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걸음이 만난 사람] “장애우 복지, 공무원의 역할이 중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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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곳에서 장애우 복지 발전에 기여한 공직자 중 조남호 현 서울 서초구청장이 있다. 그는 80년대 중반 서울시 보사국장으로 재직할 때 서울시와 경기도 일대에 무려 열다섯 개의 복지시설을 건립했다. 그 뿐만 아니라 민선 구청장으로 일하면서 서초구를 모범 복지 자치구로 만드는 등 복지행정에 관해서는 가장 앞서 있는 공무원으로 평가받고 있다. 조남호 구청장을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김정열 소장이 만났다.
장애우 공무원 채용과 관련한 숨겨진 일화 한 토막
때는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인 1986년 이맘때였다. 4월20일 장애우의 날을 맞아 ‘백만인 걷기 대회’가 서울 시내에서 있었다. 당시 걷기대회에 참석한 염보현 서울시장, 황연대 당시 정립회관 관장, 그리고 조남호 당시 서울시 보사국장은 한 팀을 이뤄 대로를 걷고 있었다.
일행은 얼마쯤 길을 가다가 휠체어를 탄 한 장애우 청년이 길가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의례적인 격려를 해줄 요량으로 청년에게 다가선 일행. 그 중 조남호 국장이 먼저 말을 꺼냈다.
“학생이야? 장래 희망이 뭔데?” 그런데 청년은 대꾸도 하지 않고 물끄러미 일행을 쳐다보기만 했다. 조 국장은 옆에 서 있는 염 시장을 가리키며 “이 분이 서울시장이야. 시장한테 장래 희망이 뭔지 한번 얘기해 봐”라고 재차 물었다.
그제서야 청년은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뜻밖에도 청년의 입에서 나온 말은 “왜 저를 자꾸 희화의 대상으로만 삼습니까?”였다. 청년의 삐딱한 답변에 일행은 순간 당황했다. 하지만 청년은 일행이 당황해하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숨을 내쉬면서 말을 계속 이어갔다.
“저에게 사람들이 장래 희망이 뭐냐고 묻는데 내 희망은 죽는 겁니다. 시장님과 여기 계신 분들은 생일을 맞으면 기쁘지만 나는 생일을 맞으면 슬픔에 차 있고 특히 우리 어머니가 생신을 맞으면 저는 울 수밖에 없습니다. 왜 그러냐하면 우리 어머니가 생신을 맞아 한 살을 더 드시면 하늘나라로 가실 날이 그만큼 빨라진다는 건데 어머니가 하늘나라 가면 나는 어떻게 될까, 누가 나를 돌봐줄까, 나는 어른이 되는데 우리 형은 나를 어머니같이 돌봐줄까, 하는 걱정 때문에 웁니다.”
당시를 회상하는 조남호 서울 서초구청장의 말에 따르면 일행은 청년의 말을 들으면서 소름이 쫙 끼칠 정도로 놀랐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조 국장이 청년에게 물었다.
“그럼, 너는 결국 재활 문제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거구나?”
“그렇습니다. 나는 다리만 불편할 뿐 뭐든 할 수가 있고, 내가 사는 방법은 내가 취직을 해서 돈을 버는 방법밖에 없는데, 어디 나를 써줄 데가 한 군데나 있습니까?말은 이런 행사 때마다 높은 사람들이 와서 용기를 내라 그러는데 용기는 무슨 용기를 냅니까?”
그때 청년의 항변을 물끄러미 듣고만 있던 염보현 시장이 나섰다.
“어이, 조 국장. 장애우를 공무원으로 채용하는 방법이 없나?”
염 시장의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조남호 국장은 즉각 답변했다.
“현행 공무원 채용 신체검사서에는 장애가 불합격 사유로 되어 있습니다. 그 규정만 바꾸면 되는 겁니다. 그 규정만 바뀌면 되는데, 국가 공무원은 총무처 사항이지만 지방 공무원은 서울시장이 인사위원장입니다. 인사위원장이신 시장님이 이 규정만 적용하지 않는다고 방침만 정해주면 장애우의 서울시 공무원 채용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렇게 줄줄 나와도 되는 거야. 조 국장 미리 연습했어?“
“아닙니다. 그렇지만 자신합니다.”
“그래, 알았어.” 염보현 시장은 웃으면서 청년에게 다가섰다. 그러더니 청년 손을 잡고 “어이 청년, 공부해. 열심히 공부해서 내년에 나하고 만납시다”라고 말했따. 그러고 나서 염 시장은 그 자리에서 기자들을 불러 “서울시에서는 내년부터 장애우를공무원으로 채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후 염보현 시장의 약속은 지켜져서 장애인고용촉진법이 제정되기 훨씬 전인 87년부터 서울시는 장애우를 공무원으로 채용하기 시작했다.
열다섯 개의 복지시설을 건립한 보사국장
숨겨진 일화 한 토막을 들춰본 데서도 알 수 있듯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장애우복지발전에 기여한 인사들이 많다. 그 중 한 사람 조남호(59) 현 서울 서초구청장은 서울시 장애우복지에 큰 기여를 한 인물로 손꼽히고 있다.
그의 장애우복지에 대한 기여는 그가 서울시 보사국장으로 재직했던 시기인 84년부터 87년 말 까지, 그가 주도해 서울시와 경기도 일대에 무려 열다섯 개의 복지시설이 들어섰다는 데서 확인할 수 있다. 그중 대부분은 장애우 복지시설이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조남호 구청장의 소외계층과 장애우복지에 대한 관심은 민선 구청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지금도 이어져 전국 최초로 장애우 치과를 개원하고, 장애우 이용시설인 사랑의 복지관을 개원하는 등 다양한 장애우 복지 행정으로, 서초구는 주민복지와 장애우 복지에 관한 한 모범적인 자치구로 인정받고 있다. 작년 6월 서초구가 전국에서 가장 살기좋은 으뜸구로 선정된 것이 이 사실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그러다 보니 조 구청장은 평소 “가족 중에 장애우가 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가족 중에 장애우는 없다. 그렇다면 그가 장애우 복지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뭘까?
이야기는 그가 서울시 보사국장으로 재직했던 8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정렬: 구청장님은 복지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공직자신데, 장애우복지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가기 있다면 들려 주시죠.
조남호: 제가 84년 서울시 보건사회국자을 맡았어요. 당시 서울시청내에서 제일 좋다는 자리가 보사국장이었습니다. 왜 그러냐면 나이트크럽, 캬바레 등 큰 유흥업소 허가가 전부 보사국에서 나갔습니다. 그러니 그 자리에 간 사람 치고 제 명으로 임기를 마친 사람이 없었어요. 뇌물 문제 등으로 전부 도중하차했죠. 시기도 많고 모함도 많이 받는 자리였어요. 그런 자리에 앉다보니 고민이 많을 수밖에요. 그래서 어느 날 평소 알고 지내던 ‘나자로의 집’ 이경재 신부님을 찾아갔습니다. 신부님에게 내기 이런 자리에 보직을 받았는데 갈등을 느껴 찾아왔다고 하니까 네가 쓸 수 있는 예산을 말해 보래요. 그래서 보건분야 반 복지분야 반으로 나눠서 예산을 쓰는데 복지분야에 약 1천억 원을 쓸 수 있다고 대답했죠. 그랬더니 신부님은 ‘하나님이 너에게 사명을 주신 거다. 지금 아무도 장애우와 노인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있다. 그러니 보건위생 분야는 음식점, 화장실과 주방을 깨끗이 하는 데만 신경 쓰고 복지분야 일을 나하고 해보자’ 그러시는 거에요.
그게 계기가 돼서 장애우 복지사업을 시작하게 됐는데, 그 무렵 서울시에는 서울 대방동 보라매공원 연못가에 서울 남부장애인복지관과 정신지체인복지관을 건립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시설들이 완공되기 전에 옮기라고 성한 사람들이 난리를치는 겁니다. 다 지었는데 내쫓길 지경이었죠.
하루는 내가 서울시 간부회의를 들어갔는데 국장들이 난리가 났어요. 두 개의 장애우복지관을 옮겨야 한다는 거였죠. 공원녹지국장이 앞장 서서 그런 주장을 했어요. 공원을 진정한 시민공원으로 만들려면 장애우 시설을 변두리로 보내야 한다는 거였어요. 그 자리에 참석한 국장들 모두가 고개를 끄덕거리길래 내가 나섰어요. 내 가까운 친구 중에 환연대라고 있다, 황연대 씨를 봐라, 그 친구가 진명여고에 다닐 때 우리가 그 동네에 살면서 그 친구 다리르 전다고 흉을 봤다. 하지만 황연대는 놀리는데도 굴하지 않고 밖으로 돌아 다녔다, 그런 황연대를 늘 보다보니 우리는 소아마비는 본인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의 책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렇듯 장애우를 늘 접하다보면 장애우를 우리 이웃으로 생각하게 된다, 예전에는 휠체어를 탄 장애우를 사람들이 놀렸는데 요즘은 어린애까지 밀어주지 않느냐, 즉 통합교육이 얼마나 중요하냐, 이런 얘기를 쭉 했더니 그때 염보현 시장이 앞으로 이전한다는 얘기는 내 앞에서는 하지 말라고 못을 박았어요. 그때 정말 큰 보람을 느겼습니다. 내 역할이 장애우들을 죽이고 살리는구나, 복지에 있어서 공무원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 거죠.
김정열: 구청장님의 장애우 복지에 대한 기여는 아무래도 장애우 복지시설 건립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울시 보사국장으로 재직하면서 여러 곳 장애우 복지시설을 만들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시설인지요?
조남호: 하루는 이경재 신부님이 장애우 재활교육센터를 만들자는 얘기를 해요. 그래서 시장한테 가서 장애우 재활교육센터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더니 시장이 그건 또 무슨 소리냐고 반문하더군요. 그때쯤 저는 복지 전문가 아닌 전문가가 되어 있었습니다. 해서 시장한테 장애우들이 집에 처박혀 가지고 누가 찾아오면 빨리 골방에 들어가라는 가족들의 채근을 받는다, 이게 무슨 천형의 길이냐, 그러니 빨리 장애우 교육원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죠. 시장이 ‘좋다, 그러면 어디다 만들거냐’고 묻길래 서울은 땅 값이 비싸니까 수도권 지역에다 짓자. 그래서 수녀원측이 땅을 제공해 건립된 것이 경기도 광주 곤지암 성분도장애인직업재활원입니다. 이런 식으로 제가 서울시 보사국장으로 재직하면서 열 다섯 개의 시설을 만들었습니다. 인천 부평에 있는 노틀담장애인교육원도 그때 건립이 이루어졌죠. 비단 장애우시설 뿐만 아니라 제가 재직 중 부랑인 시설도 만들었습니다. 예전에 서울에는 여자 부랑인들이 많았어요. 그때는 그 분들을 단속해서 대방 부녀상담소에 보냈는데, 그런데 그 곳이 어느 정도 참혹하냐면 여름인데 내가 방문해서 문을 여는 순간 그 삼복에 발을 들여밀 데 없이 완전 콩나물시루였어요. 전부 한 군데 모여서 텔레비전만 보고 있더라구요. 내가 더워서 어떡하냐고 관리자한테 물어보니까 더운게 문제가 아니라 오줌을 싸는게 문제라는 거였어요. 왜 오줌을 싸냐고 반문했더니 원생들이 텔레비전을 보는데 화장실 갔다오면 자리가 없으니까 자리를 뺐기지 않으려고 앉은 자리에서 오줌을 싼다는 거였어요. 그 모습을 보고 서둘러 경기도 용인에 서울시가 지원하는 영보자애원을 만들었습니다. 여자 부랑인 1천명 이상을 수용하고 있는 시설인데 지금도 매우 모범적으로 시설이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정열: 그 때는 서울시에 복지예산이 많았나 보죠?
조남호: 예산도 있었지만 반은 민간자본을 끌어들여 시설ㅇ르 건립했습니다. 예를 들어 건축비를 줄테니까 대신 땅을 제공해라, 그런 식으로 짓다보니 열다섯 개 시설 건립이 가능했던 거죠.
뇌성마비 장애우들을 돕게 된 사연
김정열: 그런데 구청장님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서울시 보사국장으로 재직시 복지시설ㅇ르 건립하고 난 후 대부분의 시설 운영을 가톨릭 쪽에 맡겼습니다. 특정 종교에 대부분의 시설 운영을 맡긴 것에 대해서 일부에서 비판도 있는데 가톨릭쪽에 시설을 위탁하게 된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지요?
조남호: 제가 보사국장으로 재직할 당시만 해도 시설 운영을 맡길만한 곳이 가톨릭쪽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욕을 많이 먹었는데, 유일하게 불교에 시설 운영을 맡긴 곳이 목동청소년회관이었습니다. 제가 왜 가톨릭 쪽에만 시설 운영을 맡겼냐면 가톨릭은 신부와 수녀님들이 직접 운영에 나서기 때문에 우선 부정의 소지가 없다고 생각해서입니다. 재미있는 게 일반인들이 운영하는 시설은 저녁에 사회과장이 가면 술 사줍니다. 가톨릭은 그런게 없습니다. 저는 여지껏 제가 무사히 공무원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크게 얘기하면 주변 사람들을 잘 만났다는 거고, 작게 얘기하면 가톨릭에 시설위탁을 맡겼기 때문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김정열: 구청장님은 공무원으로서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장애우들을 돕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특별히 뇌성마비 장애우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돕고 잇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으십니까?
조남호: 사연이 있습니다. 제가 서울시 보사국장으로 재직할 당시 하루는 국장실에 한 아주머니가 찾아 왔습니다. 그 아주머니 말인즉슨 내 딸하고 자기 딸하고 동창이래요. 그러냐고, 그런데 어떤 일로 왔냐고 물어봤더니 오늘 너무 슬픈 얘기를 들어서 찾아왔다고 그러면서 나한테 한 가지를 질문하겠대요. 뭐냐고 했더니 정신지체 장애와 뇌성마비 장애의 차이점이 뭔지 기준을 얘기해 달라는 거였어요. 내가 우물쭈물 했더니 그 아주머니가 대뜸 ‘그게 문젭니다. 국장님이 서울시에서는 장애우에 대해 제일 밝다고 알고 있는데 국장님도 모르는데 시장님은 더 모를거 아니냐’, 그러면서 찾아온 사연을 얘기하는데 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딸이 연세대를 들어갔대요. 그런데 아이큐가 정상인데 정신지체인 취급을 한다 이거예요. 그 뿐만 아니라 그 딸이 그 날 패스트푸드점에 햄버거를 사러 들어갔는데 아르바이트 일을 하는 대학생이 ‘야, 백원 줘라’ 그러더래요. 그래서 딸이 돈 1천원을 꺼내면서 햄버거를 사먹으러 왔다고 흔들었는데 그걸 못 알아듣고 ‘야 더 줘라’, 그러더니 빨리 나가라고 2백원을 주면서 쫓아내더라는 거예요. 아주머니 하는 말이 딸이 집에 들어와 가지고 방문을 걸어 잠그고 울더랍니다. 식음을 전폐하고 우는데 너무 가슴이 아파 나를 찾아 왔다 이거예요. 그 아주머니 얘기를 듣는 순가 나도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뇌성마비 장애우를 보게 되면 남 같이 여겨지지 않아서 조금씩 돕고 있죠.
김정열: 지금 장애우에 대한 인식 문제 얘기를 하셨는데, 10년 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장애우 시설 건립에 대한 주민 반대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지난 해에는 지애학교 사건이 있었죠. 공무원으로서 지역 주민들의 장애우 시설 건립 반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씀해 주시죠.
조남호: 주민 반대 보다는 몇 사람들이 충동질을 하는 게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장애우 시설이 들어오면 들어오나 그러는데, 그 중 몇 사람이 나서서 ‘야, 장애우 학교가 들어온다는데 어떻게 돈을 뜯어낼까’ 그런단 말이에요. 그러면서 주민들을 충동질하는데, 저는 근본적으로 교육이 잘못됐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벌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금도 기억하는 게 어렸을 때 동네에서 시각장애우를 흉봤다가 부모님한테 크게 혼이 난 적이 있습니다. 어디서 누구한테 그런 못된 버릇을 배웠냐고, 부모님이 야단을 치는데 그러다 보니 그 다음부터는 시각장애우들을 만나면 저 사람들 흉 봤다고 혼났지, 하는 생각이 머리에 떠올라서 절대 흉을 보지 않았어요. 그 다음 장애우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야겠다는 생각은 제가 나이가 들면서 희지팡이를 들고 가는 장애우를 옆에서 도와주면 얼마나 편하게 갈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였죠. 이런 식으로 장애우에 대한 인식은 어렸을 때부터 부모가 바른 교육을 시키고 동화책과 드라마 같은 매체도 ‘장애어린이도 내 친구고, 내 형제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고, 그런 것들을 아이들이 보고 자라면 커서 장애우시설 건립 반대를 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죠.
민선구청장은 장애우표 의식
김정열: 맞는 얘깁니다. 그래서 통합교육은 대단히 중요한데, 교육 외에 제가 10년여 동안 일을 하면서 갖는 느낌은 교육부 복지부 노동부, 이렇게 세 군데 부처에 한 해 약 3천억 원 가까운 예산을 장애우 복지 예산으로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예산이 장애 당사자의 피부에 직접 닿지 않는 걸 보면 중간에서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관건은 지방자치제이고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보여지는데, 저희가 매년 지방자치단체 상대 평가를 해본 결과 어떤 지역은 지방자치제가 잘 운영돼서 장애우에게 의미가 있는 반면 어떤 곳은 그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 오히려 더 나빠졌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IMF 시대를 맞아 주민 복지에 있어서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더 커지고 있는데 어렵지는 않는지요?
조남호: 다른 구청은 몰라도 저희는 IMF시대를 맞아 복지에 더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러냐면 한 마디로 각 가정에 맞벌이 부부가 더 늘어날 거 아닙니까. 그런데 집안에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있어봐요. 며느리는 꼼짝도 못하는 거죠. 그래서 노인분들을 임시로 맡길 시설이 없을까, 궁리하다가 이번에 ‘탁로방’을 만들었습니다. 이런식으로 복지비는 거꾸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을 때 과감하게 써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김정열: 구청장님은 관선 구청장도 하셨고 민선 구청장도 하셨는데, 어떻습니까? 관선 구청장이 낫다고 보시는지 아니면 민선이 나은지 장단점을 비교해서 설명해 주시죠?
조남호: 관선 구청장이면 서초구청장은 임기가 길어야 1년 반입니다. 그리고 중앙 눈치를 보게 되죠. 업무보고를 받다보면 6개월이 지나고 장기적인 목표 설정 자체가 어렵습니다. 반면 민선은 임기가 보장돼있으니까 내가 있을때 장애우 복지에 획을 그어 보겠다고 생각만 하면 대부분 이룰 수 있죠. 그리고 민선은 아무래도 표를 의식하게 되니까 장애우표가 얼마 안되지만 와서 신경을 써야 됩니다. 그러다 보면 소외계층에게 뭐를 공약하고 실천할까 고민하게 되는 거죠.
김정열: 마지막으로 앞으로 서초구의 장애우 복지 계획을 세운 게 있다면 말씀해 주시죠.
조남호: 얼마전 구에서 운영하는 장애우 치과를 이용하는 어느 시각장애우 한 분에게 후원자 도움을 받아 의치를 하나 해준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그 시각장애우가 세상에 음식이 이렇게 맛있을 수 있느냐고 감격합니다. 그 얘길 듣고 느낀 게 앞으로 장애우를 도울 때 시설건립 뿐만 아니라 실생활에 꼬 필요한 부분에 도움을 줘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서초구내에는 약 2천명의 장애우가 살고 있는데 이 분들을 위해 앞으로 장애우 전용버스 운영, 장애우 복지기금 조성, 장애우 전용공원 설치 등의 여러 가지 사업을 계획하고 있지만 이런 계획보다는 장애우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장애우 복지에 힘쓰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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