니까 그 진동이 그립다는 생각이 들더군요.”라며 잔잔히 웃었다.
노구찌 씨는 작년 한국에서 있었던 장애우들의 버스타기와 지하철타기 운동을 알고 있었다. 노구찌 씨는 일본과 한국의 장애운동을 바라보는 일반 시민들에 대해 “한국의 운동을 보면서 힘있게 나간다는 생각에 믿음직스럽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공권력의 반응도 그렇고, 일본에서는 한국처럼 그렇게 심한 저항에 부딪히지는 않았어요. 시민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였죠. 같이 있고 싶지 않아 멀찌감치 떨어져서 바라보는 정도가 다였으니까요.” 라고 평가했다.
그리고 일본에서도 ‘지하철 탑승’하기 외에도 역장실 점거농성 등 장애우들이 할 수 있는 건 다했다고 한다.
“지하철에 엘리베이터가 생기고 나서 ‘너무 기뻐하지 말자’고 말했습니다. 당연히 만들어야 할 것이 만들어진 것이니까요. 오히려 16년 동안 엘리베이터 설치운동을 하면서 일본의 장애운동이 성장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구찌의 설명을 듣고 있자니 ‘일본이나 한국이나 이동권 확보는 장애우들의 힘든 숙제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내가 갈곳은 시설뿐…”
일본 장애우들의 ‘지하철 탑승하기’ 이야기를 들으면서 잠시 나왔지만, 노구찌 씨도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스무살에 처음 발병해서 장애가 심해지면서 ‘아기 걸음마처럼 땅을 짚고 걷기’까지 했다. 결국 스물 다섯살에 걷지 못하게 됐다.
“타이프라이터 회사에서 엔지니어로 일했어요. 동경역까지 1시간 30분 거리를 통근하면서 회사를 다녔는데, 어느 날부터 사람들과 부딪히면 넘어지는 거에요. 특히 러시아워 시간에는 심했죠. 무거운 것도 못 들고, ‘근육디스트로피’라는 병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내가 그 병에 걸릴 줄은… 장애우가 된다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었어요. "내 인생은 끝났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살았죠”
노구찌 씨가 열일곱이 되던 해에 아버님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그 이는 일찍부터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장애가 없었더라면 홀어머니를 모셔야할 그이가, 반대로 어머니의 병간호를 받으며 ‘어머니의 짐’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괴로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회사를 관두고 집에 있게 된 후부터는 어머니랑 싸우면서 지냈다. 그러나 말이 싸움이지 그가 성질을 부리면 어머니가 참고 그렇게 8년을 보낸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결국 시설에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노구찌 씨는 근육디스트로피 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몸짓이 자유롭지 못하다. 그가 자신의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입술과 얼굴표정뿐이었다.
“어머니랑 둘이 살면서 집밖에 나가는 것도 힘들었죠. 진행성 근육장애라서 서른살에는 잠잘 때 혼자서는 몸을 뒤척이지도 못했어요. 65세인 어머니가 도와주면서 지냈어요. 장애우라서 못나간다고 비관하고 스스로를 힘들게 하지만 생각은 온전하거든요. 어머님이 나이가 드시면서 저를 돌봐주는 것에도 한계가 생겼고, 그래서 스스로를 채찍질했어요. 장애와 관련된 책도 읽고 정보도 모으고 사람들도 만났죠.”
그 때 모임에 나가고 알게 된 장애우 운동단체가 바로 공동연이다. 다치가와의 장애우 모임을 통해 공동연을 알게 된 것이 1989년.
공동연은 장애우와 비장애우가 함께 활동하는 곳으로 ‘함께 일하고 함께 사는 사회’가 목표인 일본 전국 조직이다.

그의 장애운동 가능케 한 25명의 도우미들

 
“이렇게 살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시설로 밖에 갈 수가 없다는 생각에 도전을 했지만 휠체어를 타고 밖으로 나간다는 건 무서웠어요. 그래서 처음 외출할 때는 무척 긴장됐죠. 휠체어를 탄 내 모습이 부끄럽기도 했구요”
활동을 시작하면서 동지들이 돌봐줘서 외출도 장애우 권익 운동도 시작했지만, 한계는 있었다. 결국 구청 등을 상대로 장애우들을 위해 도우미(helper)를 보내달라는 요구를 시작했다.
노구찌 씨가 서울을 방문하고 있는 동안에도 두 명의 도우미가 그와 동행했다. 혼자서는 꼼짝도 하지 못하는 노구찌 씨를 돕기 위해 정부가 임금을 지불하는 유료도우미인 셈이다.
노구찌 씨의 경우 낮 동안의 활동만이 아니라 잠자리까지 돌봐주어야 하므로 모두 25명의 도우미가 교대로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인터뷰를 한 날에도 2명의 도우미가 노구찌 씨가 불편하지 않도록 음료수를 마실 수 있도록 돕는가 하면 다리를 움직여 주고 옷매무새도 만져주었다.
한번 상상해 보자. 꼼짝도 못하는 성인장애우가 비장애우와 똑같은 생활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도움과 보살핌이 필요한지.
“노구찌 씨는 많은 활동을 하는 유명한(?) 장애우라 외국이나 지방으로 강연도 많이 가고 활동이 많은데 아무리 피곤해도 하루에 한번씩 꼭 목욕을 하는 등 엄청 깔끔한 멋쟁이에요”
일본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하면서 도우미로 활동하고 있는 김재근 씨의 설명이다. 그는 노구찌씨의 도우미로 일한지 6년이 넘었다고 한다.
노구찌 씨에게 “옷 입은 스타일이 멋지다”라고 칭찬을 했더니, 웃으며 자신을 ‘일본의 욘사마"라고 표현했다. 농담처럼 웃었지만 스스로에게 느끼는 자부심도 엿보였다.

“장애우랑 결혼도 비장애우랑 다를 게 없어요”
도우미 파견은 여느 장애우와 다른 노구찌 씨만의 특별한 의미가 하나 더 있다. 그의 아내를 만난 인연이 그렇다.
노구찌 씨는 도우미 파견 회사 사무실에서 처음 그녀를 만났다고 한다. 한창 바쁘던 때라 사무실에서 그녀를 볼 일이 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직원이 아니라 여성으로 느껴져 데이트를 신청했다. 노구찌 씨는 데이트를 신청했는데 부인은 상사가 만나자고 하니 긴장을 하더란다. 그렇게 데이트를 시작한지 2주만에 결혼을 약속을 받아냈다.
“상사로써 명령한 거 아니에요?”
쑥스러운 듯 농담을 했다. 노구찌 씨는 부인이 솔직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점이 마음에 들었다는 자랑도 잊지 않았다. 현재 그는 결혼 5년째를 맞고 있다.
솔직히 노구찌 씨가 결혼을 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대개의 경우, 사람 사는 이야기에서 섭외를 할 정도면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한두 가지 정보가 걸리게 마련이다. 물론 그 내용이 "사람사는 이야기"에서 인터뷰를 하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고. 하지만 일본인인 노구찌 씨에 대해서는 이후에 설명할 ‘자립생활센터’ 외에 개인적인 정보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또 하나, 노구찌 씨가 결혼하지 못했을 거라는 선입견도 있었다. 스무 살에 장애를 갖게 됐고 서른 살에 전신을 움직일 수 없게 된 장애우가 결혼을 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더 많이 묻고 싶은 것도 묻질 못했다. 미처 생각이 미치지 못해서.
“결혼한다고 했을 때 그녀의 아이들은 반대하지 않았어요. 만난지 4개월 만에 결혼을 했는데 결혼식 때까지 장모님이 반대를 하셨죠. 시모노세키에 사시는데 지금은 자주 놀러오세요. 그리고 이젠 오시면 가시려고 들지를 않아요.하하”
그만큼 장모님과 친해졌다는 이야기다. 부인 역시 두려움이 없었던 건 아니다.
“장애우랑 결혼하는 게 어떤 건지 몰라서 망설였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다른 사람이랑 결혼하는 거랑 같다고 이야기해줬죠.”
도우미이자 통역을 맡아줬던 김재근 씨도 부부사이가 좋다는 이야기를 했다. 장모님 역시 거의 같이 사는 격이라고…

장애운동을 넘어서 공동체 운동으로
인터네 검색사이트에서 ‘노구찌’라는 단어를 치면 으레 몇 가지 찾아지는 기사에는 ‘자립생활센터’라는 단어가 나온다. ‘자립생활센터’는 15년 전 개관한 곳으로, 시설장애우들이 시설 내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로 나와 기반을 다지고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모범적인 일본의 센터운영사례는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차례 소개되고, 노구찌 씨를 비롯한 자립생활센터 운영자들이 초대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장애우 운동 단체들이 견학을 가는 등 성공적인 장애우 지원사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장애우들의 자립생활이 최고의 목표죠. 물질적인 것은 그 다음이라고 생각해요.”
노구찌 씨가 강조하는 것은 나이나 성별, 장애와 상관없이 함께하는 싸움이다. 장애가 달라도 같이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한 등급 낮은 인간이라는 느낌, 차별받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공감대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제가 운동을 시작할 때는 선배들한테서 많은 것을 배웠지만 지금은 연대의 필요성을 느껴요. 다른 장애우와 연대하고, 여성운동과 국가 간의 차이를 넘어서 같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노구찌 씨는 엘리베이터 설치운동을 해온 16년 동안 일본 장애 운동이 성장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장한 것은 일본장애운동의 역사만이 아니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비장애우로 태어나 스무살에 장애우가 됐고 집안에서 자신의 장애만을 힘들어하던 그가, 지금은 일본장애운동 역사에 커다란 기둥으로 서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엘리베이터 설치운동에서부터 도우미의 필요성을 확산시키고 자립생활센터의 활동까지. 노구찌 씨의 삶도 일본장애운동과 함께 발전해 왔던 것이다.
이번 인터뷰는 어쩌면 시작인지도 모르겠다.
한국에서 먹는 소주를 좋아한다는 노구찌 씨. 이런저런 이유로 나누지 못했던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또다른 인터뷰를 기대해 본다.  

글 서현주 객원기자 / 사진 정선아 객원사진기자

 

작성자서현주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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