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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걸음이 만난 사람] 한국 장애우 사랑, 변함 없어요

정년퇴임하는 연세대 재활학과 구애련 교수

본문

   

 

[함께걸음이 만난 사람] 정년퇴임하는 연세대 재활학과 구애련 교수

 

"한국 장애우 사랑, 변함없어요."

 

 

 

 

  연세대 재활학과 구애련 교수, 백발이 성성한 그이는 우리나라 나이로 올해 예순여섯 살이다.
  지난 1959년 의료 선교사로 모국인 캐나다를 떠나 한국에 와서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물리치료와 작업치료사로 국내 장애우들을 만난 지 어언 39년, 평생을 우리나라의 장애우들과 함께 했던 그이가 올해 3월 학교에서 정년퇴임해 캐나다로 돌아가게 된다.
구애련 교수는 국내에서 물리치료사로 일하면서, 그리고 대학에서 후진들을 양성하면서 특히 장애우 의료재활 분야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는 게 세간의 평가이다.
이제는 소임을 다 마치고 모국으로 돌아가게 됐지만 여전히 마음은 국내 장애우들 곁에 머물러 있다는 그이를 만나 한 이국인의 뜨거운 장애우 사랑 이야기를 들어본다.

 

 

 

"장애우들과의 40년 삶 보람 있었어요."


- 올해로 교수님이 국내에서 활동하신지 39년째라고 알고 있는데 근 40년을 한국에서 사셨으니까 교수님 보고 이젠 한국인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겠군요. 어떻습니까? 보람 있는 한국생활이셨습니까.
  "지금 돌이켜 보면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장애우 복지가 조금씩이나마 발전하고 있다는 것에서 보람을 느껴요. 제가 처음 한국에 올 때만 해도 한국에 장애우 복지 없었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조금씩 복지가 이뤄지고 있죠. 그런 변화를 보면서 제가 한국에서 일한 게 헛되지는 않았다는 생각을 해요."

- 결혼은 하셨는지요.
  "바빠서 못했어요. 대신 제자들이 많아요. 3백50명이나 되죠."

 

- 말씀은 쉽게 하시지만 결코 쉽지 않은 40년 삶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먼저 독자들을 위해 언제 어떤 계기로 한국에 오시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주시죠.
  "저의 캐나다 이름은 매리언 커렌트예요. 그리고 저의 외할머니가 시각장애우였어요. 그런 외할머니를 보고 자란 영향으로 대학에서 물리치료와 작업치료를 공부했죠. 대학을 졸업하고 난 뒤에 병원에서 물리치료사로 일하다가 미지의 나라에서 일하고 싶은 욕심이 생겨 처음에는 뉴질랜드로 가려고 했어요. 그랬는데 하나님이 한국행을 계획하셨나 봐요. 뉴질랜드로 떠나기 한 달 전에 여목사님과 진로에 대해 얘기하다가 마음의 변화가 생겨 봉사의 삶을 선택하게 됐죠. 그래서 뉴질랜드행 대신 캐나다 연합교회선교회에서 2년간 지도자 양성과정을 마친 뒤 1959년에 의료선교사로 한국에 오게 됐어요."

- 한국에 오셔서 처음 어디에서 일하셨는지요.
  "한국에 와서는 제일 먼저 한국말을 배웠죠. 그런 다음 1960년부터 세브란스 병원 재활의학과에서 물리치료사로 일하기 시작했어요. 내가 올 때만 해도 한국에는 물리치료사가 열 명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내가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했어요. 2년 동안 병원에서만 일했는데 62년에 연세재활원이 생겼죠. 그때부터는 병원하고 재활원을 오가면서 정말 바쁘게 지냈어요. 당시에는 소아마비 장애우들이 많았죠. 천진난만한 장애아들을 돌보고 그들 곁에서 지내다보면 어느새 하루가 훌쩍 지나갔어요. 외로움을 느낄 새도 없었죠. 그렇게 22년을 병원과 재활원에서 장애우들과 같이 살았어요."

 

- 어떻게 재활학과 교수가 되셨는지요.
  "병원과 재활원에서 일하면서 틈틈이 학교를 다녔어요. 그전에는 지금은 고대 보건전문대학으로 이름이 바뀐 수도의과대학 병설 의학기술 초급대학에 시간강사로 나가기도 했어요. 제가 79년에 연세대학원 보건학과 석사과정을 마쳤는데 장애우복지를 위해 무엇보다 후진들을 양성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대학원을 다니게 됐죠. 석사과정을 마치고 연세대 원주의대 보건학과 시간강사로 일하게 됐는데 전임강사와 조교수를 거쳐 지금은 연세대 재활학과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죠."

- 교수님의 79년 석사학위 논문 제목이 "서울시내 의료시설에 대한 신체장애인들의 건축상 장애물에 관한 실태조사"였던 걸로 아는데요. 그 논문을 쓰시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는지요.

  "당시에는 장애우 편의시설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었죠. 병원도 형편없었어요. 의사들도 몰라요. 내가 조사하느라고 일반병원 갔더니 안과, 이비인후과에서 왜 왔느냐고. 여기엔 장애우는 오지 않는다고 그래요. 기가 막혔어요. 장애우는 귀나 눈이 안 아파요? 그래서 장애우 편의시설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해 그런 제목의 논문을 썼어요. 제가 그 논문을 쓰고 난 후 몇몇 의료기관에서 제 논문 때문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어쨌든 장애우 편의시설을 설치했어요. 그런 걸 보면서 보람을 느꼈어요."

 

 

"한국의 장애우들에게 도움되는 일 하고 싶어요."

 

- 대학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과목을 가르치시는지요.
  "물리치료개론, 작업치료개론, 인체운동학, 운동치료학 등을 가르치고 최근에는 운동치료학, 물리치료학, 성인물리치료 등 모든 과목을 다 가르치고 있어요."

- 실례되는 질문인데 사람들은 흔히 "물리치료"라고 하면 허리 삔 사람이나 어깨 아픈 사람 등 통증을 치료하는 의료행위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정말 잘못된 인식이예요. 물리치료가 정말 필요한 사람은 장애우죠. 예를 들면 교통사고로 뇌손상을 입어 척수장애우가 된 사람, 뇌성마비 장애우, 중풍으로 반신불수가 된 장애우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게 물리치료예요. 그런데 사람들은 물리치료를 잘못 인식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제는 치료술은 많이 발달했는데 사회 인식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저는 보고 있어요."

 

- 내친김에 한 가지 더 묻겠습니다. 역시 사람들에게 작업치료에 대한 개념이 생소한데 작업치료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장애우들의 재활을 돕는지 설명해 주시지요.

  "쉽게 말해서 물리치료라는 것은 몸을 움직이게 하는 치료법이죠. 하지만 몸만 움직인다고 직장에 나갈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작업치료가 필요해요. 작업치료는 장애우가 옷을 입고 먹는 것, 그리고 몸을 이용하는 것 등 일상생활에서 불편함 없이 살 수 있도록 동작훈련을 통해 도와주는 치료법이죠. 그런데 한국에는 작업치료에 대한 인식이 너무 없어요. 캐나다만 해도 총인구가 3천만 명인데 작업치료사가 5천 명이나 있어요. 한국에는 현장에서 근무하는 작업치료사가 1백 명을 조금 넘는데 인구가 4천 5백만 명이잖아요. 가까운 나라 일본만 해도 작업치료를 가르치는 학교가 54개예요. 그런데 한국은 작업치료를 가르치는 학교가 우리 학교뿐이죠."

 

- 교수님 말씀을 듣다 보니 새삼 물리치료 등 의학적 치료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됩니다.
  "인간은 초기의 습관이 제일 무서운 거예요. 그래서 물리치료와 작업치료가 중요한 거죠. 장애우 문제만 해도 어렸을 때 감춰놓고 드러내지를 않으니까 문제가 심각해지는 거예요. 특히 뇌성마비와 정신지체 아동들은 일찍부터 치료를 시작하면 좋은 습관을 가질 수 있고 장애가 나아질 수 있어요."- 이제 교수님 전공 밖 이야기를 해보죠. 교수님은 장애우 단체와도 관계를 맺고 활동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떤 단체였습니까.
  "장애인재활협회와 관계를 맺어 처음엔 소아마비 장애우들을 만났죠. 저는 한국에 오게 된 후 처음부터 환자를 치료하는 것만 아니고 장애우복지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어요. 척수장애우 모임과도 관계를 가졌고, 지금은 소아마비가 없어져서 뇌성마비 장애우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84년에 제가 속한 캐나다 연합교회 덕분에 한국에서 두 사람을 캐나다에 가서 뇌성마비 치료에 대해 공부하게끔 주선하기도 했죠. 제가 연세재활원에 있을 때에는 어머니회에 관여하기도 했어요. 저는 장애우 문제가 해결되려면 부모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봐요. 먼저 부모교육이 되지 않으면 장애아들 치료해도 소용없어요."

- 근이앙증 장애우들 모임인 잔디회에도 관여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잔디회와는 85년에 인연을 맺게 돼서 근이앙증 자료를 도서관에서 찾아서 주기도 하고, 외국 자료를 번역해 주는 일을 했죠."

 

- 교수님이 처음 한국에 오실 때와 비교해 한국의 장애우복지가 많이 발전했다고 보시는지요.
  "얼마 전에 루즈벨트 장애인상을 받았죠. 글쎄요?(웃음)"

- 40년 가까이 국내 장애우복지를 지켜보시면서 교수님이 보시기에 우리나라 장애우복지의 가장 큰 문제점이 뭐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제 전공이 치료니까 제 관점에서 봤을 때 우선 물리치료사와 작업치료사에 대한 관심이 너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점으로 보여요. 그리고 장애우 이동이나 접근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없다는 거, 마지막으로 시설만 생각하지 말고 지역재활이나 지역복지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정부와 사회가 그런 쪽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너무 아쉬워요."

 

- 국내에서 재가장애우들을 만나보실 기회는 있으셨는지요.
  "제가 찾아 나갔죠. 그런데 예전에 우리 졸업생들이 기금을 마련해서 뇌가 손상된 장애우들을 무료로 치료해 주겠다고 생각하고 동사무소에도 가서 얘기하고 대학병원에 가서 얘기하기도 했는데 3년 동안 활동기간 중에 치료한 장애우가 열 명 밖에 되지 않았어요. 나는 놀랬어요. 서울이란 큰 도시에서 집까지 가서 치료해 주겠다고 했는데도 그렇게 재가장애우들을 찾기가 힘들었어요. 그만큼 재가장애우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거죠."

- 캐나다로 돌아가실 날이 두 달여 밖에 남지 않았는데 캐나다에 가서 어떤 일을 하실 예정인지요.
  "이제 인터넷이 생겼잖아요. 저도 3년 전에 가입하고 시작했어요. 인터넷을 이용해 캐나다에서 최신 자료를 보낼 수도 있고, 그래서 계속 한국의 장애우 치료에 도움되는 일을 할 거예요."

- 남은 삶에 대한 구상은 어떻게 하고 계신지요.
  "하나님이 여기까지 인도해 주셨으니까 앞으로도 길이 생길 거예요."

 

- 교수님이 애정을 가지고 계신 장애우와 가족들에게 한 말씀해주시죠.
  "먼저 장애우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 장애우들은 자기가 스스로 나서서 자기 문제에 대해서 사회에 인식시켜야 해요. 자기가 부끄럽다고 숨어 있으면 안돼죠. 어떻게 보면 세상 사람들 모두 장애 없는 사람이 드물죠. 안경 쓰는 사람, 키가 작은 사람, 뚱뚱한 사람 모두 장애우죠. 그리고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이 있는데 그건 강원도 산골 외지 마을을 다니면서 누워 있는 장애우들을 치료해 주는 거였어요. 같은 장애우라도 지방에 떨어져 있는 장애우들은 더 힘들어요. 장애우와 가족들이 동료의식을 가지고 그렇게 힘들게 사는 장애우들을 생각하고 도와줬으면 좋겠어요."

- 한국에는 다시 오실 거죠.
  "다니러는 오게 되겠죠. 그때는 장애우와 가족들 모두모두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교수님도 건강하게 보람 있는 삶을 사시길 기원하겠습니다.

 

글/ 이태곤 기자

 

 

[구애련 교수 약력]
캐나다명 매리언 커렌트인 구애련 교수는 1932년 캐나다 온타리오주 코발트란 마을에서 출생해서 토론토 대학에서 물리치료 및 작업치료학을 전공했다.
캐나다 에드먼트에 있는 엘버타 대학병원에서 물리치료사로 근무한 뒤 빅토리아시의 캐나다 류마티스 및 관절염협회 소속 물리치료사로 근무하던 중 봉사의 삶을 살기로 결심, 캐나다 연합교회 여성지도자 양성학교에서 2년간 신학, 선교훈련 등을 받은 후 1959년 27세의 나이로 한국에 의료선교사로 왔다. 1960년부터 세브란스 병원 재활의학과와 연세 재활원에서 물리치료사로 22년간 근무, 79년 연세대 대학원 보건학과 석사과정 마치고 연세대 원주의과대 보건학과 전임강사 조교수를 거쳐 재활학과장을 역임했으며 현재까지 부교수로 재직해왔다.

작성자이태곤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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