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사회연대 유의선 사무국장이 말하는 빈곤의 진실 > 세상, 한 걸음


빈곤사회연대 유의선 사무국장이 말하는 빈곤의 진실

“사회가 만든 악(惡) 빈곤. 가난한 당사자들의 연대가 필요하다”

본문

지난 해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는 사건 1위는 단연 노무현 대통령 탄핵사건이었다. 시민들은 자발적 의지로 촛불집회를 열었고, 그 행렬은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정리해주었다. 당시 시민들은 헌재의 판결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헌재를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든든한 지킴이로까지 받아들였다. 하지만 헌재는 가난한 이들의 처절한 외침에는 등을 돌렸다. 그것도 9명 재판관 전원이 그랬다. 
지난 해 10월 28일 ‘2002년 최저생계비결정고시’가 너무 낮게 책정되어 헌법이 보장한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침해하고 있고, 장애를 가졌기 때문에 드는 추가 지출에 대한 배려가 없어 평등권을 침해한다며 이승연씨(여, 뇌병변장애1급) 가족이 청구한 위헌확인소송에 대해 헌재는 재판관 9명의 전원일치 판결로 기각 결정을 했다.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헌법재판관들이 당당하게 써 내려간 판결문을 한번 살펴보자.
“인간다운 생활이란 그 자체가 추상적이고 상대적인 개념으로서 그 나라의 문화의 발달, 역사적·사회적·경제적 여건에 따라 어느 정도는 달라질 수 있는 것이고, ‘최소한의 조치’역시 국민의 사회의식의 변화, 사회 경제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 가변적인 것이므로… 국가의 재정규모와 정책, 국민 각 계층의 상충하는 갖가지 이해관계 등을 함께 고려하여…” 현행 제도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고 최옥란 열사가 저 우울한 하늘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을 것 같은 날이었다.

 

 
빈곤해결을위한사회연대(준비위, 이하 빈곤사회연대)의 유의선 사무국장(34세), 그는 헌재 결정이 난 후 한동안 멍했다고 한다. 혼자 방청석에 앉아 판결을 듣자니, 말들이 워낙 긴 만연체에 용어 또한 익숙치 않은 법률용어가 끼어 들어 더욱 ‘윙~’하는 소리만 들려왔단다. 그는 ‘기각’임을 알아차린 거다. 한 가닥 기대가 절망으로 바뀌는 순간에 어찌 온전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가 속한 빈곤사회연대(준) 소속 회원들은 지난 해 11월 17일 추운 날씨 속에서도 삼보일배를 단행했다. 빈곤이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모든 ‘사회적 배제’로부터 나온 것임을 밝히겠다는 의지에서다. 유의선 사무국장은 당시 이렇게 말했었다.
“우리는 오늘, 인간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으로서의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요구하며 추운 겨울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벌였던 장애여성 수급자 최옥란열사의 투쟁을 기억하며 삼보일배에 나선다. 가난한 이들도 똑같이 고통과 행복을 느낄 줄 아는 인간임을 보여내기 위해, 빈민의 아픈 다리와 무너진 허리를 이끌고 그 어렵다는 삼보일배의 길을 나서는 것이다. 이렇게 작은 시작으로 우리는 이 길에서 점점 더 빈곤해지고 있는 서민과 만날 것이며, 용역깡패의 폭력단체에 고통받는 노점상과 만날 것이며, 불안정한 노동과 저임금으로 고통받는 노동자와 만날 것이다.”

고 최옥란 열사가 맺어준 아름다운 인연, ‘빈곤사회연대’
유의선 사무국장은 소위 학생운동권 출신이다. 한총련 중앙단위의 간부로 활동했고, 공장에 다니다 위장취업이라 하여 잠시 감옥에도 다녀왔다. 그 후 장애인실업자지원센터에서 활동하며, 실업과 빈곤의 문제는 결코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는 것임을 알았다고 한다. 그 활동을 하면서 고 최옥란 열사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녀가 처한 현실에 유의선 국장은 침묵하고 있을 수 없었다. 최옥란 열사는 당시 이혼 후 아이에 대해 강한 애정을 보였지만 양육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포기해야 했다. 그래서 돈을 벌기 위해 경제활동을 하면 수급권자에서 탈락되는, 이 애매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현실 제도 앞에 놓여져 있었던 것이다. 이 때 기초생활보장법의 허실을 제대로 알리자는 의미에서 명동성당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하게 된다. 당시 어떤 공고한 연대체가 형성된 것도 아니었지만 우선 농성단을 구성해 사람을 모으는 일부터 해보자고 단체들에 제안해 임의기구로 농성단을 꾸린 것이다. 이후 2002년 최옥란 열사가 사망하면서 유국장은 장례위원회를 구성하고, 고인의 뜻을 이어 느슨하지만 사무국을 두는 본격적인 조직활동을 준비한다. 그것이 바로 빈곤사회연대(준)다.
하지만 아직 준비위원회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했다. 2003년 29개의 조직이 모여 결성했지만 여전히 실무활동가는 유 사무국장 혼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고 변변한 사무실 하나 마련하지 못해 용산에 있는 다른 단체 사무실에 책상만 하나 갖다 놓은 상태다. 그렇지만 만만히 볼 조직은 아니다. 민주노총, 민주노동당과 같은 거대 조직도 있지만, 대부분 작은 지역에서 하나의 주제로 끝장(?) 보려는 태도를 지닌 열의 넘치는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유국장이 회상하는 빈곤사회연대의 출범 과정은 이랬다.
“고 최옥란 열사가 명동성당에서 천막농성을 할 때 사람들이 한 둘 모이기 시작했죠. 그게 최저생계법연석회의였는데, 이제는 보다 확대된 빈곤문제에 대해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가, 기초생활보장법은 취지는 좋은 제도인 것 같지만 이제는 제도 개선만 하라는 연대체의 주장은 주장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그러니 해결하는 쪽으로 가자, 라는 논의가 활성화되면서 빈곤사회대책위를 띄우게 된 겁니다.”
하지만 그동안 언론과 사회가 가난한 사람들의 문제에 외면해왔던 것과는 달리, 예상외로 이 조직의 출범은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첫출발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그 누구도 범접하기 어려운 타워팰리스 앞에서 했기 때문이다. 유국장은 그 취지에 대해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나쁜 감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빈부 격차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였죠”라고 짧게 설명하며, 본인도 그렇게 많은 기자가 올지 상상도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였나? 사회적 파장과 내용의 중요성은 온데간데없었고, 함께 진행했던 빈민위령제도 이벤트가 아니었지만, 그 처절함과 숙연함은 언론을 통해 찾기 힘들었다.
유국장도 ‘빈곤’이 사회에서 한낱 유행으로 치부될까봐 우려하고 있었다. 사회가 점차 ‘빈곤화’되어가고 있는 지점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과 대책도 내놓지 못하면서 너도나도 ‘빈곤’에 대해서는 자주 입에 오르내린다는 것이다. “경제가 악화되니까 빈곤문제는 당연히 사회적 관심사겠죠. 하지만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려는 태도는 그 어디서도 찾을 수 없어요. 가장 기본적으로 빈곤의 규모가 나와야 합니다. 그러나 개념과 기본 통계가 처음부터 잘못되어 있으니, 타당한 정책이 나올 수 없죠.” 유국장은 이어 “요즘 낡았어도 TV, 냉장고, 컴퓨터, 핸드폰 없는 사람들이 어디 있어요? 이들의 소비수준이 높은 것이 아니라 이제는 그게 기본이 된 것일 뿐인데, 수급권자 선정할 때 이런 것이 다 기준에 해당돼요. 또 조금이라도 일해서 버는 소득이 있으면 제외해서 나오죠. 4인 가구 기준 100만원이 넘는다고 하지만 실제 일반 수급권자 가정이 받는 금액을 정부에서는 1인당 9만원 정도의 예산으로 잡았어요.”라고 말하며, 통계를 이용해 교묘히 실체를 가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기초법만으로는 안된다

 
그래도 그나마 이렇게 권리를 강하게 주장할 수 있는 건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때문 아니냐고 물었다. 예전에 생활보호법이었을 때와는 좀 달라진 게 있지 않을까 싶어서 였다. 게다가 최근 얼마 전 빈곤사회연대는 민주노동당 현애자 의원실과 함께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을 제출하기도 했으니 그 내용이 궁금했다.
“저도 이번에 알았는데 어디 가서 이야기 할 때마다 국민기초생활제도의 정신을 정확히 잘 알아라, 우리가 국민은 누구나 최소생계비용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묵과하는지 모른다, 그런데 부수적으로 드는 비용이 너무 많아, 이 법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거다, 뭐 그런 얘기를 계속 해왔어요. 그런데 이번에 개정안을 만들면서 보니, 현재 법 자체에 문제가 있었어요. 법이 말하는 건 딱 두 가지 였어요. 근로를 기준으로 해야한다, 그러니까 일 할 능력이 있는 사람은 일해야 하고, 일하지 않으면 보장받을 수 없다는 거죠. 여차해서 문제가 생기면 일차적인 책임은 가족한테 넘겨지는 것, 이게 현행 법의 핵심이더라고요.”
유국장은 일하고 싶어도 일거리가 없어 거리로 나오고 밥을 먹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도 너무 엄격한 기준과 잣대를 들이대어 차상위층 계층조차 빈곤화되어 가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한 곳이 구멍나기 시작하면 금새 폴싹 주저앉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의료, 교육, 주거, 무상원조 등에서 다양하게 사회안전망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금 빈곤문제를 판단하는데 있어 굉장한 오류를 범하고 있어요. 굶어죽지만 안으면 된다는 것 외에 별다른 정책은 찾아볼 수 없는 형편입니다.” 이 이야기를 듣자니, 얼마 전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던 부실도시락 사건이 떠올랐다. TV에서 이러한 문제가 왜 발생하는가 진단하는 프로였는데, 한 정신과의사는 인터뷰를 통해 도대체 관료들이 무슨 생각을 갖고 정책을 만들었는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배고프다고 하니까 밥 줘야지 하는 생각 외에는 아무것도 없고, 그저 굶주린 허기를 달래면 그만이라는 발상이 어떻게 나올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 사람은 매우 허탈한 목소리로 복지정책에 대한 철학과 시급함을 이렇게 모르고 있다는 것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던 것 같다. 빈곤으로 인해 여러 사회적 관계망이 훼손되고 또 맺지 못해 다시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데, 정녕 정부는 어떤 의지를 갖고 있는 것일까, 그저 한숨만 나올 뿐이다.

여전한 선성장 후분배론

 
유국장은 실업문제를 고민하던 사람답게 노동정책과 관련한 복지정책의 자리매김에 관심이 많아 보였다. 하지만 의외로 그이는 정부가 이야기하는 일용직 확대, 사회적 일자리 창출이 민간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여전히 선성장 후분배론을 견지하고 있죠. 신용불량자 많이 나와 신빈민층이 나오고 있다고 해도 별다른 대책 없더니 카드사 힘들어서 경제가 어려워진다고 하니까 수 조원의 돈을 퍼붓잖아요. 여기서 봐도 극명히 드러나죠. 뭐가 우선순위인지. 게다가 이제는 우리 수준에 맞게 소비문화 패턴을 만들자고도 해요. 그 핵심은 대기업 노동자 임금이 많으니 줄여서 나눠야 한다는 식이죠. 물론 대기업 중심의 노동운동이 반성할 지점이 있다는 건 인정해요. 하지만 정부가 그런 식으로 책임을 떠넘겨서는 안되죠. 운동세력의 분열을 조장하는 측면도 있다고 봐요. 
그는 사회 전체가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기에, 실업, 빈곤의 문제가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결국 빈곤은 결과라는 것. 따라서 다양한 빈곤의 원인을 파악하고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궁극적으로는 사회구조를 어떻게 바꿔나갈 것인가의 문제에 방점이 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이는 주체론을 강조했다. “노동, 농민, 여성 각각이 연대해, 자기 주제로 빈곤을 바라봐야 합니다. 빈곤화를 만들지 않기 위해 조직적 역량들을 강화하는 것에 이제 초점을 맞춰야 하죠. 예를 들어, 참여연대가 빈곤사회연대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뭐 그들은 우리가 제안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정작 함께 한다면 들어올 수 있겠죠. 제일 중요한 운동의 현안이며 과제인데, 각 주체들의 역량이 강화되었을 때 운동도 발전하듯, 이제는 큰 조직에서 주체가 빠진 운동으로만은 안됩니다. 노숙인도 구호단체나 종교, 자원봉사 단체가 아니라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도록 조직화하듯, 빈곤문제도 주체 형성이 시급하고, 또 각 계층에서 규합해내야 합니다.” 유국장은 비록 조직 규모는 작지만 연대의 고리를 놓지 않으면 가능하다는 희망을 안고 있었다. 물론 생각만큼 쉽지 않다고 한다. 예를 들어 장애문제와 연대활동을 한 후 참여했던 노동자, 여성, 농민들이 대개 “좋은 일 하십니다, 힘든 일 하시네요, 열심히 사세요”라는 식으로밖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주체들이 스스로 나서는 지속적인 활동이 있을 때라야 서로가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이가 빈곤해진 사람들을 조직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계속 빈곤화되는 사회구조 속에서 주체는 노동자, 농민, 여성, 모두에게 해당되는 겁니다. 빈곤문제가 찢어지게 가난하고 못사는 문제가 결코 아니예요.” 문제를 단순화함으로써 갖게 되는 오류를 경계하는 듯,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각 사회운동세력들이 빈곤을 주제로 더욱 구체적 연대를 해야 함을 강조하는 듯 했다.
빨갛게 상기된 얼굴이지만 목소리는 더욱 카랑카랑해지며 씩씩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학생운동 당시, 민중권력은 노동자 농민밖에 없는 줄 알았다는 유의선 국장. 이제 하나 하나의 이름으로, 그들이 주체가 되어 활동가들이 재생산되는 구조가 빨리 마련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그이에게서, 가난하지만 당당하고 행복한 모습이 자꾸 떠올려졌다. 

취재·글 홍여준민 기자·이태곤 편집국장


 

작성자홍여준민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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