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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작은집에 살지만 크게 사는 작은집 장애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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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미인가 시설이라고 부르는 장애우 공동체 한 곳을 찾아갔다. 강원도 원주시 태장동에 있는 이름도 예쁜 작은집, 현재 이 곳에는 9명의 장애우들이 서로를 의지하며 살고 있다. 왜 많은 공동체가 있는데 하필이면 작은집을 찾았을까, 그건 작은집이 장애우 자립생활의 한 모델이라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요란한 얘기가 있는 건 아니다. 작은집은 지극히 평범한 가정이다. 하지만 이 가정의 주체가 장애우라는 점에서 다른 공동체와 구별된다. 작은집의 알콩달콩 사는 얘기를 들어봤다.


 자립을 목적으로 작은집 설립

 장애우 공동체 하면 어떤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을까. 갈 곳 없는 장애우들이 모여 사는 곳, 그리고 전적으로 후원금에 기대 운영하는 곳, 그러다 보니 특정 종교가 깊숙이 개입돼 있는 곳, 대체로 모든 장애우 공동체는 이런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원주 작은집도 갈 곳 없는 장애우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는 점에서는 장애우 공동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작은집은 다른 공동체처럼 전적으로 후원금에 기대 살지는 않는다. 또한 특정 종교가 개입돼 있지도 않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작은 집은 식구들이 벌어오는 돈이 주 수입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점이 무척 중요하다. 왜냐하면 적어도 작은집 장애우들은 후원금을 모금하기 위해 동정의 대상으로 전락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립이 공동체의 근간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작은집이 생기게 된 과정부터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인 1989년 원주에 강복희 라는 이름을 가진 한 장애 여성이 있었다. 그 때 나이 27살, 그런데 이 여성은 장애가 무척 심했다. 뇌성마비 1급 장애를 가지고 있었는데, 팔에도 장애를 가지고 있어 부모님들이 도와줘야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였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장애가 심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이 여성, 그런데 이 여성이 용감하게도 같은 처지의 다른 장애우와 공동체를 만들어 살겠다는 꿈을 꿨고, 그 꿈을 현실에서 실현시켰다.

 당시 복희 씨는 뚜렷하게 하는 일없이 집에 있으면서 소일거리로 원주에 있는 기독병원 산하 재활원에 드나들고 있었다. 거기서 같은 처지의 장애우 친구들을 사귀게 됐는데, 그만 몇 몇 친구가 재활원을 나가야 되는 상황에 직면했다.

 “한 친구는 정신지체 장애우였는데, 어디 취직할 때도 없고, 다른 시설로 가야 하는데 갈 곳도 없었어요. 또 한 친구는 입으로 음식을 못 먹고 몸에 호스를 꽂아 음식을 먹는 장애가 심한 친구였는데 그 친구도 마땅히 갈 곳이 없었죠. 또 다른 정신지체인 친구는 식구들과 마음이 맞지 않아 나돌고 있었고, 그런 친구들을 보면서 처음에는 방 한 칸 줘서 모여 살게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죠. 그러다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내가 언제까지 부모님과 같이 살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그 생각 끝에 저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친구들과 같이 협력해서 살면 살 수 있겠구나 라는 판단을 해서 작은집을 만들게 됐죠.”

 복희 씨 말이다. 그렇다고 복희 씨 집이 부자였던 것은 아니다. 농사를 짓던 부모님이 작은 아파트를 한 채 사서 이사가고, 원래 살던 낡은 집을 세 주고 있었는데, 부모님을 졸라 그 낡은 집에서 공동체를 시작한 것이었다.

 물론 처음에는 부모님 반대가 무척 심했다. 복희 씨 아버님 말을 들어보자.

 “우리 애는 다른 사람 도움 없으면 혼자서 살 수 없는 아이였어요. 그래서 절대 밖으로 못 나가게 했죠. 그런데 복희가 고집을 부리면서 자꾸 집을 달라는 거예요. 안 된다고 그랬죠. 집을 나가면 고생이 심 할 텐데 부모가 그 사실을 뻔히 알면서 허락할 수는 없었죠.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아이 말이 맞는 부분도 있었어요. 오빠가 있고 동생도 있지만, 시집 장가가고 우리도 죽고 나면 천상 자기 혼자 남을 텐데, 그 때를 대비해 미리 자리를 잡겠다고 우기는데 끝까지 반대할 수는 없었죠. 그래서 복희가 고생할 걸 뻔히 알면서 허락한 거예요.”

 89년 4월 17일, 복희 씨는 집을 나와 친구 네 명과 함께 공동체를 시작했다. 작은집이라는 이름은 주위에 작게 시작한다고 알렸는데 동네 통장이 이름이 작은집인줄 알고 간판을 해와, 얼떨결에 공동체 이름이 작은집이 됐다. 그러면 복희 씨는 뭘 믿고 공동체를 시작했을까.

 작은집은 처음부터 자립이 목적이었다. 그래서 식구들이 개를 기르고 집 주위 땅을 개간해 밭농사를 지었다. 구체적으로 개 12마리를 키웠고, 밭에는 가지, 배추, 옥수수, 오이 등을 심었는데 개 값도 좋았고, 농사도 잘 돼, 채소는 식구들이 먹고 남아 이웃에 나눠줬다고 한다. 즉 밥을 굶지는 않았다는 것이 복희 씨 회상이다.

 이쯤에서 복희 씨에게 질문 하나를 던져보자. 공동체를 시작하고 나서 좋았던 점은?

 “그냥 친구와 같이 있는 게 좋았어요. 집에 있으면 제가 할 일이 없었는데, 왜냐하면 부모님이 다 해주니까요. 그런데 공동체를 시작하니까 제가 할 일이 있다는 거, 그게 제일 좋았어요.”


 식구들 수입으로 생활비 충당

 여느 공동체도 마찬가지지만 각각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개인들이 한 곳에 모여 살면서 성격을 맞춘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작은집도 구성원들이 마음이 안 맞아 몇 차례 깨질 위기에 직면하곤 했다. 그때마다 그 위기를 극복하고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마음고생을 많이 한 이가 바로 복희 씨였다. 복희 씨는 비단 마음고생뿐만 아니라 몸도 고생을 많이 해, 부모님이 눈시울을 적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어머님의 회상 한 토막, “복희가 목욕한다고 아파트에 왔어요. 자기 손을 못 쓰니까 내가 목욕을 시켜줘야 했거든요. 그런데 그때 내가 일 하러 다녀서 집을 비울 때가 많았어요. 그러면 복희가 그냥 돌아갔는데, 저녁에 집에 가면 주위 사람들이 나에게 ‘당신 딸이 얻어먹는 사람처럼 하고 다닌다’고 그랬어요. 당연하죠. 돌봐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빨래도 못 해 입고, 냄새도 나고 그러니까 그런 소리를 들었던 거죠. 그래서 할 수 없이 우리가 작은집 근처로 이사 와야 했어요.”

 복희 씨 부모님이 이사를 오고, 식구들이 늘어나자 작은집은 새로 집을 짓는 큰 공사를 시작했다. 돈은 없으니까 조립식 건물을 지을 요령으로 건축을 시작했는데, 일이 잘 되려고 그랬는지 주위에 있는 공병부대 대원들이 도움을 줘서 큰 돈 들이지 않고 현재의 단독주택을 완공할 수 있었다. 그때가 91년 12월이다.

 그 이후 작은집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1994년 작은집은 한 가지 의미 있는 실험을 한다. 그때 모두 아홉 명의 식구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 세 명을 독립시켜 원주 시내에 분원 형태로 또 다른 공동체를 만든 것이다. 그랬는데 결과적으로 실험은 실패하고 말았다.

 “융자를 받아 13평 짜리 아파트를 얻었어요. 그런 다음 초기 식구 세 명을 내보내 생활하게 했죠. 그런데 세 명이 마음이 안 맞아 얼마 안가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어요. 제가 매일 가서 타이르고 달랬지만, 식구들끼리 서로 이해하고 도와줘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되더라고요. 결국 두 명은 다시 작은집으로 오고, 한 명은 자기 집으로 가고, 그렇게 막을 내릴 수밖에 없었죠.”

 복희 씨 말이다. 복희 씨는 작은집을 시작한 이후 그때처럼 마음 아팠던 적은 없었다고 덧붙인다.

 여기까지가 작은집이 걸어온 발자취다. 그러면 현재 작은집의 사는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이제 작은집은 더 이상 개를 키우지 않는다. 예전처럼 채소를 심어 먹고 살지도 않는다.

대신 실구들이 버는 돈과, 식구들이 기초생활대상자로 지정 받아 정부로부터 받는 돈, 그리고 후원금으로 먹고 산다.

 다른 공동체는 대부분 후원금이 주 수입이지만 작은집은 그렇지 않다. 식구들이 십시일반 생활비를 내놓는다. 그리고 나머지 부족한 부분을 후원금에 의지한다.

 말이 나온 김에 작은집의 수입 구조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작은집의 식구는 여성 세 명, 남성 여섯 명, 아홉 명인데 복희 씨를 제외하고 모두 기초생활대상자다. 정부로부터 한 달에 많게는 12만원 작게는 8만원을 지원 받는다. 그 돈을 모두 생활비로 내놓는다. 단 매달 4만5천원씩 나오는 장애우수당은 생활비로 내놓지 않고 개인이 용돈으로 쓴다. 여기에다 식구 세 명이 일을 나가 벌어오는 돈이 보태진다.

 정신지체 장애우 식구 두 명은 기독병원 재활원 작업장에서 일을 하고 한 달에 각각 5만원을 벌어 온다. 또 한 명 ‘용래’라는 이름을 가진 경증장애우 식구는 건강식품 회사에 다니면서 한 달에 50만원을 벌어 온다. 그리고 나머지 부족한 생활비는 93년 발족된 작은집 후원회에서 보태는 것이다. 이렇듯 작은집은 건강한 수입구조를 갖고 있어서 다른 공동체에서 목격하게 되는 장애우를 팔아 후원금을 모금하는 비정상적인 운영을 하지 않아도 유지가 가능한데, 이 부분이야말로 작은집이 가진 큰 장점이 아닐 수 없다.


 자유롭게 산다는 게 가장 큰 장점

 수입구조를 얘기하면서 식구 중 세 명이 일을 하러 다닌다고 그럼 나머지 여섯 명의 식구는 집에서 무슨 일을 할까.

 식구들 중 한 명은 현재 대학교에 다니고 있다. 원주에 있는 연세대학교 분교에 다니는데 지금 4학년이다. 나머지 식구도 집에서 검정고시 공부를 한다. 그러면서 집안일을 분배해서 하고 있는데 그 모습들에서 작은집 식구들의 사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먼저 식사 준비는 당번을 정해 돌아가면서 하는데, 주로 정신지체인 식구가 밥을 하고 반찬은 복희 씨가 맡아 만든다. 특이한 건 복희 씨는 손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입으로 반찬을 만든다는 것이다. 복희 씨가 양념을 넣고, 재료는 어떤 재료를 사용하라고 지시하면 식구들이 복희 씨 말을 따라 그대로 반찬을 만든다. 그 반찬 맛이 일품이라는 게 식구들 말이다.

 빨래는 주로 세탁기가 하고, 집안 청소는 식구들이 돌아가면서 한다. 식구들 중에는 설거지를 잘 하는 식구가 있고, 청소를 잘 하는 식구가 따로 있다. 그런 식구들 장점을 살려 집 안 일을 맡기면 어려움 없이 집안 일이 해결된다.

 그리고 또 하나 작은집의 장점은 수시로 가족회의를 연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텔레비전을 새로 산다는지, 식구들 중에서 병을 앓는 식구를 어떻게 조치했으면 좋겠다는 것 등을 식구들 의견을 물어 결정한다. 그렇다고 만장일치로 결정하는 것은 아니고, 식구들 의사를 존중해 다수결로 결정을 내린다.

 새로운 식구를 받을 때도 마찬가지로 가족회의를 열어 받을지 받지 않을지 여부를 결정한다. 이 역시 다른 공동체에서는 볼 수 없는 민주적인 구조가 아닐 수 없다.

 이쯤에서 다시 질문 하나, 작은집의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은 뭘까?

 “작은집은 평소 큰소리 칠 수 없었던 장애우들이 큰소리 칠 수 있고, 자기 표현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거예요. 작은집을 운영해 오면서 느낀 건데 이 점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복희 씨 말이다. 이런 복희 씨 말은 정신지체인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즉 정신지체인들은 대부분 억눌려 살기 쉬운데 그런 정신지체인들이 작은집에서만큼은 억눌려 살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만드는 게 작은집의 운영 방침이라는 것이다.

 내친김에 복희 씨와 일문일답을 나눠보자.

 -작은집을 만들고 나서 후회해본 적은 없나.

 “전혀, 시작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면에서.

 “식구들이 작은집에 오기 전에는 자기표현도 못하고 하는 일이 없이 억눌려 살았는데, 작은집에서는 자기표현도 마음대로 할 수 있고, 할 일도 생기고, 그러니까 무척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작은집에서는 식구들이 서로 도와야 살 수 있으니까, 아무리 힘들어도 다른 식구들을 도와야 자기가 살 수 있으니까. 식구들이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돕고 사는 법을 자연스럽게 체득해서 사는데, 그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아서 큰 보람을 느끼고 있어요.”

 -전혀. 어려움이 없다는 말인가.

 “있지요. 식구들이 자주 싸워요. 오늘 아침에도 사소한 일로 의견이 충돌해서 다퉜어요. 그렇지만 크게 마음 쓰지는 않아요. 사람 사는 모습이 다 그렇죠 뭐. 그것 말고는 다른 어려움은 없어요.”

 -계획이 있다면.

 “집이 좁아요. 그래서 마당이 있는, 터가 좀 넓은 데로 이사갔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키우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작은집을 얘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 하나, 작은집 식구들은 자유롭게 산다는 것이다. 구속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당연하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공동체의 성격상 자유롭게 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식구들에게 자유를 준다는 원칙을 지키겠다는 게 복희씨 말이다.

 얼마 전 작은집 식구들은 안면도로 여행을 다녀왔다. 이렇게 작은집 식구들은 시간 나면 여행을 떠난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작은 것에서 만족을 느끼며 사는 작은집 식구들, 작은집에 살지만 크게 사는 작은집 식구들을 원주에 가면 만날 수 있다.

 

글 ·사진/ 이수지 이태곤  기자

작성자이수지 이태곤 기자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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