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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로 인해 얻은 더 큰 세상

영국 장애우운동가 헤더 밀스 자서전 번역한 김진희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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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영국의 장애우 운동가 헤더 밀스의 자서전 ‘내 운명의 창고에 들어있는 특별한 것들’이 우리 나라에서 출간되었다. 그런데 이 책을 번역한 사람 역시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고 나서 장애우 운동에 뛰어든 여성이라는 점에서 화제가 되었다.

이 책을 번역한 김진희 씨는 경기도 의정부에서 미술학원을 운영하다 출근길에 승용차가 중앙선을 넘어온 트럭에 부딪혀 오른쪽 무릎 아래를 잃은 절단장애우로 의족을 맞추기 위해 영국의 재활전문병원에 갔다가 그 곳에서 우연히 헤더 밀스의 자서전을 보고  밀스에게 이메일을 보냈고, 이어 작년 5월 영국에서 밀스와 만나 같은 아픔을 가진 장애우로서 격려를 받고, 책 번역에 합의했다. 

갑작스런 사고로 한순간에 날아가 버린 신혼의 꿈

경기도 의정부에서 대형 미술학원을 운영하던 김진희(34·인천시 남구) 씨가 사고를 당한 건 97년 3월이었다. 그녀는 프라이드 승용차를 몰고 출근하다 중앙선을 넘어온 5톤 트럭과 정면 충돌해 그 자리에서 오른쪽 다리 무릎 아래가 잘려나갔고, 얼굴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일그러졌다. 꽤 큰 규모의 미술학원을 운영하면서 활기차게 살아가던 그녀의 미래가 한 순간에 날아가 버린 일이었다. 더군다나 결혼을 한달 앞둔 시점이었다.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는 혼수상태에서 ‘그저 살아만 달라’고 기도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렸어요.”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길 때까지 자신이 얼만큼 다쳤는지 보지 못했던 그는 두달 만에 자신의 오른쪽 다리가 잘려나간 사실과 붕대를 풀어 다친 얼굴의 모습을 거울에 비추어 본 후 끝없이 절망했다.


1년이 넘는 긴 병원 생활을 하는 동안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거듭했고 그런 생각들은 그녀를 더욱 심한 우울증에 빠져들게 했다. 자신의 인생이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라는 생각에 눈물로 세월을 보내기도 했다. 하루에도 몇번씩 간호하는 식구들을 괴롭히고 짜증을 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다고 김진희 씨는 그 당시를 회상했다. 퇴원 후의 시간도 계속 상처투성이였다. 병원 복도에서 만난 귀여운 꼬마에게 손을 내밀었더니 꼬마는 ‘무섭다’며 울음을 터트렸다.


“아이가 너무 예쁘다는 생각에 순간적으로 제 얼굴 모습을 잊어버린 채 아이에게 다가갔어요. 그때는 지금보다 상태가 더 심했거든요. 아이가 경기를 일으키면서 울음을 터뜨리는 걸보고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아, 내가 괴물 같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내가 좋아했던 아이들이 나를 거부하고 있으니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없겠구나 생각하니까 죽고 싶은 생각만 들더군요.”

그렇게 98년 1월, 6년 동안 운영하던 학원을 정리하고, 약혼자와도 헤어졌다.

“시어머니 되실 어른이 전화를 하셔서 ‘얘야, 다리는 괜찮은  거냐’ 하시는데 차마 오른쪽 다리를 절단했다는 그 말을 못하겠더라구요. 애인한테는 ‘나는 다리도 절단했고 팔도 사용할 수 없으니까 헤어지자’고 했죠.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저랑 많이 싸웠지만 그때 당시는 내 모습을 내 스스로가 받아들이기 힘든 때라 우선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었던 것 같아요.”

시어머니 되실 분이 전화로 몸은 정상이냐고 계속 물어보시는 것도 견딜 수 없었지만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떳떳하게 말하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 창피하고 화가 나서 참을 수 없었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죽음보다 두려운 건 절망, 의족 맞춰 내 발로 섰어요


“죽음보다 두려운 건 절망이더군요. 퇴원하고 병원에서 맞춘 의족으로 생활을 하는데 너무 무거워서 제대로 걸을 수도 없었어요. 그래서 이보다 좋은 의족은 없을까 여러 군데 문의를 해 봤지만 그런 의족이 어디 있느냐면서 심지어는 내가 돈 줄 테니 한번 만들어보라는 얘기까지 들으며 상처를 받았어요. 한두푼 짜리도 아닌 고가의 의족을 불편하다는 이유로 신발 바꾸어 신 듯 여러 개를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 몸에 맞게 AS가 되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의족에 대한 기본지식이나 선택권도 없이 병원에서 접한 불편한 의족에 의지하는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다고 생각하니 의족을 바라볼 때마다 눈물이 나고 말할 수 없이 속상했죠. 퇴원 후에도 일부러 한참동안 장애우 등록도 안 했어요. 내 자신을 장애우로 받아들인다는 사실 자체가 그때는 너무 큰 충격이고 상처였던 것 같아요. 한참만에 면사무소에 가서 장애우등록을 했는데 막상 장애우등록증을 받아들고 보니 ‘이제 거부할 수 없는 장애우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하염없이 눈물이 나더라구요.”

퇴원 뒤 진희 씨는 환청증세 탓에 2개월 간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수입 의족을 써 보려고 했지만 몸에 맞지 않아 집안을 돌아다니기 어려웠다. 자살하겠다며 세 차례 수면제를 먹었고, 벽에 머리를 찧다 정신을 잃기도 했다. 평소 ‘살아난 것만도 기적’이라며 굳센 모습을 보이던 어머니가 그녀를 마구 때리며 함께 죽자고 우는 모습을 보며 진희 씨는 자신보다 어머니의 슬픔이 더 크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그렇게 절망의 골목을 헤매던 그녀에게 한가닥 희망이 다가왔다. 98년 12월 「두 다리가 없는 미국 장애우 여성이 특수 의족을 부착한 후 육상선수 겸 패션모델로 활약중」이라는 신문기사를 읽게 된 것이다. 그 당시, 의족으로 모델생활을 한다는 기사는 그녀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신문에 실린 에이미는 짧은치마에 하이힐을 신고 있었는데 사진으로 봐선 도저히 의족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그녀의 의족은 정교해 보였다.

“신문을 먼저 본 건 언니였어요. 언니가 그 기사를 보고 그 의족을 권하고 싶었던가봐요. 하지만 제가 상처받으면 어쩌나 해서 말도 꺼내지 못하고 제가 잠든 사이 침대 머리맡에 두고 갔더라구요. 그 기사를 보니 나도 한번 해 보자는 욕심이 생기더군요. ‘이렇게 좌절하기에는 내 인생이 너무 아깝다. 난 아직 할 일이 많다’는 생각이 들어 에이미에 대한 관련기사를 쓴 기자를 통해 그녀가 시술받은 병원이 영국의 도셋병원이라는 사실을 알아냈어요”

급히 재활의학으로 유명한 영국 ‘도셋 병원’의 웹사이트를 알아낸 뒤, 언니와 남동생의 도움을 받아 영어·컴퓨터·인터넷 공부를 시작했다. 99년 초 도셋병원에 서툰 영어로 ‘내 힘으로 다시 달리고 싶다’는 첫 이메일을 보냈다.

99년 한해 동안 김진희 씨는 병원 측과 20여 차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사고경위와 부상정도 등에 대해 상의했고, 마침내 99년 11월 6일 그녀는 혼자 런던행 비행기에 올랐다.

진희 씨는 병원에서 재활교육을 받고 의족을 맞췄다. 의족이 완성되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은 5주였다. 우리 나라 같으면 이틀이면 될 일이지만 병원에서는 옷을 맞추듯이 오른쪽 다리의 둘레, 피부색깔, 휘어진 O자 다리모양, 발톱까지도 섬세하게 기록해 의족을 만들 준비를 했다. 5주의 시간을 알뜰히 보내고자 김진희 씨는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스위스, 벨기에, 네덜란드, 스코트랜드 등을 지하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해 박물관과 궁전을 돌았다. 많은 유적지와 문화를 접한 것도 기쁜 일이었지만 어쩐지 나의 주요관심사는 유럽의 장애우 편의시설에 가 있었어요. 대중교통 편의시설이나 턱이 없는 거리 모습, 건물마다 장애우를 위해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만들어 놓은 사용하기 편리한 편의시설 그리고 휠체어 전용도로나 버스나 지하철에서의 휠체어 전용공간, 횡단보도의 여유 있는 신호대기 시간, 사람들의 따갑지 않은 시선, 우리 나라와는 비교가 안 되는 국가에서 제공하는 장애우들을 위한 다양한  혜택 등 부러운 것 일색이었어요. 무엇보다 부러웠던 건 장애우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불편한 의족으로 체험한 짧은 기간의 유럽여행은 그녀에게 인생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는 동시에 용기를 가져다주었다.

도셋병원에서 의족이 완성되던 날 그녀는 시험을 치르는 수험생이라도 된 듯 긴장하고 떨리는 마음이 가득했다고 한다. 그런데 5주만에 완성된 의족을 보는 순간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O자 형으로 휘어진 다리 모습, 복숭아뼈, 발톱까지 너무나 정교하게 만들어져서 내 왼쪽 다리가 다시 살아서 돌아온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무겁지도 않고 착용감도 너무 좋아서 이제 무릎에 땀띠나 물집도 생길 일도 없고 무엇보다 치마를 입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까 너무 기쁘더라구요. 물론 의족 가격이 우리 돈으로 1600만원이나 했지만 이건 나에게 투자하는 거다 생각했지요. 장애로 인해 절망하고 바깥출입도 안하고 나를 꼭꼭 닫아버리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잖아요. 비록 많은 돈이 들었지만 의족을 통해 내 인생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해서 99년 12월 20일 진희 씨는 선물 꾸러미를 양손 가득 든 채 김포공항을 성큼성큼 걸어나와 가족들과 얼싸안았다.

 

절단장애우들을 위한 홈페이지 운영


의족을 찾던 날 김진희 씨는 도셋병원에서 한 여성을 만나게 된다. 영국의 톱모델인 헤더 밀스. 그녀 역시 도셋병원에서 의족 시술을 받고 제2의 전성기를 누리며 활동하는 동시에 바쁜 중에도 절단 장애우들을 위해 봉사하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진희 씨는 진한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헤더 밀스가 썼다는 자서전을 사 가지고 돌아왔다.

“그 책이 저에게는 무척 도전적으로 다가왔어요. 장애를 입었다고 해서 감추거나 숨거나 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자는 생각이 저와 같더라구요. 헤더 밀스가 여성들이 선망하는 유명모델이었다가 다리를 절단한 후에 느꼈던 감정들이 제가 겪었던 감정들이 제가 겪었던 것들과 같은 부분이 많아 공감대를 느꼈지요. 사고 난 후 난간을 짚는 것을 깜빡 잊고 바닥에 넘어질 때마다 내게 일어난 일들을 실감했다는 구절을 읽으면서 울기도 했어요.”

한국으로 돌아온 김진희 씨는 헤더 밀스에게 그녀의 이야기를 한국에서 출간하고 싶다는 이메일을 보냈고 헤더 밀스 역시 같은 장애를 가진 한국 여성에게 격려와 함께 자신의 책을 번역하는 일을 합의한 것이다.

영국에 다녀온 것을 계기로 용기를 얻은  진희 씨는 한국으로 돌아와 2000년 3월, 자신과 같은 처지인 절단장애우들을 위한 인터넷 홈페이지(www.uk-ortho.co.kr)를 만들었다. 여기에는 절단 장애우에 대한 국내 정보와 외국 재활기관을 이용하는 방법, 장애우의 해외여행 주의점, 숙소와 교통편 이용법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제가 홈페이지를 만든 건 두 가지 이유에요. 한가지는 사고 후 절단장애우에 대한 정보나 의족에 대해 알고 싶어도 마땅한 정보를 얻을 곳이 너무 부족했거든요. 저 같은 분들이 좀 더 손쉽게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게 첫 번째 이유고요. 두 번째는 외국에는 발달된 의수, 의족을 소개하고, 고가의 의족을 선택할 때  가격비교는 물론 품질비교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만들었어요. 이런 걸 알려내면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폭도 넓어지고, 국내 의수족 업계에 경각심도 불러 일으켜 좀 더 좋은 의수족이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램도 있어요.”

처음 홈페이지를 시작할 땐 1년에 한 두 번이라도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전해주자고 시작했지만 진희 씨의 생각과는 다르게 지금은 꽤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홈페이지에서 의수족에 대한 정보를 얻어가기도 하고 그 안에서 모임도 만들어 절단장애우들의 인권을 되찾자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홈페이지 안에서 몇몇 분들이 모여 모임도 갖고 절단장애우들의 인권을 찾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요. 나이 많으신 분들은 내가 이 나이에 좋은 의수족을 하면 뭐하겠냐 하시면서 그 돈으로 장학회를 설립해서 나이 어린 장애우 학생들이 외국에 가서 의수족에 관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면 어떻겠느냐하는 얘기도 있고요. 하지만 그런 일들은 목적과 취지가 분명해야 하니까 당장 서둘러 일을 만들기보다는 앞으로 조금더 깊은 고민이 이어진 후에 실행할 생각이에요.”

하지만 가끔씩 홈페이지에 의수족 업계에 종사하는 분들이 ‘너의 작은 경험으로 홈페이지 운영하지 마라, 나머지 다리도 부러지고 싶지 않으면 홈페이지 폐쇄해라’는 글이 올라오면 무섭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단다.

“제 홈페이지는 결코 한국의 의수족이 나쁘다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에요. 단지 우리 나라에서는 의수족에 대한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제 경험담을 통해 여러 가지 정보를 알려드리고 싶은 것뿐이죠. 하지만 제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는 글이 올라오면 너무 기쁘고 그런 걸 볼 땐 더 열심히 운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홈페이지를 운영으로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진희 씨는 다시 태어난 기분을 느낀다고 한다.

 

장애우 의상모델이나 리포터 해 보고 싶어


책을 출간하고 나서 달라진 점이 있냐고 묻자 진희 씨는 “그럼요. 유명세 덕에 이젠 시청에 가서 이런 저런 건의를 하면 귀담아들어 주시는 것 같아요”하며 웃는다. 

진희 씨는 책을 출간하기 전부터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인 인천시청 사회복지과를 찾아가 장애우들에게 의수족 나눔운동을 하자고 여러 차례 건의를 했었다고 한다.

“보통 절단장애우분들의 경우 의수족을 서너개 씩은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형편이 어려워서 고가인 의수족을 엄두도 못내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지금 쓰지 않는 의수족을 수거해서 형편이 어려운 장애우분들한테 그분들 몸에 맞도록 조금만 변형시켜서 드리면 좋을 텐데 우리 나라에선 무조건 새로 맞추는 것만 생각하잖아요. 오래 전에 의수족 나눔운동에 관한 계획을 만들어서 시청사회복지과에 찾아가 시청 인테넷에 사용하지 않는 의수족, 보장구, 보조기 등을 접수받아서 수거해서 독거노인이나 형편이 어려운 장애우분들한테 전해드리면 어떻겠냐고 말했을 때는 그걸 누가 수거하러 다니느냐고 들은 척도 안하더라구요. 이번에 책 출간한 후에 제 책을 소개한 일간지를 들고 다시 시청에 찾아가서 그 얘길 했더니 지금은 예산이 부족해 불가능하지만 내년에 한번 추진해보자는 대답을 들었어요.”

다치기 전에는 그림 그리는 것이 인생의 전부인줄 알고 살았던 진희 씨지만 이제는 의수족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 아니 관심 정도가 아니라, 장기적인 계획을 세운 후에 선진국에 가서 의수족 공부를 하고 돌아와 그림을 그렸던 자신의 미적 감각과 캐드를 접목시켜서 몸에 가장 편안한 의수족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싶단다.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은 뭐냐고 다시 묻자 진희 씨는 수줍어하며 말한다.

“장애우들을 취재해서 이야기를 전하는 장애우전문 리포터가 되고 싶어요. 아무래도 장애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니까 깊이 있는 많은 이야기 끌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또 한 가지는… 웃으실지 모르지만 해더 밀스같은 장애우 의상모델이 돼보고 싶기도 해요. 그리고 또한가지 꿈은 여성으로서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거에요. 우리 나라에서는 장애여성은 여성답지 않게 여기는 경향이 있잖아요. 그런 차별적인 시선을 바꾸기 위해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데 함께 해줄 분들이 많았으면 좋겠네요.”

김진희 씨는 사고로 인해 자신이 수많은 삶을 경험한 것 같다는 얘기를 했다. 장애우가 된 이후, 전혀 생각지 못했던 세상의 높이와 깊이를 모두 체험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모든 세월을 지나는 동안 김진희 씨는 자신의 삶을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지에 대한 답을 얻은 것도 같았다. 자신의 말처럼 장애때문에 더 큰 세상을 얻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글·사진 이나라 기자(n2906@hanmail.net)


 

작성자이나라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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