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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와사람] "귀"로 "잃는"책,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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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있었던 "정전 사건">
 언젠가 정전이 된 적이 있었다. 갑자기 전기가 나가 사방이 캄캄하여 모두들 우왕좌왕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초를 찾느라, 손전등을 찾느라, 이웃 집에도 정전이 되었는지 확인하느라, 책상에 부딪쳐 넘어지는 소리, 의자에 걸려 넘어지는 소리, ‥‥‥몇 분 동안 온통 정신이 없었다. "야, 빨리 휴즈 갖고 와. 그냥 있으면 어떡해?" 시각장애우인 직원 한 사람이 아주 익숙하게 직접 휴즈를 갈아끼우고 어두웠던 실내는 다시 밝아졌다.
 시각장애우들이 대부분 출입하여 사용하는 공간에 대한 배려에 대해 고심했다. 될 수 있으면 의자가 삐죽이 튀어나와 있지 않게 정돈해 놓고, 책상 모서리와 자주 접근하는 물품에는 비상시에 필요한 전화번호를 점자로 표시해놓았다.
 성북점자도서관에 근무하는 홍윤희(26). 그에게 있어 장애에 대한 문제의식은 이렇게 일상 속에서 작은 일부터 거듭 거듭 새롭게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비롯된다. 평소에 거리 보도턱이나 계단이 시각장애우들에게 얼마나 불편할까에 대해 별 대수롭지 않게 지나쳐온 것이 사실인데 단 몇 분간 겪었던 "정전 사건"은 "보이지 않는 세계"의 어려움과 불편함을 다시 일께워준 자각의 한 단면이었다고 그는 고백한다.
 그가 새로운 일로 택한 점자도서의 녹음 업무는 시각장애우들에게 읽을거리를 제공해주고, 올바른 교육과 직을 갖게 하는 데도 커다란 역할을 차지한다. 그러나 시각장애들이 이용하는 녹음 도서는 태부족이고, 그 종류 역시 한정되어 있는 실정이다.

<「장애인의 권리」에서「태백산맥」까지 >
 시각장애우들이 수백명 밀집해서 살고 있는 서울시 성북구 동선동에 자리하고 있는 "성북점자도서관"(관장 전성권)은 작년 초 준비작업에 착수하여 92년 7월에 개관, 사단법인 대한역리학회에서 위탁운영하고 있다. "이곳에 거주하고 있거나 직장이 있는 시각장애우들은 대부분이 안마나 침술소, 운명철학관을 하고 있어요. 이들이 가질 수 있는 직업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에 관계되는 도서의 필요성이 가장 절실했죠. 사주나 관상 등을 봐주는 일을 직업으로 가진 어른들이 많기 때문에 자연히「역학독본」이나「명리독본」등의 역학에 관계된 서적들을 점자도서, 녹음도서로 만들어 대여하거나 판매하는 일부터 시작해야했어요."
 35평 남짓한 아담한 한옥 건물을 개조하여 사용하고 있는 성북점자도서관은 역학에 관계된 직을 가진 시각장애우들의 친목과 권익을 도모하는 단체이기도 한 대한역리학회 사무실 일부를 도서관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녹음에 관계된 설비도 갖추어야되고, 점자도서들을 비치해 놓을 수 있는 진열대와 점자프린트를 할 수 있는 장치, 자원활동자들이 일 할 수 있는공간, 시각장애우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드나들며 책을 잃을 수 있는 공간 등 가장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공간 확보만으로도 매우 좁을 수 밖에 없는 최소한의 공간이다.
 "선천성 시각장애우의 발생률은 많이 줄었으나 중도에서 실명하여 시각장애우가 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어요. 교통사고나 성인병으로 인한 후유증, 약물중독, 산업재해, 환경오염 등으로 성인이 되어서 실명을 한 사람들은 점자를 배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요. 자연히 점자도서보다 녹음도서를 더 찾게 되죠."
 얼마전 도서관에서 실시했던 설문조사에서 많은 시각장애우들이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대답하였으며, 점자도서는 더더욱 읽지 않으며, 비교적 쉽게 들을 수 있는 녹음도서를 더 선호한다는 반응을 보인 적이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지금까지 약 6개월동안 베스트셀러 소설 등 30여권의 책을 녹음하여 비치하고 있으며 도서관을 개관한 이래 여기저기서 기증받은 녹음도서까지 합치면 70여권 정도 된다고 덧붙인다.
 녹음도서를 필요로 하는 독자들의 요구가 워낙이 다양한데다 녹음에 따르는 과정이 그다지 수월치만은 않아 많은 녹음도서를 비치하는 데는 그만큼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 사실이다.
 나이가 든 어른들의 경우는 직업상 필요한 역학에 관계되는 서적들에 대한 요구가 높고, 또 심심풀이로 읽을 수 있는(물론 귀로 듣는 것이다) 삼류 애정소설 등을 선호하는 편이다. 젊은 시각장애우들의 경우는 역사소설, 사회과학소설, 장애인 관련 서적 등 책을 선별하는 데 있어서 성향이나 의식수준이 매우 다양한 편이다. 최근에 사회과학서적으로는「한국현대사」와「공산당 선언」을, 역사소설류는「홍길동전」「춘향전」「남부군」「소설 대장경」「태백산맥」일부를, 또 장애관련 도서로는 미국 장애인들이 판례를 통해서 자신의 권리를 당당히 주장하는 모습을 그린 번역서「장애인의 권리」와, 자폐를 가진 어떤 장애아의 성장과정을 그린「카이 다시 웃다」라는 번역서를 녹음하였다.
 이러한 단행본에 이어 시각장에우들에게 장애인 단체의 소식이나 장애관련 정보를 제공하기 위하여 "장애인복지신문"과 월간 "함께걸음" "장청소식"(장애인운동청년연합회 소식지) 등의 언론매체도 그때그때 녹음하여 자칫 단절되기 쉬운 장애판의 소식들을 접할 수 있도록 매진하고 있다.

<"녹음잡지"와 "전화사서함" 설치 계획도>
 녹음 독서를 만들어내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바로 그다. 도서 선정 역시 주로 그의 결정으로 이루어지고 녹음에 이르는 처리 과정도 그의 손으로 처리가 된다. "목이 아파서 오랜 시간 앉아서 작업을 하기가 힘들다"는 그는, "녹음작업은 발음을 정확히 해야 하는데 한참을 읽다 보면 혀가 굳기도 하는 등 신경이 많이 쓰이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녹음 시작과 끝에는 물론이고 A면 B면이 바뀔 때마다 또 제목이 바뀔 때나 소단원이 나올 때마다 쪽수 표시를 꼭 넣어 주어야 하고 앞 뒤에 배경음악까지 삽입해야 한다. 이런 저런 녹음에 따르는 처리과정의 어려움으로 하루에 혼자서 할 수 있는 양은 60분용 테이프 3개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60분짜리 테이프 하나를 녹음하는 데 보통 1시간 30분이 소요되며 300쪽짜리 분량의 단행본 한권이 8개의 테이프로 완성된다. 8개정도의 테이프가 한권의 녹음도서인 셈이다. 이렇게 해서 한달에 5-6권의 녹음도서 만들어진다.
 적합한 자원활동자가 아직 없고 또 해보겠다고 나서는 자원활동자도 없어서 혼자서 많은 일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 힘겨웁다. "녹음실장"이라는 호칭에 아직은 쑥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그, 하지만 그의 "녹음도서 만들기 계획"과 "시각장애우 복지의 계획"은 다부지고 당차기만 하다.
 "도서관 소식과 시각장애우들이 필요로 하는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녹음잡지"를 만들어볼 생각이에요. 또 시각장애우들이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전화사서함"을 만들어 더욱 윤택하게 할 수 있는 방편을 마련해 주고 싶어요. 아직은 시각장애에 대한 자료가 미비하지만요."
 그는 "안마소나 침술소가 성업을 이루는 시각장애우들은 돈이 많은 부자이기도 하지만 아직 앵벌이로 생업을 이어가야 하는 단칸방 생활의 시각장애우들도 많이 있다"며 "시각장애우들 역시 생활 양식이나 빈부의 격차가 천차만별"이라고 말한다. "가난한 시각장애우들의 자녀들을 위해 학습지 녹음테이프도 보급할 계획을 갖고 있고 이를 더 확대하여 지역 주민들의 자녀들도 이용할 수 있게 할 예정"이란다.

<사회사업가나 의사가 되고 싶었던 어린 시절>
 그는 시각장애우 아버지를 둔 탓인지 사실 시각장애우들에 대한 낯설음이나 일상생활 속에서 늘 함께 생활하는 데서 오는 껄끄러움은 없다. 그가 아주 자연스럽게 점자도서관의 녹음실에 자리를 잡은 것 역시 역리학회의 이사이고 성북점자도서관의 개관 작업에 깊숙이 관여했던 아버지의 영향이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때 민간요법을 잘못 써서 실명이 되셨어요. 철이 들면서 조금만 빨리 치료했더라면 시력을 아주 잃어버리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운 생각이 자꾸 들었어요. 아버지의 실명을 지켜보면서 나도 모르게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조금 철이 들어서는 장애우들의 복지를 연구하는 사회사업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한 것 같고요."
 역학을 하시는 그의 아버지, 인간의 운명에 대해서 연구하고 길을 제시해주는 직업을 가진 그의 아버지의 인간의 운명에 대한 철학관은 "인간의 운명은 70%이상이 자신의 의지에 달린 것"이라는 주장이다. 자신의 의지를 믿지 않고 무작정 찾아오는 이삼십대의 젊은 청년들에게는 사주 관상 따위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호통을 치며 되려 돌려보내는 아버지를 보면서 그는 자랐다. 비교적 경제적으로도 어렵지 않게 자란 그는 아버지가 시각장애우라는 사실에 대한 피해의식 같은 것은 없었단다. 오히려 아버지와 함께 외출하기를 즐겨했고, 친구나 이웃사람들에게도 자신의 환경을 당당하게 보여주면서 자랐다. 아버지는 그가 고민에 빠져 있을 때 가장 친절하게 상담에 응해주었던 상담자이자 친구였다. 아버지 성격을 꼭 빼닮았다는 그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바로 아버지라고 말한다.
 아버지와 함께 살면서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장애우에 대한 문제, 그 문제의 본질에 대해 그는 스무살이 훨씬 넘어서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 그가 장애인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운동"이라는 차원으로 돌리고, 비로소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된 데는 스무살도 훨씬 넘어서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하면서 부터다.

<장애우 문제에 대해 새롭게 눈 뜬 신문사 기자 시절>
 91년 3월부터 "장애인복지신문"에서 편집기자로 근무하면서 그는 시각장애우들이 아닌 지체장애우들을 많이 접하게 되었다. 장애우 복지에 관련된 문제를 올바로 제기하고 대안을 제시하고자 몇몇 뜻있는 장애우들이 손을 맞잡고 시작한 신문사에서 새로 만나게 된 사람들,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신문사를 자주 찾는 젊은 청년들, 취재와 관련된 장애우 등 주로 지체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서 아주 구체적으로 "장애우 복지"에 관한 고민을 시작한다.
 그가 그전에 잠시 몸담았던 사이비언론에 가까운 관변 주간신문사에서 경험한 기자생활과는 판이한 자율적이고 민주적인 구조에 그 스스로 빠져들어 일에 몰두하게 된 것이다.
 마감 시간에 쫓겨 야근과 철야작업을 한 달에 몇 차례씩이나 치루어내야 했고 넉넉지 못한 임금을 받으면서도 "내가 만든 신문을 독자가 하루라도 빨리 받아봐야 할텐데"라는 조바심을 태우며 하루를 시간가는 줄 모르고 살아냈던 1년 6개월의 시간들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신문에 대한 사명감과 책임감을 강하게 느꼈다"는 그, "신문은 단순히 인쇄된 활자매체가 아는 운동성을 담보해내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는 그, "장애인 문제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을 스스로 깨트려야 한다는 것도 인식했다"는 그, "장애인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완전히 뒤바꾸게 해준 충격을 안겨준 시간이 바로 장애인복지 신문사에 근무했을 때"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그다.
 "이제 어떤 장애우를 만나도 장애우로 보이지 않는다"는 그의 말은 참으로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계속 장애판에 남아서 일하자">
 단순히 기계적으로 편집만 할 수 없는 여건 속에서 선배들과 동료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지만 고단하고 힘겨운 작업 탓이었을까, 육체적으로 버텨내지 못한 그는 건강이 나빠진 상태로 신문사를 그만 두어야 했지만 신문사에서 일했던 것을 바탕으로 더 폭넓은 일에 관여하고 있다.
 어쨌든 그가 새로운 일로 선택한 점자도선관의 녹음실장 일을 겸하면서 그와 관련하여 장애우 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된 것이다.
 장애인운동청년연합회에서 그가 중심이 되어 꾸려진 점자반은 그 운동의 힘찬 첫발걸음이기도 하다. 막연하고 단순하게 가담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일과 운동을 일치시키는 실험적인 무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우계의 운동성을 확보해 낸다는 보다 원대한 목표를 세우고 있는 홍윤희씨, 그는 93년 이 새해에 참 할 일이 많다. 세미나 개최와 녹음잡지 등의 발간으로 도서관을 이용하는 도서인구를 늘리는 것은 물론, 도서관이 있는 지역주민들에게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홍보해내는 일, 더욱 다양한 녹음도서의 보급, 타도서관과의 활발한 교류 등 전문도서관으로서 면모를 새롭게 할 다부진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장청 점자반을 통하여 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그의 중요한 계획이다.
 그는 녹음실에서 자신에게, 때로는 허공을 향해, 또 때로는 같은 길을 걷는 벗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묻는다. "복지"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장애우들의 스스로 주체적으로 일어서게 하는 원동력은 과연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것일까.

글/고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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