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이야기] “이제 서늘한 바람같은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 세상, 한 걸음


[사람 사는 이야기] “이제 서늘한 바람같은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주는, 착한 언니같은 가수 이선희 씨

본문

  해마다 팔월이 되면 강변가요제가 열린다. 올해도 어김없이 개최할 예정이라고 하는데 강변가요제 하면 늘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벌써 십 년도 훨씬 지난 어느 해 여름, ‘제이에게’라는 노래를 부르며 나타난 가수 이선희. 동그란 안경에 화장기 없는 얼굴. 유난히 바지만을 고집해서 미소년같은. 그러나 무대에만 서면 불꽃과도 같이 노래하는 가수 이선희. 갑작스레 시의원선거에 출마한다고 우리 곁을 잠시 떠났던 가수 이선희 씨의 노래가 요즘 들어 자꾸 생각난다. 왜일까?


 십일집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 담긴 것

  가수 이선희 씨를 만난 것은 장마가 막 시작된 지난 칠월의 남산 근처 한 커피숍에서였다.

  최근 새 앨범 녹음에 들어가 간밤에도 새벽 네 시 반까지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했다는 이선희 씨는 그래서인지 좀 피곤해 보였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새 앨범에 대한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이 년 만에 내는 앨범인데 많이 떨리네요. 믿기지 않겠지만 그 동안 저는 새 음반을 내면서 기대같은 거 전혀 안하고 냈었거든요. 어떻게 하겠다 하는 생각 없이 그냥 내곤 했는데 이번 음반은 기대가 많이 돼요. 어제는 잘 하려다 보니깐 완전히 꽝이었어요.”

  새 음반은 이선희 씨가 직접 작곡한 곡과 신인 작곡가와 기존 작곡가에게서 받은 곡이 반반씩 들어간다고 한다. 기존 작곡가 중에는 신대철 씨와 김형석 씨 등이 참여했다. 새 앨범의 주제에 대해 묻자 이선희 씨는 “저는 항상 주제가 없었어요. 송시현 씨랑 작업할 때도 뭘 어떻게 해야 겠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고, 그냥 그가 나한테 주는 것, 내가 그때그때 신문이나 텔레비전을 통해 느꼈던 것을 바탕으로 이런 걸 한번 하고 싶다고 하면, 거기에 맞게 작업을 해주고 해준걸 보고 됐다 싶으면 음반을 냈죠. 굳이 말하자면 새 앨범에는 사랑, 이별에 관한 노래가 많아요.”

  사랑, 이별, 우리 가요의 가장 흔한 주제다. 새 앨범에 거는 기대에 비해 주제가 너무 평이하지 않나 싶었는데 이선희 씨는 “사람들은 제가 사랑에 관한 노래를 많이 불렀다고 생각을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일이삼집은 제가 너무 어려서 제 의지하고는 상관없이 부르라는 노래만 불렀고 제가 관여한 것은 그 다음부터죠. 그게 오월의 햇살, 한바탕 웃음으로, 그리운 나라, 아름다운 강산같은 곡이에요.”

  시대가 흘러도 변함없이 애창되는 곡의 대부분이 사랑에 대한 노래이기 때문일까? 그 동안 그이가 부른 노래의 강한 메시지와 시의원이라는 경력 때문에 붙여진 색깔 있고 의식 있는 가수란 이미지에서 탈피해 이제는 자연인, 음악인 이선희로 돌아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싶은 그이의 소박한 바람인 것도 같다.


 사회적 반항을 일으킨 소년소녀가장돕기 콘서트

  이선희 씨는 불우이웃돕기 활동을 많이 한 가수로 유명하다. 특히 소년소녀가장돕기 자선공연을 육 년 동안 벌이면서 당시 사회로부터 관심을 받지 못했던 소년소녀가장에 대해 우리의 관심을 일깨운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이가 어린 나이에 가수로 데뷔하고 얼마 안 되고부터 소년소녀가장돕기 콘서트를 꾸준히 해 온 데에는 남모르는 아픈 과거에 대한 추억이 있었다.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선희 씨의 아버지는 스님이다. 그래서 자주 이사를 가야 했고 자연스럽게 학교도 자주 옮겨 다녔다. 그래서 친구를 사귈 여유도 없이 외롭게 지내다보니 자연스레 성격도 내성적이 돼버렸다.

  그런 그이에게 짓궂은 동네 아이들은 “야, 중은 자식이 없는 건데, 니네 아빠는 왜 중이냐”고 놀려 대곤 했다. 그 때마다 이선희 씨는 “왜 하필이면 우리 아버지는 목사님이 아니고 스님일까?”하는 고민에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것들에 대한 도피처로 가정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이나 고아원을 자주 찾아갔다고 한다.

  그리고 막상 부모가 없는 아이들을 보며 자신의 고민은 아무 것도 아니란 걸 깨닫고, 그 다음부터는 아버지에 대한 고민을 말끔히 잊고 일요일만 되면 그 친구들을 찾아가 노래도 부르고 같이 많은 시간을 보냈다.

  “제가 학교 다닐 당시만 해도 납입금을 못 내서 매일같이 칠판 아래 이름이 적히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지금도 이름을 기억하는데 조은미라는 친구는 매일같이 칠판에 이름이 적혔죠. 자기가 학비를 안 내고 싶어서가 아니라 돈이 없어서 못내는 건데 학교 선생님은 그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아 어린 마음에 제가 다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죠. 그 애가 철길 옆에 살았는데 가보니깐 동생들 하고만 살더라구요. 그런 걸 보니 마음이 더 아프더라구요.”

  그렇다고 이선희 씨가 그 친구를 도와줄 만큼 부유하게 살았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 기억이 머릿속에 남아 있던 이선희 씨가 가수가 됐고, 가수라는 직업인으로서 그런 친구들을 도울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그 당시 창간한 한 청소년 잡지에서 이선희 씨에게 소년소녀가장돕기 콘서트를 해보자는 제안을 한 것이다.

  창간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그 잡지는 구독자 확보 차원에서 십대 청소년에게 가장 인기가 있었던 이선희 씨에게 콘서트 제안을 한 것인데, 이선희 씨가 그 제안을 받아들여 일 년 동안 전국을 다니며 소년소녀가장돕기 콘서트를 개최했다. 예상대로 잡지의 구독률도 올랐고 이를 계기로 소년소녀가장돕기에 대한 관심이 전국적으로 확산돼 이후 다른 가수들도 이 운동에 동참하게 됐다. 또 그 동안 온정의 손길이 미치지 못했던 소년소녀가장에 대한 정부의 특별지원대책도 마련되기에 이르렀다.

  소년소녀가장돕기 콘서트는 이선희 씨의 이미지 관리차원에서도 많은 기여를 했다. 노래만 잘하는 가수가 아닌 사회를 위해 좋은 일 많이 하는 가수로 알려지게 된 것이었다. 시의원 출마 제의도 그런 영향으로 들어온 게 아닌가 하고 짐작한다. 공교롭게도 그 즈음 이선희 씨도 매번 공연할 때마다 체육관 대관으로 인해 관계자들과 실랑이를 벌이면서 많이 지쳐 있을 때였다.

  “소년소녀가장돕기 콘서트를 하면 늘 공연장소가 문제였어요. 공연장소가 없으니 체육관을 대관할 수밖에 없는데 그 절차가 얼마나 까다롭고 복잡하던지. 좋은 일을 하겠다는 데도 체육관이 놀고 있어도 대관을 잘 안 해주는 거예요. 윗사람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되고, 힘들여서 모은 기금을 체육관 관계자에게 뒷돈 주듯 줘야 하고... 그런 구조에 많이 지쳤죠.”

  이선희 씨 본인이 그런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무언가 잘못 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시의원활동을 하면서 그런 문제를 시정해 보자는 소박한 마음에서 출마를 결심했다고 한다. 처음 시의원선거에 출마하기로 마음을 굳힐 때까지만 해도 말이다.


 공인으로서 약속지키기 위해 가수 활동 중단

  그러나 막상 시의원이 되고 보니 처음 생각과는 어긋나는 게 많았다. 게다가 생각지도 않던 보건사회분야를 맡게 되어 정작 하고 싶었던 체육관 대관등과 관련된 구조를 자세히 알아볼 수 없게 된 것이다. 게다가 연예인 출신, 최연소 여성 의원이라는 것이 선거 때부터 임기를 마치는 순간까지 이선희 씨를 쫓아다녔다.

  “사람의 눈이 중요하지 않지만 제가 의욕을 자꾸 잃었어요. 저를 그냥 봐줬으면 좋겠는데 ‘쟤 또 국회의원 나오려고 저러나 보다’, 소년소녀가장돕기도 ‘표를 얻으려고 그러나 보다’ 자꾸 이런 쪽으로만 보니까 머리가 아픈 거예요. 그러고 전 기금을 기증할 때 한 번도 사진을 찍어본 일이 없어요. 전 그런 거 닭살 돋아서 해본 적이 없는데 의정활동을 하려면 그런 게 필요하다는 거예요. 어떻게 일했는지 보여줘야 된다는 거죠.”

  게다가 이선희 씨가 시의원이 되는 과정에 도움을 줬던 사람들 중에는 정치활동을 하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이 어차피 주는 돈이라면 그들도 같이 사진 좀 찍자고 하는데 계속 거절할 수도 없고 그런 상황에 얽매이는 게 싫었던 이선희 씨는 아예 소년소녀가장돕기 활동을 포기해 버리고 말았다.

  동시에 가수활동마저 중단했다. 애당초 이선희 씨는 시의원에 입후보하면서 팬들에게 가수활동도 병행하겠다는 약속을 했었다. 그리고 본인도 정말 그럴 계획이었다. 인기가 있어야 소년소녀가장돕기 콘서트에도 사람이 많이 와서 기금을 마련할 게 아닌가? 그러나 이선희 씨는 그 약속을 지킬 수 없었다.

  가수가 본업인 이선희 씨가 지금 가수활동을 중단하면 그이의 인기에 막대한 지장을 줄 것이라는 것을 본인이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가수생활을 중단한 데에는 공인으로서 벗어버릴 수 없는 책임감 때문이었다.

  이선희 씨는 누구든지 그가 가진 사상이 바르다면 정치를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연예인이라고 해서 의정활동을 못할 이유도 없다. 그런 이유로 본인 스스로 시의원선거에도 출마했는데 이제 와서 그이가 시의원직을 내놓겠다고 하면 더 큰 선입견을 남기게 되고 이후 정치를 하려는 다른 연예인에게도 피해를 주게 된다는 생각에 시의원활동을 소홀히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무슨 일에든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어야 직성이 풀리는 그의 악바리 기질은 그이가 시의원활동과 가수활동을 병행하도록 가만 두지 않았다.

  “노래할 때 온 힘을 쏟지 않으면 나 자신이 흐트러지니까, 남들은 여유있게 웃으면서 할 수 있지만 저는 그게 안돼요. 그런 방법을 몰라요. 제가 온 힘을 다 해야지, 다 쏟아내지 않으면 돌아서서 너무 미안한 거예요. 사람들한테 내 에너지를 다 보여주고 감흥을 줘야지 적당히 내가 즐기다 무대에서 내려오면 굉장히 미안해요.”

  실제로 이선희 씨와 함께 보건사회쪽에서 일한 시의원들은 누구보다 그이의 이 악바리 기질을 잘 알고 있다. 보건사회쪽은 유난히 관련단체가 많아 예산편성에 신중을 기해야 해고 또 예산이 잘 사용되고 있는지 현장감독을 직접 가야하는데 결혼 후 임신을 하게 된 이선희 씨가 아이를 갖고도 계속 현장을 찾아다는 것이다.

  이선희 씨가 입덧을 하는 걸 보고 주위 사람들은 그이가 임신을 한 사실을 알았지만 갈수록 야위어가는 것을 보고 임신한 사실을 잊어버릴 정도였다. 급기야 칠개월 째에 접어들어선 임산부의 몸무게가 임신 전보다 칠 킬로그램이 빠지기도 했다. 그걸 보고 다른 의원들이 제발 차 안에 그냥 앉아 있으라고 이선희 씨를 말릴 정도였다고 한다.


 시의원활동은 내게 ‘몸에 좋은 쓴 약’으로 기억할 터

  그러나 그렇게 열심히 의정활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선희 씨는 정당생활을 하는데 있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정당 역시 조직사회인데 조직사회에 익숙지 못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의원들을 거수기라고 부를 정도로 집단 이기주의에 빠져 있는 정치풍토에서는 더욱 그러했을지 모른다.

  “별게 아닌데도 아침에 회의 들어가기 전에 의원들을 전부 불러서 ‘오늘 이렇게 부결시킵시다.’라고 말하면 아무도 이의를 제시하지 않고 회의가 끝나는 거예요. 전 그게 너무 신기했어요. 그래서 일어나서 이건 아니라고 말하면 모두 저를 바보 취급하는 거죠. 내가 너무 어려서 그런 거라고. 뒤에서 다른 의원들이 앉으라고 막 잡아당겨요. 이건 완전히 코미디였죠. 저를 찍어준 사람들한테 지금 이 상황을 설명한다면 그 사람들이 그건 옳지 않다고 생각할 테니 나는 못한다고 했죠. 물론 저 하나 일어난다고 해도 대세에 큰 지장은 없어요. 그렇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죠. 내가 어느 쪽에 서느냐가 더 중요한 건데 당에서는 그것조차 용납 안 해요. 어차피 대세에 영향이 없는데도 시키는 대로 안했다고 뒷소리를 듣고... 결국 여기는 내가 있을 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당을 나왔죠.”

  사실 이선희 씨는 공천을 받기까지만 해도 여당, 야당에 대해 그리 깊게 생각하지 않은 듯하다. 여당의 공천을 받았음에도 그이는 민주단체에서 하는 행사에도 여러 번 참여했었다.

  당으로부터 그이의 그런 돌출행동을 지적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나 이선희 씨는 그럴 때마다 “신경 쓰지 마라. 도대체 당적이 뭐가 그리 중요하냐. 내가 가진 사상이 중요한 거지.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는 곳이면 갈 거고, 필요하지 않으면 부르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본인의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그렇게 어렵사리 임기를 마친 이선희 씨는 다시 가요계로 돌아왔다. 그러나 모든 게 전 같지 않았다. 컴백 이후 세 장의 앨범을 냈지만 모두 실패했다.

  “제가 가수활동을 중단한 이후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그룹이 한참 인기였어요. 세대가 너무 변해버린 거죠. 내가 과연 저런 음악을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잠시 추이를 지켜보다 한참 랩이 유행이지만 나는 자연에 가까운 음악을 들려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새 앨범을 가지고 나왔죠. 그런데 방송에 한 번 출연하고서 너무 어색하고 내 자리가 아닌데 나 혼자 놀고 있는 것 같아서 다시 방송을 중단했어요. 큰물이 흐를 때 거기 있으면 휩쓸려 갈 것 같아 잠시 비켜 서 있다가 큰물이 지나간 다음에 다시 하자고 마음먹었던 거죠.”

  그리고 이선희 씨는 구십육년 다시 ‘라일락이 질 때’라는 열 번째 앨범을 냈다. 보통 가수들은 열 번째 앨범은 그 동안의 가수생활을 정리하는 기분으로 내놓는 것에 비해 이선희 씨는 열 번째 앨범을 본인이 직접 작사 작곡한 곡들로 채웠다. 히트하고 안하고 보다 가수 이선희가 다시 대중과 호흡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시험하는 비장한 각오가 깃든 앨범이었던 것이다.

  앨범 판매량이 전과 같지는 않았지만 이선희 씨는 십집을 성공했다고 판단한다. 구집 때와 같은 이질감을 느끼지 않게 되었을 뿐 아니라 이게 내 자리구나, 다시 내가 돌아왔구나 하는 느낌을 스스로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선희 씨는 과거 어느 때보다 이번 십일집에 거는 기대가 크다.


 지친 사람들이 잠시 쉴 수 있는 노래 부르고파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이선희 씨의 요즘 근황을 들어보았다. 새 앨범 준비 작업 말고도 지난 유월부터 시작해온 뮤지컬 ‘어사또 박문수’에서 박문수 역을 맡아 전국 순회공연중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이선희 씨는 데뷔 초부터 ‘오즈의 마법사’, ‘피터팬’ 등 어린이 대상 뮤지컬에도 간간이 참여해 온 점이 눈에 띈다.

  “가수들은 무대에 설 때면 자기 혼자 노래 하지만 연극이란 건 내가 아무리 잘 해도 같이 호흡이 안 맞으면 나 혼자 따로 놀잖아요. 옆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내가 조금씩 달라지고 또 내가 달라지면 그 사람이 그걸 받아서 다르게 나오고 그런 순간순간이 재밌어요.”

  특히 이번 뮤지컬은 전문 극단에서 상업성을 목적으로 기획한 공연인 만큼 연기력도 다른 연기자에 뒤지지 않을 만큼 뒷받침되어야 한다. 특히 지방공연까지 기획된 장기공연인 만큼 연기에 있어서는 비전문가인 이선희 씨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연기요? 그냥 나와요. 연기는 내 전문분야가 아니니까, 내 것이 아니니까 다른 사람 얘기를 많이 들어요.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하고 얘기해주면 그렇게 하고 될 수 있는 대로 내 자신이 스펀지같이 되려고 많이 애쓰죠.”

  스펀지같이 되려고 한다는 이선희 씨의 말에 겸손함이 묻어 나온다. 그러나 그 겸손함은 이제 서른하고도 세 살을 먹은 연륜에서뿐만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일에 대해 인기보다는 한 인간으로서 책임감을 완수한 사람에게서 배어나오는 성숙함이 아닐까.

  “시의원 활동을 하면서 사람을 보는 눈을 길렀어요. 전엔 신문 뒤에 가려진 것까지 읽을 순 없었어요. 시의원하면서 그걸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됐고, 아무리 좋은 일을 하더라도 거기에는 흑과 백이 공존한다는 것, 그걸 다 감싸 안을 수 있을 때만이 그 일을 시작하고 그렇지 못하다면 애초부터 하지 말자는 것이죠. 또 내 자신에 대한 것도요. 그 전까지는 가수를 하면서 뭐든지 주위에서 다 도와주고 챙겨주고 했었는데 시의원 활동을 하면서 많이 강해졌어요.”

  이선희 씨가 십일집 앨범을 내면서 본격적인 가수활동을 시작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선희 씨의 팬들이 이선희 후원회를 결성할 것이라고 한다. 한 때 이선희 씨를 좋아했다가 나이를 먹고 그 나이에 맞는 일상사에 파묻혀 잠시 그이를 잊었던 팬들이 생활이 안정되면서 다시 과거에 자신이 좋아했던 가수 이선희 씨에 대한 향수가 생긴 것이다.

  때마침 이선희 씨도 본격적으로 음악활동을 재개한다고 하니 이선희 씨와 팬들의 생각이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이다. 벌써부터 후원신청이 속속 들어오고 있는데, 그 중에는 올해 팔십을 넘기신 나이 지긋한 할머니도 있다고 한다. 이 얘기를 전하며 이선희 씨는 “어찌보면 인기가수라는 화려함에 취해서 작은 것의 소중함과 감사하는 마음을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었을 텐데 제가 그런 인생의 참의미를 알도록 기다려주고 지켜봐주신 팬들께 감사한다.”고 덧붙인다.

  이제 한 아이의 엄마, 삼십대를 넘긴 이선희 씨가 앞으로 부르고 싶은 노래는 어떤 것일까.

  “어떤 사상이나 슬픔보다는 복잡한 도심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끼고 말에 상처받고 지쳐있을 때 문득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제 노래를 듣고 거기에 서늘한 바람이 부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를 직접 만나지 않더라도 제 음악을 통해 그런 교감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노래가 나오려면 저 스스로 맑은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고 늘 생각하죠.”

  한 여름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묵묵히 제 할 일을 마치고 튼실한 일곡을 맺은 벼이삭처럼 어려운 시기를 잘 보내고 이제 우리 곁에 돌아온 ‘참 괜찮은 사람’ 이선희 씨를 만나고 나니 그이의 노래를 다시 한 번 찾아 듣고 싶어진다.

 

글/ 노윤미 기자
사진/ 한혜영 기자

작성자노윤미 기자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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