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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걸음이만난사람] “우리 더불어 ‘사람’을 지키지요”

신영복 성공회대 사회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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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옆에 자고 있는 사람의 체온, 존재 그 자체를 증오해야 하는 여름 징역살이의 비애와 자성을 담은 편지글로 많은 사람들에게 서늘한 감동을 주었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신영복 선생. 그는 이제 감옥에서 세상밖으로 걸어나와 성공회대에서경제학을 강의하고 있다. 이와 함께 산문집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숲>에 수록된 글을 통해 일관되게 사람에 대한 믿음과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는 신영복 선생을 만나 사람 그리운 이 시기, 거울을 들여다 보는 우리의 마음은 어떠해야 하는지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명장 한니발은 왼쪽에서 보면 장님이요, 바른쪽에서 보면 성한 사람이요, 정면에서 보면 일목지장(一目之將)이다. 그래서 한니발을 장님이라 우기고 싶던 스키피오는 늘 한니발의 왼쪽에 가 섰을 것이다.’
 1966년 스물다섯의 나이로 <외국무역과 국민경제>라는 제목의 역서를 내놓으면서 신영복 선생은 역자 후기 서두에 외국무역에 대한 다양한 시각이 있다는 점을, 한 쪽 눈에 장애를 갖고 있었던 기원전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을 예로 들었다.

 스물네살 때 이미 대학 강의를 시작했던, 게다가 그 곳이 여자대학교여서 처음엔 강의하러 갔다가 수위에게 잡혀 들어가지도 못할 뻔하기도 했다는 이 전도양양한 젊은 경제학자는 육군사관학교 교수로 재임하다가 1968년 7월, ‘통일혁명당’이라는 전대미문의 공안 조직 사건으로 인해 사형을 언도받았고 결국 무기수로 복역하게 된다.

 그런 그가 가석방이 되어 다시 세상에 나온 것이 20년 20일 후인 1988년 8월의 일이다.

 그로부터 또 10년 후인 1998년 한 해를 마감하는 길목에서 신영복(59) 선생이 함께걸음 독자들과 만남을 가지게 된 것에 사뭇 비장한 역사감 마저 든다.

 지금은 다시 원래의 강단으로 돌아가 올해 5월에는 성공회대 경제학과 교수로 정식 부임하고 대학 부설 사회교육원의 원장직까지 겸임하고 있는 그이지만 정작 신영복 선생의 이름이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 있는 까닭이 그렇게 파란많은 인생이력 때문만은 아닌 듯 하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무야 나무야>, <더부러 숲1,2>등의 산문집에, 또 어느 샌가부터 거리 곳곳에 내걸리기 시작한, ‘민체’의 한획 한획마다에서 일관되게 발견 할 수 있는 사람과 세상에 대한 따듯하고 건강한 신뢰 때문이다.

 그 자신이 겪어온 엄혹한 수행기간에도 불구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바로 내곁의 사람과 사람들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우고 먼저 열어 내보이는 새로운 인간관계에 대한 단상들에서는 일면 종교적인 숭고함마저도 느껴진다.

 “실제로 교도소라는 데가 그렇잖아요. 사회적으로 지탄받고 영원히 격리하거나 사회로부터 쫓겨난 사람들, 심판 받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지만 같이 생활해보면 그 사람들 속에 충분히 인간적인 신뢰를 쌓아나갈 수 있어요. 그래서 나는 비인간적인 문화라든가 구조에 대해서는 불신하지만 인간적인 자질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신뢰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 특히 시장원리라든가 자본주의사회에서 아주 불신적인 여러 가지 사람들의 형태들이 나타나고는 있지만 그것은 자본주의적인 문화가 인간적인 자질을 사후적으로 각색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여러 사람들이 모이면 어느 집단에서도 그 민중이라는 다수는 늘 나타나는데, 그 민중적 다수는 항상 선량해요, 민주적이기도 하구요. 제가 이번에 출간한 책의 이름을 <더불어숲>이라고 했죠. 일년간 세계 여러 곳을 다녀보면서 이십세기를 반성하고 이십일세기를 전망도 하면서 쓴 글들인데, 이 책의 제목을 뭐라고 붙일까 고민하가다 ‘더불어숲’이라고 하고, 그 부제로 ‘나무가 나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라고 붙였습니다. 여기서 지키자는 것이 바로 인간적인 신뢰라고 생각을 합니다.”
 

- 저희 제호인 함께걸음도 좁게는 장애우와 비장애우가 함께 걷는다는 의미도 있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바로 그런 뜻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말씀 들으니 반가운데요.

 “예, 그렇죠. 장애우 문제가 사회적으로 관심을 모아낸 것이 그렇게 오래 되지 않아서 현재와 같이 좁은 의미의 패러다임으로 시작 할 수밖에 없지만 점차적으로 그 범위를 확대해야 돼요. 결론 적으로 나는 모든 사람들이 다 장애우라고 생각해요. 어떤 형태로든. 제가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구속돼 있었는데, 구속이 된 상태는 일단 혼자 걸을 수 없는 상태 입니다. 소위 말하면 독보(獨步)가 불가능한 상태잖아요. 우정이나, 다른 인간적인 관계가 불가능한 상태 이런 것들도 모두 장애의 상태라고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넓은 의미로 우리 사회에서 좌절당하고 억압당하고 인권이 부당하기 유린되기도 하고 있는데, 이런 모든 사람의 삶의 형상 그 자체에 장애가 없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현격하게 장애가 있는 사람들만을 장애우라고 생각하는, 그 개념을 더 확대 하지 않으면 장애운동도 발전하기 어렵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장애우 문제는 더 나아가면 인권의 문제이기도 하고 더 나아가면 인간의 문제이기도 해요.”

 이 대목에서 생각나는 글귀가 있다. 그를 유명하게 한 옥중서간집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이런 부분이 있다.

 ‘옥 뜰에 서 있는 눈 사람. 연탄조각으로 가슴에 박은 글귀가 섬뜩합니다.

 “나는 걷고 싶다.”

 있으면서도 걷지 못하는 우리들의 다리를 깨닫게 하는 그 글귀는 단단한 눈뭉치가 되어 이마를 때립니다.’

 교도관들의 계호 없이는 단 한 발자국도 떼어놓지 못하기 때문에 몇 미터만 혼자 걷게 돼도 금방 왠지 모를 두려움에 빠지게 된다는 수형생활은 이를테면 사람의 다리를 꺽어 놓는 것인지도 모른다.
 

 -제가 일전에 본 바른말을 사용하자는 캠페인성 방송에서 현재 우리 사회 사람들이 ‘다르다’와 ‘틀리다’를 굉장히 많이 혼동해서 사용한다고 지적하더군요. 그래서 왜 그렇게 됐을까를 제 나름대로 생각해봤더니 자신과 다르면 그야말로 맞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는, 그래서 그것을 곧 ‘틀리다’라고 표현하는 말습관으로 이어진 것이 아닌가 해서 조금 섬뜩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자신과 다른 사람, 다른 것들에 대한 그 ‘다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일천한 인식 때문에 심각하게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 또 장애우들의 현실이거든요.

 “제가 학생들에게 가끔 얘기해요. 모든 사람을 영화의 주인공 자리에 놓고 생각하라고. 영화에서 주인공은 엑스트라에 비해서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죠. 일단 죽을 때도 시간이 참 오래걸려요. 또 주인공한테는 부모도 있고, 사랑하는 애인도 있고 친구도, 미래 소망도 다 있는데 엑스트라들은 그런 것이 하나도 없이, 하나의 삭막한 개체가 그냥 나무 넘어지듯이 총 맞고 죽잖아요. 그렇게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해는 과거와 현재와 그 사람 개인과 맺고 있는 인간관계, 그리고 그가 발 딛고 있는 그 사람의 사회경제적인 처지들을 총체적으로 바라보는 태도가 필요한 거죠. 젊었을 때 보다 세상 경험이 많아지면서 달라지는 생각 중의 하나가 참, 사람은 서로 다르구나, 하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진정한 이해, 그것을 바탕으로 한 함께 하는 마음은 자기와 다른 사람이 ‘틀리다’가 아니라 ‘다르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돼요. 오히려 그 다른 것이 사회를 사회답게 만들고 인간관계를 훨씬 더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지 않나 생각해요,”
 
 기자는 이 인터뷰에 앞서 그가 원장으로 있는 성공회대 사회교육원의 제1회 노동아카데미 강의 일정 가운데 종강 순서로 마련된 그의 강연을 들었다. 강의 끝 부분에 주어진 자유발언 시간에 한 여성노동자는 자신 스스로는 노동자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주위에서는 그저 ‘공순이’, ‘공돌이’라는 손가락질을 받곤 했다는 얘기를 했다. 그 사람의 발언 요지는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지만 그 대목에서 얼핏 장애우들과 노동자의 처지도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신체 일부에 장애가 있다는 것, 그것은 눈이 나빠 안경을 쓰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 보다 다만 조금 더 불편할 뿐이라고 장애우들은 말하지만 일단 동정부터, 그리고 무시부터 하고 보는 눈길들과의 무수한 싸움의 장에 나서야 하는 것이 현실 아닌가.

 신영복 선생의 삶에는 인간으로서 지상 최악의 잔혹한 처우를 감수해야 하는 사형수로서 복역했던 1년 6개월의 시간이 있었다. 자신은 스스로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서 한 일이라고 아무리 외쳐보아도 그 대가로 세상과 완전히 격리되어야 할 존재로 일순간에 치부됐을 때의 심정은 감히 다른 사람이 헤아리기 어려울 것이다. 다만 그러한 시기를 다 넘겨온 그가 그 기간동안 스스로의 자존은 어떻게 지켜나갔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개인이 자기의 신념을 지킨다던가, 자기 스스로의 자존심을 끝까지 견지해가는 것을 개인의 의지만으로 지킨다는 것은 참으로 고독한 일이고, 그런 점에서 오래 지속될 수 없어요. 가장 이상적이기는 사회 문화가 뒷받침 해준다면 우리가 숨 쉬듯이 또는 물마시듯이 별다른 특별한 주관적인 노력 없이 가능하잖아요. 그렇지 않은 조건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참 힘들죠.

 그건 장애우 문제도 마찬가지고 방금 사형수 얘기도 하셨지만 내가 사형을 선고 받고 있는 기간에도 사형수라는, 모든 살아있는 사람들과 구별되는 특별한 자기존재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 하는 문제 때문에 참 힘들었어요. 그렇지만 결국 자기 개인의 인생도 개인으로서 완성할 수 있는 부분은 극히 적고, 사실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맺고 있는 하나의 그물코에 불과하나고 해야 할 것입니다. 자기 존재자체가 독자적인 단독자로서의 존재가 아니라 다른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관례의 일부라는 생각을 가지면 비록 자기 인생이 참 힘들고 짧게 끝난다고 하더라도 자기라는 존재는 다른 사람들과 공유되고, 다른 사람들과 맺는 관계 속에서 지속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기도 하였습니다. 아마 자기를 위로하는 방식인지도 모릅니다만.”

 

 - 12월10일 세계인권선언 50주년에 맞춰 우리 정부도 ‘인권법’을 제정하고 국가인권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일정한 연계작업이 이루어지고 있고, 또 정부에서 장애인권리헌장이나 청소년인권헌장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일련의 변화들을 지켜보시면서 특히나 감회가 새로우실 텐데요.

 “제가 감옥에서 붓글씨 쓴 것 중의 하나가 초만영어(草滿囹圄)라는 글귀가 있습니다. 영어라는 것은 감옥이라는 뜻이니까 감옥에 풀만 가득하고 아무도 갇혀있는 사람이 없는 그런 세월이면 참 평화롭고, 사람들의 인권이 보장되는 세월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그렇게 쓴 것이지요. 그러나 제가 출소하고 나서 여러 가지 사회 현실을 보면서 갇혀 있는 사람의 인권만 제한되는 것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대처럼 매스미디어가 급속도로 발전해있는 조건에서 오히려 중요한 것은, 분명한 인권 침해인데도 불구하고 문화적으로 그것이 인권의 침해가 아닌 듯이 느끼게 하는 이론적인 그리고 문화적인 포섭 속에 인권개념이 실종되는 사실이 훨씬 더 심각하다고 생각해요. 정치권력이나 자본의 권력과 같은 막강한 권력을 소유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하기 위해 문화적인 형태, 문화적인 기제를 아주 풍부하게 사용하고 있어요. 특히나 우리나라의 겨우 과거 봉건제 사회부터 기본적인 인권이 제한돼 왔기도 하고, 그 후에 훨씬 가혹한 일제 식민지 백성으로서 인권을 제한 당한 경험을 갖고 있죠. 그 이후 해방 전후의 격동의 전쟁 또 권위주의적인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그야말로 만성화되고 무감각하게 된 인권문제까지 겹쳐있어요. 그리고 문화적인 현재의 포섭기제까지 포함한다면 인권개념은 우리가 처음부터 새로 정립하고, 신중하게 확대해 가는 노력이 참으로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예, 바로 그런 한 예로 민간단체들이 인권법 제정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전교조 관계자분은 중고등학교에서 학생 본인이 원치 않은 성적공개 같은 일들도 인권 침해라는 얘기를 하셨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일면 낯선 논리로 다가오기도 하더라구요. 그래서 기본적인 법 제정과 함께 인권에 대한 국민적 홍보작업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는가 하는 논의도 있었습니다.

 “지금 현재 우리나라의 현실은 장애우의 문제도 가장 현저한 신체 혹은 정신 장애우 문제부터 출발하지 않을 수 없고, 인권도 가장 기본적인 법적인 국민적 기본권, 이것부터 지켜나가는 초보적인 단계에 있죠. 그렇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문화자체를 다른 것에 대한 이해와 관용, 이런 것까지 다 포용해내는, 또 사회적으로 지금 경쟁사회에서 좌절되거나 뒤처진 사람들이 겪고 있는 여러 가지 사회적, 개인적 혹은 정신적 좌절감까지도 넉넉하게 포용해내는 문화로 발전하지 않으면 인권문제 해결은 어렵다고 봅니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 기본적으로 잘못돼 있는 패러다임 가운데 하나가 모든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부단히 환원하고 있어요.

 장애우의 경우도 장애우 개인이 책임져야 할 부분의 하중이 너무 커요. 같이 나누어지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범죄행위에 대한 책임도 범죄자 개인이 전부 책임지도록 하고 있는데, 한 사람의 행동 속에 담기 사회성이란 것이 그야말로 사회적인 것이니까 상당히 많은 책임이 나한테도 있다는 자각을 할 수 있어야 해요.”

 

 - 인권의 측면을 국가 정책으로 배려한 것이 바로 그 사회의 복지수준으로 나타낸다고도 볼 수 있을 텐데요. 경제학을 전공하셨지만 그 연장선상에서 복지부문에 대한 고민을 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 복지문제는 경제학에서 극히 상반된 두 가지 접근을 합니다. 하나는 정말 사회에서 소외돼 경제적으로도 현저하게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복지를 증진하는 것이 결국은 경제발전과 공동선의 궁극적인 목표이고, 그것이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어떤 이데올로기든 초종적인 목표이기 때문에 복지라는 개념은 초역사적이고 초계급적인 가치라는 입장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현실적으로 국가의 복지정책이란 것이 자본주의 제도가 필연적으로 양산해낼 수 밖에 없는 소외집단에 대해서, 애정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총자본의 순환을 보장해주는 범위 내에서 그렇게 자본운동의 보조적 역할만을 할 뿐이라는 지극히 비판적인 입장에 놓여있는 이론들로 크게 나누어져 있어요. 무엇보다 물질적인 시혜와 같은 기본적인 같은 기본적인 것은 갖춰져야 하겠지만 보지 문제가 거기서 끝난다는 것은 상당히 비판적인 비난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에서의 복지는 미약한 수준인 것이 사실입니다만 잘 돼 있다는 스웨덴, 덴마크 같은 북구 유럽 국가에서도 복지라는 것이 국가와 개인의 관계로 패턴이 만들어져 있는데 그것은 궁극적으로 우리 문화적인 전통과는 조금 이질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사회에 인간적인 관계를 만드는데 역행하는 이런 현상들 때문에 오히려 실험보험금만 타고 취업 안하는 게 훨씬 더 편하다는 역현상이 생기게 된 거죠. 그것보다 더 이상적인 것은 개인과 개인 속에서 만들어지는, 마치 우리 고유의 두레와 같이 상부상조하는 전통들이라고 생각해요. 복지문제는 많은 복지기금이라든가 적극적인 국가의 정책에 의해서 접근 하려는 그런 방식 보다는 궁극적으로 우리들 삶 송의 인간관계를 통해서 함께 해결해내는 마인드와 문화를 정착시켜야 합니다. 그럴때 이웃에 복지시설이 들어섰다고 혐오하는 문제들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 장애우와 자원활동자의 관계를 떼 놓고보면 정부가 그러한 상부상조의 전통에만 너무 방치해 놓은 게 아닌가 싶은 것이 일본에서는 개호인제도라고 해서 유로 가정봉사원이 있고, 장애우가 봉사원을 채용하는 비용을 전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보조해주고 있어요. 그렇지만 사실 우리의 경우 장애우들과 자원활동자의 만남이 자발적인 자원봉사자의 활동에만 의존하게 돼 있는데, 편의시설 같은 사회 기본저인 시설은 대중교통 이용 조차 장애우 개인의 힘으로는 또 불가능하게 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이들 양자간의 관계와 역할 설정을 둘러싼 다양한 논의가 있는 게 사실입니다.

 “아까 유료 봉사원을 말씀하셨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남을 돕는 방식에 있어서도 시장원리, 그러니까 도우는 사람에게 상당한 정도의 경제적인 보상을 해주는 방법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인지도 몰라요. 이상적이기는 자원봉사에 의해서 그 문제가 해결이 되면 그런 경제적인 관계를 뛰어넘는 것이 되죠. 경제학에서도 그런 얘길 해요. 노동이 고통이다, 그래서 임금이라는 보수를 지급하고, 노동이 고통이기 때문에 그 고통에서 해방되고 경감시키기 위해서 기계도 만들고 생산성도 높이고 이상적으로는 노동 그 자체가 경제적인 보수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가치의 실현, 봉사의 형태가 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것이라는 거죠. 그래서 무엇보다 봉사의 형식이 최고의 인간관계 형서이라는 점은 사실이라고 생각을 하고요. 그 과정으로 가는 긴 역정에 놓여 있으니까 그 과정을 어떻게 관리하고 어떤 단계로 이끌어 가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하는 거죠.”

 “제가 너무 이상적인 얘기를 하고 있나요?”라고 반문했지만, 급한 것만 일단 처리하려다 아스팔트를 자꾸 뜯게 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고 그는 거듭 강조한다.

 “기본적인 인권도 시급하니까 어떤 식으로든지 빨리 처리해야 하고 당장 다른 사람들의 결정적인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최소한의 도움이, 유료든 봉사형식이든 마련돼야 하는 것도 사실이긴 해요. 결국은 그것마저도 여러 가지 재원이라든가 현재의 인간관계가 갖는 우리 사회의 한계라고 할 수 있죠. 경제가 성장한다고 해서 같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거든요. 특히 IMF라는 충격적인 경제현실을 두고 그런 경제성장의 문제에서부터 우리 사회의 모든 관계에 대한 180도 반전한 자리에서 갖는 냉정한 반성이 있었으면 합니다.”

 

- 지난 번 강연을 듣고 돌아가면서 ‘가만 생각해보면 모든 기쁨은 모두 사람에게서 나오더라’라는 선생님 말씀을 곰곰 새겨보게도 되더라구요. 물론 사람들한테 상처를 받을 때도 많지만 바로 그 사람들 때문에 웃고 사는 것도 사실이긴 하죠.

 “제가 작년에 참 많은 나라를 돌아봤는데 사람들이 물어요. 어느 나라가 제일 좋습디까, 하고. 그래서 혼자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결국 사람들의 인상이 좋은 나라가 참 좋았어요. 예를 들면 네팔같은 나라 사람들은 얼굴이나 인상이 참 소박해요. 조금은 부끄러워하고 수줍어하고 참 선량하고. 사실 문화의 최종적인 척도는 사람이 아니겠어요. 나무가 꽃으로 자기를 나타내듯 그 사회의 문화는 그 사회를 사는 사람들의 얼굴이나 표정, 이것이 문화의 최종적인 상징이 아닌가 생각했어요. 사실 우리가 가장 즐겨하고 흥미있어 하는 것이 사람에 대한 얘기가 아닌가요. 그것은 곧 자기에 관한 얘기니까. 기본적으로 사람한테서 최종적으로 무언가를 발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봐요.”
 

 신영복 선생에게 몇 가지 잔 질문을 더 하고 돌아나오는데 그가 설명한대로 본관 건물 아래 쪽으로 성공회재단에서 함께 운영하고 있는 베드로학교 전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운동장을 그 베드로 학교와 같이 쓰고, 학교 매점도 같이 사용하고 있어 성공회대 학생들과 베드로학교 학생들은 일상적으로 늘 만난다고 한다. 이순을 눈 앞에 둔 신영복 선생과 젊은 교수들이 한 팀이 되어 열심히 축구공을 차는 모습도 그 운동장에서 가끔 볼 수 있다고 했던가.

 학교 정문의 현판을 비롯해서 건물 곳곳에 예의 그 힘이 있으면서도 부드러운 신 선생의 글씨도 눈에 띈다. 자그마하고 아늑한 교정의 그 모든 정경이 그렇게 한동안 마음의 온기를 품게 만들었다. 기자에게 부디 그 자격을 허락한다면 이렇게 말하리라. ‘이 모든 것이 보기에 참 좋더라.’

작성자한혜영 기자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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